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멸화조 (10) 종막
- ㅁㅊ 여기서 끊는 게 어딨어 제작진 양심 어딨??
- 액션 실화냐… 드라마 스케줄에 저 퀄이 나온다고???
- 이연좌ㅎㄷㄷ 혼자 날아다니네
- 저 정도면 이연 혼자 일제 싹 쓸어버리고 해방 찍는 엔딩도 가능할 듯
이번에 방영된 회차에서는 호쾌한 액션을 보여 준 이연과 계속되는 액션씬들 사이로 인물들의 심리 묘사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서사에 대한 몰입도를 유지시키는 노련한 연출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양화 선생 구출 작전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연과 오춘삼, 리혁진 그리고 허윤재는 구국회 인사들과 함께 본격적인 항일 운동에 돌입하게 된다. 미나모토 렌의 신분을 이용해 첩보 작전을 벌이고 애국 인사들의 구출과 무력시위에 본격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하면서 멸화조는 경무국의 주요 검거 대상에 오르게 된다.
점점 집요해지는 경무국의 추적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니며 공작 활동을 벌이는 멸화조와 생사를 넘나들며 차츰 단단해지는 동료애를 담담히 비추는 적절한 연출에 시청률은 연일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본방송보다 빨리 진행되는 촬영은 순조롭게 이어져 이제 클라이맥스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어떠냐?”
촬영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대본을 들여다보고 있던 재이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상대를 쳐다보았다. 눈앞에는 분장을 마치고 온 인혁이 서 있었다. 여기저기 낡고 해진 옷을 걸치고 복부 한쪽에 피가 낭자한 모습의 인혁은 두 손과 얼굴 한쪽도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본 재이가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어우야, 가까이 오지마. 너무 리얼해서 냄새날 것 같아.”
그런 재이의 반응이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씩 웃은 인혁이 물었다.
“간만에 인증샷 한 장 찍어 올릴까? 리혁진 최후의 날.”
그 말에 재이가 짧게 한마디 했다.
“근데 그거 스포 아니냐.”
“아 그렇네.”
인혁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앞의 재이를 힐끔 살폈다. 자신보다 조금 빠르게 분장을 마치고 나온 재이는 신출귀몰하는 멸화조 조장을 상징하는 검은 야행복 차림이었다.
대부분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건 얄미울 정도로 여유로운 녀석이지만 오늘 촬영은 그런 재이에게도 부담이 많이 가는지 평소보다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다.
“긴장되냐?”
인혁이 툭 던진 말에 어느새 다시 대본에 꽂혀 있던 재이의 시선이 인혁을 향했다.
“누가?”
“너.”
인혁의 말에 잠시 그를 쳐다본 재이가 대답 대신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난시냐?”
그 말에 인혁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누가?”
“너.”
대답과 함께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재이의 눈빛이 ‘이 몸의 어디가 긴장한 것 같아 보이냐’고 묻는 것 같은 느낌에 인혁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됐다. 걱정해 봐야 나만 손해지.”
그러자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재이가 이죽대며 물었다.
“뭐야, 차인혁. 지금 그거 설마 내 걱정 해 준 거였어? 이거 설마 감동 모멘트였는데 내가 눈치 없이 깐 거야? 어떻게, 다시 한번 갈까?”
“아-아-, 역시 내가 죽을 때가 돼서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봄.”
인혁과 몇 마디 더 주고받고 있는데 다른 배우들이 하나둘 촬영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생님, 아버지. 오셨어요?”
“오냐 그래. 성불하러 왔단다.”
“부럽습니다, 선배님. 전 아무리 봐도 구천을 떠돌 각이던데.”
집사 박승도 역의 황민석과 미나모토가의 가주 다케오 역의 민영환이 중얼거린 말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껏 막내아들이 자신 몰래 독립군에게 정보를 빼내는 스파이 노릇을 한 것도 모자라 그가 애초에 자신의 자식도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미나모토 다케오는 박승도를 미끼로 이연을 잡으려다가 그와 리혁진의 손에 최후를 맞게 된다. 그리고 함께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어느샌가 이연의 든든한 오른팔이 되어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던 리혁진 또한 그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여기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예정이었다.
주연으로서 온갖 험한 촬영을 겪어 가며 극을 여기까지 이끌어 온 재이를 새삼 기특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황민석이 문득 중얼거렸다.
“크랭크 업하면 정 피디에게 거하게 한턱 얻어먹도록 해.”
“네?”
“안 그래도 날카롭게 생긴 녀석이 고생해서 아주 턱선으로 사람도 베게 생겼잖아. 네 덕에 정 피디 판타지는 망한다는 징크스도 벗어나게 됐으니 이참에 아주 톡톡히 벗겨 먹으라고.”
“아하하……. 네, 선생님.”
재이가 과찬이라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황민석이 못 미더운 듯한 얼굴로 옆에 선 인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거 한 번 찍고 나면 정신적인 소모가 장난 아니거든. 진짜 혼이 좀 갈려 나가는 기분이라. 특히 저거는 겉으로 티를 안 내는 타입이니까 인혁이 네가 옆에서 좀 챙겨 줘라.”
“네, 선생님.”
황민석이 턱짓으로 재이 쪽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인혁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있던 민영환이 부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와, 아들은 좋겠다, 천하의 황민석 선배님이 직접 저렇게 챙겨 주시고. 나 봐라, 구천을 떠돌 각이라는데 거들떠도 안 보시잖냐.”
그런 그의 말에 황민석이 기도 안 찬다는 듯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민영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원래 알아서 혼자 잘 챙기잖아. 아까 인터넷 보니까 벌써 차기작 얘기도 나오더만 여기서 뭘 더 어떻게 챙기라고.”
“에헤이, 그건 아직 그냥 설레발이고요, 선배님.”
“설레발은 무슨. 딱 보면 척이지. 귀신의 눈을 속여라.”
황민석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는 민영환의 모습을 보며 모두가 앞으로의 촬영에 대한 긴장을 조금 덜어 내고 있는 사이, 스태프가 스탠바이 사인을 보내왔다.
“그럼 이제 슬슬 가 보실까요.”
재이의 말에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둘씩 걸음을 옮겼다.
* * *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불길을 잡으려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고함으로 시끄러운 바깥과 달리 별채 내부에는 기묘하리만치 무거운 정적이 깊게 내리깔려 있었다. 벽에 걸린 액자에서부터 책상에 놓인 종이 한 장까지 언제나 병적으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던 공간은 여기저기 부서지고 망가져 이미 엉망이었다.
흰 대리석 바닥에 흥건히 고인 핏자국을 따라 걷자 그 끝자락에 이미 숨이 끊어진 듯 미동 없이 늘어져 있는 박승도의 모습이 있었다.
“…….”
미나모토 다케오가 파 놓은 함정인 것을 알면서도 박승도를 구하기 위해 저택으로 뛰어들었던 이연이 박승도의 시신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한 박자 늦게 도착한 리혁진이 멍하니 서 있는 이연에게 다급하게 달려가 한쪽 어깨를 붙잡아 흔들며 말했다.
“정신 차려요, 조장.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소. 미나모토 다케오 그자가…….”
콰콰쾅-
리혁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별채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뿌연 먼지가 가라앉고 반파된 건물의 잔해 속에서 이연이 휘청이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먼지투성이 얼굴 한쪽이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에 젖어 있었다. 이곳저곳 찢기고 터진 상처가 가득한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던 이연이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まだ死んでないとは。意外と根性あるじゃないか、連。”(아직 죽지 않았다니. 의외로 끈질기잖나, 렌.)
서늘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미나모토가의 가주이자 한때 아버지라 믿었던 남자, 미나모토 다케오였다. 그토록 아끼던 별채가 반파된 것을 보고도 별다른 감흥 없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이연을 잠시 바라보던 다케오가 이어 말했다.
“いや、もう滅華の組長と呼ぶべきか。” (아니, 이제 멸화의 조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貴様。” (네 이놈.)
폭발의 충격에서 깨어나자마자 본능처럼 찾아 들고 있던 검을 고쳐 쥐며 이연이 나직이 내뱉었다. 그 목소리에 낮게 깔린 증오를 느낀 다케오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한 발자국 다가오며 말했다.
“別邸も壊さざるを得なくなった。せっかく気に入ってたのに。勿体ない。” (덕분에 이 별채도 부술 수밖에 없게 되었잖아. 마음에 들었었는데 말이지. 아까워라.)
미나모토 다케오는 총독부에 줄을 대면서 동시에 거기서 빼낸 정보를 이용해 영국으로의 망명을 꾀하고 있었다. 뼛속까지 사업가인 그에게 제국과 천황이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패 정도의 의미밖에 지니지 않았다.
겉으로는 다방면의 사업을 통해 조선의 물자를 수탈해 제국과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그 자금을 세탁해 영국으로 망명한 뒤의 사업 설계에 한창이던 다케오의 계획은 보잘것없다 여겼던 셋째의 손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의 계획을 눈치챈 미나모토 렌이 아버지가 제국을 배신하려 한다며 경무국에 투서를 보내 공개적으로 미나모토가의 가주인 자신을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처음엔 셋째 아들이 생모의 죽음을 탓하려 벌인 일이라 여기던 다케오는 렌의 뒤를 캐던 중 멸화조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것이 개인적 복수를 가장한 독립운동의 일부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 후 서로를 파국으로 몰아세우던 두 사람은 이곳에서 결국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눈 채 마주 보게 되었다.
“急かすな。すぐあいつのところに送ってあげるから。” (서두를 것 없어. 금방 그 녀석이 있는 곳으로 보내 줄 테니까.)
다케오가 느긋하게 웃으며 검집에서 칼을 빼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케오의 몸이 이연을 덮치듯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채챙-
두 사람의 칼이 허공에서 맞붙으며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동안 팽팽한 공방이 이어졌다. 이연은 점점 버티기 힘들어짐을 느끼며 초조함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별채는 언제 완전히 무너질지 모를 상황이었다. 폭발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온몸의 근육이 이미 한계에 다다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대로는 얼마 못 버틸 터였다.
채챙- 챙-
챙그랑.
“크윽.”
이연이 잠시 방심한 찰나 다케오의 날카로운 일격이 이연의 방어를 뚫고 그대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 기세에 칼을 놓친 이연이 뒤로 급히 물러나며 비틀거렸다. 무방비 상태의 이연을 눈앞에 둔 다케오가 섬뜩한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これで終わりだ。” (이걸로 끝을 내 주마.)
이연의 머리 위로 칼을 높이 들어 올린 다케오가 내리치려던 그때.
타탕-
한 줄기 총성과 함께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칼을 한껏 들어 올리고 있던 다케오가 그 자세 그대로 허물어졌다. 본인 스스로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듯 의문 가득한 얼굴로 쓰러져 그대로 절명한 다케오의 시신을 잠시 바라보던 이연이 총성이 들려온 곳을 돌아보았다.
“리혁진!!!”
한계에 다다른 몸을 재촉해 뛰어간 곳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폭발에 휩쓸려 엉망인 몰골인 리혁진이 아직 연기가 채 식지 않은 권총을 쥔 손을 늘어뜨린 채 허물어지기 직전의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조장, 이번 건, 위험했소.”
그 말과 함께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은 리혁진을 달려가 부축하던 이연이 그의 복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흠칫하며 숨을 삼켰다.
“리혁진.”
“밖에서 오 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어서, 가시오.”
자신을 밀쳐 내는 그의 손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을 깨달은 이연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같이…….”
“아니.”
그의 팔을 잡아 어깨에 들쳐 메려는데 그 손을 잡아 뺀 리혁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제나 무표정하던 이연의 얼굴이 길 잃은 아이의 그것처럼 와락 일그러지는 것을 본 리혁진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경이 뭔지 아시오.”
리혁진의 뜬금없는 질문에 이연이 초조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이연에게 괜찮다는 듯 슬쩍 웃어 보인 리혁진이 이어 말했다.
“조장이, 앞장서서 걷는, 모습이오. 분명 나보다 작은, 양반의 뒷모습이, 어째 그리 단단해 보이는지.”
잠시 말을 멈춘 리혁진이 밭은 숨을 내뱉었다. 꽉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리혁진.”
“내게, 보여 주시오.”
이연의 말을 가로막은 리혁진이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내뱉었다.
“나는 여기 멈춰 서서, 지켜보겠소. 조장이,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아플 정도로 꽉 맞물려 있던 손아귀의 힘이 스륵 풀리는 느낌에 이연은 이를 악물었다. 아직은 울 때가 아니었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새어 나오려는 감정을 안으로 갈무리했다. 땀과 먼지, 그리고 피로 엉망인 리혁진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이연이 이윽고 몸을 일으켰다.
걸어 나가기 전, 잠시 뒤를 돌아본 그가 자신의 뒤에 잠들듯 기대 누운 리혁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밖을 향해 다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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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천천히 걷는 이연의 옆모습을 바짝 쫓았다.
모니터 너머로 그의 연기를 지켜보던 정 피디는 자신이 숨을 쉬는 것도 멈춘 채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피붙이처럼 생각했던 박승도와 스무 해 가까이 아버지라 믿었던 다케오, 그리고 새로 얻은 형제라고 여겼던 리혁진까지.
자신의 삶 속에서 제각각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잃은 이연이 뿜어내는 고독과 절망 그리고 슬픔.
그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슴 깊은 곳에 눌러 담은 채 폐허 속에서 걸어 나오는 이연의 모습은 정 피디가 이 드라마에서 담고 싶었던 이야기의 총체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겨우 스무 해도 채 살지 못한 녀석이 자신이 상상 속에서 그렸던 이연을 그대로 그려 낸 듯 연기하고 있는 모습에 정 피디는 감탄을 넘어서 전율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아무리 배우의 자질이 타고나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 스물도 안 된 녀석이 저런 눈빛이라니. 리혁진의 마지막 말을 되새기듯 고집스럽게 앞만을 응시하고 있는 이연의 눈빛이 주는 먹먹한 감정에 정 피디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주변이 모두 자신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뒤늦게 사인을 내렸다.
“컷. 오케이, 오케이입니다.”
오케이고말고.
정 피디는 뒤늦게 밀려오는 고양감에 모니터를 확인하러 다가오는 재이와 인혁 그리고 다른 배우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수고했어요. 다들. 우리 이연이, 혁진이! 수고 많았어! 아주 좋아. 아주 잘했어!”
정 피디의 입이 귀에 걸린 것을 확인한 재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컷 싸인이 안 나길래 NG인 줄 알고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요.”
“그래? 화면상으론 그렇게 안 보이던데?”
정 피디가 되묻는 말에 재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대꾸했다.
“저걸 다시 찍을 생각을 하니까. 어휴…….”
“천하의 재이 씨가 앓는 소리를 다 하고. 이번 씬이 빡세긴 했나 보네.”
“아까 황민석 선배님 말씀 못 들으셨어요? 저 드라마 찍으면서 고생한 것 때문에 살 너무 빠져서 이제 턱선으로 사람도 죽이겠다 하셨는데.”
리테이크 갈 땐 혁진이 손 빌릴 필요 없이 아버지 그냥 턱선으로 죽여 볼까요.
재이가 자신의 턱을 손으로 쓸어 보이며 중얼거리는 말에 정 피디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참신한데. 안타깝네, 이건 리테이크 없이 그냥 갈 거라 말이지.”
이건 건드리면 안 돼. 건드리면 동티난다고…….
혼자서 중얼거리며 무슨 보물이라도 대하듯 모니터 화면을 애정 가득한 손길로 쓰다듬는 정 피디의 모습에 모여 있던 스태프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재이 씨한테는 종방 후에 따로 내가 한턱 내야겠네.”
정 피디가 건넨 말에 재이가 다시 한번 자신의 턱을 쓸어 보이며 대꾸했다.
“이 턱선 되돌리려면 한턱 갖고는 안 되실 텐데.”
“아니, 재이 씨 아이돌이면서 그렇게 관리 안 해도 되는 거야?”
“제가 먹어도 잘 안 찌는 체질이라서요.”
재이의 대답에 정 피디가 정말이냐는 듯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인혁을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에 인혁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가성비 안 좋기로 저희 그룹 탑이에요. 피디님 각오하셔야 할 듯요.”
“저런.”
정 피디가 한 방 먹은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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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엔터] ZTBC 특집극 [멸화조] 방송사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 … OST 풀 패키지 달성
[스타 뉴스] 1분기 드라마 화제작 순위 … 인기와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압도적 1위 ZTBC 특집극 [멸화조]
[노컷 엔터] 안방극장에 이어 음원 차트 올킬 [멸화조] … 이연의 주제곡 [하얀 달] 차트 진입과 동시에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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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석의 말대로 혼을 갈아 넣은 듯한 연기와 정 피디 특유의 관조적인 연출이 맞물려 [멸화조]는 초반의 우려 섞인 반응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지막 방영 회차만을 남겨둔 오늘, 재이와 인혁은 미리 크랭크 업한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두 참석하는 종방연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인혁아, 재이는?”
메이크업을 위해 두 사람을 픽업하러 온 홍정수가 숙소 거실에 혼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인혁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자길래 형 올 때까지 좀 더 자라고 그냥 놔뒀는데. 이제 깨울까요?”
인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어, 막히기 전에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홍정수의 말에 인혁이 재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문을 여는 기척에 눈을 떴을 녀석이 제대로 곯아떨어졌는지 자신이 들어오는 소리에도 침대에 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한재이, 일어나. 나가야 할 시간이야.”
인혁은 자신의 말에도 깨어날 기색이 없어 보이는 녀석에 인상을 콱 찌푸렸다.
“…한재이?”
인혁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