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 아닌가요
백채영 기자의 질문이 끝나자 일순 회장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예전보다 한층 더 사나워진 기세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하면서 장내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제 막 상승세를 타고 탑 티어에 안착을 시도 중인 아이돌 핵심 멤버에게서 난데없이 터져 나온 이적설이라니.
이 커다랗고 맛있는 떡밥을 놓칠 수 없다는 듯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추가 질문을 따 내기 위해 손을 들다 못해 엉덩이를 들썩이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성급한 몇몇이 마이크 없이 질문을 외쳐 대는 통에 제작 발표회는 순식간에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어수선함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황한 사회자와 진행 요원들이 기자들에게 자제를 요청했지만 이미 끓어오른 열기를 식히기는 쉽지 않았다. 출연자석의 동료들뿐 아니라 배 피디마저도 순식간에 터진 폭탄에 어찌할 바를 몰라 잠시 당황하는 사이 이 상황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재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스타 뉴스 백채영 기자님.”
재이의 한마디에 시끄럽던 회장이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차분한 목소리였다. 지금 이 아수라장을 눈앞에 두고도 한 치의 동요도 없다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들썩이고 있던 주변 공기가 덩달아 차분히 내려앉았다.
장내가 조금 진정되고 모두의 이목이 온전히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기다린 재이가 말을 이었다.
“저희 아직 신인상도 못 탔는데 벌써 해체하라고요?”
너무하시네요.
재이가 중얼거린 말에 백채영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무어라 추가로 코멘트를 하려 아직 손에 쥐고 있던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다대려던 백채영보다 한 박자 빠르게 재이가 말을 이었다.
“제가 상 욕심 엄청난 거 모르시는구나. 저희 아직 무관인데, 벌써 해체하면 상은 누가 주나요.”
“무관은 아니죠. 저희가 벌써 음방 1위를 몇 번을 했는데.”
옆자리의 엠케이가 눈치 좋게 끼어들었다. 그와 눈빛을 주고받은 재이가 태연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우리 아직 레드카펫 밟고 들어가서 수상 못 해 봤잖아요. 다 같이 턱시도 빼입고 입장해서 포토존에서 사진 찍고 수상하고 클로징 무대 하는 게 제 연습생 때부터의 꿈인데요.”
“와, 되게 구체적이시네요.”
“제가 좀 치밀하죠. 사실 올해 받고 싶은 상 목록도 벌써 다 정해 놨는데.”
“언제 그런 건 또?”
“원래 사람이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 법이죠. 작년에는 타이밍이 안 맞아서 못 받은 것까지 받으려면 바쁘다고요. 그리고 내년엔 더도 덜도 말고 올해의 딱 두 배만 받았으면 좋겠는데.”
“대체 올해보다 상을 두 배로 더 받으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죠?”
“지금 하는 것보다 두 배 정도 더 열심히 일하면 되지 않을까요?”
“재이 씨는 노력과 결과가 비례한다고 믿으시나 봐요.”
“적어도 노력이 결과를 배신하지 않도록 할 자신은 있거든요.”
“와 이게 바로 열 번 보면 열한 번 감탄하게 된다는 한재이씨 자신감이군요. 탐나네요.”
분위기는 순식간에 제작 발표회가 아닌 아이돌 그룹 파티 멤버 두 사람의 토크쇼로 변해 버렸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랠리에 사회자조차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고 구경하고 있는 사이 재이가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아차 하는 표정으로 여전히 마이크를 들고 서 있던 백채영 기자를 바라보고 말했다.
“아, 맞다. 백채영 기자님. 조금 전에 해 주신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재이의 입으로 모두의 이목이 다시 한번 집중되었다.
“파티는 이제 막 시작인데요. 아직 제대로 놀지도 못했는데 집에 보내려고 하지 마세요.”
백채영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내뱉는 재이의 표정은 온화했지만 누구나가 느낄 수 있을 만큼 단호했다. 상황이 조금 진정된 것을 눈치챈 사회자가 재빨리 분위기를 이어 나갔다.
“저도 재이씨가 파티를 계속 즐기실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파티 여러분, 응원합니다! 자 그럼 저희는 다시 [눈떠도]의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요.”
그 후로도 기자 몇몇이 재이의 거취에 대해 물고 늘어졌지만, 사회자와 진행 요원이 불필요한 질문이라며 쳐 내기 시작하면서 일순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하던 분위기는 점차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재이가 이미 오늘 자 헤드라인을 대신 뽑아 준 거나 다름없는 대답을 해 준 덕에 대부분의 기자들은 조금 전 터졌던 이슈에 대해 각자 나름의 결론을 낸 상태였다. 다행히 다시 무르익기 시작한 분위기 속에 인터뷰가 끝나고 후 곧바로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출연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며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이고 있던 재이는 그제야 슬쩍 VIP석을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구경은 다 했다 이건가.’
제작 발표회가 진행되는 내내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구경하듯 빙글빙글 웃으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곽연호는 어느샌가 자리를 뜨고 없었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알아들었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
왠지 지워지지 않는 찜찜함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려는 걸 참으며 속으로 중얼거린 재이는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 * *
얼마 후.
랜플릭스 코리아.
“대체 그 스타 뉴스 백채영인가 뭔가는 왜 남의 집 잔치에 와서 깽판인 건데!?”
제작 발표회가 끝나고 후반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로 돌아온 배 피디는 애꿎은 휴게실 테이블을 내리치며 울화통을 터뜨렸다. 조연출이 그런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거기 원래 대놓고 돈 받고 기사 내 주기로 유명하잖아요. 기레기들 사이에서도 찌라시라고 손가락질 받는 곳인데요. 뭐.”
“사주를 받았건 어쨌건 저격을 하고 싶으면 그냥 특종 달고 때려 버리던가, 어디 딴 데 가서 하지, 왜 하필 내 작품에 와서 깽판이냐고.”
어지간히 열 받았는지 분이 가라앉지 않는 듯 배 피디가 허리에 손을 얹고 씩씩대는 것에 조연출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이게 저도 기자들한테 오며 가며 들은 얘기라 확실치는 않은데.”
“않은데 뭐.”
배 피디의 재촉에 망설이던 조연출이 마지못해 말을 이었다.
“최근에 스타 뉴스가 매각한 지분 대부분을 사들인 게 그 삼화 엔터라고.”
“…그래서?”
“저희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한재이 꽂으라고 딱 집어서 리퀘스트 들어왔던 것도 그렇고, 그러고 보면 전에 촬영장에 투자자들 투어 왔을 때 곽연호 본부장이 한재이 직접 챙겼다는 얘기도 돌았던 것 같은데. 그런 거 보면 삼화 엔터에서 한재이 빼 가려고 수 쓰는 중인 건 맞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라고.”
배 피디가 투덜거리는 소리에 조연출이 머뭇대다 입을 열었다.
“근데 그걸 오늘 한재이가 대놓고 깠잖아요. 옮길 생각 없으니까 흔들지 말라고. 좀 전에 올라온 기사들 보니까 저희 제작 발표회 얘기가 반 그 얘기가 반이던데.”
조연출의 말에 배 피디는 눈썹을 콱 찌푸렸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혹시라도 삼화 엔터가.”
“아 쓸데없는 얘기할 시간 있으면 가서 편집 상황이나 좀 알아 와.”
조연출의 말을 가로막은 배 피디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조연출을 쫓아내듯 편집실이 있는 방향으로 밀어냈다. 휴게실에 혼자 남은 배 피디가 심각한 표정으로 조금 전 조연출이 한 말을 되뇌었다.
‘혹시라도 삼화 엔터가…….’
불안함에 가슴이 울렁이는 기분이었다.
“에이. 쌈마이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설마.”
일부러 소리 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니 울렁거리던 속이 좀 진정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찔러봤던 감 못 먹게 됐다고 인제 와서 투자 철회 같은 걸 할 리가. 아무리 타지 자본을 등에 업었다고 해도 이 나라에도 엄연히 상도덕이란 게 있는데.’
생각을 정리한 배 피디가 조금 전 조연출을 떠밀었던 편집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Prrrrr Prrrrr
발신인을 확인한 배 피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케이엠 본사 회의실
재이와 엠케이가 [눈 떠보니 무인도] 촬영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파티는 후속곡 활동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오늘은 기획팀과 VD실이 계획한 후속곡 활동 일정 전반에 대한 브리핑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심진우와 윤효민을 비롯한 직원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멤버들은 회의실 여기저기에 자유롭게 흩어져 앉아 각자 핸드폰으로 오늘 있었던 [눈 떠보니 무인도]의 제작 발표회 관련 기사들을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파티는 이제 시작이다]라니, 크으 명언이네.”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남궁찬이 중얼거렸다.
“[연말 수상 독식 선언, 내년엔 두 배로 싹쓸이할 것]이라니. 이건 헤드라인이 좀 너무 자극적인 거 아니냐.”
“이것도 있어. [파티 플래너, 어흑재 한재이의 당찬 포부] 헤드라인에 키워드 다 때려 넣느라 기자님이 고생하셨네.”
은규와 이환이 뒤이어 차례대로 중얼거렸다. 이미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는 야심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각 포털 사이트의 연예 뉴스 섹션은 [눈떠도]의 제작 발표회에서 한재이를 겨냥해 터진 폭탄의 여파로 여전히 넘실대고 있었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투어 헤드라인을 읽어 내려가는 녀석들의 목소리가 어딘지 신난 것같이 들려오는 것을 깨달은 재이가 투덜거렸다.
“아니 예능 프로 제작 발표회에 왔다 가 놓고서는 어째서 내는 기사마다 딴소리들인 거야.”
“눈앞에서 폭탄이 터졌는데 제작 발표회가 문제겠냐고.”
“쭉 보니까 제작 발표회 얘기가 반 네 얘기가 반인 것 같은데. 한재이 많이 컸다.”
재이의 투덜거림에 이환과 남궁찬이 이죽거렸다.
“그래도 한재이 네가 헤드라인 제대로 뽑아서 던져 준 덕에 부정적인 기사 안 나고 넘어간 것 같은데. 노린 거 아니었어?”
“그러게. 이만하면 선방한 거야. 잘했어, 한재이.”
차분한 인혁의 말에 이어 엠케이까지 드물게 재이를 다독이며 말하자 남궁찬이 눈치껏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그 미친놈이 한재이한테 진짜 진심은 진심인가 봐? 이렇게 대놓고 터뜨릴 정도면.”
“그러게. 그룹 하나 거하게 말아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은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자 옆에 앉아 있던 이환이 말을 이었다.
“내 말이. 저거 데리고 가 봤자 제대로 통제도 못 할 게 뻔한데.”
그러자 남궁찬이 이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매우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그치. 그 뭐냐 에이틴이었나, 에이티였나? 입에 걸레 물고 신발 찾던 애. 걔도 감당 못 하고 끌려다니시다가 갓 데뷔한 그룹 공중분해 시켜 놓으신 분이 한재이 저걸 가져가겠다고? 아무리 남의 떡이 커 보인다지만.”
주제 파악을 하셔야지.
남궁찬이 재이를 힐끔 쳐다보고는 ‘뭐, 제대로 한 번 가랑이 찢어져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이지만.’이라고 중얼거렸다.
“왜 묘하게 내가 까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재이의 중얼거림에 기다렸다는 듯 멤버들이 하나둘 다시 재이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성격 꼬이셨네요, 고객님.”
“그러게. 뭐 그렇게 세상을 삐딱하게 사냐. 피곤하게.”
“저게 저러니 우리 아니면 누가 쟬 데리고 살겠냐고.”
“아 그렇다고 너무 고마워할 필요는 없고. 넣어 둬, 넣어 둬.”
가만두고 보자니 끝도 없이 기어오르는 멤버들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까 재이가 잠시 망설이고 있는 사이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 너머에서 잔뜩 굳은 얼굴의 심진우 팀장과 윤효민 실장, 그리고 매니저 석관이 차례차례 들어오는 것을 본 멤버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어요?”
멤버들을 대표해 인혁이 묻자 피곤한 얼굴의 심진우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홍보부 박 이사님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잠시 숨을 고르듯 말을 멈춘 심진우가 멤버들을 둘러보다 재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이어 말했다.
“삼화 엔터에서 [눈 떠보니 무인도]가 기대했던 방향으로 제작되지 않았다면서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밝힌 모양이야.”
회의실 안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예에?”
“뭐라고요?”
“아니 그게 가능해요?”
“펀딩 끝난 거 아니었어요?”
다음 순간 물밀 듯이 쏟아지는 멤버들의 질문에 회의실이 일순 시끄러워졌다. 그런 멤버들 사이에서 재이가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이걸 노린거네요, 삼화 엔터는.”
재이가 던진 한마디에 멤버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처음부터라니, 언제부터?”
남궁찬의 질문에 재이가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출연자 섭외할 때부터.”
재이의 말에 회의실 안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헐 그럼 너 오디션에 넣어 달라고 했던 게 지금 이렇게 다 된 밥에 재 뿌리려고 작정하고 놓은 덫이라는 거야?”
다음 순간, 침묵을 깨고 어이없다는 듯 되물은 이환의 말에 재이가 심진우와 윤효민, 그리고 김석관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렇겠지? 내가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그만이고 붙으면 스카우트 제의를 할 생각이었나 보지. 내가 거기서 오케이 했으면 아마 이렇게까진 안 했을 테고. 어쩌면 거꾸로 투자액을 올렸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이건 뭐랄까, 말하자면.”
무력시위 같은 거 아니겠어? 마지막으로 경고할 테니까 알아서 기라는.
차분한 목소리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태연하게 대꾸하는 재이의 대답에 조용히 재이의 추측을 듣고 있던 심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재이가 역시 정확하게 짚었네. 우리 쪽에서 내린 결론도 비슷했거든. 삼화가 막판에 깽판을 치고 나온 덕에 랜플릭스 쪽이 지금 비상인 모양이야. 이제 막 포스트 프로덕션 들어간 상태인데 저렇게 갑자기 위약금은 낼 테니까 계약 파기하고 투자금 회수해야겠다고 강짜를 부리고 있으니, 아무리 투자사가 거기 한 곳은 아니라지만 이미 제작비가 들어가기 시작한 랜플릭스 쪽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지.”
“나 참, 이 바닥 구르면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양아치 짓 하는 곳은 또 처음 본다니까, 진짜.”
“그 ‘깽값 물 테니까 난장부터 피고 보자’라는 정신은 그 회사 설립 모토 같은 건가 봐요?”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심진우의 말을 듣고 있던 윤효민이 혀를 차며 중얼거리자 이환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른 투자사들 반응은 어떤데요?”
인혁이 물었다. 삼화가 빠진 자리를 다른 투자사가 메꿔 줄 의향이 있다면 빠져나갈 구멍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글쎄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다는 모양이야. 근데 그것도 사실 지금 상황에서는 언제 어떻게 뒤집힐지 모르는 일이지. 막말로 저 곽연호 본부장이 뒤에서 손이라도 써서 다른 투자사들도 손 떼겠다고 나와 버리면 프로그램이 엎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미 제작 발표회까지 끝낸 랜플릭스에까지 타격이 갈 게 뻔하니까.”
인혁의 기대와는 달리 비관적인 의견을 내놓은 심진우가 말을 멈추고 재이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담긴 뜻을 이해한 재이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일이 잘못되면 그 원망이 다 저한테로 쏠릴 거라 이 말씀이시네요?”
재이의 물음에 심진우가 대답 대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무시무시한 말이 오가는데도 재이의 표정은 처음과 다름없이 평온해 보였다.
“당연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볼 생각이니까 염려하지 말고. 직접적인 당사자인 재이나 너희들도 돌아가는 상황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해 주는 거니까. 지금 박 이사님하고 장 이사님이 문 대표님 찾아뵙고 어떻게 풀어 나갈지 의논하고 계실 테니 결론이 나면 그때 다시 알려 줄게.”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심진우의 말을 끝으로 회의실에 다시 한번 정적이 찾아왔다.
“…….”
“…….”
“그래서, 엠케이야. 아버지 언제 오신다고?”
“응? 아 맞다. 어제 왔다고 연락 왔는데 귀찮아서 알람 끄고 자 버렸네, 그러고 보니.”
회의실에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을 깬 것은 태평한 재이와 엠케이의 목소리였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의 윤효민과 달리 심진우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 아닌가요.”
“아빠 찬스.”
재이와 엠케이가 동시에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