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아메리카 레이드 파티 [6/6] (7)
“한재이 씨, 어제 한숨도 못 잤다는데 사실인가요? 왜죠?”
엠케이에게서 엠씨를 가로채 신이 난 남궁찬이 흥에 겨운 목소리로 물었다. 재이는 궁금해하는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고는 마이크를 들었다.
“네. 사실입니다. 차인혁 씨 때문에요.”
멤버들의 시선이 인혁에게 쏠렸다.
자신이 지목당했다는 사실이 의외였던 듯 드물게 당황한 인혁의 얼굴을 쳐다본 재이가 말을 이었다.
“엊그제 헬리콥터를 탔는데 인혁 씨가 멀미 엄청나게 했거든요.”
- 탈것에 약한 차 리더 ㅋㅋㅋ
- 의외로 섬세하다니까?
- 차멀미는 안 하겠지 설마ㅜㅜ?
- 인혁 오빠 표정 풀어요. ㅋㅋㅋ
- 왠지 폭로전의 냄새가
- 팝콘
- 팝콘 22
채팅창의 글들을 힐끔 살핀 재이가 이어 말했다.
“밤새도록 으어어어 너무 높아요, 아아아아 갑자기 내려가지 마, 으어어어 거길 어떻게 지나가요. 우욱 쏠려……. 하는데, 진짜 옆에 있는 저까지 멀미할 뻔했다고요.”
인혁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 저 그거 알아요.”
인혁이 뭐라 말하려 마이크를 드는데 은규가 한 박자 빠르게 입을 열었다.
“제가 그래서 데뷔하고부터는 그냥 잘 때 이어폰으로 음악 들으면서 잔다고요.”
숙소에서 인혁과 같은 방을 쓰는 은규가 한 말에 옆에 있던 이환이 끼어들었다.
“와 진짜요? 전 지금까지 음악에 진심인 은규 씨가 자는 시간까지 공부에 투자한다는 생각에 내심 좀 존경하고 있었는데.”
“지금 제가 한 말은 없었던 일로 하죠. 하시던 대로 계속 존경해 주세요. 네.”
“은규 씨가 음악적 재능을 꽃피우는데 인혁 씨가 아무도 모르게 일조하고 있었다는 말이네요.”
“크으. 이것이야말로 미담이네요. 미담.”
‘차인혁 녀석이 시끄러웠던 것도 있지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던 멤버들을 바라보며 재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자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그깟 잠꼬대쯤 애교로 봐 주고 잘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재이로서는 드물게도 잠이 오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하바수파이에서 만났던 그 수상한 점쟁이 노인의 눈빛이 자꾸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 용케 죽지 않았네.
- 돌아가고 싶으냐.
- 찾고 싶다면 보일 것이야.
자신의 혼을 꿰뚫어 보는 듯했던 늙은 점쟁이의 형형한 눈빛이 떠올랐다.
그리워 해 봤자 돌아갈 수 없는 곳.
한 번 지나온 길은 뒤 돌아보지 않는다.
그것은 전쟁터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낸 리온이 살아온 방식이었다. 기억 속에서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발버둥 쳐 봤자 돌아오는 것은 스스로의 정신을 갉아먹는 허무함뿐이었다. 어디에서든 어떻게 해서든 살아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걸어온 삶이었다.
그렇지만.
그 ‘삶’이란 누구의 ‘삶’일까.
그 점쟁이는 분명 ‘용케 죽지 않았네’라고 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
.
.
“그래서, 침낭 들고 남의 텐트로 쳐들어간 거예요? 하필이면 왜 우리 텐트에? 다른 텐트도 있잖아요.”
“은규 씨 같으면 자는 재이 씨를 깨우겠어요, 아니면 은규 씨를 깨우겠어요?”
“그거야… 저죠.”
“그런 겁니다.”
하하하하-
재이는 옆에서 들려온 인혁의 웃음소리에 퍼뜩 상념에서 깨어났다. 화제는 벌써 옮겨 가 지금은 ‘엠케이와 남궁찬이 간밤에 이사를 감행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에 대해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한낮에는 그냥 서 있기에도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운 사막 기후는 밤이 되면 난로를 피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로 급속도로 추워졌다.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자기 전 모두 난로를 피우고 잤지만, 엠케이와 남궁찬이 머문 텐트는 두 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불이 꺼져 버렸다. 추위 때문에 잠에서 깬 둘은 난로를 붙잡고 불을 다시 살리는 어려운 길 대신 다른 텐트로 쳐들어가 얹혀 자는 쉬운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들이 택한 곳은 재이와 인혁 대신 이환과 은규가 자고 있는 쪽의 텐트였다.
“자다가 인기척 느껴져서 깨 봤더니 이환 씨는 옆에서 자고 있는데 텐트 안에 사람 그림자가 막 보이잖아요. 진짜 놀라서 비명 지를 뻔했다고요.”
고개를 가로저으며 투덜거리는 은규에게 엠케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저희가 양심은 있어서 침낭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까. 사실 마음 같아선 두 분 자고 있던 매트리스에 비집고 들어가고 싶었는데 말이죠.”
“선 넘으시면 안 되죠. 그랬으면 진짜 바로 쫓아냈습니다.”
“이런 으음……. 방송 중인 거 깜박하고 지금 험한 말 나오려고 했다고요.”
은규와 이환이 펄쩍 뛰며 인상을 콱 찌푸리자 듣고 있던 남궁찬이 상황을 무마했다.
“그래도 저희가 들어온 덕에 난로 꺼진 뒤로도 따뜻하게 잘 수 있었잖습니까. 아니었으면 지금쯤 싹 다 감기 걸려서 코맹맹이 소리 내고 있었을걸요.”
“그러고 보면 저희 텐트 세 동 중에서 아침까지 난로 계속 타고 있던 건 재이 씨랑 인혁 씨 텐트뿐이네요?”
은규가 새삼스럽게 인혁과 재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건 뭐, 이제 놀랍지도 않네요.”
“그나마 저희 난로도 새벽녘까지 살아 있으며 선전했다는 점을 어필하고 싶군요.”
은규의 말에 엠케이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리자 이환이 얼른 끼어들었다. 그러자 발끈한 엠케이와 남궁찬이 앞다투어 덧붙였다.
“난로가 꺼졌다고 인생도 꺼지는 거 아니잖아요?”
“그럼요. 그럴 때 의지하라고 멤버들이 있는 거죠, 하하.”
“근데 재이 씨 어차피 깨어 있는 줄 알았으면 저희 텐트 와서 난로나 좀 봐 달라고 할 걸 그랬죠?”
엠케이의 말에 남궁찬이 눈썹을 살짝 구기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러기엔 인상을 너무 험악하게 쓰고 있어서 왠지 말 걸기가 무섭더라고요. 인혁 씨 잠꼬대가 심각하긴 했던 모양이…….”
“오. 여기서 밝혀지는 제보자의 정체!”
남궁찬의 말을 끊고 엠케이가 소리쳤다. 은규와 이환이 재밌다는 듯 신나게 박수를 쳐 대고 있었다.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달은 남궁찬이 발끈하며 외쳤다.
“앗! 유도 신문이라니. 비겁합니다!”
“넘어간 쪽이 잘못인 거죠.”
재이의 냉정한 말에 이때다 싶어 멤버들이 하나둘 말을 얹었다.
“그럼요 그럼요. 저렇게 홀랑 넘어가 버리다니. 남궁찬 씨 의외로 수비가 약하네요.”
“비즈니스는 정글이라고 외치던 분답지 않은 어리바리함인데요. 혹시 노림수인가요, 허당 캐릭터.”
“오 그거 우리 팀에 벌써 있잖아요. 차 리더가 그렇게 쉽게 자기 캐릭터 내 주지 않을 텐데.”
“가위바위보 단판으로 제가 이기면 한 번 고려해 보도록 하죠.”
하나로 똘똘 뭉쳐 자신을 몰아가는 멤버들을 둘러본 남궁찬이 중얼거렸다.
“정보원의 신상 보호도 안 해 주는 세상이라니. 포션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시대의 저널리즘이 땅에 떨어지고 있는 순간을 목도하고 계십니다.”
남궁찬의 사뭇 비장한 아무 말에도 멤버들은 이미 성공적인 찬 몰이에 만족한 기색이었다.
“그럼 서로에게 상처만 준 폭로전은 이쯤하고 우리 노래나 더 해 볼까요?”
산만해진 분위기를 정리하듯 인혁이 말했다.
“이번 코너는 ‘파티의 신청곡 코너 - 네 노래가 듣고 싶다!’ 입니다!”
큐 카드를 들고 있던 엠케이가 코너명을 외쳤다.
“이번 코너는 멤버들이 다른 멤버에게 듣고 싶은 노래, 불러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곡을 이야기하고 그 노래를 직접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거 진짜 리얼 생방송이에요. 누가 누구를 지목할지, 그 사람에게 어떤 곡을 불러 달라고 할지는 멤버들과도 상의한 적이 없습니다. 기대되시죠? 네 저도 그렇습니다.”
엠케이의 설명에 이어 인혁이 말했다.
“그러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말해 보도록 할까요. 원활한 진행을 위해 리더인 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 뒤론 지목받은 사람이 다음 사람을 지목하는 거로 하죠.”
인혁이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한재이 씨. 사실 재이 씨 처음 봤을 땐 우리가 함께 데뷔해서 여기까지 이렇게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었는데 말이죠.”
“뭐죠 이건, 일단 멕이고 시작하는 건가요.”
재이의 가벼운 한마디에 인혁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이어 말했다.
“하하, 조금 표현이 그랬나요. 사과드립니다. 아무튼, 그런 저희가 지금 이렇게 서바이벌을 거쳐 데뷔까지 하고 포션 여러분들을 비롯해 많은 분의 사랑을 받아 여기까지 왔잖아요? 아마 이 풍경을 보고 있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이 웅장한 자연 속에서 우리 멤버들과 랜선 너머 모여 주신 포션 여러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이 있다면 한 곡 부탁드려도 될까요.”
인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이가 대답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멤버들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첫 타자부터 난이도 너무 높은 거 아닙니까.”
“차 리더 상의도 안 된 상태에서 이런 문제를 내다니, 상도덕 어디 갔죠?”
“저런 주관식 문제 저는 반댑니다. 한국인은 뭐다? 사지선다 객관식이죠.”
“한재이 씨 한정 프리미엄 난이도라고 믿고 싶습니다.”
멤버들의 원성 속에 재이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어, 제가 너무 심했나요? 리퀘스트를 조금 바꿔 볼까요?”
인혁이 드물게 망설이는 사이 생각을 마친 재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음 근데 그냥 부르긴 좀 아쉬운데. *크리스, 잠깐 기타 좀 빌려줄 수 있어?”
- 지금 재이 영어 했니?
- 너무 자연스러워서 한국어인 줄
- 저분 버스킹 기타남신
- 재이 기타도 치려고??
- 어디까지 높아질 거야 난이도 ㄷㄷㄷ
카메라 앵글 밖에서 구경 중이던 크리스에게서 기타를 받아 든 재이가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재이의 손에서 기타의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
“이건.”
“오.”
멤버들이 의외라는 듯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파티의 데뷔 앨범에 수록되었던 히든트랙. 그 수상하고 의뭉스러운 인트로가 재이의 손끝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던 엠케이가 눈치 좋게 나레이션을 쳤다.
“이곳은 고객 센터. 파티원의 불만을 접수합니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러자 원곡에서의 인혁 대신 재이가 입을 열었다.
“이번 레이드, 제가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달라서요.”
심각한 재이의 목소리와 함께 낮게 튕기는 기타 음에 맞춰 원곡과 같은 랩이 아닌, 재이의 즉흥곡이 흘러나왔다.
사실 난 생각했어 이번 레이드 내가 혼자 씹어 먹을 거라고
그리고 생각했지 이번 레이드 내가 혼자 다 해 먹어야지
그래 난 자신 있었어 이번 레이드 나 혼자 하드캐리
모두 얘기하겠지 역시 쩔어 주는 한재이라고오허~
느릿하고 부드러운 반주와 함께 능청스럽게 시작된 재이의 즉흥곡에 멤버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채팅창의 팬들은 한재이가 또 어그로 끈다고 웃고 있었지만 멤버들은 알고 있었다. 저것이 단 한 치의 거짓도 없는 한재이 녀석의 진심이라는 것을.
‘진짜 혼자 다 해 먹을 생각이었구나. 무서운 놈.’
인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처구니없는 가사와는 달리 쓸데없이 고퀄리티의 바이브레이션과 귓가를 꽉 채우는 보이스에 나름 소울 충만하게 느껴지던 노래의 박자가 다음 순간 갑자기 빨라졌다. 나직하고 느릿한 반주에서 급작스럽게 현을 잡아 뜯는 듯한 격렬한 스트로크로의 변주와 함께 재이의 고음 샤우팅이 이어졌다.
근데 망했어 망했다고
개님들의 최애인간 남궁찬이 다 가져갔어
근데 망했어 망했다고
킹 오브 버스킹 갓은규가 다 채 갔다고
그리고 또 망했지 망했어
존잘빙구 차인혁이 다 가져갔어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기교 충만 바이브레이션
돌려줘 내 관심…….
My… 관… 심…….
“푸흡.”
“큭…….”
엠케이와 남궁찬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정작 재이는 아직도 노래의 여운에 심취한 듯 두 눈을 살짝 감고 마지막 콧소리를 뽑아내고 있었다. 드디어 기타 소리가 완전히 멈추자 멤버들에게서 박수와 함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와 이렇게 엉망진창인 즉흥곡은 처음 들어봐요.”
“인간의 항마력과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하는 곡이었다고 봅니다.”
“듣고 계신 여러분 손발은 평안하십니까.”
“한재이 씨, 어떻게 이런 곡을 부를 생각했죠? 저 같으면 평생 이불 킥 할 각인데.”
“재이 씨가 이런 거로 이불 킥 할 멘탈이 아니죠. 저것 보세요 파워당당하잖아요.”
- 재재님 관심이 고팠구낰ㅋ우리 재재님한테 관심 좀 줘옄ㅋㅋㅋ
- 파워당당 재재님 머싯썽ㅋㅋㅋ
- 그 와중에 꿀보이스 미쳐땈ㅋㅋ
- 재재님 즉흥곡 했으니 이제 안 망해땈ㅋ괜찮닼ㅋㅋ
- 내 손발 없어 재재님 책임져여
이환의 말에 은규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태연한 표정으로 멤버들을 둘러보고 있던 재이를 가리키자 그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죠. 꽤 신선한 시도였다고 생각하는데요. 아, 혹시 두 분 언급을 안 해 드려서 삐지신 건가요?”
“와, 여기서 이렇게 화살을 돌리나요? 순식간에 저희를 속 좁은 사람 만드시네요.”
이환이 발끈하자 알겠다는 듯 걱정하지 말라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재이가 말했다.
“아아,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이환 씨가 저보다도 더 관심에 굶주려 있는 분인 걸 제가 깜박했군요. 다음번엔 꼭! 이환 씨의 활약에 대해서도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이 엉망진창인 곡을 다음에 또 부르겠다고요? 꿈이 너무 야무지신 거 아닙니까?”
“어허 엉망진창이라니요. 비평이 아닌 비난은 사양합니다. 우리 발전적인 관계가 되자고요.”
재이가 은규와 이환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인혁이 끼어들었다.
“제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노래였습니다만.”
“어떤 곡을 기대하셨던거죠?”
“뭔가 좀 더 서정적이고 섬세한?”
인혁의 말에 재이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턱을 살짝 치켜세우고 말했다.
“지금 제가 겪고 있는 폭풍과도 같은 내면의 갈등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곡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하. 하. 언제나 생각하지만 한재이 씨는 참 배울 게 많은 분이에요. 특히 그 자신감. 정말 배우고 싶습니다.”
“칭찬이시죠? 감사합니다?”
재이가 삐딱하게 인사하자 인혁이 그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을 돌렸다.
“하하. 뭐 그럼 이쯤에서 다음 주자를 들어 볼까요? 재이 씨?”
“네. 그럼 제 즉흥곡을 엉망진창에 평생 이불 킥 감이라고 평하신 이환 씨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재이의 지목에 이환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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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엔터] 대자연 속에서 팬들과 소통한 PART·Y의 아메리카 레이드
[시사 연예] 레이드에 필요한 포션 조달에 성공한 파티, 라스베이거스 초특급 호텔로 귀환
[데일리 엔터] 파티의 첫 원정 공략, 아메리카 레이드. 초호화 호텔에서 미션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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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제 분명 7성급 호텔에서 자고 온 것 같은데 왜 눈앞에 또 7성급 호텔이 있지?”
“어떤 의미로 거기보다 더한데? 나 여기 TV에서 본 적 있다고. 존 레넌 아파트 나왔을 때.”
“혹시 잘못 찾아온 거 아닐까?”
“제집도 못 찾는 바보가 있냐.”
“아니 근데 그러면…….”
포션과의 랜선 라이브를 성공리에 마치고, 그 덕에 라스베이거스 초특급 호텔에서 묵으며 스케줄을 마친 멤버들은 장 이사의 약속대로 얼마간의 휴식을 받아 곧장 뉴욕으로 날아왔다. 우선 엠케이의 집에 가자며 따라나선 것은 좋았는데,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모두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곳이었다.
다섯 명의 따가운 눈빛과 수군거림을 등 뒤로 엠케이가 익숙하게 출입구의 가드에게 다가갔다. 커다란 덩치에 험악한 인상의 가드가 제 어깨에도 오지 않는 엠케이를 힐끔 내려다봤다가 다음 순간 깜짝 놀라 인사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에게 마주 웃어 보이며 몇 마디 인사를 한 엠케이가 돌아보며 손짓했다. 양치기의 부름을 받은 순한 양들처럼 졸졸 쫓아가 꾸벅 인사하자 가드가 웃으며 말했다.
“*뭐야, 이런 이른 시간부터 웬 관광객인가 했더니 엠케이랑 친구들이었구나? 올라가 봐. 엠케이 오랜만에 반가웠어.”
“*고마워요, 조지. 나중에 또 봐요.”
익숙하게 그와 인사한 엠케이가 새하얀 대리석이 깔린 고풍스러운 복도를 앞장서 걸었다. 아파트가 아니라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건물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일행 중 제일 먼저 재이가 입을 열었다.
“설마 사실일 줄이야.”
“뭐가?”
“엠케이 플래티넘 수저 설 말이야.”
재이가 대화의 물꼬를 트자 긴장과 놀라움으로 굳어 있던 멤버들이 하나둘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러게.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진짜 맨해튼으로 방향 잡길래 설마 했더니.”
“과연 하렘으로 갈 것인가 브루클린으로 갈 것인가 속으로 혼자 내기하고 있었는데.”
“설마 진짜 맨해튼 한복판 금싸라기 땅덩이에 살고 있었다니.”
멤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목표층에 멈춰 섰다.
“다 왔어. 내리자.”
“…엠케이, 이거 실화냐.”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뉴욕 맨해튼의 중심부 센트럴파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초고급 맨션의 최상층, 펜트하우스였다.
“다녀왔습니다.”
“민국이냐.”
라스베이거스 특급 호텔에서 밟아 본 반들거리는 대리석이 아낌없이 쭉 깔린 복도 건너편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아빠!”
엠케이가 들고 있던 가방을 던지고 후다닥 뛰어갔다. 곧이어 부자가 사이좋게 끌어안는 모습을 보고 이환이 은규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마치라잌 이산가족 상봉 같다?”
그러자 은규와 그 옆에 있던 남궁찬이 소곤거렸다.
“완전 사이 좋아 보이네.”
“그러게. 나도 엄빠 보고 싶다.”
그 사이 아버지와 인사를 마친 엠케이가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빠, 여기 우리 멤버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멤버들이 하나둘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엠케이의 아버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너희들이구나.”
내 아들하고 아이돌 놀이 하고 있는 녀석들이.
서늘하고 위엄 있는 아버지의 첫 마디에 멤버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