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02화 (102/224)

#102

근데 그게 뭐

세린이네 할머니에게서의 연락을 받은 것은 블럭 코리아의 사장 데이비드가 사 준 고급 스테이크로 배를 채우고 엠케이네 집으로 돌아오던 차 안에서였다. 한국은 아직 이른 아침일 텐데 무슨 일일까 싶어 받아본 전화에서 할머니는 혹시 나중에 시간이 되면 집에 한 번 내려오지 않겠냐고 하셨다. 세린이와 세빈이가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굳이 그 말씀을 하시러 일부러 전화하실 리가 없는데 싶었던 재이가 캐묻자 어렵게 입을 연 할머니가 하신 말씀은 눈치 좋은 재이로서도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었다.

이번에 초등학생이 된 세린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는 것이었다.

새봄 유치원에서도 서열 1, 2위를 다투던 깡다구의 그 세린이가 말이다. 다른 아이가 세린이 때문에 학교 가고 싶지 않아 울더라는 얘기라면 오히려 쉽게 납득이 갈 만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렇다고 해서 자기에게 연락을 하시다니. 할머니가 어린아이 둘을 혼자 도맡아 키우면서도 남에게 베풀면 베풀었지 기대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재이는 세린이가 그러는 게 자신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눈치챘다.

- 할머니가 해 주신 고등어 조림 먹고 싶은데. 한 번 내려가면 안 돼요?

- 이 녀석아, 할미 집에 오는데 되고 안 되고가 어딨어. 그냥 아무 때나 생각날 때 오면 되지. 너 편할 때 언제든지 와.

이상한 일이지. 촬영 때 며칠 본 사이였을 뿐인데 어째서 평생을 알아 온 가족보다도 마음이 가는 걸까.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푸근한 할머니의 목소리에 재이는 짧게 웃었다.

* * *

“할머니!”

“아이고, 우리 재이 왔구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재이는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석관에게 부탁해 로드매니저와 함께 그길로 세린이네가 있는 시골로 내려갔다. 차에서 내려 정문으로 들어서자 마침 마당 텃밭에서 비료를 뿌리고 있던 할머니가 재이를 발견하곤 허리를 펴며 반갑게 맞았다.

“이리 주세요. 무거워요.”

“아이고 됐다. 놔둬라. 너 온다는 소리에 기다리려고 나왔다가 괜히 손댄 거니까, 그냥 거기 놔두고 들어가자, 어서.”

자신에게서 비료가 든 포대 자루를 빼앗아 들려는 재이를 만류하며 할머니가 대신 재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꼬맹이들은요?”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이지. 세린이는 학교, 세빈이는 유치원.”

“아, 그런가.”

“어디 보자, 우리 강아지.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누? 가서 고생했어?”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자신을 앉혀놓고 양 뺨을 쥐고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살피는 할머니의 손길에 재이는 어색한 듯 어깨를 움찔하며 대답했다.

“아닌데요. 완전 잘 먹었어요. 내내 고기만 썰다 왔는데요.”

“그렇게 먹어서 쓰나. 골고루 잘 먹어야지. 가만있어 봐라, 일단 이거라도 먹고 있어.”

재이가 말릴 틈도 없이 일어나 주방에서 한과를 가져온 할머니가 재이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이건 세빈이가 좋아하는 거잖아요. 제가 먹은 거 알면 삐질 텐데.”

“걔 건 따로 사 뒀으니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어여 먹어. 식혜도 있는데 좀 주랴?”

“괜찮아요. 할머니.”

“그럼 사이다라도 마셔. 그것만 먹으면 목 막힌다.”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경험상 이미 알고 있는 재이는 또다시 주방으로 향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자, 여기. 차가우니까 천천히 마셔. 그리고 이것도 좀 먹어 봐라, 쑥 많이 넣고 만들어서 몸에도 좋을 거야.”

할머니가 사이다와 함께 내민 것은 기름이 반지르르 흐르는 쑥떡이었다.

“우와, 쑥떡 진짜 오랜만에 먹어 보는데요. 잘 먹겠습니다.”

재이가 한 손엔 한과 한 손엔 쑥떡을 들고 우물거리고 있는 것을 뿌듯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할머니가 말했다.

“그런데 바쁠 텐데 뭐하러 일부러 내려왔어.”

말씀과는 달리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반가움이 가득한 것을 본 재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하나도 안 바빠요. 지금 딱 휴가 기간이거든요. 할머니도 뵙고 싶고 세린이랑 세빈이도 볼 겸.”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온 거라고 말씀드리면 할머니 놀라 쓰러지시겠네.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구,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는.”

“그런 거 아니에요, 할머니. 어차피 바빠지기 전에 한 번 내려와 보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죠. 뭐. 그래서, 오늘도 울면서 갔어요?”

“그게……. 아휴, 말도 마라.”

재이에게 미안한 기색으로 망설이던 할머니가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는 재이의 시선에 결국 더 못 버티고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즐겁게 잘 다녔다고 한다. 처음 입학한 초등학교는 유치원과 달리 모든 것이 크고 넓고 새로운 모양인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같이 오늘 있었던 새로운 발견이나 신나는 일들에 대해 자기 전까지 논스톱으로 종알거리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금씩 학교에 관한 이야기가 줄어들더니 어느 날 아침 배가 아파서 학교에 못 가겠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로 배탈이 났나 보다 했을 뿐 세린이가 설마 학교에 가기 싫어 괜한 말을 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셨다고 했다.

“거짓말쟁이라고 한다고요?”

“그래. 너랑 아는 사이라고 자랑을 한 것까진 좋은데 네가 자기 사촌 오빠고 자기를 너무 예뻐해서 자주 놀러 온다고 얘기를 부풀린 모양이야. 그러니 다른 아이들이 부모님 중 어느 쪽 사촌이냐, 전화해 봐라 하면서 따지는 말에 대답을 못 했던 거지.”

얘기를 하다 보니 할머니는 새삼 또 속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손을 뻗어 궂은일에 거칠어진 손을 잡아 드리자 할머니가 재이의 손등을 가만히 쓸어 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거짓말한 건 잘못한 거니까, 잘못은 잘못이라고 반성하고 친구들에게도 미안하다고 하자고 했지. 근데 고것이 보통 고집이어야지. 너 언제 오느냐고 오빠가 자기보고 내 동생 하라고 했다고 울고불고 떼를 쓰는데 원.”

할머니가 머리가 다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친구들하고 영 서먹한 모양인지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전쟁이야 아주.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다가도 아침에 고것하고 드잡이질을 하고 나면 하루 종일 힘에 부치는 것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영 힘이 드네.

세월의 그늘이 짙게 깔린 얼굴로 할머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재이가 고개를 돌려 시계를 힐끔 확인했다.

“곧 있으면 학교 끝날 시간이네요?”

“응? 아아,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줄도 모르고.”

“세빈이는 버스로 올 거고. 세린이는 걸어오죠? 제가 데리고 올게요.”

“됐다 아서라. 그냥 집에 있어. 쉬었다 가라고 불렀지, 애 보라고 부른 거 아니야.”

펄쩍 뛰면서 만류하는 할머니에게 재이가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이게 쉬는 거죠. 뭐. 여기서 할머니가 주시는 대로 먹다간 올라갈 때 매니저 형이 저 못 알아볼 거예요. 산책도 할 겸, 후딱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야야, 재이야. 아이고 얘야.”

할머니가 더 붙잡기 전에 재빨리 일어나 운동화를 꺾어 신고 달려 나왔다.

“모자라도 쓰고 가, 밖에 아직 땡볕인데 더워서 어쩌려고 그래.”

달아나는 자신의 등 뒤로 할머니의 잔소리가 메아리쳤다. 누가 알아보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걱정이 아니라 더위 먹으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말씀이 왠지 정겹게 느껴져 재이는 저도 모르게 입 끝을 슬쩍 말아 올리며 웃었다.

* * *

힐끔힐끔.

드문드문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재이는 지금 세린이가 다닌다는 읍내 초등학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리고 있었다. 대충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운동화도 꺾어 신은 채 시골 초등학교 앞에서 혼자 한가롭게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있으려니 지나가는 사람들도 설마 저게 연예인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힐끔거리는 시선들도 ‘연예인인가?’ 하는 느낌보다 ‘학교 땡땡이쳤나?’ 하는 느낌이었다.

장날이 아닌 탓도 있어서인지 평일 오후의 시골 거리는 조용하고 한적했다. 제법 뜨거운 오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시원한 소다 맛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자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지금쯤 다들 모여 컨셉 회의니 차기 곡이니 하고 있겠지.’

회의실 안을 가득 채웠을 특유의 그 팽팽한 긴장감을 떠올리자 안 그래도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더더욱 꿀맛으로 느껴졌다.

‘자, 근데. 여기까지 오긴 왔는데, 이제 어쩔까.’

눈 깜짝할 새에 다 먹어버린 아이스크림의 막대 끝을 잘근잘근 깨물며 재이는 생각에 잠겼다. 리온이었을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할머니 말씀에 반쯤 마음 내키는 대로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여기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애초에 세린이가 자랑하다 생긴 일이라니, 괴롭힌 놈들 나오라고 해서 혼을 내줄 수도 없는 일이고.’

눈썹을 찌푸리며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한동안 고민에 빠져 있자니 문득 귓가에 하교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세-린-아-!!”

하나둘 학교에서 나오는 아이들 사이에서 낯익은 모습을 발견한 재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과장 조금 보태서 제 키만큼 커다란 가방을 등에 메고 땅바닥만 바라보고 걸어 나오던 아이가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는 것이 보였다. 여기야 여기. 손을 번쩍 들어 붕붕 흔들며 소리치자 세린이가 이쪽을 쳐다보고는 그대로 굳은 듯 멈춰 섰다.

“박-세-리-인! 오빠왔다아-!!”

손을 크게 흔들며 소리치자 그제야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엉엉 우느라 코까지 빨개진 아이를 안아 올려 그대로 몇 바퀴 붕붕 돌리고 내려놓자 갑작스러운 소란에 삼삼오오로 뭉쳐 교문을 나서던 아이들이 멈춰선 채 이쪽을 쳐다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재이는 제 목을 꼭 끌어안은 채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아이의 등을 조심조심 다독여 주었다. 엉엉 우는 목소리 사이로 왜 왔느냐, 누가 말했느냐, 언제 왔느냐 등등 채 말이 되지 않은 단어의 조각들이 띄엄띄엄 들려오는 것에 재이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세린이 보고 싶어서 왔지. 잘 있었어? 이야, 이제 진짜 1학년생 같은데? 키도 더 큰 것 같고? 머리도 많이 길었네? 초등학교 들어가면 파마하겠다고 하더니 아직 안 했구나?”

재이의 말에 그제야 조금 진정된 듯 아이가 재이의 목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올리며 히끅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 히끅, 하머니가. 히끅, 파마하면 히끅, 머리 나빠진다고. 어어어엉.”

겨우 진정했나 싶더니 도로 울어 버리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재이가 말했다.

“그랬어? 에이 설마, 그럼 오빠는 벌써 바보 멍청이 됐게? 이따가 할머니한테 말씀드리자. 아니면 이참에 나랑 파마하고 집에 갈까?”

그 말에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로 세린이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을 보고 재이가 웃었다.

“진짜?”

“그럼 진짜지. 어디 미용실이 잘해? 나도 세린이랑 여기서 머리나 하고 갈까?”

스타일리스트가 들었으면 펄쩍 뛰었을 얘기를 하며 재이가 세린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조금 기분이 나아진 듯 읍내에 두 군데밖에 없다는 미용실의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저기.”

돌아보니 세린이 또래의 아이들이었다. 아항, 너희들이구나.

재이는 시치미를 뚝 뗀 채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니?”

웃는 낯으로 묻자 말을 건 아이들 중 하나가 용기를 낸 듯 물었다.

“진짜 재재님 맞아요?”

“맞아. 내가 한재이야. 너희는 우리 세린이 친구들이니?”

재이가 묻자 세린이와 아이들 사이에 짧게 침묵이 흘렀다.

“이름들이 뭐야?”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둘러보며 묻자 재이와 눈이 마주친 아이들이 움찔 어깨를 떨며 입을 다물었다.

“쟤는 창석이고, 얘는 유빈이, 그리고 쟤는 은진이야.”

재이의 뒤에서 고개를 내민 세린이가 말했다. 재이가 그런 세린이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세 아이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창석이랑 유빈이, 은진이구나. 만나서 반갑다.”

손을 내밀자 아이들이 하나씩 머뭇머뭇 손을 맞잡았다. 자신보다 아직 한참 작은 아이들의 덜 영근 손을 맞잡고 흔든 재이가 굽혔던 허리를 바로 펴며 씩 웃어 보이자 그를 올려다본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수군대기 시작했다.

“와 진짜 재재님이야.”

“대박.”

“세린이 거짓말 안 했네.”

다행히 걱정했던 것보다 감정의 골이 깊진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수군거림을 들은 재이가 세린이를 돌아보며 짐짓 큰 소리로 물었다.

“세린아, 우리 파마는 나중에 하고 친구들하고 떡볶이 먹으러 가지 않을래?”

“난 떡볶이 말고 호떡이 더 좋은데.”

“그럼 세린이는 호떡 먹고 난 떡볶이 먹으면 되지?”

“좋아!”

“진짜 저희도 가도 돼요?”

세린이와 자신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있던 창석이가 머뭇거리며 물어왔다.

“그럼, 우리 세린이 친구들인데 당연하지. 근데 어디가 맛있어?”

“저기 저 골목 안에 떡볶이집이 맛있어요.”

“아냐, 저쪽에 책방 옆 분식집이 더 맛있어!”

은진이의 말에 세린이가 끼어들었다.

“거긴 호떡을 안 팔잖아.”

“아 맞다, 그럼 파출소 옆에….”

이미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듯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한 아이들 사이에서 세린이와 눈이 맞았다.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이 자신과 시선이 맞자 활처럼 휘어지며 활짝 웃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되게 큰일을 한 것 같이 마음이 뿌듯했다. 참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재이는 이미 멋대로 출발해 걷고 있는 세린이와 아이들을 따라나섰다.

* * *

“그래서, 우리는 뼈 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너 혼자 놀고 온 거야? 양심 어딨?”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바라보며 삐딱하게 묻는 엠케이에게 재이가 말했다.

“백번 양보해서 다른 녀석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좀 미안한 기분이라도 드는데 엠케이 너는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않냐. 너희 집에서 너희 아버지랑 같이 먹은 밥이 몇 낀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말도 없이 그렇게 혼자 홀랑 내려가냐고. 난 또 개인 스케줄 잡힌 줄 알았잖아.”

“그래서 다짜고짜 따라가겠다고 우기다가 석관이 형한테 혼났지.”

재이가 가져온 음식 보따리를 하나둘 풀어보며 남궁찬이 끼어들었다.

“와, 이 간장게장 맛있겠다. 직접 만드신 거래?”

“식혜도 있고, 이건 매실이네? 안 그래도 나 어제부터 속 더부룩했는데 잘됐다.”

“뻥튀기랑 쌀과자도 있어. 이건 먹어도 살 안 찌지 그치?”

“이건 뭐지? 오오. 육포! 역시 육포는 재이네 할머니 표 육포가 최고 존엄이지!”

내 할머니 아니고 세린이네 할머니.

음식에 눈이 멀어 아무렇게나 내뱉은 멤버들의 말을 고쳐 주려던 재이는 입안에 맴도는 말을 꺼내려다 도로 삼켰다. 한 밤만 더 자고 가라고 양쪽 다리에 하나씩 들러붙은 아이들을 달래며 차 트렁크가 꽉 차도록 이것저것 챙겨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자 왠지 마음 한구석이 든든한 기분이었다.

“야 남궁찬, 그걸 맨손으로 꺼내 먹으면 어떡해 이 짐승 같은 놈아. 엠케이 육포 거기 딱 내려놔, 이따가 머릿수대로 나눌 거라고. 으아악, 이화아안, 그거 입 대고 마시지 마, 더럽다고!!”

잠시 방심한 사이 제멋대로 열어 이것저것 털어 먹고 있는 하이에나들을 하나씩 떼어 내며 재이가 소리쳤다.

“어? 한재이 왔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외출에서 돌아온 모양새의 차인혁이 있었다.

“어디 다녀오는 길?”

“오디션.”

“열일하네. 느낌은?”

“글쎄.”

“계속 수고.”

“감사. 근데 배고픈데 뭐 없냐.”

“손부터 씻고 와라.”

“네, 엄마.”

대답과 함께 욕실로 향하는 인혁의 뒤통수를 째려보는 재이에게 엠케이가 말했다.

“아 맞다. 너 없는 사이에 우리 컴백 날짜 정해졌다?”

“언젠데?”

“한 달 후.”

날짜를 세어 본 재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딱 네버로스 선배님들이랑 더헥 선배님들 월투 기간 중이네. 빈집 털이 가는 거야?”

“문제는 그 집 털러 가는 게 우리만이 아니라는 데 있지.”

엠케이에 이어 은규가 말했다.

“박예찬 선생님께 들었는데, 그 삼화엔터 남돌, 이번에 데뷔할 것 같다고.”

“삼화엔터 남돌이면…….”

“왜 있잖아. 삼화에서 다른 회사들 A조 연습생만 싹쓸이해서 만들었다는.”

“아, 그 삼벤져스?”

재이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그게 뭐?”

뒤이은 재이의 말에 멤버들의 얼굴이 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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