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떡밥은 자진모리장단으로 휘몰아치고
“대체 이게 다 뭐냐고. 아직 우리 쪽 기사는 나가지도 않았잖아.”
“그, 그게. 기자들 쪽에서도 어딜 어떻게 봐도 같은 날 찍은 사진인데 전혀 다른 내용을 두 번 실을 수는 없다고.”
봉두화는 눈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쩔쩔매고 있는 최 주임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샌 거야? 어? 내가 정보 새지 않게 제대로 단속하라고 했지!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일을 어떻게 이따위로 해!”
봉두화의 고함에 최 주임이 움찔 목을 움츠렸다. 내일 기습적으로 기사를 뿌릴 예정이었던 한재이의 스캔들은 어떻게 안 건지 비슷한 사진을 걸고 한발 먼저 기사를 뿌려 버린 케이엠의 술책에 시작도 못 하고 그대로 묻혀 버리게 생겼다.
여기에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데.
최 주임에게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던 봉두화였지만 그건 이 배팅이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여기서 한 번 한재이와 파티의 상승세를 꺾어 놓으면 본부장의 환심도 사고 카이저의 숨통도 조금 트일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샌 것인지 시도도 하기 전에 망하게 생겼다.
야심 차게 준비한 론칭 프로젝트의 제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파티라는 그룹을 택한 것은 본부장이었다. 위험이 클수록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도 큰 법이라는 젊은 본부장의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지금 한창 상승세인 파티를 꺾고 데뷔하는 데 성공한다면 카이저와 자신의 앞날은 순탄할 터였다.
봉두화는 혹시 모를 건수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몇 달 전부터 파파라치를 고용해 파티 멤버들의 주변을 살폈다. 한재이가 미국에서부터 누군가와 지속해서 만남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파파라치의 보고는 그야말로 봉두화가 바라 마지않고 있던 대형 떡밥이었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써먹기도 전에 이런 일이 터져 버리다니. 봉두화는 약이 올라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다른 거 뭐 없어? 한재이가 아니면 다른 놈들이어도 괜찮아. 파파라치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 돈만 받아 처먹고 그동안 몇 달을 그렇게 쫓아다녔는데 한재이 빼고는 그럴듯한 걸 한 건도 못 건졌다는 게 말이 되냐고.”
결국, 파파라치에게 돈만 뜯긴 꼴이 된 봉두화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회의실 벽을 주먹으로 쾅, 후려치며 소리쳤다. 최 주임이 어깨를 움찔하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 그게. 딱히. 아, 그, 그 조그만 멤버가 서민 코스프레 하고 있지만 사실 부잣집 자식이라는 건.”
“뛰고 있는 놈들한테 날개까지 달아 줄 일 있냐. 대체 최 주임 어깨 위에 그건 장식이냐고, 어?”
봉두화가 눈썹을 찌푸리며 최 주임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현지에서 붙인 파파라치의 정보에 따르면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엠케이는 부모님이 맨해튼 센트럴 파크 초고급 맨션에 살고 있을 정도의 재력가라는 듯했다. 근데 그게 뭐. 이건 잘못 쓰이면 부잣집 아들답지 않게 소탈하더라는 미담이나 더해 줄 판이었다.
벌컥.
“실장님? 아, 여기 계셨네요. 어서 좀 와 보세요. 큰일 났어요.”
노크도 없이 갑자기 벌컥 열린 회의실 문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회사 직원 중 하나가 봉두화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봉두화가 짜증 섞인 말투로 직원에게 물었다.
“김도연이 사고 치고 잠적해서 지금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요. 본부장님이 찾으시니까 일단 본부장실로 가세요. 얼른요.”
김도연 그 얌전한 녀석이?
봉두화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고는 앞서 걷기 시작한 직원을 뒤쫓아 빠른 걸음으로 본부장실로 향했다.
* * *
“봉 실장님, 대체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
본부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곽연호가 봉두화에게 물었다. 평소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본부장이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상황이 꽤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단은 납작 엎드리자. 봉두화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지금 당장…….”
“지금 당장 어떻게 하시려고요?”
“예? 아. 그러니까 지금 당장 사람을 풀어서 김도연이를 찾아와서.”
“걔가 지금 어디에 있는 줄은 아시고?”
“어 그게…….”
곽연호의 물음에 봉두화가 말을 흐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아니 X발, 네놈이 찾는다는 소리 듣자마자 발에 땀이 나게 뛰어왔는데 걔가 어디 처박혀 있는지 내가 찾아볼 시간이 어딨었겠냐고.’
속마음과는 달리 봉두화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찾아보면 금방 나올 겁니다. 그 나이대 애들이 갈 곳이라 봐야 뻔하죠. 집, 회사 아니고서야 친한 애들도 손에 꼽을 만하니까.”
어린 나이부터 죽어라 연습생 생활만 하다가 겨우 데뷔한 녀석이었다. 게다가 원래 있던 소속사에서 이쪽으로 옮긴 지도 얼마 되지 않아 그나마 있던 교우 관계도 결딴이 나 있을 터였다. 제깟 게 숨어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봉두화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거나 보시고 그런 얘기 하십니까.”
본부장이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책상 너머 봉두화에게 밀어 보였다.
[데일리 엔터] [특종]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가려진 한 신인 아이돌의 눈물 섞인 고백 “같은 그룹 멤버에게조차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
시선을 마주치며 보여 주던 웃음은 카메라의 빨간 불이 꺼짐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한 아이돌 멤버가 같은 그룹의 멤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제 갓 데뷔해서 한창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어야 할 A 군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폭언, 멸시, 조롱, 그리고 폭력. 처음엔 단순한 시비로 시작되었던 한 멤버의 괴롭힘은 꾸준히 에스컬레이트해 데뷔를 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매일같이 폭언과 폭력을 일삼기에 이르렀다.
다른 멤버들과 소속사 직원들도 그런 그의 행동을 말리기는커녕 방관하고 있는 상황. A 군은 괴로움에 못 이겨 몇 번이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망설이기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그가 자신을 괴롭혀 왔다고 지목한 멤버는 최근 모 방송국의 라이브 인터뷰에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세간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는 모 군. A 군의 말에 따르면 그 일 이후 자신을 향한 괴롭힘은 더 집요하고 거세졌다고 한다. (후략)
[노컷 엔터] 그룹 내 괴롭힘을 폭로한 신인 아이돌 A 군, 의사 진단서 공개
[스타 뉴스] 연예계의 어두운 그늘, 그룹 내 텃세에 짓눌린 청춘의 신음
[스타추적] A 군과 같은 그룹 멤버의 B 군의 증언, “모 군은 황제처럼 군림했다.”
[시사 엔터] 아이돌의 인성 문제, 또다시 도마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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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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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대체.”
봉두화는 지금도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는 관련 기사들의 헤드라인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그를 힐끔 쳐다본 곽연호가 말했다.
“봉 실장님만 믿고 있다가 뒤통수 제대로 얻어맞았는데요. 아주 얼얼하다 못해 눈이 튀어나올 지경인데. 봉 실장님은 어떻습니까.”
내용과는 달리 평온한 어조가 왠지 섬뜩한 느낌에 봉두화는 태블릿에서 시선을 떼어 책상 너머에 앉아 있는 젊은 본부장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초리로 곽연호가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설명해 보세요.”
“…네?”
“왜 이렇게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실장님 생각이 어떠신지 알아야 제가 판단이 서지 않겠습니까.”
손에 깍지를 낀 채 턱을 괸 곽연호가 책상 너머로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봉두화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 * *
“어, 엄마. 알겠어요. 응, 고마워요.”
“뭐라셔?”
“밥 먹여서 재우니까 걱정하지 말래. 장 이사님도 도착하셔서 보고 가셨다고.”
“다행이네.”
“그러게.”
김도연의 부모님은 해외에 거주중이었다. 미디어가 몰려들어도 걱정이긴 하지만 김도연을 지금 혼자 두는 것도 좋지 않다는 재이의 주장에 남궁찬이 일단 자신의 본가에서 며칠 지내게 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남궁찬의 부모님은 제 아들 또래의 녀석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말없이 꾸벅 인사하는 것이 안쓰러워 열심히 먹여서 이제 막 재운 참이라고 하셨다. 남궁찬의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은 그가 전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멤버들은 간만에 스케줄을 일찍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거실에서는 TV에서 연예부 기자와 패널들이 에이튼이 발표한 사과문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있었다. 저런 일들을 벌이고서도 직접 나와서 대중과 팬들에게 사과하는 대신 소속사를 통해 사과문 한 장 던지고 미련 없다는 듯 연예계 은퇴를 선언해 버린 태도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들이 대부분이었다.
김도연의 폭로는 에이튼의 방송 사고로 가뜩이나 위축되어 있던 카이저의 팬덤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조금 잠잠해지고 있던 여론이 다시 한번 끓어오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에 장 이사 쪽에서 어떻게 손을 쓴 것인지 카이저 멤버들 중 몇몇이 김도연의 폭로에 힘을 실어 주는 증언을 하는 바람에 사태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곳까지 치달았다. 결국, 삼화 엔터는 카이저의 무기한 활동 중단과 에이튼의 연예계 은퇴를 발표하는 것으로 수습에 들어갔다.
“아, 데뷔한 이후로 이 근래가 제일 빡셌던 것 같아.”
“진짜. 무슨 첩보물 찍는 줄 알았다고.”
“지금 긴장 풀어져서 그런지 팔다리 흐물흐물해서 힘 하나도 안 들어가.”
“한 것도 없으면서 생색은.”
멤버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는 것에 보다 못한 재이가 툭 내뱉자 엠케이가 발끈해서 대답했다.
“아 왜? 내 손톱 좀 보라고. 어제오늘 물어뜯어서 이 지경인데!”
그러자 그들의 말마따나 긴장이 풀려서인지, 평소보다 더 일찍 멤버몰이가 시작되었다.
“오 그건 좀 더럽다. 나중에 스타일리스트 누나한테 일러야지.”
“석관이 형한테도 얘기해 주자.”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손톱을 물어뜯냐.”
“그러게, 쯧쯧. 언제 철들지.”
그런 멤버들을 보고 있던 인혁이 재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넌 괜찮냐?”
“응? 나? 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태연한 재이의 그 표정에 인혁이 안심이라는 듯,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고는 대답했다.
“김도연 아니었으면 제대로 한 방 얻어맞았을 거였잖아. 나도 아직까지 심장이 벌렁대는데.”
인혁의 말에 재이는 대답 대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김도연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재이는 석관과 장 이사, 심진우를 비롯한 회사 직원들과 상의해 그간 물밑으로 협의하며 발표할 타이밍만을 재고 있던 픽처스와의 계약 건을 먼저 공표하기로 했다.
저쪽에서 가지고 있는 사진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김도연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다면 블럭 코리아 사장과 함께 만났던 픽처스의 아트디렉터 미라 클레인과 함께 찍힌 사진이었을 터였다. 만일 재이가 함께 찍힌 인물이 클레인이 아니라면 그건 그것대로 신빙성도 뭣도 없는 사진일 테니 오히려 대처하기 더 쉬울 수도 있었다.
‘망설이던 참에 이렇게 판을 깔아 주다니.’
픽처스와의 계약은 문선일 대표가 직접 나서서 챙겼을 만큼 큰 건이었다. 성공한다면 재재님뿐 아니라 파티의 인지도 또한 세계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클레인과의 몇 번의 미팅을 통해 스토리와 캐릭터의 판권뿐 아니라 유통 경로, 그리고 예상되는 나라별 매출 수준까지 어느 정도 사전에 확인을 끝낸 재이와 심진우는 장 이사와 함께 문선일 대표에게 진척 상황을 보고했다. 대표이사실에서 간만에 얼굴을 마주한 문선일이 재이에게 대뜸 물었다.
“할 만하냐?”
“네. 재밌습니다.”
“뭐 이것저것 많이 벌려 놓고 다니는 모양이던데.”
“사고는 안 쳤잖습니까.”
“사고 친 녀석을 데리고 오긴 했지.”
“대표님이라면 도와주실 것 같아서.”
문선일이 재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재이의 말대로 문선일은 갑작스러운 폭로 후 내부 고발자로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된 김도연을 삼화 엔터에 위약금을 대신 물어 주면서까지 도로 빼내 왔다.
그 짧은 침묵에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심진우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끼어들려고 하는 것을 그와 나란히 앉아있던 장 이사가 슬쩍 손을 뻗어 만류했다. 재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문선일 대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자선 사업가로 보이나?”
“전혀요. 그저 대표님이라면 손해를 만회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실 것 같아서요.”
“손해라니.”
“김도연, 더 키워 보려고 하시는 거잖아요.”
재이의 말에 문선일이 또다시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하, 이 녀석 진짜 물건일세.”
문선일 대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그동안 맞은편에 앉아 자신의 말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대답하던 재이가 대뜸 핵심을 짚은 것에 재미있다는 듯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녀석을 내가 어쨌으면 좋겠는데?”
“그거야 대표님 마음이죠. 제가 회사 사장도 아닌데.”
대표 이사를 앞에 두고도 솔직하기 짝이 없는 그 대답에 옆에 앉은 심진우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런 심진우와 달리 장 이사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문선일 대표와 재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재이의 대답을 들은 문선일이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그럼 넌 뭘 할지 생각해 봤냐?”
“예?”
문선일이 던진 질문이 뜻밖이었던 듯 재이가 되물었다.
“픽처스와의 계약까지는 나로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야. 김도연이 녀석 일도 그렇고. 오랜만에 재미있게 해 줬으니,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봐.”
“와, 저 상 주시는 거예요? 대박.”
“없으면 말…….”
“있어요!”
문선일이 말을 주워 담기 전에 재이가 재빨리 소리쳤다.
“뭔데.”
“저희 팬미팅 추가 예산이요.”
재이의 대답을 들은 문선일 대표가 응?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팬미팅 얘기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는데 추가 예산이라니. 장 이사, 나 모르는 사이에 뭐 진행하고 있는 거 있나?”
“아뇨 대표님. 저도 파티 팬미팅 얘기는 처음 듣는데요. 심 팀장, 나 모르는 사이에 애들하고 뭐 진행 중이야?”
장 이사는 여전히 빙글빙글 얼굴에 웃음을 띤 채 공을 심진우에게로 넘겼다. 심진우가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뇨. 아직 기획안 통과되기 전이라 멤버들에게 함구하고 있었는데.”
넌 대체 어디서 냄새를 맡은 거니.
심진우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확인한 재이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조만간 할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때 잡히는 예산에 플러스알파로 추가 예산 잡아 주시는 거로. 어때요?”
추가 예산의 효과가 어땠는지는 이미 증명해 드렸잖아요. 쓰시는 김에 팍팍 더 쓰세요.
재이가 덧붙인 말에 잠시 할 말을 잃고 그를 쳐다보고 있던 세 사람이 제각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정확히는 웃은 것은 문 대표와 장 이사뿐, 심진우 팀장은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라는 표정으로 재이를 쳐다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크게 내쉬었을 뿐이었다.
* * *
PART. Y 팬 게시판
[일반적인 심연 vs 파티의 심연]
- 일반적인 심연: 아무것도 없이 어둡고 조용한 무의 공간이라 빠져나올 수가 없음
- 파티의 심연: 어두운지는 모르겠고 여하튼 떡밥이 자진모리장단으로 끝도 없이 휘몰아쳐서 받아먹기 바빠서 헤어날 수가 없음
재재님이 픽처스랑 계약했다는 소리 들었을 때만 해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전 세계에 용사 이야기 모르는 자 없게 하여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시려는구나 역시 재재님 므싯따 하고 넘겼는데 팬미팅 소식에 결국 넘어감 ㅜㅜ 으어어ㅓㅓ 드디어!! 드디어 팬미팅 이냐고!!! 맨날 사녹한 음방만 보던 방구석 1열에도 기회가 오는 건가요 그런가요 진차아.. 내가 이번엔 꼭 간다. 반드시 간다. 죽어도 간다 다 비켜 나포션 오늘부터 클릭 연습한다.
└ 자진모리장단으로 휘몰아치는 떡밥 너무 좋아 좋다고 ㅋㅋ 더 몰아쳐 줘 난, 이 나락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오 평생 여기서 살 거야
└ 너=나ㅋㅋ 그냥 여기 입 벌리고 있을 테니 어서 빨리 다음 떡밥 쳐넣어 줘 떡밥 뫄이따 얌냠냠
└ 팬미 ㅈㄴ기대됨 레알 이거 공홈에 소식 뜬 거 보고 기쁨에 벽뿌숨
└ 나왔다 파괴빌런 ㅋㅋ 너포션네 동네 괜찮은 거냐고 ㅋㅋ 떡밥 나올 때마다 그렇게 부수고 다니면 남아나질 않을듯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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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스는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안 되지. 가위바위보라는 시점에서 이미 공평하지 않아.”
“그건 너만 그런 거고.”
“아무튼, 가위바위보는 반대야.”
인혁이 팔짱을 낀 채 인상을 팍 쓰며 내뱉은 말에 나머지 다섯 멤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팬미팅 일정이 구체화하고 본격적으로 팬미팅에 올릴 무대를 짜기 시작하자 메인 무대가 될 [Abyss: 심연]의 심연 자리를 두고 멤버들 사이에서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시작부터 난항이네.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