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44화 (144/224)

#144

형이 거기서 왜 나와

“그런데 말이죠, 여러분은 운명이란 것을 믿으십니까?”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회의실에 앉자마자 피디가 내뱉은 말에 재이를 비롯한 네 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제가 모르는 사이에 프로그램 컨셉이 바뀌었나요, 피디님?”

비제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회의실 맞은편에 앉은 SBC 주말 예능 [아리송의 집] 담당 피디 오민영에게 물었다. [아리송의 집]은 셀러브리티이자 예능인이기도 한 앨리슨 정의 부캐 ‘아리송’이 게스트들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토크 버라이어티 쇼였다. 비제이의 질문에 빙긋 웃은 오민영 피디가 입을 열었다.

“이번 회차 컨셉이 ‘전생 체험’이거든요. 지금 생각으로는 네 분 중 두 분 정도가 ‘믿는다’, 나머지 둘이 ‘안 믿는다’ 쪽으로 구도를 짜서 들어갈까 하는데 그 전에 여러분 생각부터 들어 볼까 해서 말입니다.”

오 피디의 말에 네 사람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 믿는 편이요.”

비제이가 대뜸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 쪽으로 쏠리자 살짝 쑥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인 그가 이어 말했다.

“그런 거 좀 따지는 편이에요. 특히 별자리 운세. 아침에 확인해서 별로면 하루 종일 좀 조심하죠.”

“와, 그런 타입인 줄 몰랐네, 선배.”

옆에서 듣고 있던 에이미가 팔짱을 낀 채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비제이에게 놀랐다는 듯 말했다.

“아 그래? 내가 이래 봬도 좀 예민한 예술가 타입이라고.”

“아니 미신에 목매는 타입인 줄 몰랐다는 얘기였는데.”

“와, 초장부터 훅 치고 들어오네. 너 이게 미신이라고 어떻게 단언하는데, 어?”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오 피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비제이 씨가 믿는 쪽, 에이미 씨가 안 믿는 쪽인 건 잘 알았습니다. 그럼 우리 파티 두 분은 어떤가요?”

오 피디가 인혁과 재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안 믿어요.”

“믿어요.”

동시에 터져 나온 서로 다른 대답에 비제이와 에이미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헐,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한재이 네가 운명론자라고?”

옆에 앉은 인혁까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돌아보는 것에 재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어 운명론자인지 아닌지는 모르는데. 그런 거 믿는 편이에요. 운명, 윤회, 영혼, 전생, 또 뭐 있지? 아, 팔자.”

재이의 말에 할 말을 잊은 듯 잠시 그를 쳐다보던 비제이가 중얼거렸다.

“……혹시 노린 건가? 반전 효과 쩌는데?”

“그러게. 선배 큰일 났네. 애써 샤밍아웃 했는데 이대로라면 한재이한테 가려 묻히겠어.”

“그건 안 되지. 피디님, 재이 컨셉 안믿파로 가면 안 되나요? 쟤랑 같이 믿파 하기 싫은데요.”

에이미의 말을 들은 비제이가 다급한 표정으로 오 피디와 작가진을 둘러보며 말했다.

‘한재이 역시 물건이네. 예능 블루칩이란 게 헛소문이 아니잖아. 시작부터 이러면 진짜 레전드 회차 한번 노려볼 만하겠는데.’

오 피디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에이미가 질문이 있다는 듯 손을 살짝 들어 올려 보이며 물었다.

“근데 그 전생 체험이라는 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진짜로 하는 건 아니죠. 설마?”

“왜 안믿파라면서 진짜 전생이라도 보게 될까 봐 무서운 거야 혹시?”

비제이의 시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에이미가 대답을 원한다는 듯 오 피디와 제작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 그건 걱정 마세요. 그쪽 전문가를 섭외해서 진행하긴 할 건데 사전 각본 들고 들어갈 겁니다.”

“아 뭐예요, 그럼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거잖아요.”

오 피디의 설명에 김샜다는 듯 비제이가 투덜거렸다. 그의 말에 오 피디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설명을 이었다.

“자세한 건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 보시면 알겠지만 이게 사람에 따라 수면 요법이 잘 걸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네요. 게다가 방송용으로 적합한지 아닌지도 판단해야 하니까, 만약에 원하는 그림이 제대로 안 나올 시엔 대본대로 갈 예정입니다.”

“전생 체험이라고 막 눈물 콧물 짜고 그런 거 딱 질색이에요. 혹시라도 제 건 그런 그림 안 나오게 해 주세요, 피디님.”

에이미가 눈썹을 팍 찌푸리며 말했다.

“왜, 거기서 한 번 울어 주면 항상 완벽하고 철저한 에이미의 반전 매력이라고 시청자분들이 좋아하실지도 모르잖아.”

“필요 없어. 난 그런 반전 매력 같은 거 없어도 충분히 매력적이거든.”

“아, 예, 예.”

비제이의 말을 단칼에 잘라 내는 에이미를 보고 있던 오 피디가 인혁과 재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두 분은 따로 요청 사항 없으신가요?”

그 말에 두 사람이 다시 동시에 대답했다.

“해 보고 나서 결정하는 건 어떤가요.”

“해 보고 결정하면 안 되나요?”

와, 너희 지금 무슨 이구동성 게임 하냐.

비제이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오 피디가 대답했다.

“문제없습니다. 어차피 본방은 믿파에서 한 분, 안믿파에서 한 분 분량만 메인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편집 컷으로 들어갈 예정이니까요.”

“그럴 거면 처음부터 그냥 둘만 뽑아서 찍으면 되지 않나요. 피곤한데.”

“하하, 에이미 씨 날카로운 코멘트 톡톡 튀고 좋은데요. 촬영 때도 그 텐션으로 부탁드립니다.”

에이미의 지적을 유하게 받아치며 오 피디가 웃었다.

* * *

그날 파티 숙소.

“와, 심은규가 나가야 했는데, 그 예능.”

“나도 지금 그 생각 했는데. 파티의 공식 샤먼은 심은규 아닌가? 영험하신 분을 여기 놔두고 왜 엄한 너희들이 나가.”

오늘 있었던 사전 미팅의 이야기를 들은 엠케이와 남궁찬이 이건 캐스팅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앞다투어 한마디씩 내뱉었다. 인혁이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한재이 믿는다던데. 운명, 영혼, 뭐. 그런 거.”

그러자 오래간만에 재밌는 건수를 물었다는 듯 눈을 빛내며 남궁찬이 재이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헐. 한재이 컨셉 너무 세게 잡는 거 아니냐.”

“그러게. 그랬다가 그 수면 요법인지 뭔지로 다 들통나면 어쩌려고.”

“한재이 수면 요법 실패한다에 내 3일 치 아이스크림 건다.”

“이보세요. 그러면 내기가 안 되잖아. 뭔가 다른 쪽에도 걸 만한 거로 해야 내기를 해야지.”

엠케이와 이환, 은규가 차례차례 덧붙이는 말을 듣고 있던 재이가 제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앉은 도도님을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왜지? 나 진지한데?”

“그래? 그럼 들어나 보자, 운명론자 한재이 씨, 그럼 스스로가 전생에 뭐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엠케이가 손을 말아 쥐어 마이크를 가져다 대는 시늉을 하며 묻자 재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대답들이 튀어나왔다.

“독재자!”

“마왕!”

“흑막!”

“최종 보스!”

대체, 너희한테 내 이미지란 뭐냔 말이다.

재이가 투덜거리자 엠케이가 재촉했다.

“다들 일리 있는 추측입니다. 그럼 한재이 씨 본인의 예상은?”

“음……. 세계를 구한 용사?”

“…….”

재이의 대답에 짧은 침묵이 거실에 내려앉았다.

“저거 봐. 한재이 저거 벌써 컨셉 세게 잡았다니까.”

남궁찬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자 나머지 녀석들이 하나둘 덧붙였다.

“하긴. 지금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음원 홍보 나가는 건데. 홍보 열심히 해야지.”

“나 대본이 눈에 보이는 듯해. ‘전생에서 세계를 구하며 쌓은 덕으로 이번 생에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스타로 거듭난 한재이 씨’.”

엠케이의 말에 이환이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거 감성 좀 올드하지 않냐.”

“거기 원래 그런 맛으로 보시잖아, 다들.”

“‘구원자 한재이’ 프레임이라니 안 어울려. 이건 진심이야. 그걸로 밀 거면 차라리 네가 해라, 차인혁.”

이환에 이어 은규와 남궁찬이 차례대로 내뱉는 말에 재이가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아니 왜, 이게 내가 이렇게까지 몰릴 일이야?”

놀랍게도 애초에 이 모든 게 거짓말도 아니라고.

물론 지금 이게 세상을 구한 덕을 쌓아서 받는 보상이라는 해석에는 논란의 여지가 좀 있지만 말이야.

‘우선 업보만 여섯이잖아.’

재이는 눈앞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인간 다섯과 제 무릎 위에 앉은 상전 하나를 둘러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음원 홍보차 잡힌 예능 컨셉이 하필이면 ‘전생 체험’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는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재이 또한 황당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가며 생각해 보니 딱히 걱정할 것도 없긴 했다.

어떤 사기꾼이 나와서 무슨 약을 팔지 아직 알 수는 없었지만, 전생에 관해 묻는다면 해 줄 말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니, 솔직히 거기 모인 누구보다 더 생생하게 썰을 풀 자신이 있었다.

‘기왕에 자리 깔아 줬으니, 뽕을 뽑아야지.’

제작진이 캐스팅 운 하나는 타고나신 듯.

기분 좋은 듯 고르륵거리는 도도 님의 등을 살살 쓸어 주면서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며칠 후 [아리송의 집] 촬영 현장

스튜디오 한쪽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서 [Saviours: 구원자들]의 라이브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콘서트에서 풀버전으로 불렀던 것과는 달리 짧은 러닝 타임으로 재편곡한 노래에 안무 또한 짧아진 곡에 맞춰 방송용으로 재편성되었다.

콘서트 때와 달리 강렬한 붉은 머리칼로 변신한 재이가 에이미와 마주 본 채 경쟁하듯 고음을 뽑아냈다. 각기 다른 매력의 두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화음에 녹화를 진행 중이던 스태프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켐콘 유닛이 이렇게 괜찮았던가?”

“콘서트에서도 이 정도 퀄이었으면 볼만했겠는데?”

무대를 구경하고 있던 스태프 중 하나가 옆자리의 동료에게 수군거렸다.

“예능까지는 안 돌더니, 올해엔 아주 단물 다 빼겠다는 심산인가 봐, 케이엠?”

“작년까진 차상혁 스케줄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했겠지.”

“열화 버전도 나름 캐시 카우 역할은 한단 소리네.”

비트에 맞춰 자유분방하게 제각각의 취향대로 리듬을 타는 동작이 4인 4색의 목소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다가도 포인트 안무에서는 칼같이 맞아떨어지는 움직임으로 긴장의 끈을 바짝 잡아당겼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과 카메라 동선에 칼같이 맞춰 들어오는 시선 처리와 포즈 덕에 촬영은 리테이크 한 번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저걸 보고 열화 버전이라고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하긴. 것도 그렇네.”

그 모습을 구경 중이던 스태프가 동료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네 명은 그대로 옆에 마련된 게스트석으로 이동했다. 엠씨석에서는 어디서 구했는지 각 팀의 응원봉을 양손 가득 든 채 응원 중이던 프로그램의 엠씨 아리송이 잽싸게 응원봉을 내려놓고는 열렬한 박수와 함께 그들을 맞이했다.

“와, 진짜 콘서트장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저기 저희 작가분들 넋 놓고 있는 거 보이십니까? 정 작가, 김 작가! 우리 일 합시다, 일. 저 다음 대사 얼른 좀 올려 주세요! 아까 무대 보다가 대본 다 까먹었다고, 나.”

아리송의 호들갑에 제작진 쪽에서 와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예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마성의 켐콘! 올해 켐콘의 오리지널 한정 유닛 [Saviours] 여러분들을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어서 오세요!”

아리송의 소개 멘트에 게스트용 소파에 앉은 네 명이 카메라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네 분은 원래 파티가 데뷔하기 전 출연했던 프로그램에서 멘토-멘티 관계로 인연을 맺었다고 들었는데. 그때랑 비교했을 때 이번에 작업하시면서 서로에 대해 새로 발견한 점 같은 게 있나요?”

아리송의 진행에 비제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때는 분명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녀석들이었는데 인제 보니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맞아요. 고양이 새끼인 줄 알았는데 범 새끼더라고.”

비제이의 말에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에이미에 인혁과 재이가 뒤따라 말했다.

“인사권자의 위력이었던 거죠.”

“거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었던 수준인데, 고분고분 안 할 수가 있나요.”

“그럼 지금은 다르다?”

아리송의 질문에 인혁과 재이가 서로를 마주 보고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이야 뭐.”

“넘어야 할 태산 같은 선배님들인데 열심히 기어올라야죠.”

“분명 칭찬인 것 같은데 왜 기분이 나쁠까.”

“그러게. 뭔가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인데, 어째서지.”

에이미와 비제이가 서로를 마주 보며 중얼거리는 것을 본 아리송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정도면 분위기 괜찮은데.’

재이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아리송이 본격적으로 진행을 시작했다.

“자, 오늘 [아리송의 집]은 ‘운명을 믿으십니까 - 당신의 전생을 찾아드립니다’라는 부제로 진행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운명의 존재를, 영혼의 존재를, 전생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캐릭터 컨셉처럼 괴랄한 테이스트로 채워진 게스트석 소파에 앉아 있는 네 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본 아리송이 능숙하게 대본을 읽어 나갔다.

“오늘 모실 분은 스물두 살의 나이로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부속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정신과 조교수를 거쳐 하버드대 뇌과학연구소 최연소 연구원으로 재임하던 중, 인간의 뇌에 각인된 영혼의 존재에 착목하여 지금은 지구의 이상 현상과 사후 세계의 접점에 대해 연구 중인…….”

‘누군진 몰라도 진짜 천재가 맞긴 한가 보네. 중간부터 커리어가 맹렬히 산으로 가고 있는걸 보니.’

저게 바로 방황 중인 천재인 건가.

아리송의 소개를 듣고 있던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리송이 자신도 대체 뭘 읽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프롬프터에 올라오고 있는 길고 화려하지만, 중간부터 샛길로 빠진 게 눈에 보이는 약력을 열심히 읽어 내려간 끝에 겨우 오늘 함께할 전문가의 이름을 외쳤다.

“…닥터 한, 한산 선생님입니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뭐? 누구?

엠씨의 소개와 함께 들려온 익숙한 외자 이름에 재이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출연자들과 촬영장 밖 스태프들의 박수를 받으며 세트장 안으로 등장한 인물은 조금 전의 그 수상한 약력의 소유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말끔하고 멀쩡해 보이는 엘리트 풍의 남자였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양복 위로 하얀 의사 가운을 걸치고 단정하게 빗은 짧은 머리 아래 얇은 은테 안경까지. 곧게 세운 등에 당당하고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촬영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는 전신에서 ‘나 똑똑한 놈’이라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재이를 제외한 세 사람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엠씨 아리송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한 박사님,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불러 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시원스러운 대답과 함께 아리송과 가볍게 악수한 그가 게스트석을 훑어보다가 이쪽과 시선을 마주치곤 살짝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형이 거기서 왜 나와?’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긴가민가한 눈빛으로 이쪽을 마주 보고 있는 것은 길막리 오 형제 중 자신보다 훨씬 앞서 이미 가족들과 연을 끊어 버리고 십 년이 넘게 감감무소식이던 원조 가출러, 둘째 형 한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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