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19화 (119/224)

#119

불공정 계약의 끝을 보여 드리죠

숲속의 고요한 적막이 온몸을 휘감았다.

깊게 심호흡하자 차가운 밤이슬을 머금은 숲 내음에 폐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오래간만이네.’

어둠에 몸을 맡긴 채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하며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간 쓸 일이 없어 잠자고 있던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간만에 극한까지 깨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재이는 기분이 좋았다.

저쪽 동네에서 적의 매복과 기습을 마주할 때마다 그것들을 걷어 내며 ‘내가 더 잘할 자신 있는데.’라고 중얼거렸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신의 가호를 받는 성기사로서의 품위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소리만 아니었어도.

‘매복, 기습, 잠입, 암습. 다 잘할 자신 있었는데 말이지.’

그걸 이렇게 푸네.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가상의 세계 속에서 대사와 지문 없이 출연자가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즉흥적으로 표현해 나가야 했다.

피디와 작가는 커다란 세계관을 제공할 뿐, 그 안에서 캐릭터를 연출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출연자 개개인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플레이어 자신이 게임 속으로 들어가 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입만 신컨 실력은 발컨이라는 오명을 벗을 기회잖아.’

매번 PRG계에 길이 남을 발컨이라고 놀려대던 남궁찬을 비롯한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재이는 씩 웃었다.

얼마간 내려가다 보니 드디어 수풀 사이로 드문드문 사람들의 목소리와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재이는 기척을 완전히 죽인 채 더 가까이 다가갔다.

“…와 이렇게 다 털리고 쫓겨날 줄이야. 세상 진짜 믿을 놈 하나도 없다더니. 믿었던 배 피디가 배신자였을 줄이야.”

“극적 효과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

“됐고. 그놈의 극적 효과랑 분량 챙기느라 결국 나만 갈렸잖아 나만.”

“하하…….”

정민길과 배 피디의 목소리였다.

수풀 너머로 슬쩍 살핀 재이의 눈에 들어온 정민길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자다가 급하게 뛰어나온 것인지 와이셔츠 단추는 죄다 풀어 헤쳐져 있었고, 단정하게 뒤로 넘겼던 머리도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조 의원의 비상식량까지 챙겨서 남들 것보다 빵빵하던 스타터 팩이 헐렁했다.

‘역시. 급습에 당했나 보네.’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엠케이가 제작진들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주워들은 대로, 조 의원이 죽었다는 것은 배 피디가 흘린 거짓 정보였던 듯했다.

‘제작진들 딴에는 자기들이 주는 정보를 맹신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라도 주려는 심산이었겠지만 그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최도훈, 아니 정 선배님 혼자가 되겠네.’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정민길과 배 피디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지금 이거 성공해야 한다고. 배 피디도 양심이 있으면 장 피디한테 연락하고 그러지 말아요. 나 여기서 탈락시켜 봤자 편집점 찾기 힘들어지는 건 배 피디라고.”

정민길이 배 피디를 타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재이는 대강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챘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시겠다는 거구나.’

배 피디의 거짓 정보를 그대로 믿은 최도훈은 아마 마음 놓고 개울가에서 야영하며 쉬고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조영주에게 제대로 털렸을 것이다. 어떻게 털렸는지야 알 바 아니었지만, 떼로 덤볐다는 걸로 봐선 조 의원이 오인조, 박송선과 손이라도 잡은 모양이었다.

저 홀쭉해진 스타터 팩을 보아하니 조 의원은 자신이 빼앗겼던 비상식량을 도로 가져간 데에서 그치지 않고 최도훈 몫의 식량까지 제대로 야무지게 털어간 듯했다. 그들이 놓아준 건지, 스스로 도망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들에게서 벗어난 최도훈이 식량도 없이 향할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아까 보니까 급습은 주사위 없이 가는 게 국룰이던데?”

저기, 그런 국룰 모르는데요.

이어서 들려온 정민길의 목소리에 재이가 속으로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성공할 자신 있으신가 봅니다?”

“배신자, 아니 배 피디. 내가 말 했잖아요. 그래 봐야 고딩 둘이라고. 최도훈이 작정하고 덤비는데 당해 낼 수 있을 리가. 게다가 지금은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고 난 그냥 걔들 식량만 털어서 나올 거라고.”

“음. 어째 비슷한 말을 아까도 들은 것 같은 기억이.”

“아, 초 치지 좀 말아요. 가만 보면 배 피디가 엑스맨인 것 같다니까. 아니지 멀쩡히 살아 있는 조 의원이 죽었다고 뻥쳐서 나 물 먹였으니까 엑스맨 맞네.”

배 피디와 이야기를 나누던 정민길이 투덜거렸다. 거기까지 들은 재이가 걸음을 돌렸다.

알고 싶은 내용은 얼추 다 나온 것 같으니 이제 돌아가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지.

재이는 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기척을 죽인 채 정민길과 배 피디 일행에게서 멀어졌다. 그가 사라진 곳에는 변함없이 어두운 정적만이 내려앉아 있을 뿐이었다.

* * *

“…케이, 엠케이. 야, 일어나봐.”

엠케이는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희미하게 새어 드는 달빛에 비친 익숙한 얼굴에 엠케이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뭔데 왜?”

“이야. 이걸 찍어서 차인혁한테 보내 줘야 했는데. 깨우자마자 일어나는 엠케이라니. 너 진짜 엠케이 맞냐?”

벌떡 일어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 와중에 감탄했다는 듯 중얼거리는 재이에게 엠케이가 눈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일하는 중이니까. 내가 아무리 그래도 공사 구분은 확실한 편이라고.”

“아 그래? 몰랐네.”

“시비 걸려고 깨운 거면 다시 잘 거야.”

엠케이가 다시 침낭으로 들어가려는 것에 재이가 재빨리 덧붙였다.

“일어나봐, 손님 오시는 중이야.”

“손님?”

“어, 서계진과 엠케이의 정신적 동맹.”

“하.”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눈치챈 엠케이가 어이없다는 듯 짧게 헛웃음을 지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재이가 말했다.

“그러게, 내가 사람 함부로 믿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 어쨌거나, 아직 우리 쪽 담당 피디님도 모르시는 것 같아.”

엠케이가 제작진의 텐트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불이 꺼진 채 조용한 것을 보니 재이의 말마따나 배 피디 쪽에서 아직 아무런 연락도 못 받은 모양이었다.

“뭐야, 피디님들끼리는 동선 공유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랄까, 피디님도 모르는 걸 너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설명하려면 기니까, 일단은 움직이자. 나중에 얘기해 줄게.”

재이의 설명에 엠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님이 오시기 전에 준비해 놓으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 * *

어둠 속.

정민길은 자신의 옆을 바짝 따라붙은 카메라와 함께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계곡 옆 야트막한 평지에 쳐진 텐트 쪽으로 이동했다. 두 동의 텐트 중 일단 한쪽 텐트의 지퍼를 조심스럽게 끌어 내리자 침낭 속에 웅크리고 단잠에 빠져 있는 앳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엠케이야 미안하다.’

자신의 동맹 제안에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고는 붙임성 좋은 강아지 같은 얼굴로 환영한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 대던 엠케이의 얼굴이 떠오르자 정민길은 잠깐 솟아오른 죄책감에 잠시 머뭇머뭇했다. 그러나 엠케이의 옆에 놓인 게 묵직해 보이는 스타터 팩을 발견하고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형이 먹고살려다 보니 어쩔 수가 없구나. 촬영 끝나면 맛있는 거 사 줄게.’

정민길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제법 묵직한 스타터 팩을 집어 들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몸을 빼냈다.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이미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자 그럼 다음 식량도 털어 볼까.’

정민길은 조금 전보다 더욱더 조심스러운 손길로 텐트의 지퍼를 천천히 아래로 잡아당겼다. 제가 맡은 서도진이라는 캐릭터만큼이나 예민해 보이던 한재이는 조금 전 엠케이와는 달리 조금만 방심해도 뒤통수를 칠 것 같은 느낌의 녀석이었다.

조심. 조심…….

정민길은 천천히 텐트를 열고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하하, 아직 애는 애네.’

바짝 신경을 곤두세운 채 안으로 고개를 들이민 정민길은 눈앞에 들어온 광경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예민하고 까칠해 보이던 녀석이 이쪽의 기척은 느끼지도 못하는지 새근새근 곤히 잠들어 있었다. 두꺼운 테의 안경으로도 숨길 수 없이 날카로워 보이던 눈매도 저렇게 눈을 감고 있으니 귀여워 보일 지경이었다.

‘…응?’

조금 전 엠케이의 텐트에서 그랬듯 스타터 팩만 챙겨 나오려고 주위를 둘러보던 정민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럼 그렇지.’

새근새근 잘도 자는 녀석이 누가 채 갈세라 꽉 끌어안고 있는 것이 자신이 찾던 그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정민길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너는 쉽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어쩔 수 없지. 너희도 먹고살아야 하니 이건 내가 양보하마.’

저걸 빼내려고 했다간 분명 저 예민한 녀석을 깨울 것 같아 정민길은 애써 미련을 버리며 조용히 다시 텐트 밖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뭐, 한 명분은 확보했으니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정민길은 조용히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 감독에게 눈짓하고는 그대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갔다.

“…가셨냐?”

“그런 듯.”

인기척이 사라진 뒤 텐트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오는 재이를 따라 엠케이가 텐트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한재이 귀신같은 놈. 정 선배님이 내 건 가져가고 네 건 안 가져갈지 어떻게 알았어?”

“그거야 난 배낭을 끌어안고 있었으니까.”

“헐.”

빈틈없는 녀석.

엠케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리다가 정민길이 사라졌을 계곡 입구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재이가 돌아보는 것에 그와 시선을 마주친 엠케이가 이어 말했다.

“열 좀 받으시겠는데, 그치?”

두 사람이 동시에 씩 웃었다.

“그럼 이제 계약하러 가 볼까.”

“불공정계약의 끝을 보여 드리자고.”

엠케이와 재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격의 시간이었다.

* * *

“이-게-뭐-야—!!!!!!”

서도진-서계진 캠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속.

최도훈이 느꼈을 빡침과 정민길이 느끼는 황당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외침이 한밤중의 고요한 숲속에 울려 퍼졌다. 기대감에 부풀어 열어 본 스타터 팩에는 비상식량 대신 비닐봉지에 꾹꾹 눌러 담은 고운 흙 몇 봉지만이 담겨 있었다.

“…나 그냥 여기서 기권하면 안 되나?”

최도훈이 아닌 정민길이 중얼거리며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쌍둥이들이 계곡 쪽으로 출발하고 난 뒤 그곳에서 젖은 몸을 말리고 야영을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조 의원의 광탈 소식이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오인조-박송선 팀이 조 의원을 탈락시킨 것이 맞다면 이미 해가 지고 있는 이 시점에 굳이 자신이 있는 곳까지 쳐들어오지는 않을 터였다. 조금 일찍 자고 동트기 전에 쌍둥이들이나 골려 주려 가 볼까 하고 있었는데.

“조 의원이 복수하러 왔을 때 최도훈의 운은 다 했던 거야.”

정민길이 중얼거렸다. 죽었다던 조 의원은 오인조-박송선과 손을 잡고 돌아왔다. 자고 있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세 명의 기세에 놀라 겨우 몸만 빼낸 채 그대로 줄행랑을 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손에 든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 신세였다. 결국 그 상황에서 최도훈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계곡에서 야영을 하고 있을 쌍둥이 형제의 짐을 탈취하는 것뿐이었다.

그랬는데.

거기까지 생각한 정민길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허기에 그대로 뒤로 벌렁 누워 버렸다.

“밤새도록 뛰어다녔더니 배고파. 지쳤어. 더는 못 움직여. 몰라 배 째. 죽여.”

난 모르겠다. 이대로 죽고 그냥 먼저 돌아가련다. 섬 탈출이고 자시고, 그냥 이 프로그램에서 탈출할래.

잠시 그렇게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있는데 머리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먹을 거 드릴 테니 저희랑 같이 다니실래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올려다보니 언제 따라잡은 것인지 한재이와 엠케이 두 녀석이 똑 닮은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며칠 후.

“아악! 또 졌어! 아니, 이게 말이 돼?!”

정민길의 절규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구경하던 주변에서 감탄, 혹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극적으로 동맹 체결에 성공한 뒤 동행한 요 며칠 사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주사위 던지기에서 정민길은 저 귀신같은 한재이 녀석을 이기지 못하고 번번이 지고 있었다.

그 바람에 주사위 결과를 토대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본 촬영에서 촬영 초반 세계관 최강 빌런으로 각성하는가 싶었던 최도훈은 도진계진 두 사람 몫의 배낭을 대신 들어 주는 한낱 짐꾼으로 전락해 있었다.

“여기 계신 분들 다 보셨잖아요. 제가 꼼수 피우는 거 보신 분?”

자신들을 둘러싸고 구경 중인 제작진 중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본 재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보셨죠? 그럼 앞으로 30분 더 수고 부탁드려요. 그때 원하시면 한 번 더 기회를 드릴게요.”

어차피 결과야 똑같겠지만.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고는 몸을 돌려 일행의 선두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한재이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정민길이 중얼거렸다.

“악마다, 저건 악마야.”

반쯤 넋이 나간 듯한 그의 말투에 모여 있던 제작진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미리 쳐 놓은 덫에 보기 좋게 걸려들어 식량 확보는커녕 기운만 뺀 탓에 모든 의욕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최도훈에게 쌍둥이들은 동맹을 제안했다.

두 형제는 최도훈이 자신들과 함께 다니면서 식량을 나누어 먹는 것을 허락하는 대신 그에게 육체적인 노동을 대가로 요구했다. 쉽게 말하자면 최도훈을 자신들의 짐꾼으로 고용하겠다는 말이었다.

최도훈의 배신을 막기 위해 재이와 엠케이가 정민길에게 동맹에 앞서 제시한 조건은 단 한 가지였다.

주사위를 던져 높은 수가 나온 사람의 지시에 따를 것.

주사위 던지기에서 정민길이 이기면 최도훈이 어떤 식으로든 두 사람을 제압하는 흐름으로, 정민길이 지면 도진계진 형제의 철통같은 감시 탓에 천하의 최도훈도 꼼짝없이 짐꾼 신세를 피하지 못하는 전개로 가자는 사전 합의가 이루어졌다.

주사위 던지기.

일견 굉장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제안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야말로 저 두 녀석이 파놓은 진짜 함정이었다.

놀랍게도 정민길은 동맹을 맺은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사위 던지기에서 재이를 이기지 못했다. 정민길은 미안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는 엠케이에게 투덜거렸다.

“그렇게 미안하면 좀 나눠 들어 주던가.”

정민길의 말에 엠케이가 재빨리 대답했다.

“아, 죄송. 사실 그렇게까지 미안하진 않았어요.”

“네가 제일 나빠, 자식아.”

“신의를 먼저 깨 버린 건 정 선배님이셨어요, 기억하시죠?”

“그으… 건 그렇지만.”

엠케이의 말에 정곡을 찔린 정민길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뭇대고 있는 사이 재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 지기 전에 목적지까지 가려면 시간 빠듯해요. 곧 출발하죠.”

재이가 재촉하는 말에 정민길이 엠케이에게 투덜거렸다.

“쟤 저렇게 몰아치는 건 성격이냐 컨셉이냐.”

“둘 다요.”

“허. 너희 그룹 멤버들도 고생이 많겠구나.”

“그러니까요. 저희가 보살이죠.”

“최도훈 사장님, 아직 여유로우신가 봐요? 이참에 운동도 할 겸 뛰어갈까요?”

재이가 두 사람 쪽을 돌아보며 나직이 말했다.

악마의 속삭임 같은 그 목소리에 정민길이 질색을 하며 내려놓았던 배낭을 잽싸게 고쳐 메곤 발을 내디뎠다.

.

.

.

그날 밤.

새카맣게 어둠이 내려앉은 야심한 시각.

“진짜 이게 먹힐까?”

정민길이 물었다. 그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