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20화 (120/224)

#120

묵찌빠는 어때요

그날 밤.

새카맣게 어둠이 내려앉은 야심한 시각.

“진짜 이게 먹힐까?”

정민길이 물었다. 그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먹히게 해야죠. 아마 저쪽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을 겁니다.”

재이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엠케이가 걱정스럽다는 듯 물어왔다.

“그러니까 더더욱 너 혼자 가는 건 위험하지 않겠어?”

“혼자라니. 너랑 선배님이 도와주셔야지. 이 계획은 서계진과 최도훈 사장님이 얼마나 잘 해 주시느냐에 달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엠케이의 물음에 재이가 그와 정민길을 차례차례 돌아보며 말했다.

그들 세 사람, 서도진-서계진-최도훈 연합은 지금 조영주-오인조-박송선 팀을 급습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고 있었다.

목표는 식량.

애초에 두 사람 몫밖에 없던 식량은 최도훈이라는 덩치 큰 짐꾼을 고용한 대가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재이로서는 수렵을 하라면야 못할 것도 없었지만 방구석 괴짜 서도진에게 거기까지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아, 아이돌 한재이로서도 무리수인가.

아무튼, 현대 문명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식량을 두고 서로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 상대편 팀이 남은 식량을 다 먹어 치우기 전에 조금이라도 빼앗아 올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남는 장사였다.

재이가 세운 계획은 성동격서.

최도훈과 서계진이 사람들을 상대하는 동안 서도진이 캠프의 뒤에서 식량을 챙겨 나온다는 계획이었다. 급습은 주사위 없이도 가능하다는 국룰에 따라 지금부터 상대 팀에게 사전 예고 없이 실행에 옮길 계획이었다.

“근데 들키면 어쩌려고?”

“잊으셨어요? 서도진의 인간혐오 레이더.”

정민길의 물음에 재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건 캐릭터 컨셉이고.”

“괜찮아요. 저도 한 예민 하거든요.”

아, 그렇다고 제가 서도진처럼 인간을 혐오한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재이의 말에 엠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한재이가 예민 갑이긴 하죠. 기척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읽어요. 귀도 얼마나 밝은지 자다가도 누가 가까이 다가가면 금방 눈 번쩍 뜬다니까요.”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기습이랍시고 했으니. 그때 자는 척하느라고 고생했겠다, 재이야.”

정민길이 새삼 자신이 노예 계약, 아니 눈앞의 두 사람과 불공정 조건부 동맹을 맺게 된 계기를 떠올린 듯 재이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선배님 보기보다 뒤끝 있는 타입이시네요.”

“재이 너도 촬영 내내 두 사람 몫의 짐을 짊어지고 구둣발로 산자락 타고 돌아다녀 봐라. 없는 뒤끝도 생길걸.”

“원래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법이라잖아요.”

“엠케이야, 쟤는 원래 저렇게 밉상이냐. 아니면 저것도 서도진 컨셉의 영향이냐.”

“원래 밉상이요.”

두 번 고민할 여지도 없다는 듯 단박에 대답하는 엠케이와 그런 그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보는 재이를 한 번씩 번갈아 보던 정민길이 짧게 웃었다.

‘거참 녀석들, 재밌네.’

두 녀석들 모두 자신의 말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하는데도 선을 넘지는 않는 탓인지 말을 섞는 맛이 있었다.

어렵다는 핑계로 아예 먼저 말 걸 생각을 안 하는 신인이나 후배들을 볼 때마다 뒷방 늙은이 취급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던 정민길로서는 이런 식으로 친근하게 구는 한재이와 엠케이가 매우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과의 이런 격의 없는 대화가 없었다면 촬영이 멈춘 사이 틈틈이 대화를 통해 캐릭터 조형과 스토리 전개를 동시에 이끌어 가야 하는 현장 상황이 버거웠을 수도 있다고, 정민길은 생각했다.

‘뭐. 그건 그거고.’

출연진들끼리 훈훈하다고 해서 캐릭터들 사이도 훈훈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정민길은 생각을 정리했다.

어쨌건 최도훈으로서의 자신은 이 급습의 성패와는 상관없이 그간 줄곧 붙어 다니며 틈을 주지 않았던 서도진, 서계진 형제가 갈라진 타이밍을 잘 노려야 했다.

동맹에서 이동 경로를 정하고 계획을 짜는 등의 역할을 담당한 실질적 리더는 서도진 쪽이었지만 최도훈과는 직접 말도 섞으려고 하지 않는 서도진의 심리적 지지대는 제 쌍둥이 동생 서계진임이 분명했다.

서계진을 치고 서도진이 충격을 받은 틈을 타서 그를 마저 쳐 내는 것은, 지금 최도훈에게 불리한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꽤 효과적인 방법인 듯싶었다.

“그럼 가 볼까요.”

모니터링을 위해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배 피디에게서 고 사인이 떨어진 것을 확인한 재이가 정민길과 엠케이를 둘러보며 말했다. 핸디캠을 든 카메라맨 셋이 출연진 세 명을 바짝 따라붙었다.

“오케이.”

“야간 레이드! 가잣!!”

세 사람이 어둠 속에 한껏 몸을 숨긴 채 이동하기 시작했다.

식량털이 작전의 시작이었다.

* * *

“…응?”

오인조 역할을 맡은 DJ 반디는 갑자기 느껴진 기척에 반쯤 졸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야심한 시각.

밤 추위를 쫓기 위해 지펴 놓았던 모닥불도 어느새 꺼져 버려 고요한 밤하늘 아래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났다. 조만간 상대편 팀에서 식량을 약탈하러 올 것이라는 예상하에 오인조는 나머지 두 팀원과 함께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던 중이었다.

“누구야!”

자신들의 캠프에서 조금 떨어진 쪽의 수풀이 부자연스럽게 흔들거리는 것을 본 오인조가 커다랗게 외치며 들고 있던 손전등을 켜고 비췄다.

커다란 덩치 하나와 호리호리한 체구가 하나. 크고 작은 사람 둘이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최도훈과 서계진이었다.

“일어나요! 일어나! 기상! 급습이에요! 급습!”

오인조가 다급하게 외쳤다.

다들 얕은 잠을 자고 있었을 뿐이었던 듯 오인조의 외침에 조용하던 두 텐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조영주와 박송선이 차례차례 밖으로 뛰쳐나왔다.

“역시 믿고 맡기는 오 병장! 예상했던 대로네!”

조영주 역의 금정애가 나오자마자 상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상황극에 돌입하며 조영주의 목소리로 말했다. 피곤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눈을 비비며 텐트에서 나오던 박송선 역의 이다솜 역시 눈치껏 맞장구치며 끼어들었다.

“와, 대박. 진짜 왔네요. 숨겨 두길 잘했다.”

박송선의 말에 가까이 다가온 두 사람 중 서계진이 발끈해서 외쳤다.

“어, 어디다 숨겼죠? 좋은 말로 할 때 다 내놔요!”

서계진이 외치는 소리에 조영주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강도질부터 배우고. 최 사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어떻게 살아남아서 저렇게 어린 아이한테까지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계십니까?”

“어째 제가 죽기라도 했길 바라신 모양입니다, 의원님.”

최도훈의 날 선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영주가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차라리 그때 제 손으로 끝을 봤어야 했는데 싶은 후회는 드는군요.”

악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봐야 또 다른 악으로 보답할 뿐이라더니.

조영주가 중얼거리는 말에 최도훈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럴 실력은 되시고? 젊은 사람들 등 뒤에 숨어서 호가호위하시다니 4선씩이나 하신 분이 부끄러우신 줄 아셔야지.”

“그래 봐야 먹을 것 뺏겠다고 힘도 없는 늙은이를 나무에 묶어 두고 식량만 갈취해 간 양아치에 비하겠습니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치는 조영주의 말에 최도훈이 씩씩댔다.

“사… 사장님 열 받으시면 무서운데.”

조영주는 서계진이 불안한 듯 두 눈을 굴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 모습이 딱 겁먹은 강아지 같아 보여 조영주는 저도 모르게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네 형은 어디 두고?”

“아 그러게.”

“그러고 보니 둘만 왔네.”

조영주의 물음에 오인조와 박송선이 함께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그들을 둘러보던 서계진이 최도훈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장님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는 서계진을 보고 세 사람이 당황한 듯 최도훈을 쳐다보았다.

“여기 오기 전에 처리했지. 안 그래도 딸리는 식량 나눠 먹기 힘들어서 말이야. 어차피 손에 피 묻은 거, 한 명이나 세 명이나 똑같은데. 어때?”

씩 웃는 얼굴 속 드러난 눈빛이 위험하게 번득였다.

‘서도진이 탈락했다고?’

‘연락받은 거 있어?’

‘기습해서 처리한 거면 아직 연락 못 받은 걸 수도.’

조영주와 오인조, 박송선이 자기들끼리 재빨리 의견을 교환했다. 세 사람이 힐끗 쳐다본 제작진의 캠프는 예고하지 않은 급습이라는 최도훈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인제야 부랴부랴 불이 켜지는 중이었다.

“순순히 남은 거 내놓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빼앗아 갈 겁니다.”

세 사람이 더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최도훈과 서계진이 차례대로 내뱉고는 동시에 세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와아아아—”

텐트 속 식량을 지키기 위한 세 명과 그런 그들을 뚫고 그것을 빼앗아 가려 밀어붙이는 두 명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야밤의 숲속에서 때아닌 난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뒤로 어둠과 동화된 그림자 하나가 그들과 텐트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

.

.

얼마 후.

“헉, 허억. 헉. 아이고 죽겠다.”

“으어어. 저 머리카락 뜯긴 것 같아요. 진짜 이 선배님 그렇게 안 봤는데.”

“리얼리티에 희생된 아이돌의 머리카락에 묵념을.”

조영주, 오인조, 박송선과 술래잡기에 가까운 난전을 펼치며 한참 시간을 끌던 최도훈과 서계진은 서도진과 약속한 대로 어느 정도 난장을 피우고는 그대로 도망쳐 나왔다.

줄곧 핸디캠을 들고 따라붙던 카메라맨들도 잠시 쉬는 사이 정민길과 엠케이로 돌아온 두 사람은 조금 전의 감상을 주고받았다.

“아무튼, 수고했다. 근데 난 재이 들어가는 거 못 봤는데, 넌 봤냐?”

“선배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어, 사실 저도 못 봤는데 아마 성공했을 거예요.”

당연하다는 듯 내뱉으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엠케이를 바라보던 정민길이 요 며칠 줄곧 품어 왔던 의문을 입에 담았다.

“나 전부터 궁금했는데 너의 그 한재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너네 팀 컬러냐 혹시?”

“누가요? 제가요?”

“어.”

“한재이를요?”

“그래.”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인상을 콱 찌푸리는 엠케이를 본 정민길이 중얼거렸다.

“아니면 그건가?”

“뭔데요?”

“비선 실세.”

“헐.”

“걔는 그냥 대놓고 독재인데요. 비선은 무슨.”

투덜거리는 엠케이를 쳐다보며 정민길은 생각에 잠겼다. 요 며칠 동행하며 정민길이 관찰한 바로는 저 독재자에 대한 엠케이의 신뢰는 보통이 아니었다.

한재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엠케이는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라고 넘기곤 했다.

물론 입으로는 여기까지 와서 독재 정치냐고 투덜대긴 했지만, 가만히 보면 그러면서도 결국 착실하게 한재이가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것이 하루 이틀 저러고 산 게 아닌 것이 분명해 보였다.

튀고 싶어 안달인 녀석 중의 탑 오브 탑을 모아 둔 것이 아이돌 아니던가. 그 개성 강한 직업군에서도 탑 티어를 달리는 그룹의 녀석이 매니저도 아니고 하다못해 리더도 아닌 일개 멤버의 말에 매번 저렇게 고분고분 따르다니.

그러나 어찌 보면 또 납득할 만도 했다. 같이 다닌 요 며칠 지켜본바 한재이 녀석은 서도진일 때도 한재이 본인일 때도 흔들림 없이 팀의 기둥으로서 제 할 일을 했다.

끊임없이 최도훈을 경계하고 상대 팀의 루트를 예측해서 우회 경로를 짜고 부족한 식량을 소비하는 대신 최도훈의 셔츠로 그물을 만들어 개울에서 고기를 낚아 구워 먹자는 아이디어를 내기까지.

물론 정민길은 그 덕분에 두 사람 몫의 짐을 짊어지고 행군하다가 다시 제 셔츠를 희생해 고기잡이에 직접 동원되어야 했지만 확실히 한재이가 하자는 대로 해서 팀에 손해가 난 적은 없었다.

그러니.

‘그 한재이가 없는 틈을 노리는 건 논리적으로도 합당한 선택이지 않겠냐고.’

정민길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담당 피디를 찾았다.

“장 피디님!”

가까이에서 핸디캠에 찍힌 영상을 잠깐 확인하고 있던 담당 피디가 정민길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고 이쪽을 쳐다봤다.

“주사위 한 번 던지고 갈까요, 우리.”

정민길의 외침에 주변이 술렁였다.

여기서 주사위를 던지고 싶다는 건 최도훈이 서계진에게 한 방 걸어 보겠다는 뜻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세부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제작진들이 자신들을 둘러싸는 가운데 엠케이는 득의양양한 표정의 정민길을 힐끔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재이 이 귀신같은 놈. 대체 몇 수 앞까지 내다본 거야.’

엠케이는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자신에게 미리 귀띔했던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

.

“거기서 벗어나면 십중팔구 정 선배님이 너한테 주사위 던지자고 하실 거야.”

“뭐? 빼앗은 식량도 아직 다 너한테 있을 마당에 설마.”

“식량이야 최악의 경우 못 건진다고 해도 하루 반나절만 견디면 어차피 탈출이고, 정 선배님이면 몰라도 최도훈이라면 서도진 없이 서계진과 둘만 남은 순간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안 그래?”

재이의 말에 엠케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긴, 사람 좋은 정민길 선배라면 몰라도 상금에 몸이 단 최도훈이라면 경쟁자 하나를 없앨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그대로 놓칠 리가 없었다.

“그러면 어떡해, 결국 주사위 던져야 할 것 아니야.”

“주사위 말고 다른 거 하자고 해.”

“뭐?”

자신의 말이 의외라는 듯 엠케이가 되묻는 것에 재이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어 말했다.

“정민길 선배, 요 며칠 나한테 계속 주사위에서 져서 지금 주사위라면 아마 당분간 쳐다도 보기 싫은 심정일걸. 그러니 슬쩍 주사위 말고 다른 게임으로 정하자고 해 보라고.”

“다른 게임이라면.”

“묵찌빠. 알지? 이거 눈치 게임인 거. 묵찌빠 하고도 정 선배님한테 지면 그건 그냥 네 능력이 거기까지인 거니 얌전히 리타이어 하고 먼저 돌아가.”

“어휴 말을 해도 꼭 그렇게 정나미 떨어지게 해야 하냐.”

“잘할 자신 있지?”

“주사위면 몰라도 묵찌빠라면.”

잠시 뜸을 들인 엠케이가 재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여기서 지면 차인혁 대신에 내가 리더 할 각오해야지.”

엠케이의 대답에 재이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주사위 말고 다른 거 하면 안 돼요?”

엠케이의 말에 마침 주사위를 꺼내려던 장 피디를 비롯해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정민길이 의외라는 듯 반갑다는 듯 한쪽 눈썹을 추어올리며 물었다.

“왜? 주사위 자신 없냐?”

“아뇨. 그냥 요 며칠 줄곧 주사위 게임만 보다 보니 식상해서.”

엠케이의 말에 정민길이 기다렸다는 듯 장 피디 쪽을 돌아보며 맞장구쳤다.

“어때, 장 피디. 나도 주사위라면 좀 지긋지긋한데 우리 다른 거 하면 안 되나?”

담당 피디가 고민된다는 듯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보였다. 엠케이는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입술을 깨물며 꾹 참았다.

한재이가 말했지. 여기서 섣불리 나대지 말고 상대가 충분히 생각하도록 틈을 벌리고 기다려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엠케이가 내심 초조하게 시간을 재고 있는 사이 담당 피디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뭐로 할까요.”

“뭐로 하고 싶어?”

‘됐다.’

담당 피디와 정민길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것을 확인한 엠케이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태연한 척 대답했다.

“묵찌빠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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