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07화 (107/224)

#107

재비스는 웃고 있다

‘이런 X발.’

자신을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는 빨간 눈을 쳐다보며 에이튼은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욕을 집어 삼키느라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다른 건 다 해도 되는데 카메라에 대고 욕만은 하지 말라고 삼촌, 아니 본부장과 매니저가 신신당부했던 것을 떠올리며 에이튼은 표정을 가다듬었다.

아까 사전녹화 때도 저 새끼가 훔쳐보는 거에 집중이 흐트러져서 자꾸 음 이탈이 나는 바람에 얼마나 망신을 당했던가. 그냥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도 짜증 날 녀석이 눈치 없이 나서서 설쳐 대는 것을 보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와, 카이저 분들 역시 소문대로 카리스마가 대단하신가 봐요. 천하의 재비스가 무릎 꿇을 뻔하다니!”

어딜 어떻게 들어도 싸한 발언을 일단 능숙하게 넘기는 엠씨의 대꾸에 빨간 눈 녀석이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것이 보였다.

“대박이죠. 사실 아까도 무대 하시는 거 궁금해서 뒤에서 구경했는데 어떻게 아신 건지 에이튼 폐하랑 자꾸 눈이 마주쳐서 막 황송했다니까요.”

네놈 때문에 삑사리 X나 났잖아, ㅆ…….

“아하하, 에이튼 폐하라니. 재비스가 그렇다는데, 폐하 뭐 하교하실 말씀 있나요?”

“…X발아.”

“…….”

“…….”

재이 쪽을 노려보며 딴생각을 하느라 엠씨의 질문을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던 에이튼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순식간에 주변이 얼어붙었다. 엠씨가 재빨리 눈동자를 굴려 카메라 옆에 서 있는 조연출을 쳐다봤다. 컨트롤 박스에서 온에어를 총괄하던 피디가 소리라도 지른 것인지 헤드셋을 끼고 있는 조연출이 어깨를 움찔 떨며 인상을 팍 찡그리는 것이 보였다. 손가락을 휘휘 굴려 보이는 조연출의 사인에 엠씨가 급하게 마무리 멘트를 쳤다.

“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오늘의 [비드씬] 인터뷰는 이걸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기대되는 카이저의 데뷔 무대, 한번 만나 볼까요!”

원래는 카이저의 인터뷰가 더 진행되고 나서 들어갔어야 하는 멘트였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마치 랩이라도 뱉어 내듯 속사포처럼 클로징 멘트를 친 엠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이브 송출 중임을 의미하는 카메라의 빨간불이 꺼졌다. 이제 온에어로는 사전에 녹화해 둔 카이저의 무대가 이어지고 있을 터였다.

갑자기 터진 방송 사고에 급하게 인터뷰를 마무리 지은 탓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움직여야 하는 생방송 시퀀스가 꼬이게 생겼다. 카메라가 꺼짐과 동시에 대기실을 가득 메우고 있던 촬영 스태프들이 굳은 얼굴로 자리를 정리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한쪽에서는 조연출이 얼굴을 팍 찡그린 채 카이저의 매니저 봉두화에게 뭐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였다. 조금 전 상황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듯했다.

“어휴. 십 년 감수했네. 나도 참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 짓을 계속하고 있는 건지.”

조금 전까지 카메라를 향해 생글생글 웃고 있던 엠씨가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정작 이 사달을 낸 당사자는 사과는커녕 자신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힐끔거리고 사라지는 스태프들의 시선이 오히려 짜증스럽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럴 경우 보통은 다른 멤버라도 눈치 좋게 나서서 상황을 챙기기 마련인데, 이 신인돌 녀석들은 다들 말없이 어색하게 서 있을 뿐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진짜 요새 보기 드문 인성이네. 엠씨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혀를 차는데 누군가의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파티 멤버들이 대기실을 정리하고 빠져나가는 촬영 스태프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요새 따라올 자가 없다고 평가받는 대세돌이 붙임성 좋은 얼굴로 주변 스태프들을 챙기며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그제야 자신이 겨우 다시 익숙한 촬영 현장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형.”

자신에게도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재이에게 엠씨가 말했다.

“그래. 너희도 수고했다.”

“스튜디오로 곧장 돌아가시죠? 저흰 이걸로 끝이라.”

“가야지. 저 봐라, 우리 매니저 형 얼굴이 아주 사색 됐네.”

엠씨가 대기실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의 담당 매니저를 턱짓으로 가리키자 힐끔 그를 쳐다본 재이가 말했다.

“방송 하다 보면 별일이 다 생기죠. 뭐. 그래도 이만하면 잘 넘긴 거 아닌가요. 역시 갓엠씨.”

“아직 데뷔한 지 1년도 안 된 녀석이 말하는 건 완전 능구렁이라니까. 너 엠씨에 소질 있는 거 아니냐.”

“어휴 형. 무서운 말씀 마세요. 얘도 입이 폭탄이라 안 돼요.”

“얘‘도’라니. ‘도’라니, 응? 그거 되게 거슬리는데? 형, 차인혁 말 믿지 마세요. 리더라고 온갖 것에 다 예민하게 굴거든요.”

아주 과보호가 따로 없다고요.

어느새 다가온 인혁의 말에 재이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두 사람이 투닥대는 것을 잠시 구경하고 있던 엠씨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아무튼, 너무 엮이지 않게 조심하고. 내 느낌에 저 녀석들 그리 오래갈 것 같진 않은데, 엮여 봐야 좋은 그림 안 나올 것 같으니까.”

오늘처럼.

엠씨는 힐끔 카이저 쪽을 쳐다보면서 나직이 말하고는 먼저 가 보겠다며 대기실을 나섰다.

“나이도 어린 게 선배 대접 못 받았다고 안달 나서 X나 설쳐 대는 꼴 하고는.”

촬영을 위해 모여들었던 제작진들이 빠져나가고, 석관과 스타일리스트들을 비롯한 케이엠 쪽 관계자들이 돌아갈 준비에 바쁜 틈을 타 등 뒤에서 명백한 시비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이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단 참고 있지만 언제든지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비장한 표정의 파티 멤버들과 ‘저 새끼 또 지랄이네.’라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뿐 말릴 생각은 없어 보이는 카이저 멤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을 정면으로 노려보며 씩씩대고 있는 에이튼이 보였다.

“요새 안 먹힐 텐데.”

“뭐?”

“막말하는 망나니 캐릭터. 그거 노 매력이라고요.”

“X발, 뭐라는 거야.”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는 에이튼을 위아래로 훑어본 재이가 한심하다는 듯 툭 내뱉었다.

“이렇게까지 말해 줬는데도 모르면 그건 후배님의 모자란 머리 탓이고.”

“…너 나랑 지금 해보자는 거야?”

“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벌떡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오려던 에이튼이 예상 밖의 대답에 멈칫하고는 재이를 새삼 쳐다보았다. 따박따박 예의 바르게 붙여 대는 존대와 달리 붉게 충혈된 눈은 당장이라도 먹이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은 맹수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을 뚫어지라 쳐다보는 붉은 눈과 시선이 마주치니 갑자기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 같은 느낌에 에이튼은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해 봐도 되는데.”

“미… 미친…….”

에이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직이 내뱉은 재이가 씩 웃었다.

그 눈빛을 마주 본 에이튼은 겨우 짧게 중얼거렸을 뿐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얘들아, 이제 가자.”

마침 대기실 입구에서 파티 멤버들을 부르는 석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원 공개일이 이번 주 순위 집계 구간에서 벗어나는 탓에 어차피 순위 경쟁을 할 필요도 없던 터라 파티 멤버들은 생방송에 나갈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퇴근할 예정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이었다면 온에어가 끝날 때까지 대기했다가 피디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 했겠지만 [더 스테이지] 담당 피디는 그런 면에서는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여전히 불편한 분위기 속에 파티 멤버들이 하나둘 대기실을 빠져나가는 사이 그 자리에서 에이튼과 카이저 멤버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재이가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걸어 나가다가 문이 닫히기 전 생각났다는 듯 돌아보고 말했다.

“참, 맞다. 이건 선배로서 충고하는 말인데, 그쪽 후배님은 음방에서 웬만하면 라이브 안 하는 게 좋을 듯. 아까 잠깐 듣는데도 음 이탈이 너무 심해서 원곡이 뭔지 헷갈리더라고.”

닫히는 대기실 문 너머로 에이튼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복도에 나와 있던 멤버들과 스태프들이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았지만 재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중얼거렸다.

“내가 가는 게 아쉬웠나 봐.”

에이튼이 들었다면 또다시 욕을 갈겼을 게 분명한 말을 태연하게 내뱉고는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재이의 모습에 멤버들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뒤따랐다.

* * *

국내 최대 규모 인터넷 커뮤니티 연예 게시판

[데뷔 첫날 생방송에서 인성 터뜨린 신인돌]

오늘 LBC 더스테에서 방송 사고 거하게 남 ㅋㅋ 데뷔하고 처음 나온 신인돌이 생방 인터뷰에서 선배돌한테 대놓고 신발 타령 ㅎㄷㄷ 엠씨가 당황해서 황급히 인터뷰 끊어 버리고ㅋㅋ 원래 선배돌 무대 - 선배돌 인터뷰 - 신인돌 인터뷰 - 신인돌 무대 순이었을 텐데 인터뷰에서 신인이 과감하게 X발아 해 버린 탓에 피디가 중간에 끊고 곧바로 데뷔 무대 틀어 버림ㅋ

피디도 어지간히 빡쳤는지 인터뷰 중간에 잘리고 남은 시간에다가 선배돌 뮤비를 틀어 버리는 바람에 신인돌에게 대참사가ㅋㅋㅋ 데뷔 무대 앞뒤로 선배돌한테 샌드위치 당하는 ㅉㅉ 그리고 그걸 다 본 내 머릿속엔 결국 재비스밖에 남지 않았지ㅋㅋㅋ

폐하의_신발_타령.gif

(베플) ㅉㅉ 멀리 안 나간다 ㅂㅇ

(베플) 기승전 재비스ㅋㅋ

(베플) 재비스는_웃고있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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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가 전파를 탄 것과 동시에 인터넷은 데뷔 후 첫 음방에서 거하게 사고를 쳐 버린 카이저의 리더 에이튼의 인성 논란으로 끓어 올랐다. 그들의 데뷔와 함께 순조롭게 성장 중이던 팬덤이 타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황제돌이라는 컨셉도 설마 멤버의 터진 인성을 커버하기 위한 소속사의 울며 겨자 먹기식 선택이었냐는 비난과 실언을 한 건 맞지만 비난이 과하다는 쉴드가 한데 뒤섞여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각종 커뮤니티가 오래간만에 터진 연예인의 인성 논란으로 들썩이는 가운데 에이튼의 신발 타령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파티, 특히 붉은 눈의 재비스에 대한 화제가 끊이지 않은 것은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타이밍 절묘했네.”

“노린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피디님이 제대로 열 받으셨었나 봐. 거기서 카이저 말고 우리 뮤비를 틀어 주시다니.”

“그 상황에서 카이저 뮤비 틀었으면 지금쯤 피디님까지 싸잡아서 욕먹고 있었을걸.”

“하긴 그건 그래.”

스펙터클했던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 각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오늘 음방 반응을 체크 중이던 멤버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하니 생방송 도중에 터뜨릴 줄이야.”

“진짜, 평소에도 말투 조심해야지, 저렇게 한 방에 훅 가 버리는 수가 있구나.”

“그나저나 이거 진짜 레전드 짤 아니냐.”

은규와 이환이 두런거리고 있는 가운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궁찬이 자신이 보고 있던 화면을 멤버들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액정 화면에는 붉은 눈을 번뜩이며 씩 웃고 있는 재비스의 캡쳐 사진이 떠 있었다.

“재비스는 웃고 있다.”

“이게 베플 간 거 나만 터지냐.”

“사람들도 아는 거지. 오늘 폐하가 누구 손에 놀아나셨는지.”

“어후 섬뜩.”

“괜히 어흑재냐고.”

“내가 뭘. 멋대로 생방에서 신발 타령한 건 저쪽인데 대체 내가 왜 흑막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멤버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던지는 것에 재이가 볼멘소리를 하자 멤버들이 수군댔다.

“자각이 없는 것인지 그냥 현실을 직시하기가 싫은 것인지.”

“후자 아닐까.”

“후자 너무 양심이 없는데? 저 짤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드나?”

이환의 말에 남궁찬이 여전히 재비스 캡쳐짤을 띄워 놓은 제 핸드폰을 흔들어 보이는 것을 본 재이는 자신을 놀려 먹는 데 신이 난 멤버들을 하나씩 훑어보며 투덜거렸다.

“아니 분명 재비스가 완승했는데 저것들은 왜 제멋대로 날뛰냔 말이지.”

윤 실장님하고 상의 해 봐야겠어. 이거 설정 오류가 심각한 듯.

재이가 중얼거리는 말에 옆자리의 인혁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 *

탁.

들고 있던 태블릿을 책상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조용한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작은 소리였지만 왠지 귓가에 크게 울리는 듯한 느낌에 책상 너머에 일렬로 서 있던 멤버들이 일제히 움찔 몸을 떨었다.

“에이튼, 내가 방송에서는 말조심하라고 했지.”

푹신한 사무실용 가죽 의자에 앉아 차분한 말투로 말썽꾸러기 아이를 타이르듯 에이튼에게 말을 건넨 사람은 카이저의 론칭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는 삼화 엔터테인먼트 전략 기획본부의 곽연호 본부장이었다.

“사, 삼촌. 그게 아니라. 그 X끼가 눈앞에서 살살 약을 올리는 바람에.”

“됐고. 봉 실장에게도 실망입니다. 사고가 났으면 일단 피디한테 가서 최대한 이쪽에 유리하게 해결을 봤어야지. 손 놓고 있다가 보기 좋게 한 방 먹지 않았습니까? 공들여 준비한 첫 음방이 이렇게 묻혀 버리다니. 이건 케이엠만 좋은 일 해 준 격이잖아요?”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제길. 네 조카 놈이 거기서 인성 터뜨릴 줄 내가 알았겠냐고.’

자신보다 한참 어린 본부장에게 일단 납작 엎드리듯 고개를 숙여 보이면서, 봉두화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카이저의 상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기레기들을 포함한 관계자들을 비롯해 방송국이나 제작사에 돈을 뿌리는 것쯤이야 어려울 게 없었지만 단 하나, 팬심만은 돈으로 살 수가 없었다. 아무리 포카나 앨범 특전 같은 굿즈를 뿌려 봐도 인성 논란이 불거진 신인돌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팬심을 붙잡기는 힘에 부쳤다.

그나마 아직 다른 멤버들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봉두화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의 본부장을 달래듯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을 계속 쳐다만 보고 있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이미 사과문도 올렸고, 에이튼도 이번 일로 많이 배웠을 테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죠.”

이렇게 대놓고 눈치를 주는데도 여전히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녀석에게 한숨이 터져 나왔지만 그렇다고 이 녀석을 내칠 수도 없었다.

에이튼은 눈앞에 서 있는 본부장의 친조카이자 삼화 그룹 후계 쪽과도 혈연관계가 있다고 알려진 녀석이었다. 한마디로 봉두화와 카이저의 입장에서는 더럽고, 치사해도 안고 가야 하는 돈줄이었다. 이렇게 케어하는 척 해 두는 게 보신을 위해서라도 좋겠지. 머릿속으로 재빨리 계산기를 두드리며 봉두화가 이어 말했다.

“홍보팀도 총동원했고 댓글 알바도 쫙 풀었으니 커뮤니티 쪽은 며칠 내로 좀 잠잠해질 겁니다. 연예부 기자들 쪽에도 다른 떡밥 좀 던져 달라고 부탁해 놨으니 다른 건 터지면 우리 건 조만간 묻힐 거고요. 그러니 앞으로 며칠만 좀 참으시면 됩니다.”

‘그나마 돈이라도 펑펑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봉두화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여론이란 여기저기 옮겨붙는 들불과도 같은 것. 이쪽에 몰린 시선을 거두고 싶으면 다른 쪽에 불을 질러 버리면 그만이었다. 마침 그럴 듯한 떡밥도 손에 넣은 참이었다.

“어쨌거나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서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너희들도 어서 인사해.”

“죄송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잘못은 에이튼 한 사람이 했지만, 고개를 숙일 때는 멤버가 모두 다 같이 함께였다. 곽연호 본부장은 그런 그들의 속내를 가늠하듯 한동안 말없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 *

며칠 후

“와, 오래간만이네! 다들.”

“왜지, 왜 난 자주 본 것 같지?”

“오구구, 우리 컴백했다고 또 다 챙겨 본 거야?”

스튜디오에 먼저 도착해 있던 파티 멤버들이 문이 열리며 안쪽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았다.

“저 말투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거 보니까 오래간만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빨주노초파남보 염색은 안 하는 거야? 큰일이네, 이러면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 되는데.”

“우리 팬분들 앞에서 그 말 다시 해 봐.”

“어허 화빈 씨, 아이돌이 돼서 철딱서니 없게 팬덤 간 분란을 조장해서야 쓰겠습니까.”

파티와는 데뷔 전부터 인연이 깊은 RS6의 다섯 명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오자 멤버들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첫 시작은 딱히 좋지 않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서 첫 활동기를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동지 의식이 더해진 탓인지 두 팀은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를 쌓아 나가는 중이었다.

“각오는 하고 온 거지?”

“물론.”

[We are Leaders]에서 친분을 쌓은 인혁과 재민이 서로를 마주 보며 말했다. 이제 막 컴백한 파티와 며칠 전 앨범 활동을 마무리하고 휴식기에 들어간 RS6는 오늘 파티의 초대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뭐 하면 된다고?”

“일단 팀을 짜야지.”

RS6의 리더 재민이 묻는 말에 인혁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PART.Y의 액션형 TRPG: 어느 날 차에서 내렸더니] feat. RS6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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