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27화 (127/224)

#127

고구마 맛 사이다

- 도진아!!!

계진의 절박한 목소리가 영화관 가득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계진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에 놀라 그의 시선이 뒤쪽을 쳐다본 도진은 뒤에서부터 자신을 덮쳐 온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그대로 요트 안으로 처박혔다.

우당탕-

- 으윽

두 사람의 체중이 갑자기 내리꽂힌 요트가 크게 출렁이며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신음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계진은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타실 안쪽에 요트 열쇠가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재빨리 뛰어 들어가 열쇠를 뽑아 주머니 속에 넣는데 그 옆에 놓인 검은색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상금이 들어있는 가방임이 틀림없었다.

낚아채듯 가방을 집어 들고 조타실 밖으로 뛰어나온 계진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긴 머리를 흩날리며 박송선이 도진의 뒤에서 팔을 둘러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몸싸움하던 중 날아간 듯 안경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요트로 굴러떨어지면서 머리라도 부딪친 것인지 박송선의 팔이 목을 조여 오는 데도 도진은 이렇다 할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늘어져 있었다.

- 형!!!!

- 거기 딱 멈춰 서, 꼬맹이.

서늘한 박송선의 말에 계진이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박송선.

오인조도, 조영주도 아닌 박송선이라니. 팀 리더 역할을 하던 오인조와 기가 세고 목소리도 크던 조영주에 가린 탓인지 어딘지 존재감이 떨어지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요트로 떨어지면서 도진이 주춤한 틈을 노렸다고는 해도 자신보다 큰 체격의 그를 단숨에 제압한 것을 보면 박송선이 이제껏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오인조나 조영주도 저 연약해 보이는 외모에 속아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계진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계진이 멈춰 선 사이, 박송선의 눈이 그가 들고 있는 검은색 가방에 가 멎었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챈 계진이 입을 열었다.

- 갖고 싶으면 형부터 풀어 줘.

- 재미있네. 내가 네 형 목부터 부러트리고 너한테서 그걸 빼앗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해 본 모양이야?

박송선이 눈을 번뜩이며 하얗게 웃었다. 그 섬뜩한 웃음에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어금니를 꾹 깨문 계진이 가방을 든 팔을 요트 밖으로 쭉 내뻗었다.

- 당장 그 손 풀어. 안 그러면 돈다발이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게 될 거야.

단호한 계진의 목소리 위로 도진의 목소리가 오버랩 됐다.

‘조-오-박 동맹에서 살아남는 게 누가 됐건, 그 사람들이 우리랑 같이 탈출하고 상금까지 나누겠다고 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 그러니, 혹시라도 위급한 상황이 되면.’

‘상금을 버려.’

- 상금을 버려.

도진의 목소리와 동시에 계진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가방 손잡이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 아, 안 돼!!!

박송선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가방을 쳐다보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은 계진이 달려들어 그녀를 그대로 요트 밖으로 밀어 버렸다.

풍덩

물보라가 튀는 것을 뒤로하고 계진이 조타실로 달려가 열쇠를 꽂아 돌렸다. 시동이 걸리자 자동 항로 설정이 되어 있던 요트는 그대로 부드럽게 파도를 가르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 야아아!!!!!! 나도 데려가!!!!!!! 이… 이 돈 나눠 줄 테니까 돌아와!!! 나 두고 가지 마!!!!!!

뒤늦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박송선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계진의 얼굴에 망설임이 피어올랐다. 이대로 두고 가야 하나, 돌아가서 데리고 가야 하나.

- 어쩔 수 없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 나도 모른다고…….

계진이 복잡한 계기판과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는 키를 멍하니 쳐다보며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중얼거렸다.

박송선의 목소리가 더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서 있던 계진은 요트가 내는 낮은 모터음과 선체에 부딪쳤다 사라지는 규칙적인 파도 소리만이 귓가에 남게 되고서야 퍼뜩 정신이 되돌아온 것처럼 짧게 외쳤다.

- 도진아!

조타실 밖으로 뛰쳐나가 도진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뛰어간 계진은 그 자리에 그대로 늘어져 있던 도진을 조심스럽게 안아 일으켰다.

- 도진아, 서도진! 형!

자신의 부름에도 굳게 감긴 눈을 뜨지 않는 도진에 초조해진 계진이 버럭 소리쳤다.

- 야, 이 X끼야 일어나! 눈 떠! 눈 뜨라고!!!

나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계진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주륵,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 시끄러워 서계진.

까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도진아? 형? 혀어어어엉!!!!

도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을 깨달은 계진이 북받쳐 오르는 안도감에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온몸에 힘이 풀린 듯 바닥에 널브러졌다.

- 너 이 X끼, 나 놀리려고 일부러 죽은 척한 거지 그치.

- 누가 죽은 척을 했다고. 그보다 너 지금 나보고 X끼라고 했냐.

- 그래 이 X꺄. 나보고 혼자 두고 가지 말라더니. 너 죽은 줄 알고 내가 얼마나……. 흐어엉.

- 윽 서계진 저리 가 끈적거려 더워 저리 가라고!

도진을 와락 끌어안으며 눈물 콧물을 그에게 비벼 대는 계진과 질겁하며 그런 계진을 떼어 내려고 버둥대는 도진의 모습이 화면에서 점차 멀어졌다. 태양이 내리쬐는 망망대해,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 한복판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요트 한 척이 서서히 페이드아웃하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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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명의 출연진에 이어 배형욱 피디와 윤명주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들의 이름이 차례차례 올라오는 크레딧 뒤로 촬영을 위한 준비 단계의 조각 영상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몫의 짐을 들고 이동하던 최도훈 역의 정민길이 주사위 게임에서 번번이 재이에게 지며 그때마다 머리를 쥐어 싸매는 장면과 회심의 미소와 함께 엠케이와 묵찌빠를 하고는 연패 후 또다시 머리를 쥐어 싸매는 장면이 나오자 객석에 앉아 있던 여섯 멤버들에게서 박수와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최도훈과 서계진이 조-오-박 동맹을 급습해 그들과 난투를 벌이는 뒤로 소리 없이 잠입해 그들의 텐트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곧바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풀에서 그들의 식량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다 쓸어 담는 도진의 모습이 나오자 남궁찬과 이환이 큰 소리로 ‘눈떠도 어흑재!’를 외쳤다.

엔딩 크레딧의 배경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조각 영상들을 눈에 담으랴, 앞에 앉은 멤버들의 리액션을 확인하랴 바쁘던 김은지는 문득 이상한 느낌에 옆을 돌아보았다.

어두운 실내, 스크린에서 비추는 희미한 빛에 반사된 옆자리 아저씨의 얼굴이 눈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헐, 저게 바로 말로만 듣던 과몰입인가.’

사실 옆자리뿐 아니라 콧물을 훌쩍이는 소리는 실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었지만 고급스러운 양복을 위아래로 쫙 빼입은 아버지뻘 되는 신사분께서 비싸 보이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반쯤 오열하고 있는 모습은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진짜 엠케이 덕질에 진심이시구나, 이분.’

김은지가 속으로 감탄하며 힐끔거리는 사이 크레딧이 끝나고 실내에 조명이 돌아왔다. 엔딩이 주는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여전히 고요한 실내에 엠케이의 재기발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진이 버전 엔딩, 어떠셨나요. 여러분!”

그제야 객석에서 함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관객들의 반응이 만족스러웠던 듯 활짝 웃는 엠케이 옆에서 남궁찬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근데 이게 그래서 고구마 맛입니까, 사이다 맛입니까.”

“사이다죠! 무사히 살아 돌아갔잖아요. 그것도 도진이랑 같이 둘이서.”

남궁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런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엠케이를 대신해 대답하는 이환의 옆에서 은규가 깜짝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고구마가 아니고요? 결국, 계진이는 자신과 도진이가 살아남기 위해 두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거잖아요. 게다가 상금도 놓쳤다고요. 계진이가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더 이상 예전의 계진이일 수 없게 됐다는 걸 생각하면 고구마도 이런 고구마가 없는데요.”

완전 퍽퍽하게 찐 고구마라고.

은규의 말을 듣고 있던 인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저도 은규 씨 말에 동감이에요. 무인도에서 겪은 게 있으니 예전처럼 마냥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모습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데. 아주 제대로 된 찐 고구마인 거 아닌가요.”

“근데 애초에 과연 도진이와 계진이가 진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는 있었을까요?”

인혁에 이어 재이가 던진 말에 나머지 멤버들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재이를 돌아보았다. 엠케이가 그런 멤버들을 대신해 재이에게 물었다.

“…진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겠냐니, 그게 무슨 뜻이죠?”

그러자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멤버들을 쓱 훑어본 재이가 대답했다.

“아니, 그렇잖아요. 엔딩에서 본 건 둘이서 요트 타고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가는 것뿐이었는데, 그 자동 항로 설정이 정말 두 사람이 살던 집으로 가는 길목을 향해 있었을지 어떨지 어떻게 알고요. 전혀 엉뚱한 곳으로 설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게다가 도진이가 어딜 어떻게 다쳤는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재이의 말에 순간 주변에 정적에 휩싸였다. 잠시 후, 제일 먼저 그 침묵을 깨트리며 남궁찬이 말했다.

“…와, 저 지금 상상만으로 소름 돋았잖아요. 어휴, 한재이 씨, 누가 어흑재 아니랄까 봐. 생각하는 게 어쩜. 저기요, 세상이 다 그렇게 계략과 함정으로 이루어져 있는 건 아니라고요. 아, 아마도……?”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 있게 입을 연 남궁찬이 뒤로 갈수록 말꼬리를 흐리는 것을 보다 못한 이환과 은규가 남궁찬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쵸. 아무리 피디님이랑 작가님이 악마여도 사이다라면서 그런 엔딩을 줬을 리가 없다고요. 진짜, 한재이 씨 머릿속이 궁금하네요. 어떻게 하면 저런 발상을 할 수가 있는 거죠? 감탄스럽다, 증말…….”

“그러게요, 그리고 도진이 캐릭터가 누굴 베이스로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도진이가 다쳐서 뭐가 어떻게 될 거라는 걱정 같은 건 진짜 하나도 안 든단 말이죠.”

“그치그치. 도진이가 뭐 어떻게 되고 그런 거 나오는 게 진짜 캐붕인 거죠.”

이환과 은규의 말에 다시 용기를 얻은 남궁찬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런 멤버들의 반응에 재이가 억울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아니 근데 사실 좀 그렇잖아요.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엔딩이라니, 너무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그러자 엠케이가 입을 열었다.

“아 한재이 씨,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무서운 플래그 좀 세우지 마세요. 제 안의 계진이는 무사히 집에 돌아가서 평소처럼 도진이 침대 위에 걸터앉아서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같은 거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고 있으니까.”

“와, 평화롭다. 마음에 든다. 응, 역시 계진이 엔딩은 이거죠. 맑고 투명하고 평화로운 칠석 사이다.”

남궁찬이 마음에 든다는 듯 엠케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이며 맞장구쳤다.

“근데 저쪽 조오박 동맹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게 설마 박송선일 줄은 몰랐어요.”

이환이 대화의 흐름을 다른 쪽으로 꺾었다.

“그러니까요. 도진이 목 조르면서 씩 웃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소름이 쫘악!”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것도 놀라운데 상금을 독식할 생각으로 처음부터 모두가 방심하는 틈을 노리려 했던 것도 의외였던 듯해요.”

“역시 세상에 믿을 만한 놈 하나도 없는 거죠.”

엠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자 그 틈을 타고 재이가 끼어들었다.

“그쵸. 그러니 역시 망망대해 엔딩은…….”

“아 누가 한재이 씨 입 좀 막아 봐요.”

하하하하-

또다시 시작된 멤버들끼리의 투닥거림을 보고 있던 장내에 웃음이 번졌다. 분위기가 적당히 풀어진 것을 확인한 인혁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일 방영되는 본 시리즈도 이 엔딩인가요?”

인혁의 질문에 재이와 엠케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이건 오늘 포션들을 위한 특별 선물이고.”

“내일 방영되는 본 시리즈 엔딩은 다릅니다.”

재이와 엠케이의 설명을 들은 남궁찬이 너무한다는 듯 물었다.

“와, 악마의 편집이 아니라 악마의 편성이네. 그럼 궁금한 사람은 본 시리즈도 챙겨 보라 이건가요?”

“그렇죠.”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진 몰라도 계략이 한재이급인데요?”

재이의 짧은 대답에 이환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자 옆에 서 있던 은규가 엠케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맛 엔딩인데요? 이런 사이다인지 고구마인지 모를 맛 말고 제대로 된 맛으로 주세요.”

“음, 그게 보는 사람에 따라 평이 달라서.”

“이다솜 선배님은 초강력 사이다라고 하셨는데.”

무슨 말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흐리는 엠케이 옆에서 재이가 한마디 덧붙이자 멤버들이 하나둘 가세했다.

“그 말은 곧 도찐개찌니들한텐 초강력 고구마란 얘긴가요.”

“소문에 듣자 하니 병맛 엔딩도 있다던데.”

“도진이 버전 엔딩! 그건 내일 공개 안 하나요?”

“그건 시청률 잘 나오면 디렉터스 컷으로 들어갈 예정이에요.”

재이의 대답에 남궁찬과 이환이 투덜대듯 말했다.

“와 무슨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아.”

“이건 뭐 개미지옥이 따로 없네요.”

“진짜 한재이급 마케팅 전략.”

“혹시 이거 재이 씨가 낸 아이디어인 건 아니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던 멤버들의 시선이 재이에게로 확 쏠렸다.

“하하하하, 설마요.”

“엔딩을 마지막 생존자별로 나누자는 건 재이 씨 아이디어였죠.”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재이 옆에서 엠케이가 냉큼 대답했다.

“이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와 진짜, 여러분, 개미지옥을 만든 장본인이 여기 이렇게 딱 있었네요.”

“행복한 개미지옥이라 이번 한 번만 봐 드립니다. 진짜.”

가만두면 끝도 없이 이어질 멤버들의 수다에 통로 쪽에 서 있던 진행 요원의 사인을 확인한 인혁이 적당히 끊고 들어가며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자자, 여러분 이러다가 여기서 날 새겠어요. 오늘은 아쉽지만 여기서 인사드리고.”

인혁의 사인을 눈치챈 멤버들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객석을 향해 인사하기 시작했다.

“오늘 너무 재밌었는데 다음에도 또 이런 이벤트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포션 여러분! 감사합니다! 우리 또 만나요!!!”

“사랑합니다!!!”

“내일 본방도 잊지 말고 꼭 봐 주세요!”

관객들의 함성 속에 파티 멤버들이 차례차례 퇴장했다. 꿈같았던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자 현자 타임을 알리는 익숙한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하아. 이제 집에 가야지.’

주섬주섬 오늘의 전리품을 소중하게 챙겨 가방에 집어넣고 일어서려는데 옆자리의 아저씨가 여전히 앉아 계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괜찮으신 건가.

“괜찮으세요?”

김은지가 묻는 말에 그제야 상념에서 벗어난 듯 아저씨가 이쪽을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아, 잠시 생각 좀 하느라. 오늘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예? 아뇨, 제가 뭐 한 것도 없는데.”

“왜요. 처음에 아빠 팬이라고 외쳐 주신 덕분에 멤버들이 다 이쪽을 쳐다봐 주지 않았습니까.”

“아… 그…….”

역시 삼촌 팬이라고 해 드릴 걸 그랬나요.

김은지가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하하, 하고 크게 웃은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사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긴가민가했는데. 역시 하게 두길 잘한 것 같네요.”

“예?”

“직접 확인하길 잘했네요.”

“예에…….”

원래 현장 뛰는 게 심신과 현생이 심하게 갈려서 그렇지 뽕이 제일 잘 차긴 해요…….

김은지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아저씨 팬이 꾸벅 인사를 해 왔다.

“오늘 재밌었습니다. 앞으로도 성덕하는 포션되시길 바랍니다.”

어…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얼굴 마주 보고 대꾸하기엔 제 항마력이…….

김은지가 대답할 말을 고르느라 잠시 망설이는 사이 빙긋 웃은 아저씨는 그럼 먼저 가 보겠다며 걸음을 옮겼다.

* * *

며칠 후

파티 숙소

[데일리 엔터] 예능의 판도를 뒤엎은 수작, 랜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컨셉 예능 [눈 떠 보니 무인도] 의 쾌속 질주

[노컷 엔터] 도찐개찐의 열풍, 얼터너티브 엔딩을 풀어 달라 외치는 눈떠족들!

[스타 뉴스] 이례적인 뷰 수에 랜플릭스도 화들짝, [눈 떠 보니 무인도] 코멘터리 버전 속속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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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핸드폰으로 [눈 떠 보니 무인도]의 관련 기사를 훑어보고 있던 재이는 방문을 열고 나오는 엠케이를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아저씨 잘 도착하셨대?”

“어. 지금 비행기 내려서 들어가신다고.”

“다행이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재이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가 볼까?”

엠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 떠 보니 무인도]의 홍보 탓에 한동안 눈코 뜰 새 없었던 두 사람은 모처럼 하루 휴일을 얻어 숙소에서 쉬고 있던 참이었다. 원래는 그냥 하루 푹 쉬려던 계획이 변경된 것은 정민길에게 온 문자 한 줄이었다.

- 심심하면 나랑 금쌤 연극하는 거 보러 오던가.

정민길의 성격상 바빠서 못가겠다고 해도 될 일이긴 했지만, 재이와 엠케이는 의논 끝에 외출을 결정했다. 이런 기회라도 없으면 연극 같은 무대는 볼 엄두도 못 내는 게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석관이 형한테 얘기했지?”

“물론이지. 정수 형 붙여 주신대.”

“좋아.”

다른 멤버들의 스케줄 때문에 석관을 비롯해 짬밥 좀 찬 매니저들은 다들 그쪽으로 붙은 상황이었다. 정수 형은 최근에 팀에 합류한 새내기 매니저였다. 잘 이야기하면 재미있는 외출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씩 웃었다.

“그럼 나가 볼까.”

“좋지.”

* * *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대체 이건.”

재이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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