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97화 (97/224)

#97

아메리카 레이드 파티 [6/6] (5)

“오른쪽.”

“왼쪽.”

인혁과 재이가 동시에 내뱉었다. 잠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던 두 사람 중 인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럴 땐 지도를 믿는 게 낫지 않아? 표지판에 누가 장난쳐 놨을지도 모를 일이잖아.”

재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표지판이 정확하지. 그 지도가 언제적 건지도 사실 잘 모르잖아. 듣자 하니 여기 홍수 한 번 날 때마다 지형도 꽤 바뀐다던데.”

재이의 반박을 듣고 있던 인혁이 일리 있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마을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없고, 어느 쪽이건 가 봤다가 아니다 싶으면 되돌아 나오는 수밖에.”

“왜 하필 이럴 땐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걸까.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면 쉬울 텐데.”

“다들 여기서 싸해져서 돌아간 거 아닐까.”

“아, 납득.”

인혁이 또다시 재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네 말대로 표지판 따라 가 볼까.”

야생에선 한재이의 감을 믿어라.

인혁이 일찌감치 [생존의 법칙]에서 재이와 동행하며 체득한 교훈이었다.

얼마 후.

“헉, 헉…. 야,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옆에 두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돌투성이의 좁은 길을 한참 걷고 있던 인혁은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을 참지 못하고 재이에게 말했다.

“음,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지 않아? 저기 길 이어져 있잖아.”

“그 길이 폭포로 이어지는지 어떻게 알아? 여기서 길이라도 잃으면 꼼짝없이 조난이라고.”

“길만 따라가면 조난은 안 당할 테니까 걱정 마. 길이 나 있다는 건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라고.”

재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머리로는 재이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도 없이 눈앞에 난 길에만 의지해 걷는 것에 본능적인 불안감이 솟아 올랐다. 인혁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혹시 정말 길을 잃는다고 해도 감독님이 우리 오는 내내 찍으셨으니 그거 보면 돌아가는 길 찾기는 쉬울 거야.”

재이가 마을에서 출발했을 때부터 자신들을 줄곧 카메라에 담고 있는 VJ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격한 인원 제한 탓에 저희에게 붙은 촬영팀이라고 해 봐야 달랑 눈앞의 VJ 한 사람뿐이었다. VJ가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래, 일단은 더 가 보자.”

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일행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기 보인다-!!!”

“오오오! 역시, 야생의 한재이!”

인혁과 재이는 감격한 얼굴로 절벽 너머를 쳐다보며 환성을 질렀다. 그곳에는 붉은 절벽을 타고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청록빛 폭포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폭포 아래쪽으로 넓게 생성된 호수 또한 햇빛을 받아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경관을 보고 있자니 표지판도 지도도 없이 좁게 난 길에만 의지해 걷는 내내 마음속을 어지럽히던 불안감이 싹 씻겨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려가 보자.”

“조심해. 발 잘못 디디면 그대로 황천길이다.”

인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재이가 앞서 걸었다. 절벽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로프와 나무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사람이 못 다닐 길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한 발자국만 헛디뎌도 곧장 절벽 아래 붉은 돌밭과 뜨거운 키스를 하게 생긴 상황. 영 부실해 보이는 지지대를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가기를 한참, 마침내 발이 ‘땅’에 닿자 드디어 추락의 위험에서 벗어났구나 싶은 생각에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후. 죽겠다. 감독님, 조금만 쉬었다가 가죠?”

긴장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인혁이 말했다. VJ도 인혁과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절벽을 내려오느라 가방에 넣어 둔 카메라를 꺼내 드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 그럼, 저기 호수 주변 좀 둘러보고 올게요.”

두 사람과 달리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뭉친 근육을 풀고 있던 재이가 말했다.

“한재이 넌 지치지도 않냐.”

“그대로 앉으면 퍼질 것 같단 말이야.”

“너무 멀리 가지 마라.”

“내가 애냐. 이 주변만 볼 거야.”

차인혁 저건 리더 감투 쓰더니 어째 가면 갈수록 잔소리만 느는 것 같아.

재이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진짜 자신의 말대로 표지판과 지도가 서로 다른 길을 가리키고 있는 탓에 관광객들이 올 엄두를 못 낸 것인지 단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폭포엔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관광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랜만에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재이는 저도 모르게 두 팔을 쭈욱 뻗어 기지개를 켰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기는 해도 습하지 않아 상쾌한 미서부 특유의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봐. 거기 젊은이.”

…응?

재이는 등 뒤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전혀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어.’

이 동네에 와서 아무리 방심하고 살았다지만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기척을 놓치다니. 여유롭게 풀어졌던 기분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바짝 경계심을 끌어 올리며 뒤를 돌아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재이가 돌아본 것을 확인한 그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 세월 햇볕에 그을려 어두운 갈색 피부는 주름으로 가득했고, 아마도 새카맸을 머리카락은 시간의 흔적과 함께 하얗게 바래 있었다. 어딘지 형형해 보이는 눈빛 탓인지 그가 입고 있는 낡은 티셔츠와 반바지만 아니었다면 과거에서 타임슬립한 인디언 추장이라도 만난 줄 알았을 것이다. 재이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원주민 할아버지가 재이에게 말했다.

“*너, 왜 거기에 있지?”

무슨 말이지. 여기 혹시 출입 금지 구역인가?

재이는 노인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구경 왔어요. 여기 오면 안 되는 곳이에요?”

재이의 대답이 들리지 않는지 노인은 재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재이가 뭐라도 물어보려고 노인을 쳐다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뭐야, 저 눈빛.’

노인과 눈이 마주친 재이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옅은 회색빛 눈동자가 자신이 아닌 그 너머의 어딘가를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대답 대신 재이를 한참 쳐다보고 있던 그가 드디어 다시 입을 열었다.

“*용사의 혼이구나.”

“!!!”

…설마.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놀란 재이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지금 뭐라고 하셨…….”

“*용케 죽지 않았네.”

“*어느 쪽이요?”

저요? 아니면…….

재이가 그를 빤히 마주 보며 나직이 물었다.

“*돌아가고 싶으냐?”

“—!!!”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쏴아아아-

기이할 정도로 적막한 공간에 기세 좋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 소리만이 귓가를 때렸다.

그때였다.

“한재이~, 야! 한재이! 어딨어~!”

재이는 문득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자신을 찾고 있는 인혁과 VJ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 나 여깄어!”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며 외치자 인혁이 이쪽을 발견했는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힐끔, 뒤를 돌아본 재이는 여전히 자신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노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건.”

“*찾고 싶다면 보일 것이야.”

뭐라는 거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하려던 참에 마침 가까이 다가온 인혁이 말했다.

“야 한재이, 어디 갔는지 한참 찾았잖아. 주변에 있겠다더니. 잃어버린 줄 알고 식겁했잖……. 어… 이, 분은 누구?”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으려던 인혁은 재이의 뒤쪽에 서 있던 노인을 뒤늦게 발견하고 설명하라는 눈빛으로 재이를 바라보았다.

“어? 어. 우연히 만났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데?”

“어 그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사이 인혁과 재이를 바라보고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수파이족 최후의 점성술사가 미래를 봐 드리지. 사람당 300달러인데. 어때, 관심 있나?”

실례지만 도둑분이신가.

점 한 번 보는데 300달러라니. 가격에 0 하나 더 붙은 거 아닙니까, 혹시? 아무리 여기가 파워스폿이다 뭐다 한다지만 관광객 상대로 너무 뜯는 거 아닌가.

인혁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재이를 돌아보았다. 그 표정에 ‘너 설마 저 상술에 걸려든 거 아니지’라고 쓰여있는 것을 읽은 재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좌우로 힘차게 가로저었다.

“*하늘과 물의 기운으로 영혼을 탐구하는 수파이족의 점성술은 천년의 명맥을 자랑하는 비전의 술법. 저 머나먼 타지에서 이곳까지 찾아온 이국의 청년들이여, 그대들의 영혼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한 사람당 300달러지만, 둘이 같이 본다면 내 특별히 500달러만 받도록 함세.”

그 와중에 디스카운트까지.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시구나.

인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바로 하고 그에게 물었다.

“*점은 됐고. 길 좀 여쭤도 될까요? 수파이 마을로 돌아가려면 온 길을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나 해서요. 왔던 길이 너무 험해서 혹시 좀 더 편한 길이 있다면 돌아갈 땐 그쪽으로 가고 싶거든요.”

인혁의 말을 들은 노인이 눈동자를 빛내며 씩 웃었다. 다 빠지고 몇 개 남지 않은 이빨 사이의 금니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매우 사기꾼스러워 보였다.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하는 법. 그러나 그 길을 찾는 것은 결국 본인만이 할 수 있는 법이지.”

그의 아리송한 대답에 인혁이 살짝 눈을 찌푸리며 재이를 돌아봤다. 재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마 300달러 내고 진짜 점이라도 보지 않는 이상 제대로 알려 주실 것 같지 않은데, 그냥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게 어때?”

재이의 말에 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저 수상한 할아버지의 용돈벌이를 돕느니 조금 힘들더라도 온 길로 되돌아가서 그 돈으로 맛있는 거라도 사 먹는 게 나았다. 일행은 노인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폭포 앞에서 인증샷을 찍은 뒤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다시 그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번엔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에 잠시 심호흡을 한 재이가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뒤를 돌아보았다.

폭포 주변을 서성이던 노인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재이와 시선이 마주친 노인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햇볕에 그을린 투박한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온 사방을 태워 버릴 듯 뜨겁게 타오르는 한낮의 태양이 떠 있었다.

* * *

“헉, 헉… 야, 아직 멀었어?”

인혁이 앞장서 걷고 있던 재이에게 물었다. 아마 지도가 없는 구간은 이미 지나왔을 터였다.

“아냐, 거의 다 왔어. 조금 더 가면 마을 입구.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며 묻는 재이의 물음에 인혁이 시계를 확인했다. 제한시간까지 앞으로 5분 남짓.

“아직… 헉… 5분…….”

“안 되겠다. 뛰자.”

“야, 한재이. 야아!”

대체 어디에 저런 체력이 남아 있었던 거지? 앞장서서 뛰기 시작하는 재이에 인혁뿐만 아니라 옆에서 걷던 VJ까지 앓는 소리를 냈다.

“헉, 헉……. 나 난, 도저히 못 뛸 것 같은데.”

“괜찮아요. 감독님. 그게, 헉, 정상이에요.”

인혁이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헬리콥터고 뭐고. 지금 뛰었다간 당장에 숨넘어가게 생겼다. 재이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인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

.

.

“5, 4, —”

“차인혁, 빨리! 뛰어! 뛰어!!”

“헉헉… 헉…….”

“3, 2, —”

“차인혁! 어서!! 막판 스퍼트!!!”

“으아아아아——!!”

“1, 제로!!!”

털퍼덕.

카운트다운의 마지막과 함께 골인 지점에 슬라이딩하듯 몸을 던진 인혁이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헉, 헉. 나 진짜 죽어. 허억 헉.”

단정하고 차분한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흙먼지 풀풀 날리는 맨바닥에 대자로 널브러져 숨을 고르고 있는 인혁을 내려다보며 그보다 조금 먼저 도착해 있던 재이가 입을 열었다.

“와, 그래도 의지의 차인혁, 시간 내에 골인했어.”

“헉헉… 허억 헉… 다시는… 너랑 팀 안 해.”

“뭐야 사람이 칭찬하는데 다짜고짜 뺨을 때리네. 너무하는 거 아니냐, 인간적으로.”

재이는 투덜거리면서도 인혁에게 시원한 물병을 건네주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재이가 건네준 생수 한 통을 단숨에 비워 낸 인혁이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든 듯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 다른 애들은?”

“아직.”

“그 말은.”

“우리가 1등이란 소리지.”

헬리콥터 탈 준비는 됐어?

대답과 함께 재이가 인혁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려 보였다.

* * *

다음 날 아침

“이야, 위에서 보니까 완전 다른 세상이네.”

“우욱. 나 건들지 마. 쏠릴 것 같아. 우욱.”

얘는 뭐만 타면 대체로 이러더라.

재이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손잡이를 꽉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인혁을 힐끔 쳐다보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제한시간까지 도착한 유일한 팀이었던 인혁과 재이 두 사람은 수파이 마을에서 주차장까지의 거리를 걸어 올라가는 대신 헬리콥터로 이동 중이었다. 간만에 촬영용 카메라와 동승한 탓인지 헬리콥터 조종사는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하바수파이 절경 투어를 서비스로 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호의에 신난 것은 재이와 담당 VJ뿐, 인혁은 좁은 절벽과 절벽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며 위아래로 종횡무진 이동하는 헬리콥터의 곡예비행에 멀미를 하는 듯 줄곧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하바수파이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붉은 절벽 사이사이로 청록색의 물줄기가 굽이치며 흐르고 있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도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니 이 또한 예술이었다.

“와… 진짜, 최고네.”

“우… 우욱.”

“으악, 야 차인혁, 여기다 쏟지 말고 저리 가! 저리!”

아 어째서 나의 감동적인 순간을 방해하는 거냐고.

도대체가 도움이 안 되는 리더 녀석에게 속으로 발차기를 날리며 재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배신자들”

땀과 먼지로 엉망이 된 채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트레킹 레일의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엠케이가 헬리콥터에서 내려 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재이와 인혁을 발견하자마자 중얼거렸다.

“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는 정당하게 미션을 클리어 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은 것뿐이라고.”

재이의 말에 엠케이와 비슷한 몰골로 나타난 이환과 다른 멤버들이 하나둘 말을 보탰다.

“듣고 싶지 않다. 나는 비겁하게 치트키를 쓴 자와는 앞으로 말을 섞지 않겠어.”

“하바수파이를 제 발로 정복하지 않은 자는 하바수파이를 다녀왔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아무리 미션이었대도 멤버를 버리고 일신의 편안함을 택한 너희 둘을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이야.”

대체로 제정신들이 아니구나, 너희들.

피로에 쩔어 아무 말을 내뱉는 멤버들을 딱하게 바라본 재이는 스태프들과 함께 준비해 뒀던 시원한 음료와 물수건을 멤버들에게 건넸다.

“그래그래. 하늘이 용서치 말라고 하고. 어쨌거나 올라오느라 수고했다.”

평소라면 백 배로 얹어서 되받아쳤을 재이가 독설 대신 부드러운 말투로 자신들을 다독이자 당황한 표정의 엠케이가 다른 녀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야, 나 드디어 헛 게 보이는 것 같아. 착한 한재이라니.”

“내가 죽을 때가 다 됐나 보다.”

“아니면 쟤가 죽을 때가 됐거나.”

“물에 독 탔나 확인해야 되는 거 아니냐.”

역시 이것들은 동정의 여지가 없어.

재이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말했다.

“시끄럽고. 대충 다 마시고 씻었으면 가서 타. 언제까지 뭉그적대고 있을 거야.”

주차장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던 멤버들에게서 수건과 빈 물통을 홱 잡아채며 재이가 뾰족한 목소리로 타박했다.

“저래야 한재이지.”

“난 또. 하바수파이의 영험한 기운이 저 녀석 독기까지 정화시켰나 순간 헷갈렸잖아.”

“하바수파이도 한재이는 포기한 듯.”

“근데 차인혁은 왜 저래?”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일어나던 멤버들은 그제야 한쪽 구석에 기대앉아 있는 자신들의 리더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설명을 원하는 멤버들의 시선에 재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멀미. 저럴 줄 알았으면 너희랑 같이 걸어 올라오라고 할 걸 그랬어.”

재이가 던진 떡밥에 굶주린 하이에나들이 기다렸다는 듯 몰려들었다.

“아이고 아까워라.”

“차인혁 저 이기주의자. 그런 건 타기 전에 말했어야지.”

“그러면 내가 기꺼이 바꿔 줬을 텐데.”

“헬리콥터에도 멀미하다니. 앞으로 뭐 탈 일 있으면 차인혁은 빼자고.”

물어뜯기는 본인이 아직 멀미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 * *

“와 진짜 여긴 끝도 없구나.”

피곤함에 지쳐 곯아떨어졌다가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한 멤버들은 도로 양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황무지를 둘러보고는 감탄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일행의 목적지는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글램핑 구역이었다.

먹고 자는 것으로는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장 이사의 말대로 일반적인 캠핑이 아닌 글램핑이란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지만 먹고 자는 것 이외의 모든 것에서 이미 만신창이가 된 멤버들은 글램핑에 대해서도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분명 뭐 미션에 성공한 자만 들어가 자고 나머지는 텐트에서 자라고 하겠지.”

“설마, 자는 건 안에서 재울 거야. 근데 잘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선 미션을 통과해야 한다거나.”

“나 진짜 비즈니스 세계가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잖아.”

“힐링이라며, 충전이라며. 지옥 속에 방전 직전인뎁쇼.”

멤버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재이가 인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리더. 뭐 들은 거 없어? 우리 거기 가면 뭐 한대?”

온갖 멀미 중에 다행히 차멀미는 안 하는 인혁이 한숨 자고 난 덕인지 멀쩡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나도 몰라. 근데 아마.”

“아마 뭐?”

멤버들의 이목이 인혁에게로 쏠렸다.

“뭔갈 하긴 할 거야. 아까 출발하기 전에 석관이 형이 PD님하고 얘기하는 거 들었는데 윤효민 실장님하고 VD팀분들 현지에서 대기 중이라고 하더라고.”

멀미하는 척 제작진의 대화를 챙겨 들은 모양이었다.

“역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는 성실한 차 리더.”

“차 리더의 유일한 장점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아니 근데 윤효민 실장님이 이 이역만리 오지까지 직접 오셨다고?”

“진심 우리한테는 미리 얘기해 줘도 되는 거 아니냐고요. 인간적으로.”

‘윤 실장님까지 오셨다는건…….’

멤버들의 목소리를 귓가로 흘리며 재이는 생각에 잠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