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인생에 공짜란 없는 법
켐콘 당일.
크래쉬캣이 데뷔했을 당시부터 줄곧 덕질을 이어 온 이 구역의 고인물 성주희는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무대를 바라보며 새삼 감회에 젖었다.
매번 올해가 끝이다. 내년엔 오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또 와 있는 마성의 켐콘.
그래도 작년까지는 단관석도 모자라 그라운드까지 점령한 꿀단지들에 밀려 이게 지금 차상혁의 팬 미팅이 아닌가 하는 기분에 가끔 서러웠지만, 올해는 달랐다. 크고 아름답게 고여 있던 윗물이 빠지니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었다.
올해는 혈육이자 덕친이기도 한 동생이 얼결에 피케팅에 성공하는 바람에 단관석 대신 중앙 최전열, 즉 돌출 무대가 정면으로 보이는 명당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에이미의 고음 바이브를 라이브로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 소름이 쭈뼛 돋는 기분이었다. 성주희는 뿌듯한 마음으로 크래쉬캣 팬들을 상징하는 핑크빛 물결을 배경으로 새로 산 굿즈들의 인증샷을 찍었다. 같이 온 동생 성주연이 주섬주섬 대포를 꺼내 드는 것에 성주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직 순서 멀었잖아? 벌써 준비하게?”
“언니들 말고. 신인 아가들 좀 찍어 보려고.”
“헐, 언제는 남돌에 관심 없다더니.”
“언니들 나오기 전에 손이나 풀 겸.”
“어째 수상한데.”
성주희는 연보랏빛으로 물든 막내돌 [PART.Y]의 단관석을 힐끗 쳐다보았다. 차상혁 빠지면 켐콘 자리 남는 거 아니냐는 타 팬들의 비아냥이 우습게도 무섭게 성장한 막내돌 덕분에 그럴 걱정은 없어 보였다.
“저거 뭐더라? 발광력 좋네? 생각보다 눈에 확 들어오는데?”
“요술봉? 이쁘지. 디자인 예뻐서 하나 살까 했더니 벌써 다 팔렸더라고.”
동생과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장내가 암전하며 스산한 사운드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시작하나 본데?”
“아, 난 이 곡 좋더라, 어비스 레이드. 이번 심연은 누구……?!!”
“!!!!”
성주희와 성주연이 동시에 홀린 듯 눈앞의 무대를 바라보았다. 암전했던 조명이 돌아옴과 동시에 등장한 것은 돌출 무대 정중앙에 배치된 의자에 느슨하게 걸터앉은 파티의 메인 보컬 한재이의 모습이었다. 검은 장갑을 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앉아 있던 재이가 슬쩍 고개를 들자 손에 가려져 있던 붉은 두 눈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번뜩였다.
“와 재비스! 박력 쩌네.”
“미친. 관록 무엇?”
간주가 시작되고 돌출 무대와 본무대에 흩어져 등장한 멤버들이 재비스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성주희는 본진의 무대까지 체력을 비축해 둬야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잊고 주변의 팬들과 함께 응원을 보냈다. 힐끔 옆을 돌아보니 손 풀 겸 대충 찍겠다던 혈육이 파워 넘치는 프로의 자세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저 정도면 입덕 각 세게 선 것 같은데.’
성주희는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눈앞의 무대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가운데에 서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멤버들을 느긋한 표정으로 둘러보던 재이가 힐끗 보랏빛이 물결치고 있는 3층 단관석을 바라보고는 씩 웃었다. 냉랭해 보이던 얼굴이 순간 장난기 많은 아이처럼 구겨지는 것에 팬도 아닌 자신마저 심장이 두근대는 느낌이었다. 마침 그를 클로즈업 하고 있던 메인 전광판을 통해 그 모습이 스크린에 비치자 기분 탓인지 단관석에서 들려오는 함성이 더 커진 듯 느껴졌다.
“와 매너 좋네.”
“으어어!!한재이!! 재이야!!! 재재니이이임!!!”
“…….”
성주희는 옆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에 힐끗 제 동생 쪽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건 이미 가망이 없어 보였다. 넓은 무대를 전력 질주 하면서도 호흡 하나 흐트러짐 없이 곡을 소화해 내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성주희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뭐, 기본은 하네.”
“기본이라니. 신인이 저 정도면 탑티어급이구만. 와 라이브 퀄리티 실화냐. 개쩐다.”
카메라를 든 채 안정적인 포즈로 셔터를 눌러 대는 냉정한 움직임과 달리 머릿속은 이미 흥분상태 최고점을 찍고 있는 듯 쉴 새 없이 속사포로 내뱉는 동생의 말에 성주희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곡은 이미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각자 서로 다른 무대의 끝에서 시작한 멤버들이 자리를 바꿔 가며 한바탕 무대를 종횡무진한 뒤 재비스가 포진한 돌출 무대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저항하던 멤버들을 완벽하게 장악한 것처럼 재이의 움직임에 맞춰 흔들리듯 군무를 추던 멤버들이 하나둘 나가떨어지듯 무대 위로 쓰러졌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한 사람, 인혁이 마침내 털썩 무릎을 꿇고 그런 인혁을 등지고 선 재비스가 힐끔 고개를 돌려 무릎 꿇은 그를 바라보고는 서늘하게 웃는 것을 마지막으로 주변이 암전했다.
와아아아——!!!
“와 이건 좀 쩐다. 인정.”
“무대 연출 누구야! 잠깐 나와 봐으아아아!!!! 나 죽어으어허허!!”
“…….”
성주희는 이미 재비스의 심연에 물들어 버린 동생을 짠하다는 듯 한 번 쳐다보고는 잊고 있던 맥주캔의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 * *
“준비 다 됐으면 바로 들어갑니다, 스탠바이 해 주세요.”
“마이크, 나 마이크!”
“야 남궁찬, 잠깐, 얼굴에 휴지 붙었어, 너.”
“으악, 내 정신. 땀 닦는다는 게 그만.”
무대 아래쪽은 그야말로 시장바닥이 따로 없었다. 분주하게 오가는 스태프들 사이로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이어질 다음 곡을 위해 신속하게 의상을 갈아입은 멤버들이 정신없이 내뱉었다.
“잠깐 다들 진정해 봐!”
그때, 차분하게 울리는 재이의 목소리에 허둥대던 멤버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이대로 나가면 실수하겠어, 좀 진정하고 가자고.”
재이의 말에 인혁이 힐끔 진행 스태프 쪽을 쳐다보았다. 아직 괜찮다는 듯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인혁이 입을 열었다.
“그래, 다음 무대는 인턴분들도 나가니까, 우왕좌왕하지 말고.”
인혁의 말에 엠케이와 남궁찬이 입을 열었다.
“후-하-, 후-하. 심호흡했어, 됐지?”
“빨리하자, 나 저쪽까지 뛰어가야 한다고. 얼른.”
호들갑스러운 건 여전했지만 어수선했던 좀 전과는 달리 멤버들의 눈빛에 차분함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볍게 파이팅 한번 하고.”
“인턴분들 얼른 이리 와요.”
재이의 부름에 주변에서 겉돌고 있던 인턴들이 재빨리 파티가 만든 원진 안으로 끼어들었다.
“하나, 둘, 셋.”
파이팅!
간결한 구호와 함께 다들 각자의 스탠바이 구역으로 흩어졌다.
진행 스태프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인턴 윤새빛은 깊게 심호흡을 반복했다. 미리 몇 번이고 동선을 체크하고 리허설을 거듭했음에도 첫 대형 콘서트에 공연장을 가득 메운 객석을 보고 있자니 제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를 뚫고 터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아예 테이핑으로 둘둘 감아 버릴까요.
- 손목 나가고 싶지 않으면 그냥 둬요.
- 또 날려 버리면 어쩌죠.
- 무대 넓어서 충분히 피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객석으로만 던지지 말아요.
윤새빛은 조금 전 리허설에서 재이와 주고받았던 말들을 떠올리며 손에 든 목검을 내려다보았다. 존경하는 선배님의 얼굴에 검을 날려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뒤로, 없는 시간을 쪼개 검도 레슨을 받으며 목검을 손에 쥐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워 나갔다.
그래 봐야 아직 상단 베기밖에 못 하는 수준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의도치 않은 어검술을 펼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아니 그 자신 분명히 있었는데 그게 지금 찾아보니 온데간데없었다. 애초에 그게 스스로 제어가 되면 자객 소리 들을 일도 없었겠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환장하겠네.’
혹시라도 저번처럼 땀 때문에 미끄러질까 봐 의상팀과 상의해서 미끄럼 방지용 뽁뽁이까지 붙인 장갑도 끼고 있었다. 그래도 불안함이 가시질 않았다. 무대 위에 올라가면 실수할 것 같은 예감에 온몸이 점령당한 기분이었다.
‘정신 차려 윤새빛. 나 때문에 선배님들 무대를 망칠 수는 없잖아.’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파티를 연호하고 있었다. 조금 전 파티가 보여 준 [Abyss: 심연], 일명 어비스 레이드는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능숙했다. 무대 아래에서 모니터로 보고 있던 관계자들조차 감탄하는 듯했지만 윤새빛은 알고 있었다. 저 무대를 만들어 내기 위해 파티 멤버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연습을 해 왔던가. 그들이 오늘 보여 주고자 하는 모습에 자신이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윤새빛은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와아아아아——!!!!
귓가를 가득 메우는 객석의 함성 소리.
하얗게 타오르는 스포트라이트.
응원봉을 타고 끝없이 펼쳐진 형형색색의 빛무리.
무대 위에 오른 윤새빛은 순간 전신을 짓누르는 콘서트장의 박력에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어 버렸다.
‘마… 망했다.’
곧 있으면 전주가 시작될 터였다. 전주가 시작되면 미리 짜 둔 동선대로 움직여야 했다. 근데, 그 동선이 떠오르질 않았다. 어떻게 했었지? 어디서부터 시작하더라?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오는 느낌이었다. 귓가를 메우는 함성이 왠지 멀게 느껴졌다.
신기루라도 보는 것인지 맞은편에서 스탠바이 하고 있어야 할 재이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툭.
- 정신 차려요.
환상인가 싶었던 재이가 제 어깨를 툭 건드리며 귓가에 속삭였다.
서늘한 그 목소리에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 따라 해요.
재이의 짧은 한마디가 들려온 것과 동시에 곡이 시작되었다. 윤새빛은 자신을 바라보는 재이의 침착한 눈동자를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그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십년감수했네.’
재이는 자신의 동작을 하나하나 따라오고 있는 윤새빛을 힐끔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리허설 아니 첫 만남에서부터 왠지 불안 불안 해 보였던 녀석은 결국 무대 위에서 대형 사고를 칠 뻔했다. 연습 도중 얼굴에 대놓고 검을 던진 것쯤이야 콘서트에서 안무를 까먹고 굳어 버리는 바람에 무대를 망치는 것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었다.
재이가 윤새빛의 이상을 눈치챈 것은 무대에 오른 직후였다. 곡이 시작되기 직전 마주친 녀석의 눈빛은 익숙한 것이었다. 패닉 직전의 초긴장 상태. 전장에 처음 나간 신참 병사 중 저런 눈빛을 한 자들이 더러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대부분 그날 전투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윤새빛의 눈빛이 제 목에 칼이 날아드는 줄도 모르고 멍청하게 서 있던 신입 병사의 그것과 닮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재빨리 그를 향해 달려갔다. 저대로 뒀다가 뒤로 넘어가기라도 하는 날엔 연예계 데뷔를 연예 뉴스 가십란으로 할 참이었다. 재빨리 뛰어가 어깨를 쳐서 가출하려던 녀석의 넋을 붙잡아 두고는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여기서부터는 도박이었다.
윤새빛이 따라와 주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못한다면 멍하니 서 있는 녀석 주위를 돌며 혼자 칼춤이라도 춰야 할 판이었다.
‘잘 따라오네. 처음부터 이렇게 할 걸 그랬나.’
예정했던 대련 안무 대신 자신이 시범을 보이면 윤새빛이 따라 하는 식으로 리드하기 시작하자 연습생 생활로 인이 박인 탓인지 따라오는 동작이 제법 그럴듯했다. 원래 맞춰 두었던 카메라 동선에서 벗어나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것까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대를 완전히 망치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어떻게든 때우는 게 백배 나을 터였다.
겨우 검무 구간이 끝나고 다른 멤버들과 포메이션을 엮어 본격적인 곡이 시작되자 녀석도 조금 안정을 찾은 듯 움직임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힐끗 바라본 윤새빛과 순간 시선이 맞았다. 그 와중에도 꾸벅 눈인사를 해 오는 것이 어지간히 고마웠던 모양이었다.
‘하긴. 전장에서 목숨 구해 준 거나 다름없는데.’
목숨값으로 뭘 달라고 하지.
인생에 공짜란 없는 법.
데뷔하면 크게 갚으라고 해야겠다.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무대에 집중했다.
.
.
.
“와, 조금 전 그 도입부 안무 있잖아요.”
[Abyss: 심연], [룬룬룬] 에 이은 [Like a Tutorial]의 무대가 끝난 뒤 곧바로 파티 멤버들의 토크 타임이 이어졌다. 마이크에 불이 다시 켜지고 멤버들과 함께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엠케이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맞다, 그거! 저도 진짜 완전 깜짝 놀랐잖아요.”
“아니 두 분 저희 몰래 따로 연습하신 거예요?”
“대박. 이걸 왜 지금까지 숨긴 거지?”
엠케이에 이어 남궁찬, 이환 그리고 은규까지 차례차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뱉는 말에 인혁이 객석과 재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말이죠. [Like a Tutorial]의 도입부에 들어가는 검무 파트 있죠? 그걸 재이 씨랑 새빛 씨가 리허설 때랑 다른 버전으로 했어요. 지금.”
인혁의 설명에 객석에서 의외라는 듯 ‘오오-!!’ 하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뭔가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전 이쪽이 더 좋았는데요.”
“저도요. 인혁 씨랑 했던 대련 스타일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던데요.”
이환과 은규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어 가는 것에 재이가 덧붙였다.
“새빛 씨 이거 한다고 자는 시간 쪼개서 검도 개인 교습도 따로 받으러 다녔거든요.”
“연습생의 귀감이죠. 크게 될 분이에요.”
“저희 팀 인턴이라서 괜히 칭찬하는 게 아니라, 새빛 씨도 그렇고 이호 씨도 민민 씨도 다들 완전 연습 벌레거든요.”
계속되는 칭찬 릴레이에 눈치 좋게 인턴들이 가세했다.
“아 근데 그건 선배님들이…….”
“맞아요. 파티 선배님들 따라가려면 목숨 걸고 따라 뛰는 수밖에 없어서.”
“진짜. 연습 많이 하신다는 소리 듣기는 했는데. 인간이 소화할 수 있는 연습 스케줄의 범주를 뛰어넘었다고요.”
죽는 줄 알았어요…….
황민민이 객석을 향해 하소연하듯 내뱉은 말에 윤새빛과 정이호가 각각 덧붙였다.
“트레이너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요. 파티 독종이라고.”
“저희 안무가 선생님 중 한 분은 이번에 몸살 나셨잖아요. 파티 분들 안무 연습 지도하시다가.”
인혁과 재이가 다음 무대를 위해 먼저 내려가는 것을 확인하며 남은 멤버들이 토크를 이어갔다.
“하하하,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 인턴분들 협박하고 뭐 그러지 않았어요.”
“순도 100%의 자발적 칭찬입니다, 그렇죠. 인턴 여러분?”
남궁찬의 말에 엠케이가 맞장구를 치며 인턴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약간 찔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은규가 말했다.
“아 물론, 아이스크림 몇 번은 사 드린 적 있어요.”
“소소한 뇌물… 아니고 선물이랄까요.”
“원래 선배가 후배한테 나눠 주고 뭐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리사랑, 내리사랑.”
“아직 저희도 정산 전이긴 합니다만, 하하하하.”
객석의 반응을 보면서 토크를 끌어가던 엠케이가 무대 아래쪽 스태프의 사인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다음 무대가 준비된 모양입니다. 아쉽지만 저희는 일단 들어가 볼게요!”
“이따 봐요. 여러분!”
엠케이의 멘트를 신호로 멤버들이 하나둘 무대 뒤편으로 퇴장하면서 조명이 어두워졌다.
잠시 후, 고요한 어둠 속 전광판이 점멸했다.
- Saviours: 구원자들 -
곡의 타이틀이 화면에 등장하자 객석에서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며칠 전 미리 공개된 음원은 공개 5시간 만에 차트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매년 음원으로 선공개 되는 켐콘 오리지널 곡이 차트 1위를 기록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매년 오리지널 곡에 참여해 왔던 차상혁이 입대로 빠진 올해에도 과연 그 기록을 이어 갈 수 있을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던 차에 들려온 1위 소식은 팬들을 흥분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 흥분은 오늘 켐콘에서 펼쳐질 4명의 무대에 대한 기대감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둠 두둠 두둠 둠 두둠 두둠.
나직이 깔리는 베이스의 선율과 함께 곡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