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집으로 돌아갈 시간
점심 약속이 되어 있는 곳은 회원제 레스토랑이었다. 리셉션에서 안내를 받아 들어온 실내에는 고급 양탄자가 깔려 있어 걸을 때마다 푹신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발끝을 통해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 좀 신경 써서 입고 올걸.’
아무 생각 없이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온 재이는 고급스러운 실내 인테리어를 쓱 둘러보고 내심 혀를 찼다. 드레스 코드가 있는 레스토랑이었다면 입구에서 입장을 거부당했어도 할 말이 없을 뻔했다.
‘이게 다 석관이 형 탓이야. 아무 말도 안 해 주고는 자기는 나 몰라라 휴가라니. 진짜 매니저 실격이라니까.’
지금쯤 먼저 한국에 도착해 꿀 같은 휴가를 보내고 있을 석관을 떠올린 재이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심진우가 재이를 힐끔 쳐다보고는 나직이 말했다.
“왜, 긴장되니?”
“아뇨. 저 혼자 복장이 너무 튀는 것 같아서요.”
재이의 말에 그를 위아래로 살핀 심진우가 대답했다.
“드레스 코드가 있는 곳은 아니었으니 괜찮을 거야. 게다가 넌 아직 어리잖아.”
아무도 그걸 가지고 흉보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심진우는 작업할 때는 철저하게 프로 대접을 해주다가도 오프라인에서는 항상 자신을 애 취급했다. 물론 아직 열아홉밖에 되지 않았으니 애가 맞긴 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재이는 뭔가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어쨌거나 심진우의 반응으로 봐선 오늘 만남은 진짜 공과 사가 반반씩 섞인 자리인 듯했다. 만일 정말 프로페셔널로서 참석해야 하는 자리였다면 심진우가 아니라 석관과 스타일리스트가 가장 먼저 자신이 입을 옷과 소품까지 세세하게 챙겼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값비싸 보이는 그림과 조각들이 전시된 회랑을 지나자 탁 트인 테라스에 세팅된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와 오늘 제대로 고기 썰어 보는갑다. 테이블 위에 종류별로 놓인 포크와 나이프, 투명한 글래스 잔들을 쓱 훑어보며 재이가 씩 웃었다.
“어서 와요. 여기서 보니까 또 반갑고 새롭네.”
“안녕하세요 사장님. 잘 지내셨어요?”
예전에 오피스에서 잠깐 봤던 블럭 코리아의 젊은 GM (General Manager) 데이비드 김이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맞잡고 인사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나야 재이 씨 덕에 아주 잘 지냈죠. 재이 씨 빨간 머리는 인제 그만둔 거예요? 잘 어울렸는데 아쉽네. 아 우리 집 꼬맹이 반응은 별로였지만.”
재재님 보다가 운 건 처음이었다고.
낮게 덧붙이며 유쾌하게 웃는 데이비드의 말에 재이는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어서 나도 소개해 줘. 나도 재재님하고 얘기하고 싶다고.”
데이비드 옆에 서서 그가 재이와 심진우와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고 있던 사람이 더 못 참겠다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거 참. 이렇게 매번 스스로 체면을 깎아 먹는단 말이지. 소개할게. 이쪽은 내 오랜 친구이자 픽처스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미라 클레인. 어머니께서 한국 분이셔서 한국어를 곧잘 하는 편이야.”
“데이브, 넌 칭찬이 너무 박하다니까. 이 정도면 한국어를 곧잘 하는 게 아니고 잘한다고 해 줘야지. 안녕 재재님. 미라라고 편하게 불러줘. 만나서 반가워.”
스스럼없이 데이비드에게 핀잔을 주며 재이에게 말을 건 미라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나 오늘 이것도 가져왔으니까, 이따가 사인해 주는 거 잊지마?”
재이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미라가 가방 안에서 재재님 에디션을 꺼내어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데이비드가 웃으며 설명했다.
“재이 씨, 이제 이거 구하려면 프리미엄 줘야 하는 거 알아요? 오 부장에게서 소식 갔을지 모르겠지만 2차 물량도 엊그제 완판했거든. 재재님 파워 대단해.”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에요. 아 그리고 사장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재이의 대꾸에 데이비드가 말했다.
“고마워 재이 씨, 그럼, 말 놓을게. 그리고, 어디 결과가 좋다 뿐이었게? 덕분에 로컬한정판의 절대 강자인 옆 나라랑 매출 경쟁이 붙는 바람에 그룹 내부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고. 스포츠만 한일전에 불타는 게 아니거든. 하하.”
“이번 건 마니아층에서도 반응이 꽤 좋으니까. 나도 그중 한 사람이고 말이야.”
미라가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데이비드가 그런 미라를 돌아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재이 씨 오늘 보자고 한 건, 우선 이번 한정판이 좋은 결과를 맞게 된 거에 대해 재이 씨에게 내가 따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였어. 사실 말이 좋아 한일전이지 우리나라 한정판이 일본하고 맞붙어서 이긴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 시장 규모에서 오는 체급 차이가 확실하니까. 아무튼, 덕분에 그룹 내에서도 체면이 선 참이었는데, 이 녀석에게서 재이 씨한테 연락하고 싶은데 다리 좀 놓아 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더라고.”
“친구 뒀다가 뭐하겠어. 이럴 때 써야지.”
재이에게 웃어 보인 미라가 데이비드 대신 말을 이었다.
“사실 내 취미가 블럭에서 출시되는 지역 한정판 수집이거든. 대부분 그 지역의 문화재나 전래동화 같은 걸 바탕으로 만드는데 이번에 한국에서 내놓은 게 오리지널 스토리에 기반한 동화라잖아? 그것만으로도 흥미가 생기는데 시장 반응도 좋다니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미라의 말에 데이비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저 참을성 없는 녀석이 새벽 네 시에 전화해서는 이거 원작자가 누구냐, 스토리 진행은 어디까지 됐냐, 판권은 누가 가지고 있냐 등등 꼬치꼬치 캐묻는데 어찌나 성가시던지.”
그리고 그런 데이비드를 한 번 흘겨본 미라가 재이를 돌아보고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덕분에 재재님 유튜브 채널도 찾아봤지. 인상 깊었어. 난 그게 제일 좋더라, 늑대왕 이야기.”
“감사합니다.”
재이의 인사에 감사할 게 뭐 있냐고 웃으며 손사래를 친 미라가 자세를 바로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미 듣고 왔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재재님의 용사 이야기 말이야, 내가 손 좀 대 보고 싶은데.”
드디어 본론인가 보네.
어느샌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미라를 마주 보며 재이가 대답했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재재님 생각은 어때?”
미라와 데이비드, 심진우의 시선이 재이에게로 쏠렸다. 재이는 생각에 잠겼다. 처음엔 그저 ‘좋아요’나 한번 벌어 보자는 가벼운 마음에 시작했던 일이었다. 판이 커지는 건 괜찮았지만 컨트롤이 되지 않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재이의 대답에 미라가 몸이 단 듯 테이블 쪽으로 상체를 잡아당겨 앉으며 재이에게 말했다.
“잘 생각해 봐. 이건 정말 흔치 않은 기회라고. 나 스스로 내 얼굴에 금칠하는 기분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무려 ‘픽처스’에서 제안하는 거란 말이지. 물론 아직 내가 공식적으로 확언해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보통은 이 정도도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흔치 않은 기회야. 매일 우리 회사로 쏟아지는 시나리오만 몇 통인지 알아? 그런 중에 네 이야기가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은 거라고.”
“미라.”
흥분한 미라에게 데이비드가 슬쩍 주의를 주었다. 그제야 조금 전 자신이 너무 나갔음을 깨달은 미라가 사과하며 말했다.
“아, 미안. 좀 흥분하는 바람에. 실례. 근데 설마 재재님이 Yes 이외의 답을 하리라곤 생각 못 했거든.”
당연히 수락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듯, 이런 좋은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망설이는 자신을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애 보듯 쳐다보고 있는 미라의 태도에 살짝 기분이 상한 재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피차 마찬가지니까요. 미라 감독님도 지금 확언해 주실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감독님 말씀만 믿고 덥석 Yes라고 하기는 힘들죠. 아무리 천하의 ‘픽처스’에서 받은 제안이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가진 카드는 보여 줄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남이 가진 카드를 탐내다니, 욕심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냐고 노골적으로 지적하는 재이의 말에 미라가 뜻밖에 한 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재이를 쳐다보았다.
“아하하하. 그러게. 진짜 그렇네. 미안. 정말로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재재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제대로 도둑놈 심보였잖아? 예상했던 것 외의 대답을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몸이 달아서 그만. 미안 미안.”
시원시원한 그녀의 사과에 재이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재이를 잠시 바라본 미라가 말을 이었다.
“조금 변명을 해 보자면, 이번 한국 지역 한정판이 마음에 들던 차에, 그게 오리지널 스토리 기반이라는 걸 듣고 재재님 채널에 올라온 에피소드들을 쭉 훑어봤거든. 캐릭터들도 개성 있고 무엇보다 이야기가 재미도 교훈도 적절히 섞인 것이 딱 내가 원하던 이야기 구조라 욕심이 나더라고. 그길로 회사에 기안서를 올렸더니 초안 잡아 보라고 1차 컨택에 대한 컨펌이 난 거야. 그랬는데 데이브에게서 마침 재재님이 뉴욕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끼어들게 된 거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거든. 재재님이 어떤 사람인지. 당연히 오늘 당장 계약서에 도장 찍자고 하려던 건 아니었어. 그러니 나를 사람 등쳐 먹으려는 사기꾼 보는 듯한 눈으로 보지는 말아 줄래, 제발?”
마지막 말과 함께 두 손을 모아들고 익살스럽게 이쪽을 향해 윙크해 보이는 미라를 보고 재이가 말했다.
“네네. 알겠습니다. 설명 감사드려요.”
재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심진우가 상황을 정리하며 말했다.
“제안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돌아가는 대로 내부 회의 거쳐서 정식으로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별도로 저희 쪽에서 제시할 수 있는 조건들을 정리해서 보내 드릴 테니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락 기다리고 있을 테니 모쪼록 잘 부탁드려요.”
심진우와 미라의 대화를 보고 있던 데이비드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슬슬 오늘의 본 목적으로 돌아갈까? 재이 씨 준비됐어? 여기 스테이크가 정말 기가 막히거든. 맨해튼 안에서도 아는 사람만 안다는 숨은 맛집이라고. 기대해도 좋을거야.”
“고맙습니다, 사장님. 안 그래도 우리 밥은 언제 먹냐고 물으려던 참이었어요. 사장님 말씀 들으니까 기대치 팍팍 올라가는데요? 역시 스테이크는 진리죠.”
“역시 재이 씨 말이 통하는 친구네. 좋아, 그럼 어디 얼마나 잘 먹는지 지켜보겠어.”
“그 말씀 나중에 후회하시면 안 됩니다?”
재이와 데이비드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두꺼운 메뉴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 * *
“나 그냥 이대로 엠케이네 집에서 살면 안 될까.”
“엠케이네 아버지의 눈칫밥을 견딜 자신 있으면 말리지 않으마.”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엠케이의 집을 둘러보는 남궁찬의 말에 이환이 대꾸했다.
“괜찮아, 내가 경험한 바로는 눈에서 레이저 나올 것 같을 때마다 핸드폰에 있는 엠케이 사진 한 장씩 풀면 잠잠해지시더라고.”
“야 남궁찬, 너 대체 우리 아빠한테 무슨 사진을 보여 준 건데?”
남궁찬의 대답에 옆에서 짐을 옮기던 엠케이가 발끈했다.
“별거 아니야. 숙소에서 찍은 거나 우리 이번에 촬영하면서 찍은 거 같은 거.”
“와 엠케이네 아버지 레알 찐 팬이시네. 그거 데이터로 넘기면 남궁찬 떼돈 버는 거 아니냐.”
“그러잖아도 이번에 돌아가면 예전에 연습생 때 쓰던 핸드폰 뒤져 보려고. 엠케이 연습생 때는 어땠냐고 넌지시 물어보시는 게, 사진 갖고 싶으신 모양이더라고.”
“와 엠케이는 좋겠다, 미국의 대부호가 열성 팬이라니.”
“엠케이 개인 팬이라는 게 아쉽네.”
“그러게 말이야.”
남궁찬과 멤버들이 쑥덕대는 거에 엠케이가 버럭했다.
“아 시끄러워. 그만 좀 놀려라, 제발 응?”
“놀리는 거 아닌데. 아버지가 저렇게 대놓고 팬 인증 해 주시는 게 부러워서 그러지.”
재이가 중얼거린 말에 엠케이가 순간 할 말을 잃고 머뭇거렸다.
“그치만 난 솔직히 아빠가 팬인 거보다 픽처스 아트디렉터가 팬인 게 더 좋아. 한재이 부럽다. 이제 돈방석 위에 올라앉을 일만 남았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재재님 이야기에 숟가락 하나 얹는 건데.”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니까. 그냥 그런 얘기만 나왔다고.”
이환의 말에 재이가 대답하자 좀 전까지의 대화가 영 불편했던 듯 엠케이가 기다렸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전에도 말했잖아. 부러우면 이환 너도 지금이라도 환환님 하라고. 혹시 아냐, 재이처럼 대박 날지.”
“얘한테 헛바람 불어넣지 마. 이환은 작업해야 돼. 아직 두 곡이나 남았다고.”
은규가 이환의 소매를 슬쩍 잡아끌며 대답했다. 이환이 포기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하아. 누가 나 좀 살려 줘 제발.”
“화이팅이야. 우리 앨범의 승패가 너희 손에 달렸다!”
남궁찬이 해맑게 화이팅 포즈를 취해 보이자 인혁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코딩은 환심이만 하냐. 이제 곧 우리 차례야, 남궁찬.”
“히이이. 아니야 내 휴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저거 누가 뒤통수 좀 때려 봐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열심히 현실 도피 중인 남궁찬을 힐끔 쳐다보며 멤버들이 수군댔다.
“그럼 돌아가면 곧장 각자 스케줄인 거야?”
“아마도? 나랑 이환이는 공항에서 곧장 스튜디오로 직행할 거야. 시간 없거든. 맞지 이환?”
“그럼요. 그럼요. 심 선생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엠케이의 질문에 은규가 대답하며 이환에게 묻자,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이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저 게으름뱅이랑 회사에서 컨셉 회의. 윤 실장님이 우리보고 은규한테 데모곡 받아서 컨셉 시안 짜 보라고 하시더라고.”
“이야. 우리 그럼 이번 앨범 제작자 명단에 엠케이랑 게으름뱅이 이름 올라가는거야?”
“나도 이름 있어, 나도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시끄럽다 나무늘보. 너는 일단 사람이 돼라. 그럼 리더는?”
남궁찬의 아우성을 단칼에 끊어 낸 재이가 인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난 오디션.”
“오오 차 배우 드디어 시동 거는 거야? 근데 그거 되면 우리 컴백 시기랑 겹치지 않아?”
“그건 그런데. 어차피 주연도 아니니까 스케줄 조정해 가면서 해 봐야지. 근데 그것도 뭐, 일단 붙었을 때 얘기고.”
인혁은 꾸준히 오디션에 도전하고 낙방의 고배를 마시는 중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니 뭔가 단단히 마음먹은 모양이라고 재이는 생각했다.
“너는 뭐 할 건데?”
“나? 나는 말이지.”
인혁의 물음에 재이가 잠시 말을 골랐다.
“할머니 댁에 좀 다녀오려고.”
할머니? 한재이한테 할머니가 계시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멤버들을 둘러본 재이가 말을 이었다.
“아 진짜 우리 할머니는 아니고. 그 왜 있잖아. 새봄 유치원 하면서 알게 된.”
“아아, 세린이랑 세빈이네 할머니? 근데 거긴 갑자기 왜?”
엠케이의 질문에 재이가 난처한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재이가 잠시 망설이는 사이 뉴욕에 온 김에 멤버들을 통솔해 한국까지 데려오는 중책을 맡은 심진우가 현관문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차 도착했다. 가자, 얘들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