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우리는 우리 페이스대로 가자고
“…….”
“…….”
문을 열고 대기실로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인물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원래 있던 쪽도 새로 들어온 쪽도, 양쪽 중 누구도 먼저 인사를 내뱉지 않는 어색한 침묵 속에 구석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던 양복 차림의 남성이 급히 전화를 끊고 다가와 말을 걸었다.
“우와, 파티 여러분 오셨군요. 삼화 엔터 봉두화입니다. 이야 실제로 보니 인물들이 다들 훤하시네요. 역시 요새 따라올 자 없는 대세돌이라는 말이 맞나 보네 .”
‘보통 이럴 땐 자기소개 말고 자기 그룹 소개를 먼저 해 주지 않던가?’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며 싱글거리기만 하고 있을 뿐 자신이 맡은 그룹의 소개는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봉두화에게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며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봉 실장님, 안녕하세요. 케이엠 김석관입니다. 삼화로 옮기셨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눈치 빠른 석관이 다가가 그를 멤버들의 시야에서 걷어 내며 대기실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대 앞두고 괜히 분란의 여지를 주지 말자는 의도가 담긴 석관의 눈짓에 파티와 스태프들은 대충 비어 있는 쪽에 자리를 잡고 짐을 풀기 시작했다. 의자에 걸터앉으며 카이저 쪽을 힐끔 쳐다본 남궁찬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어? 저거 김도연 아니야?”
“김도연이 누구야?”
엠케이가 고개를 돌려 남궁찬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걔 있잖아. B팀 리더였던.”
“…아아, 그 연습벌레 김도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멤버들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남궁찬의 시선이 닿은 상대를 바라보았다.
“김도연 맞지? 와, 여기서 다 만나네?”
“아, 네. 뭐.”
그러나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넨 남궁찬에게 돌아온 것은 무뚝뚝하게 메마른 대답이었다.
뭐야, 저게 끝이야?
재이가 눈을 찌푸렸다. 김도연이라면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연습생 시절 누구보다 독하게 연습한다고 별명이 김독연이던 녀석이었다. 그리고 소문이 사실이라면 자신 대신 [스텝 업]에 출연할 예정이었던……. 그러고 보니 언젠가 연습생 그만뒀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았는데.
거기까지 생각하던 중 문득 김도연과 시선이 마주쳤다.
‘살벌하네.’
눈이 마주치자마자 저쪽이 고개를 휙 돌려 버린 탓에 시선이 맞닿은 것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 순간 상대방의 눈에서 읽힌 것은 자신에 대한 명백한 적의였다.
‘하긴, 나 같아도 호의적이긴 힘들 듯 .’
쟤 입장에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격이었을 테니. 재이는 남 말하듯 태평하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야 김도연, 한눈팔지 말라니까.”
“아, 미안.”
“오늘 무대 다 쓸어버려야 되니까 집중하자고.”
“그래, 쓸데없는 데 신경 쓸 시간 있으면 여기 네 것에 사인이나 더 하던가. X발 X나 많네.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워후. 센데.’
한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모여 있던 카이저 멤버들 중 하나가 김도연을 타박하며 이쪽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다시 산처럼 쌓여 있는 앨범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요새 이 바닥에서는 보기 드물어진, 입에 문 걸레를 주체하지 못하는 타입인 듯했다 . 힐끗 제 주위를 둘러보자 멤버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런 카이저 멤버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구나.’
듣던 대로 패기롭네. 그럼 우리는 우리 페이스대로 가자고.
피식 웃으며 인혁을 쳐다보자 눈썹을 찌푸린 채 카이저 쪽을 쳐다보던 녀석이 시선을 느끼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 리더, 우리 신인 대기실 탈출한 거 팬분들한테 보고해야 되지 않냐?”
재이의 뜬금없는 말에 인혁이 그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왜? 하는 표정으로 재이를 돌아본 인혁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라이브 앱 켠 지 오래됐네. 간만에 차씨티비 라이브 함 뜰까.”
“석관이 형, 우리 잠깐 앱 켜도 되죠?”
“어? 어어. 대신 짧게 해. 곧 준비 들어가야 해.”
“네네, 잠깐만 켤게요.”
석관에게 확인을 받은 인혁이 스태프에게 건네받은 셀카봉과 핸드폰으로 세팅을 시작하자 멤버들이 기다렸다는 듯 인혁이 만든 카메라 앵글 안으로 익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포션 여러분, 안녕하세요. 깜짝 놀라셨죠? 지금 저희는 컴백 쇼가 있을 더 스테이지 녹화를 위해 LBC에 와 있습니다.”
.
.
.
LBC 공개홀 로비
‘응?’
사전 녹화 입장을 위해 대기줄에 서 있던 김은지는 더운 날씨에 늘어져 있던 몸을 곧추세우며 방금 울린 핸드폰 알람을 들여다보았다.
“와 대박, 애들 라이브 앱 켰나 봐.”
“방금 막 들어갔잖아? 설마 대기실 보여 주는 거야?”
“거기 완전 시장 바닥 일 텐데 괜찮은 건가?”
주변에서 자신과 함께 입장 순번을 기다리며 대기 중이던 팬들이 한마디씩 하며 제각각 핸드폰을 켰다. 서둘러 앱을 실행하자 이미 라이브는 시작되어 있었다. 셀카봉을 들고 있는 인혁의 뒤로 다섯 명의 멤버가 화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 포션 여러분 안녕하세요. 깜짝 놀라셨죠? 지금 저희는 컴백 쇼가 있을 더 스테이지 녹화를 위해 LBC에 와 있습니다.
인혁의 말을 엠케이가 자연스럽게 이어 받았다 .
- 아까 들어오면서 보니까 우리 팬분들 많이 와 계시던데 더운 날씨에 정말 감사합니다. 좀 이따 만나요, 우리!
- 근데 갑자기 웬일이냐고요? 그게 말이죠…… .
엠케이에 이어 말한 재이가 뜸을 들이는 사이 남궁찬이 불쑥 끼어들어 외쳤다.
- 저희 드디어 단독 대기실을 받았습니다! 와하하하!
- 아앗! 남궁찬 씨 이 상황에서 인터셉트라니 비겁하시군요!
- 원래 기회는 잡는 자의 것이죠, 핫핫핫!
“와, 애들 단독 대기실 들어갔나 봐.”
“당연하지 이제 신인도 아닌데 대강당에서 돗자리 깔고 쉬게 할 수는 없잖아.”
“아직 데뷔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신인 맞지. 이 정도면 파격적이긴 하다.”
“지금 우리 애들 말고 대접해 줄 선배팀이 그닥 없는 것도 한 몫 한 듯.”
“그래서 저렇게들 신났구나.”
“이게 뭐라고 내가 다 뿌듯하네.”
주변에서 수군대는 팬들의 말에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김은지는 화면으로 다시 시선을 집중했다. 남궁찬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란 이환과 다른 멤버들이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어색하게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아이고 남궁찬 씨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그렇게 큰 소리를 내시면 어떡해요.
- 그러니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단독 대기실은 아니잖아요. 두 팀이 같이 쓰니까.
- 그쵸그쵸. 지금 여기 저희 말고도 다른 팀도 쉬고 계시다고요. 방해되면 안 되니까 큰소리 내지 마세요. 매너를 지키는 파티가 됩시다.
- 쉬는 게 아니고 완전 열일 중이시죠. 그러니까 방해되지 않게 조용조용…….
- 쉿, 쉿!
멤버들이 하나둘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소곤대는 것을 본 팬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 뭐야, 단독 대기실 아니었어? LBC 짜게 구네.”
“근데 누군데 애들이 저렇게 눈치를 봐?”
“그러게. 대기실 배정받을 정도면 생짜 신인은 아닐 테니 애들하고 아는 사이인 거 아니야? 저렇게 서먹할 리가.”
“우리 애들 두루두루 사이좋은 거 아니었어? 그 RS6하고도 찐 우정 쌓은 애들인데. 우리랑 서먹한 그룹이 있긴 해?”
김은지도 같은 대기실을 쓴다는 그룹이 대체 누구길래 저러나 싶어서 화면 뒤쪽을 열심히 쳐다보았지만, 어찌나 절묘하게 앵글을 잡았는지 여섯 명의 얼굴 뒤로는 사람들의 실루엣 끄트머리만 살짝 보일 뿐 그 이상의 식별은 불가능했다.
- 누군지 궁금하시다고요? 안 돼요 , 사전에 협의가 안 됐거든요.
- 다들 넘 바쁘신 것 흑흑.
- 포션 여러분? 저희한테 집중하셔야죠. 자 멤버분들도 다들 조금 더 화면 가까이 오세요. 뒤에 보이지 않게. 그렇죠, 그렇죠.
인혁의 지시에 따라 멤버들이 더 옹기종기 화면 안으로 모여들었다. 여섯 명의 얼굴이 한 화면 안에 꽉 차게 들어오자 그때까지 대기실을 같이 쓰는 그룹에 대한 추측으로 도배가 되는 듯하던 화면에 하트가 물결쳤다. 그걸 확인한 재이가 턱 끝을 치켜 울리며 특유의 쿨한 목소리로 말했다.
- 포션은 다 파티 거예요. 관심도 애정도 다 저희한테만 주세요.
- 와 한재이 씨 드디어 흑막에 이어 집착 속성까지 장착하신 건가요. 어째 좀 무서운데요.
- 왜죠. 전 그저 우리 팬분들을 사랑할 뿐입니다.
남궁찬의 타박에 재이가 양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날리자 화면 한쪽에 빠르게 하트가 피어올랐다. 김은지 또한 손가락 지문이 닳도록 하트를 연타하며 화면에 집중했다.
- 이런 어설픈 손 하트에도 반응해 주시다니 역시 우리 포션 여러분 너그러우시네요.
- 제가 진짜 다른 건 몰라도 손 하트 하나만은 재이 씨보다 잘 만들 자신 있다니까요.
남궁찬의 말을 엠케이가 받으며 조금 전 재이가 던졌던 어설픈 하트와는 전혀 달리 그럴듯한 양손 하트를 만들어 던지자 화면이 하트로 요동쳤다.
- 어설픈 손 하트는 제 트레이드마크 라고요. 매력적이지 않나요?
- 역시 멘탈 갑 한재이 씨. 무슨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으시는군요.
- 배워야 해요, 배워야. 진짜 존경스럽다니까요.
- 아 그것보다, 오늘 무대에서 누가 어비스일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멤버들의 수다가 늘어지는 듯하자 재이가 화제를 돌렸다. 채팅창에 올라오던 글들도 일제히 그에 따라 오늘의 어비스 맞추기로 돌아갔다.
- 어비스는 무대 딱 보면 아실 거예요. 혼자만 누…….
- 와와 은규 씨 너무 대놓고 스포 하시는 거 아닙니까.
- 그니까요. 설명으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시는 게 더 와닿을 거예요. 기대하시라고요!
엠케이가 허겁지겁 은규의 입을 틀어막고 남궁찬이 엠케이의 말에 맞장구치며 분위기를 띄우자 재이와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말을 보탰다.
- 진짜 이거 안무 짜느라 엠케이 씨랑 남궁찬 씨가 고생 되게 많이 했어요.
- 그리고 그 둘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다 들어주느라 저희가 제일 고생했죠.
- 어서 우쭈쭈 해 주세요 . 저희는 포션 여러분의 우쭈쭈를 먹고 자랍니다. 이렇게 이렇게.
- 왕!
- 보통 여기선 냥 아닌가요?
은규와 이환이 팬들의 관심을 핑계로 서로를 개와 고양이 취급하며 티격태격하기 시작한 사이 카메라 너머로 석관의 사인을 확인한 인혁이 멤버들의 수다를 끊으며 말했다.
- 앗, 이제 곧 저희 차례인가 봐요. 아쉽지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 응원하러 와 주신 분들 좀 이따 봬요! 다른 분들도! 곧 찾아갑니다!! 기대해 주세요!!
갑작스러웠던 시작만큼이나 급하게 마무리된 라이브 방송에 아쉬워하며 김은지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누구길래 저래.’
모두가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듯, 대기 줄에 서 있던 팬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수군대고 있었다.
“오늘 찍는 남돌들 중에 애들보다 연차 높은 그룹 둘밖에 없지 않냐?”
“아 근데 걔네 아닐걸. 걔네들 진짜 ‘단독’ 대기실 들어가서 도시락 먹고 있는 거 아까 인증샷 떴어.”
“그럼 누구야.”
덕친에게 들었다며 팬 중 하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야기하는 말에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팬 하나가 문득 입을 열었다.
“혹시 거기 아니야?”
“누구?”
“오늘 데뷔하는.”
“오늘 데뷔하는 게 한둘이냐고. 그중에 누구?”
“아 왜, 걔네 있잖아. 삼벤져스.”
“헐, 설마.”
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오늘 데뷔하는데 벌써 대기실을 따로 줬다고?”
“모르지. 근데 거기 아니면 애들이 저렇게까지 내외할 리가 없잖아.”
“하긴, 얼굴 아는 팀이면 이름이라도 말해 주고 지나갔을 텐데.”
“싸하네. 이거 진짜면 헬게 오픈인 거 아니냐?”
“우리야 그렇다 쳐도 다른 그룹 쪽에서 가만 안 있을 듯.”
“그러게.”
‘괜히 벌집 건드린 거 아닌가.’
김은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삼벤져스라면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했다. 듣보중소도 아니고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회사의 될성부른 연습생들만 쏙쏙 빼내서 만들었다는 삼화 그룹의 새 남자 아이돌 그룹. 엊그제인가 있었던 데뷔 쇼케이스에도 언플에 얼마나 돈을 쏟아부었는지 그날 연예 뉴스란은 온통 그 그룹 기사로 도배되었을 정도였다.
“시끄럽게 언플 돌려 봐야 같은 데뷔팀들 사이에서나 그렇지. 우리 애들한테 비비긴 힘들지 않나?”
"그치. 뮤비랑 음원을 꽉잡고 있는데."
팬들의 말에 김은지도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컴백을 두고 다른 팬덤에서 빈집 털어서 거저먹으려고 한다고 쑥덕대는 거 들었을 때는 속 상하고 자존심 상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며칠 전 공개된 뮤직비디오와 음원을 확인한 순간 모든 시름과 잡념이 날아가 버렸다. 팬으로서의 색안경을 벗고 보더라도 이건 뜰 수밖에 없는 주식이었다.
‘여기에다 대고 덤비면 그건 그냥 머리가 나쁜 거지.’
김은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뭐야 이게.”
김도연은 옆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 떨었다. 파티 멤버들과 케이엠 쪽 스태프들이 스테이지 쪽으로 이동하고 난 대기실 안에는 카이저 멤버들과 삼화 엔터 관계자들만이 남아 있었다.
“뭔데?”
“기사 뜬 거 봤어? 뜬금없이 싸대기 처맞은 기분인데.”
카이저의 리더, 에이튼이 투덜거리며 들여다보고 있던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다른 멤버들과 함께 그 화면을 들여다보자 지금 막 올라오고 있는 기사의 헤드라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데일리 엔터] 포션은 파티거죠! 팬서비스 맛집 PART.Y의 깜짝 대기실 라이브
[스타 뉴스] 벌써부터 황제 대접!? KAISER 데뷔와 동시에 단독 대기실 입성
[올컷엔터] 관행을 깨고 데뷔 무대부터 단독 대기실 배정받아 남다른 존재감을 증명한 황제돌 KAISER
조금 전 끝난 파티의 짧은 라이브 방송은 자극적인 기삿거리를 찾아 헤매던 연예부 기자들의 입맛에 딱 맞는 떡밥을 던져 준 모양이었다. 파티와 함께 단독 대기실에 들어간 것이 오늘 데뷔하는 신생 그룹 KAISER라는 소식이 인터넷을 달구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이미 회사와 연계한 연예란 기사들은 이쪽에 호의적인 뉘앙스가 많았지만 아이돌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KAISER가 오랜 관행을 깨고 데뷔와 동시에 단독 대기실을 배정받은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의 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뭔가 쑥덕대는 것 같더니. 이쪽 양해도 없이 라이브 방송을 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 사람 뒤통수를 치나?”
“직접 보니까 별것도 아니더만.”
“내 말이. 뮤비도 잘 뽑혔대서 봤더니 그냥 유치하던데.”
“돈 쳐 바른 티는 나더라.”
“특수효과랑 조명 빨이지. 그게 라이브로 되겠냐.”
“어차피 반짝하고 끝일걸. 삼촌이 우리 쪽 추가 플모 넣어서 싹 밀어 버릴 거라고 하시더라.”
에이튼이 자신의 삼촌이자 카이저의 론칭 총책임자인 본부장을 들먹이며 말했다. 그 말에 다른 멤버들이 자신감을 얻은 듯 하나둘 말을 보탰다.
“일단 이따 남은 녹화도 조져 놓자고 .”
“누가 위로 올라가는지 확실히 알려 줘야지 .”
“파티인지 팬티인지만 밟아 놓으면 나머지는 X밥이지.”
“그래서 편집 순서도 일부러 바로 뒤로 넣어 달라고 했다며.”
“데뷔팀에 밀리는 컴백이라니. 얼굴 볼만하겠다.”
멤버들이 키득거리는 것을 힐끔 쳐다보며 김도연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이쯤 되면 누군가가 나서서 언행에 대해 주의를 줄 만도 하건만 매니저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혹은 익숙하다는 듯 듣고 넘길 뿐 짚고 넘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엔 조심하는 듯하던 멤버들도 말 나오겠다 싶으면 회사에서 알아서 뭉개 주는 걸 눈치챈 뒤로는 점점 언행에 거침이 없어지고 있었다.
- 카이저, 스테이지 쪽으로 이동해 주세요.
때마침 바깥에서 들려온 스태프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을 나서는 멤버들을 뒤따르며 김도연은 마음을 다잡았다. 파티고 한재이고 오늘의 화제는 반드시 자신들의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 미친.”
김도연은 눈앞 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