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심은규의 플래그
둠 두둠 두둠 둠 두둠 두둠.
나직이 깔리는 베이스의 선율과 함께 곡이 시작되었다.
파파파파팟.
어둡게 내리깔렸던 무대에 화려한 불꽃이 타오르는 것과 동시에 돌출 무대의 양 끝에서 비제이와 인혁이 동시에 등장했다.
“왓더, 저거 진짜 고딩 맞음?”
“비제이랑 파워 밸런스가 맞는 걸 보니 차상혁 핏줄이 맞네! 맞아.”
성주희 자매가 동시에 중얼거렸다. 본격적인 도입부 전주에 맞춰 무대 위의 비제이, 차인혁 두 사람은 같은 안무를 각기 다른 느낌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네버로스에서 리더라는 직책 외에도 랩댄스 멤버로 분류되는 비제이는 특유의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반대편 무대 끝에 선 인혁은 비제이와는 정반대로 자로 잰 듯 정확한 동작으로 비트를 쪼개고 있었다.
“테크웨어 바람직해. 교복보다 하네스가 잘 어울리다니 차인혁이 죄가 많네.”
“그러게 의상팀이 열일했네. 오늘 무대만 하고 끝내기는 넘 아쉬운데?”
“내 말이……. 음방이라도 좀 뛰어 주… 으와아, 에이미!! 에이미 언니다!!”
“어디!? 헉 언니이이!!!”
비제이와 인혁의 춤을 품평하며 나름 여유롭던 두 사람은 갑자기 무대 중앙에 모습을 드러낸 에이미의 모습에 열광했다. 에이미는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객석을 한번 휘 훑어본 뒤 노래를 시작했다.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도 여유로움을 잊지 않은 에이미가 돌출 무대 양 끝에 있던 비제이와 인혁에게 이리로 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 해 보이며 턱을 치켜들고는 씩 웃었다. 커지는 함성 속에 무대 중앙에서 합류한 세 사람이 힘겨루기라도 하듯 각자 자신의 파트를 이어갔다.
Break’n through the fake fake fire
Break’n through the fake fallen love
낮게 깔리는 두 사람의 랩과 에이미의 쏘울 충만한 보컬 위로 어느 순간 재이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귀에 착착 감기는 듯 나른하게 울리는 에이미의 보이스 톤에 섞여 들며 서늘하게 울리는 또 하나의 목소리에 줄곧 셔터를 눌러 대고 있던 성주연이 대포에서 얼굴을 뗀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있어? 한재이?”
무대 쪽을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는 나머지 한 사람에 성주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공연장을 휙 둘러보았다.
“아앗!! 저기!! 저기!!!”
성주연과 함께 동생의 새로운 픽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성주희가 공연장 3층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한재이!! 재이야!!!!”
기다려 우리가 만났던 그 자리에서
갈게 날 배신한 너를 구하러
I’ll be your saviour in this broken world
재이의 위치를 파악한 성주연이 괴성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카메라의 줌을 당겨 연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고성능 렌즈가 향한 곳에는 이제 막 공중으로 도약해 플라잉을 시작한 재이가 있었다.
흰색 롱코트가 바람에 펄럭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이가 그대로 공중에서 한 바퀴 몸을 돌리자 아래쪽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런 그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는 것을 잊지 않은 재이가 그대로 쏘아져 내리듯 무대 중앙을 향해 날아갔다.
하얗게 포물선을 그리며 크게 공중에서 회전한 재이가 그대로 무대 위에 가볍게 착지했다. 마치 평지 위를 걷듯 여유로운 그 동작에 대형 스크린을 통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객석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미친!!! 한재이!! 재이야!!!”
“으아!!! 개쩐다!!!! 와아아!!”
괴성을 질러 가며 연신 사진을 찍고 있는 동생의 옆에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름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던 성주희마저 본능적으로 터져 나오는 함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환호를 내질렀다.
자신보다 먼저 무대에 도착해 있던 다른 멤버들에게 다가가 하이파이브와 어깨 터치, 그리고 짧은 미소로 인사를 나눈 재이가 나머지 셋과 함께 나란히 섰다. 그리고 4인조 셔플 유닛의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었다.
I’ll be your saviour from this broken heart
Break’n through the deep dark desire
기다려 우리가 헤어진 그 자리에서
Break’n through the fake fallen future
갈게 날 배신할 너를 구하러
클라이맥스는 네 명이 한꺼번에 자신의 파트를 겹쳐 부르는 후렴 구간이었다. 비제이의 변속적인 라임에 인혁의 중저음 랩이 얽혀 들고 에이미의 찰진 보이스가 시원하게 터지는 재이의 고음을 탄탄하게 뒷받침했다. 4인 4색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며 내뿜는 카리스마에 넓은 무대가 꽉 차 보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와, 대박.”
“나 진심 좀 감탄함?”
“쟤들 1년 차 맞음? 뭐 저렇게 능수능란해?”
무대가 끝났음에도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에 성주희와 성주연이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비제이가 랩으로 밀리는 거 처음 봐.”
“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동생의 말에 화들짝 놀란 성주희가 주변을 둘러보며 나직이 내뱉었다. 단관석도 아니고 이런 공개된 자리에서 그런 소리 했다가는 돌 맞기 딱 좋았다. 그러나 이미 자신만의 세계에 들어간 듯, 눈치 없는 동생은 뭐가 어떻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원래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법이라잖아.”
“팔푼아, 정신 좀 챙겨 봐. 팬이 까 만드는 거 몰라? 여기서 잘못 터지면 너 말고 네가 관심 두는 돌이 엄하게 얻어맞으니 닥치고 좀 있지?”
성주희의 말에 동생은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다들 조금 전 공연을 되새기는 중인지 각자 들고 온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탓에 두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 * *
“여러분!! 무대 어떠셨나요!? 괜찮았나요?!”
무대의 조명이 다시 켜지며 조금 전까지 뜨겁게 무대를 달구었던 네 명이 마이크를 든 채 다시 무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비제이의 물음에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 근데 진짜. 오늘 새삼 또 느꼈지만, 파티 진짜 데뷔 1년 차 맞아요? 사실 뭐 인생 2회차이고 막 그런 거 아니야? 왤케 잘해?”
비제이가 운을 띄우자 옆에 서 있던 에이미가 맞장구쳤다.
“그러니까요. 원래 데뷔하고 첫 켐콘에서는 가사도 좀 까먹고 음 이탈도 좀 하고, 춤도 까먹어서 추다 좀 멈추기도 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냐고요. 이게 뭐야, 재미없게.”
에이미의 말에 재이와 인혁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아하하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비제이가 객석을 돌아보며 하소연하듯 말했다.
“여러분 진짜, 저희 이 유닛 한다고 연습 엄청 했거든요? 저 연습 벌레 차상혁 씨 군대 갔다고 이제 좀 살겠구나 싶었더니 더한 사람들이 왔잖아. 어휴 내 팔자야.”
객석에서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데뷔는 상혁이 먼저였지만 연습생 연차나 나이로는 비제이가 위인 탓에 비제이는 케이엠 소속 가수 중 유일하게 상혁을 편하게 대하는 인물이었다.
“선배님들한테 폐가 되지 않으려면 젖 먹던 힘까지 다 쥐어짜야 하는걸요.”
“그럼요. 처음부터 전력 질주를 해도 발끝에 닿을까 말까 하는데요.”
인혁과 재이가 앞다투어 내뱉은 말에 기도 안 찬다는 듯 비제이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객석을 향해 말했다.
“와 아부가 듣기 싫어 보긴 또 처음입니다, 여러분.”
“진짜, 너무 속 보이니까 막 기만 같고 그렇네?”
에이미가 장난스럽게 얼굴을 찌푸리며 맞장구치고는 대화의 화살을 재이에게로 돌렸다.
“한재이 씨 와이어 액션에 소질 있던데요?”
“아 촬영하면서 몇 번 해 봐서요.”
“콘서트장에서 하는 거랑은 스케일이 다를 텐데? 분명 하늘에 떠 있는데 바닥 뛰어다니는 것 같은 그 자연스러움은 뭐죠? 참 이상하네. 인간이 왜 빈틈이 없지?”
에이미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비제이가 맞장구쳤다.
“진짜. 나 무슨 솔크 드 실레이유 보러 온 줄 알았잖아요. 처음에 VD실 실장님이 무대 컨셉 가져오셔서는 여기에서 와이어 액션 넣겠다고 하시는 거 듣고 저보고 하라는 줄 알고 살떨렸잖아요. 이걸 어떻게 안 한다고 하지, 순간 오백 번쯤 고민했는데. 한재이 씨 리스펙.”
비제이가 재이를 돌아보고 그와 눈이 마주치자 엄지를 들어 올려 보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것을 보고 있던 에이미가 말했다.
“와이어 액션 하시기엔 선배님 연차가 좀 많이 쌓이긴 했죠.”
“그 연차 쌓일 때마다 와이어 달고 한 바퀴씩 돌았죠.”
“들었죠 재이 씨? 앞으로 매년이래.”
“와 헬게 오픈이네요.”
세상에 저렇게 진정성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 멘트라니.
에이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리는 소리에 객석에서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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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쟤들 진짜 아이돌 2회차 아니야? 뭐 저렇게 자연스러워?”
멤버들의 토크를 듣고 있던 성주희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소리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던 성주연이 여전히 시선을 렌즈 너머 무대에 고정시킨 채 입만 열어 대꾸했다.
“둘 다 자타공인 팀 대표급 강심장들이라 그렇지, 나머지 멤버들은 그렇지도 않아 보이더라. 아까 공홈 짹짹이에 백스테이지 사진 올라온 거 보니까 쟤네 대기실에 우황청심환 쌓아놓은 바구니 같은 거 있던데.”
“헐, 성주연 대체 어느 틈에 그런 건 다 찾아봤대? 사실 너 오늘 여기 오기 전에 이미 파티로 갈아탔던 거 아니야?”
사상 검증 좀 해 봐야겠다며 자신의 언니가 팔짱을 낀 채 위아래로 훑어보는 것에 성주연이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거든. 나 울 언니들 은퇴할 때까지는 쭉 같이 갈 거거든. 그러니까 이건 환승이 아니라.”
“환승이 아니라?”
성주희의 재촉에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이쪽을 바라본 성주연이 대답했다.
“노선 확장 같은 거지, 말하자면.”
그리고는 재빨리 카메라를 고쳐 들며 자세를 바로 했다. 선배들을 따라 무대 아래로 내려가던 인혁과 재이가 다음 순서를 위해 계단을 오르려던 엠케이와 남궁찬을 발견하고는 무대 위에서 보여 줬던 쿨한 표정과는 달리 격렬하게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순간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으며 성주연은 뿌듯하게 미소지었다.
* * *
[데일리 엔터] 역사는 계속된다. 아이돌과 팬들의 뜨거운 축제 켐콘
[스타 뉴스] 아이돌 명가라 불리는 데엔 이유가 있다. 켐콘으로 보는 케이엠의 생존법
[노컷 엔터] 4인조 구원자들의 출격. Saviours의 무대 베일을 벗다
[올댓엔터] 차상혁, 네버로스, 크래쉬캣, 블랙포이즌 그리고 파티까지. 그다음은 누구 차례? 데뷔를 꿈꾸는 케이엠 인턴들의 켐콘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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켐콘을 무사히 끝낸 다음 날.
그동안 콘서트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었던 멤버들은 간만에 숙소에서 마음껏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인혁은 읽고 있던 연예계 뉴스란에서 고개를 돌려 거실 한쪽 구석에서 옥신각신하고 있는 남궁찬과 이환을 돌아보았다.
“야, 남궁찬 다 썼으면 좀 비켜 봐, 나도 좀 쓰자.”
“잠깐 기다려. 나 한 번만 더 쓰고.”
“그러는 게 어딨어, 여기 사람 기다리는 거 안 보여? 코스 하나 끝났으면 줄 다시 서야지, 이게 어디서 배운 매너야.”
예전에 숙소에 방문하셨던 엠케이의 아버지가 사 주고 가신 신형 안마 의자를 둘러싸고 남궁찬과 이환이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아, 아, 잡아 빼지 마, 알았어, 알았다고.”
이환의 성화에 못 이겨 안마 의자 밖으로 끌려 나온 남궁찬이 냉큼 저 대신 자리를 잡고 누운 그가 리모컨을 조작하는 것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내뱉었다.
“와, 저거 풀코스 잡는 거 봐라. 야 진짜 양심 있으면 그러지 말자고.”
“그대로 다음 코스 뭉개려던 분께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시끄럽고, 30분 후에 다시 와.”
이환이 안마 의자에 깊게 몸을 묻으며 더 할 말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남궁찬이 투덜거리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던 엠케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저게 뭐가 좋다고. 난 시원한 거 모르겠던데.”
“나도. 갑갑하기만 하고 영.”
옆에서 은규가 거들었다. 남궁찬이 뭐라 반박하려고 입을 여는데 어디선가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냐아아-
어느샌가 지정석이 된 소파 위 재이 자리에 몸을 말고 앉은 새끼 고양이가 이쪽을 쳐다보며 작게 우는 것을 보고 엠케이가 남궁찬을 돌아보며 말했다.
“남궁찬, 도도님 식사 시간이란다.”
“어서 가서 챙겨 드려라, 심기 불편해지시기 전에.”
은규가 거들자 남궁찬이 끙차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키며 투덜거렸다.
“아니 근데 한재이 얘는 어디 간 거야?”
“한재이는 왜 찾아, 밥 담당은 넌데.”
“아니 그냥. 주워 오신 분은 따로 있는데 시중은 왜 내가 다 드나 싶어서.”
냐아아-
시끄럽고 밥이나 내놓으라는 듯 새끼 고양이가 다시 울었다.
“아이고 갑니다, 네네.”
괜히 주워 온 장본인을 타박해 보려던 남궁찬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인간 넷, 상전 하나의 반응에 터덜터덜 사료를 가지러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남궁찬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엠케이가 인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그래서 한재이 얘는 어디 갔는데?”
“운동.”
인혁의 짧은 한마디에 주변에서 경악스러운 반응이 터져 나왔다.
“진짜로? 리얼?”
“인간이냐고.”
“아닌 듯. 절대 아닌 듯.”
그런 셋의 얼굴을 돌아본 인혁이 몇 시간 전 운동 다녀오겠다며 매니저 정수를 불러 숙소를 나서던 재이를 떠올렸다. 아직 다른 멤버들은 잠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던 시각, 오늘 밤에 있을 드라마 촬영 때문에 대본을 들여다보려 깨어 있던 인혁은 외출 준비를 마치고 방에서 나온 재이와 마주쳤다.
- 어디 가?
- 운동 다녀오게.
짧은 재이의 대답에는 어지간한 인혁도 놀라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헐, 그 체력은 대체 어디서 샘솟냐.
- 집에만 있으면 더 늘어져. 이런 날은 땀 한번 쭉 빼고 오는 게 오히려 상쾌하지.
- 그 말 저기 늘어져 있는 녀석들한테도 좀 해 주지.
- 한다고 들을 놈들이냐.
- 하긴.
할 말 다 했다는 듯 핸드폰을 들어 정수가 주차장에 도착했음을 확인한 재이가 나가려다 말고 인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 오늘도 촬영 있냐?
- 어.
짧은 대답에 재이가 다시 물었다.
- 뭐 먹고 싶어?
- 뭐?
- 뭐 사 가면 되냐고.
- 헐. 진짜 오게?
- 그럼 가짜 가냐.
대답을 듣겠다는 듯 현관 앞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재이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인혁이 입을 열었다.
- …떡볶이?
- 김밥에 순대랑 튀김도 사 가면 되지? 간은 빼고.
- 웬일이냐, 후하네.
- 이따 보자.
- 그래.
인혁의 대답과 동시에 현관문이 닫혔다.
예전 촬영 때 간식 차를 준비해 응원하러 갔던 것을 마음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답도 할 겸 이번 촬영에 간식 차를 쏘겠다는 것을 인혁이 극구 뜯어말렸더니 그러면 잠깐 구경이라도 가야겠다고 기어코 찾아오겠다는 통에 그러라고 한 참이었다.
‘하여간에 빚지고는 못 살 성격이라니까.’
속으로 중얼거리던 인혁은 옆에서 들려온 엠케이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진심 부럽다 그 체력.”
“한재이 말이 이럴 땐 움직여서 푸는 게 더 낫다던데?”
“그건 인간 아닌 한재이한테나 통하는 말이고. 인간인 나는 이대로 좀 쉬어야지 더 움직이면 안 돼. 큰일 나.”
그래, 씨알도 안 먹힐 줄 알았어.
자신의 말에 즉각 반박하고는 보란 듯이 거실 바닥에 드러눕는 엠케이와 아예 안 들린다는 듯 대꾸도 없는 이환과 은규를 둘러본 인혁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인혁 오늘도 촬영 있냐?”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 들고 있던 대본을 정리하는 인혁을 돌아본 은규가 물었다.
“어.”
“언제까지 찍는댔지?”
“다음 주면 끝이야.”
인혁의 대답에 바닥을 굴러다니던 엠케이가 감탄하듯 말했다.
“와, 이제 우리 팀에 배우 겸업이 둘이나 되네.”
“왜 너는 빼? 너도 했잖아 연기?”
“아 그건 연기 아니고 예능이고.”
안마 의자 의 움직임에 맞춰 덜덜거리는 목소리로 묻는 이환에게 대답한 엠케이가 인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짜 응원 안 가도 돼?”
“필요 없어.”
“그래도.”
엠케이가 내키지 않는 듯 중얼거리는 것에 인혁이 짧게 내뱉었다.
“한재이가 온다더라.”
순간 다른 녀석들의 이목이 일순 인혁에게 쏠렸다.
“언제?”
“오늘.”
눈을 빛내며 대답을 기다리던 멤버들이 인혁의 말에 하나둘 앓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다.
“아이고 하필 오늘이냐. 난 못 간다. 척추가 바닥에 붙은 듯.”
“미안 내 척추는 안마 의자에 붙은 듯.”
“진짜 미안한데 오늘 박예찬 선생님하고 미팅이 있어서.”
“난 도도님하고 놀아 드려야 해서.”
“도도님이 너랑 놀아 주시는 거겠지.”
마지막으로 들려온 남궁찬의 빈약한 변명을 짧게 받아친 인혁이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사실 한재이도 올 필요 없는데 하도 우겨서 오라고 한 거니까.”
하긴. 그 녀석 가면 왠지 괜히 일정에 없던 일도 생길 것 같잖아.
은규가 중얼거리는 것에 엠케이가 그를 발로 툭 건드리며 말했다.
“야, 좀. 그거 플래그.”
* * *
그리고 몇 시간 후.
인혁은 심은규의 플래그는 영험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