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12화 (112/224)

#112

파충류는 딱 질색인데

“그럼 어비스 무대 걸고 시합이라도 한번 할까?”

재이의 한마디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내 공기가 일순 변했다.

“시합? 갑자기 웬 시합?”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 인혁에게 재이가 설명을 덧붙였다.

“다들 하고 싶은 거잖아, 어비스. 그러면 뭐, 겨뤄서 이긴 사람이 하는 게 제일 공정하지 않겠어?”

재이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던 멤버들이 차례차례 내뱉었다.

“그거 일리 있네.”

“승자독식!”

“종목은?”

“언제 할 건데?”

“뭐 할 건데?”

구미가 당기는지 하나둘 눈을 빛내며 물어 오는 멤버들을 둘러보며 재이가 말했다.

“그거야, 일단 공평하게 하고 싶은 게임을 하나씩 말해 보라고.”

재이의 대답에 멤버들의 눈이 의욕으로 반짝였다.

* * *

PART.Y 팬 게시판

[어제오늘 사이 올라온 파티 목격담]

1) 밤 10시 30분 한강 공원에서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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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금 한강 공원인데 아이돌 봄ㅋ 촬영 온 건지 산책 온 건지 모르겠는데 여섯 명이서 달리기 시합 중ㅋㅋ 줜내 빨랔ㅋㅋ

2) 밤 12시경 분식집에서 떡볶이 흡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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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ㅑㅑㅑ나지금 알ㅂㅏ 중인데 우리 가게에 애들 옴ㅋㅋ꿈이냐고ㅠㅜ손벌벌떨리무ㅠ사장님 몰래 떡볶이 정량보다 더 줬는데 바쁜 건지 갖다주자마자 마시듯이 먹네 ㅜㅜ 얘들아 오뎅 국물 리필 자유야 많이 먹고 가 ㅜㅜ

3) 새벽 3시 10분 오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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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오락실인데 여기 지금 난리남ㅋㅋㅋ 연옌 같은 애들이 와서 인형 뽑기 거덜 내는 중ㅋㅋㅋ미친거아니냐곸ㅋㅋ저걸 다 뽑냐곸ㅋㅋ 겜하던 사람들 모여들어서 다 구경하고 새벽에 이게 웬 난리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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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보다 못한 직원이 쫓아냄ㅋㅋㅋ 여섯 중에 두 명이서 레알 인형 뽑기 기계 두 대 거의 다 털어 감ㅋㅋ실화냐곸ㅋㅋ

…우리 애들 대체 뭐 하고 다니는 건지 아시는 분???

└ ㄹㅇ 컴백하고 잠잘 시간도 없는 거 아니었냐고??

└ 애들 오늘 새벽부터 KBM 사전녹화 있지 않았어?

└ 대체 뭐 한 거임?? 뭐 새 예능이라도 들어가는 건가??

└ 근데 마지막에 인형 뽑기는 뭐지ㅋㅋ??

└ 원짹 가 보니까 저거 찬이랑 재재님 같던데 대체 둘이 왜 새벽 세 시에 인형 뽑기 배틀 한 건데ㅋㅋㅋ

└ ㄹㅇ 짹타래 읽어 보니까 배틀 아니고 둘이 그냥 기계 털어 온 수준이던데? ㅋㅋㅋ

└ 저 인형들 다 어디다 쓰려고 ㅋㅋㅋㅋ

└ 재재님 이 기만자. 게임 발컨이라더니 ㅋㅋ

└ 뭔진 모르겠지만 나도 애들 실물 영접 하고 싶다 ㅜㅜ

└ 나도 2222

└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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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팬 미팅 당일.

“여섯 명이 각자 원하는 게임으로 승부라니. 애초에 무리수였다니까.”

“그래도 좋은 승부였어. 재밌기도 했고. 특히 남궁찬 거.”

대기실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던 멤버들 중 은규가 중얼거린 말에 엠케이가 대꾸했다. 그러자 옆에서 남궁찬이 생각났다는 듯 재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한재이 나중에 스케줄 빌 때 제대로 크레인겜 원정 함 가자.”

“아서라, 그러다가 또 뉴스에 나려고.”

“아 왜, 우리가 무슨 꼼수를 쓴 것도 아니고. 정정당당하게 돈 넣고 게임 한 건데 뭐가 어때서.”

자신을 만류하는 인혁의 말에 남궁찬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뿌듯하게 말했다. 메인 무대에서의 어비스 자리를 두고 벌인 여섯 번의 게임 중 남궁찬이 내건 것은 인형 뽑기 게임이었다.

자타공인 게임 폐인인 남궁찬으로서는 당연히 자신이 월등한 실력으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건 제안이었지만 의외의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자타공인 게임 발컨 한재이였다.

지금껏 온갖 RPG 게임과 콘솔 게임에서 입만 산 발컨의 위용을 뽐낸 한재이가 크레인 게임에서 본인도 모르고 있던 포텐을 터뜨린 탓에 숙소 근처 오락실에서 시작된 인형 뽑기 레이스는 결국 기계 두 대에 담겨 있던 인형을 거의 다 뽑고서야 황급히 달려 나온 직원에 의해 강제 종료 당했다.

“레알 남궁찬이랑 한재이 계속하게 그대로 뒀으면 그 가게 망했을 듯.”

“직원분 얼굴 완전 사색 되셔서 뛰쳐나오셨는데 꼼수 쓴 것도 아니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보는 내가 다 마음이 아프더라고.”

“아니 나도 원랜 대충 몇 개 뽑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한재이가 옆에서 자꾸 불붙이잖아.”

멤버들의 말에 남궁찬이 멋쩍은 듯 중얼거렸다. 그날의 사달을 자신의 탓으로 넘기는 듯한 남궁찬의 말에 억울하다는 투로 재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뭘. 그냥 뽑을 수 있을 것 같길래 뽑은 건데.”

그러자 옆에서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엠케이와 이환, 그리고 은규가 차례대로 한마디씩 끼어들었다.

“무슨 기계가 뽑아내는 줄. 한재이 발컨이라고 누가 그랬냐고.”

“이건 진짜 솔직히 지금까지 사실대로 말 안 한 한재이가 나쁨.”

“내 말이. 이런 중요한 사실을 이제껏 숨기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냐. 우리가 남이냐고. 아, 배신감.”

“아니, 나도 내가 크레인 게임에 이렇게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다니까.”

한목소리로 자신을 성토하는 멤버들의 말에 재이가 억울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온라인이나 콘솔 게임이 결국 스크린 속의 허상을 컨트롤해야 하는 것과 달리 크레인 게임은 스스로의 감각을 십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재미있었다.

기왕 뽑기 시작한 거 많이 뽑아서 팬 미팅 때 팬분들한테 역조공해도 재밌겠다는 생각에 잡히는 대로 뽑다 보니 결국엔 몰려든 구경꾼들과 난처해하는 직원에게 쫓기듯 오락실을 나와야 했다. 그 후 구경꾼 중 누군가가 올린 핸드폰 영상이 SNS를 타고 화제가 되는 바람에 포털 연예 뉴스 란은 며칠간 [새벽녘 오락실 인형 뽑기 공략에 나선 파티]의 화제로 들썩이기도 했다.

“그래도 덕분에 오늘 경품이 풍성해지긴 했지.”

은규의 말에 멤버들이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찬과 재이가 털어 온(?) 인형들은 잠시 후 있을 팬 미팅에서의 경품으로 팬들에게 나눠 줄 예정이었다. 재이가 내심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전리품을 바라보고 있는데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석관이 들어왔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그의 얼굴을 확인한 재이가 물었다.

“형, 무슨 일 있었어요?”

그의 물음에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석관에게 쏠렸다.

“어? 아니. 음. 이게. 별일은 아닌데 좀.”

“뭔데요?”

“설마 뭐 사고 터진 건 아니죠?”

“리허설은 괜찮았는데……. 혹시 무대에 문제라도 있대요?”

“팬들이 생각보다 적게 왔어요?”

“아님 너무 많이 오셨나?”

우르르 쏟아지는 멤버들의 질문에 석관이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밖에 축하 화환 세팅한 거 확인하고 오는 길인데.”

석관이 잠시 말을 멈추고는 핸드폰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팬 미팅을 기념해 팬덤과 관계자들에게서 온 축하 화환의 사진들이 빼곡히 찍혀 있었다.

“오 RS6가 보내줬네? ‘TRPG 서포터 고정 희망’이라니. 꿈도 야무져라.”

“더헥 선겸 선배님한테서도 왔는데? 이야 차 리더 인맥 관리 잘하네.”

“박예찬 선생님도 보내셨네. ‘환비스랑 규비스 더블매치 소취’라니. 아무리 예라인이라지만 너무 대놓고 편애하시는 거 아님?”

“어? 근데.”

“어…….”

“…….”

한참 머리를 맞대고 화환 사진을 넘겨보며 주거니 받거니 하던 멤버들의 대화가 한 장의 사진에서 뚝 멈췄다.

“…이거 혹시 잘못 보낸 거 아니야?”

“어디 딴 데 보낼 게 우리 쪽으로 왔나? 여기 행사장 오늘 우리 말고 누가 쓰지?”

“여기 오늘 우리밖에 안 쓸걸.”

“그럼 이건 무슨 신종 저주이거나 뭐 그런 건가?”

“그 얘기 들으니까 왠지 섬뜩한데.”

짧은 침묵을 깨고 이환이 입을 열자 재이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보탰다. 그들의 눈이 멎은 곳에는 [앞으로도 승승장구하시길 – 삼화 엔터 곽연호 배상]이라고 적힌 화려한 3단 화환이 찍혀 있었다.

“근데 곽연호가 누구야? 카이저 매니저 이름 봉 뭐시기 아니었나?”

“그러게. 곽연호가 누구지?”

멤버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바라보며 재이는 며칠 전 방송국에서 우연히 마주친 삼화 엔터의 젊은 본부장을 떠올리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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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 엔터의 본부장과 마주친 것은 뜻밖에도 케이엠 오피스에서였다. 픽처스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 세부 사항의 조율을 위한 내부 회의를 위해 오피스가 있는 플로어에 와 있던 재이는 복도 끝 대표이사실에서 낯선 인물과 함께 걸어 나오는 문 대표와 장 이사의 모습을 발견하고 꾸벅 인사했다.

“연습은 어쩌고?”

“기획팀하고 미팅이 있어서요.”

소속 가수 얼굴을 보자마자 첫마디가 저거라니. 장 이사님 직속 상사가 저런 성격이라니, 직장 생활 팍팍하시겠어요. 존경합니다. 재이는 자신을 발견한 문 대표가 인사를 대신해 건넨 말에 속으로 중얼거리며 대답했다.

“이야, 실제로 보니까 더 똘망똘망한데요, 대표님?”

문 대표의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재이는 시선을 돌려 그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자로 잰 듯 몸에 딱 맞는 것이 테일러 메이드임이 분명해 보이는 양복을 몸에 걸친 젊은 남성이 자신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파티의 한재이라고 합니다.”

대표이사와 장 이사가 직접 배웅나올 정도의 인물이다. 일단 인사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인사성도 밝고. 자기 이름 앞에 그룹 이름을 먼저 걸기까지. 거참.”

잠시 말을 멈춘 남자가 재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이어 말했다.

“탐나네요.”

‘뭐냐고. 아무리 내가 어리대도 그렇지. 초면에 대놓고 품평이라니, 이래서야 인간 취급도 못 받는 것 같아서 기분 별론데.’

재이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슬쩍 다른 쪽에 서 있는 장 이사를 쳐다보았다. 이사님, 이분 언제 가세요? 재이와 시선을 마주친 장 이사가 그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읽은 것인지 문 대표를 돌아보며 말했다.

“대표님, 제가 아래까지 배웅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그럼 난 이쯤에서 실례하지.”

두 사람의 대화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은 듯, 남자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와, 너무 경계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냥 인사차 칭찬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리고는 재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통성명할 기회는 주셔야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심기가 불편한 듯 미간의 골이 깊어진 문 대표의 표정에도 거리낌 없이 제 할 말을 다 한 남자가 재이를 빤히 쳐다보며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 한재이 씨. 난 삼화 엔터테인먼트에서 전략기획본부를 맡고 있는 곽연호라고 해요. 만나서 아. 주. 반갑네요.”

아주, 라는 말에 강조점을 팍팍 찍으며 인사를 건네는 곽연호는 입은 웃고 있었으나 눈빛은 이쪽의 머릿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려는 듯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재이는 그런 그의 눈빛을 무덤덤하게 흘려 보내며 꾸벅 고개를 숙여 간단하게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그래요. 지난번에 우리회사 녀석이 건방지게 군 거 대표님께 사과도 할 겸, 김도연이 계약 문제도 매듭지을 겸 겸사겸사 왔던 참인데.”

안물안궁인데요.

재이는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고 있는 곽연호를 힐끔 쳐다보고는 장 이사를 돌아보았다. 이사님, 엘리베이터 왜 안 와요?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하고 있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같이 일해 보고 싶군요.”

“곽 본부장, 이제 아주 내 눈 앞에서 대놓고 빼 가려는 건가?”

“어이쿠, 문 대표님 아직 계셨어요?”

헐, 완전 능구렁이가 따로 없네.

재이는 문 대표의 가시 돋친 말에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웃어넘기는 곽연호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곽연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문 대표가 눈썹을 콱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으나 그런 문 대표의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곽연호가 태연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빼 가긴요. 능력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해 보고 싶다는 건, 이 바닥 인간이면 모두가 하는 생각 아니겠습니까.”

이야, 이분, 한 어그로 하시는데? 대표님이 눈에서 레이저빔 쏘시는 거 간만에 보네.

재이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거물들의 기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쉽다, 팝콘만 있으면 완벽할 텐데.

“엘리베이터 왔습니다.”

마침 들려온 장 이사의 목소리에 문 대표와 곽연호가 마주 보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 한재이 씨, 안 타? 내려가려던 거 아니었나?”

장 이사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문 대표에게 인사하던 곽연호가 문 대표 옆에 그대로 서 있는 재이를 발견하고 물었다. 재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 잠깐 잊고 온 게 생각나서요. 먼저 내려가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정중한 재이의 인사에 뭐라고 더 말하려던 곽연호의 코앞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매정하게 닫혔다. 구석에서 조용히 닫힘 버튼을 연타하고 있었을 장 이사의 얼굴이 떠오르자 재이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한재이, 연습 안 가냐.”

“헐. 갑니다, 가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대표님.”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던 재이는 등 뒤에서 들려온 대표의 말에 그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비상구 계단을 찾아 뛰었다. 재이는 계단을 두세 개씩 한꺼번에 뛰어 내려가면서 조금 전 만난 곽연호를 떠올렸다.

나름 나이스하게 끝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본부장이 여기까지 직접 찾아왔을 줄이야. 에이튼은 은퇴하고 김도연은 나가고, 나름 큰돈 들여 가며 심혈을 기울였던 그룹이 단박에 풍비박산이 나서 사실상 개점 폐업 상태가 된 이 상황에도 저런 여유로움이라니. 실무진끼리만으로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김도연 계약 건을 챙기겠다고 직접 여기까지 찾아온 것도 수상했다.

‘파충류는 딱 질색인데.’

재이는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빙글빙글 웃던 곽연호의 뱀 같은 눈초리를 떠올리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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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삼화에서 보냈다니까 왠지 되게 찜찜하네.”

남궁찬의 목소리에 재이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멤버들은 여전히 곽연호가 보내온 화환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 중이었다.

“석관이 형, 이거 꼭 다른 거랑 같이 전시해야 하나요? 어디 딴 데 따로 빼 두면 안 되나?”

“그랬다가 혹시라도 나중에 알고 말 나오면 어쩌려고.”

엠케이가 석관에게 묻는 말에 석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인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대했다. 멤버들의 수다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재이는 남궁찬이 석관에게 돌려주고 있는 핸드폰 속 화환 사진을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짜, 이놈의 인기.’

어떻게서든 자신에게, 혹은 파티에 끈을 대 보겠다는 집요함이 엿보이는 것 같아 재이는 찜찜함에 고개를 털었다.

- 파티, 스탠바이 해 주세요.

마침 대기실 밖에서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은 팬 미팅부터.’

여섯 명의 멤버가 피 튀기는 승부 끝에 만들어 낸 오늘의 어비스 무대는 평소보다 조금 더 특별할 터였다. 재이는 마지막으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멤버들과 함께 대기실을 나섰다.

* * *

어둡게 암전한 실내에 이미 귀가 닳도록 들어 익숙한 곡의 인트로가 울렸다.

‘으, 직접 들으니까 역시 오지네. 박력 쩐다. 근데 빨리 불 좀 켜 줘, 애들 얼굴 좀 보게.’

김은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오늘 팬미팅은 특이하게도 응원봉이나 핸드폰 LED를 사용한 응원을 자제해 달라는 사전 고지가 있었던 차였다. 덕분에 실내는 그야말로 심연 속에 들어온 것처럼 칠흑같이 어둡고 캄캄했다.

스산한 바람처럼 물결치는 리듬 속에 곡의 시작을 알리는 인혁과 남궁찬, 엠케이의 랩이 들려오자 장내가 순식간에 크게 술렁였다.

…어?

“와아아아아악-----!!!!”

본격적으로 노래가 시작되고 캄캄한 실내에 하얀 빛줄기가 차례차례 쏟아져 내리며 객석 사이의 통로 여기저기에 선 멤버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김은지는 곧이어 그 창백한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의 바로 옆 통로를 비추는 것에 저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다. 귓가를 먹먹하게 울리는 제 목소리에 놀라 얼결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다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선 인물과 제대로 눈이 맞았다.

“으와아아아아-!!!!”

재이다, 한재이다! 오미친빌어먹을젠장할 재비스라니, 재비스라니이이!!!!

김은지는 놀라 멎어 버릴 뻔 했던 심장이 있을 제 가슴께를 움켜쥐고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노래를 하며 무대 쪽으로 걸어 나가려던 재이가 그런 자신을 힐끗 바라보며 멈칫한 것도 같았다. 아니, 같았다는 무슨, 바라본 게 맞았다.

재비스 님이 김은지를 바라보셨다.

‘와악 재비스가 날 봤어어어!’ 하는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세상에 무려 재비스가 날 봐 줬다고. 진짜 나랑 똭! 눈이 맞았다고. 와 미친, 나 이제 성불할 수 있어! 아 뿌듯하다, 개뿌듯하다! 태어나길 잘했다! 살아 있길 잘했어! 기특하다 나님!!!!!

설마 이렇게 가까이서 보여 줄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봤지? 봤겠지? 어때, 너희도 우릴 위해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지만 준비한 건 너희들뿐만이 아니라니까!!’

김은지는 저도 모르게 활짝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객석에서 움직이고 있는 멤버들을 비추기 위한 스포트라이트를 비껴 받은 몇몇 팬들의 눈이 자신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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