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65화 (165/224)

#165

센트럴 파크의 여우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재이는 기억을 더듬었다.

뉴욕에 도착하고 일부러 공항까지 마중 나온 엠케이네 아버지를 따라 자신이 온다는 말에 일부러 새로 마련해 두셨다는 숙소에 가서 짐을 풀었을 때만 해도 부와 여유가 흘러넘치는 그야말로 성공한 자의 휴가가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장시간의 비행에 뻐근하게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주변 지리도 익힐 겸 가벼운 조깅을 나섰던 것까지도 좋았다.

미리 지도를 보고 익혀 둔 루트를 따라 은규에게서 받아온 다음 앨범 수록곡들을 들으며 가볍게 뛰고 있는데 거리 축제 라도 하는 듯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여행이란 역시 이런 맛으로 하는 거지.

재이는 천천히 속도를 줄여 걸으며 거리를 메운 여러 가지 상점들을 하나하나 신기한 듯 눈에 담았다.

“오 신기해.”

재이의 걸음을 멈춰 세운 것은 한 거리 예술가의 퍼포먼스였다. 그녀는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늘어놓은 페인트 통에 담아 뒀던 붓을 놀려 벽에 세워 둔 캔버스에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형상도 갖추지 않은 추상화였지만 얽히고설킨 선명한 색의 조화에서 곡에 실린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했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더니.’

재이는 여기저기 페인트로 얼룩덜룩한 얼굴을 하고서도 흥에 겨운 듯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자유분방하게 붓을 놀리고 있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귓가를 울리는 비트가 아티스트의 손놀림에 따라 캔버스에 유쾌하게 시각적으로 묻어나는 광경을 홀린 듯 쳐다보고 있는 동안 어느새 새로운 곡이 시작되었다.

“어? 이 곡은.”

귀에 익은 인트로에 재이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케이엠 소속 연습생이라면 애국가만큼이나 달달 외워 부르는 네버로스의 메가 히트곡 [Don’t mind]였다. 애초에 영미권 진출을 노리고 만들었던 곡인 만큼 빌보드에서도 나름 오랫동안 차트인 하면서 네버로스의 해외 진출을 성공으로 이끈 곡이기도 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 듯, 저도 모르게 박자에 맞춰 발을 까닥이고 있는 재이를 발견한 아티스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같이 출래?”

당황한 재이가 아티스트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알아본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어린 동양인이 아티스트의 기습적인 도발에 걸려들어 당황한 모양새를 즐거운 듯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재이는 살짝 망설였다. 그 사이 아티스트는 능숙하게 새로운 캔버스를 설치하고 이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재이는 결심을 굳히고 걸음을 옮기려다가 생각난 듯 바로 옆 좌판으로 몸을 돌렸다. 이쪽을 구경 중이던 상인에게 5달러짜리 지폐를 건네고 그가 팔고 있던 여우 가면을 집어 쓰고는 그녀의 옆에 섰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 어, 뭐지. 이거 생각보다 신나잖아.’

여우 가면 덕에 혹시 알아볼 사람이 생길까 싶던 불안감이 사라진 탓인지,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오히려 숨이 탁 트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맛에 히어로들이 다들 마스크를 쓰나. 재이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내키는 대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연습생 시절 뼈마디에 인이 박이도록 연습하던 동작들이 아닌, 머리에서 떠오르는 대로 흔드는 막춤에 가까운 자신의 움직임에 저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 노래에 이런 막춤을 추고 있는 게 나라는 걸 알면 우리 김 선생님, 뒷목 잡고 쓰러지실 텐데.’

[Don’t Mind]의 안무가 김 선생의 엄한 얼굴을 떠올린 재이가 여우 가면 아래서 킥킥 웃었다. 칼로 잰 듯 딱딱 맞아떨어지는 원래의 포인트인 안무 대신 엇박자가 날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일부러 더 힘을 빼고 흐느적대며 비트를 타자 보고 있던 사람 중 몇몇이 재미있는지 웃으며 환호하는 것이 보였다. 옆에서 그런 재이의 모습을 보고 있던 아티스트가 재이를 색색별의 페인트가 놓여 있는 쪽으로 잡아끌었다.

‘응? 나도 해 보라고 ??’

재이가 당황해서 멈칫하자 아티스트가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빠른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 캔버스값만 받을게.”

아, 그러니까 나 지금 낚인 거구나?

재이는 그제야 자신이 아티스트의 수법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뭐.’

마스크 안쪽에서 비죽 웃은 재이가 붓을 잡아 들었다 .

‘사양 않고.’

그리고는 대형 캔버스에 철퍽,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

.

.

‘썩 그럴듯한데?’

재이는 눈앞의 캔버스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렇게나 음악에 맞춰 내키는 대로 흰 캔버스에 색을 입히다 보니 어느새 곡이 끝나 있었다. 귓가에 울리는 박수 소리에 답답하게 시야를 가리는 마스크를 벗으려다 말고 주변을 둘러보니, 거리를 지나다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 중이던 사람들이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아티스트가 능숙하게 재이의 소매를 잡아끌고 사람들 앞으로 걸어 나와 우아하게 인사했다. 얼결에 그녀를 따라 꾸벅 인사하자 이 ‘공연’이 끝났음을 눈치챈 사람들이 하나둘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재이는 자신이 색을 입힌 [Don’t Mind] 앞에 서서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옆에 와서 나란히 선 아티스트의 시선이 자신의 그림에 머물러 있는 것에 왠지 멋쩍어진 재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때, 이 정도면 나도 아티스트로서 괜찮은 것 같아?”

“*그림보다 춤에 소질이 있는 건 확실해 보이네.”

딱 잘라 말하는 아티스트의 대답에 잠시 부풀어 올랐던 그림 신동의 꿈에서 깨어난 재이가 눈썹을 찡긋해 보이며 짐짓 상처받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너무하네. 나도 손님인데.”

“*이미 팔았으니까.”

태연하게 대꾸하며 한 손을 내미는 아티스트의 태도에 할 말이 없어진 재이가 헛웃음을 지으며 캔버스값을 지불했다.

“*그래도.”

“*응?”

“*특이하긴 해.”

아티스트의 말에 재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뭐가?”

“*사람들에게 시키면 대부분 여러 가지 색을 다양하게 섞어서 쓰려고 하는데.”

아티스트가 말을 멈추고 재이가 메꾼 캔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단 두 가지 색만 쓰는 경우는 드물거든. 너 혹시 무슨 강박증 같은 거 있니?”

“*강… 뭐?”

“*아냐, 아무것도. 그것보다.”

아티스트가 재이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물었다.

“*너 말이야, 시간 나면 아르바이트해 보지 않을래?”

살다 살다 거리 예술가에게 아르바이트 제의를 다 받아보네.

재이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대꾸했다.

“*불법적인 권유라면 사양인데.”

“*전혀. 심심하면 놀러 와 .”

그녀가 명함을 건넸다.

* * *

그리고 지금.

재이는 눈앞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더니. 지금의 자신이 바로 그 꼴이었다.

[뉴욕 모던 아트 컴퍼니 (NEW YORK MORDEN ART COMPANY)]

엠케이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NYMAC는 참신한 기획 전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곳으로 단순히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전시되어 일부 찾아오는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의 형태를 고민하는 젊은 집단이라는 듯 했다. 재이에게 명함을 건넨 사라 웨일스는 그 NYMAC에 소속된 아티스트였다.

사라는 ‘음악과의 소통’ (Interaction with Music)이라는 이번 행사의 테마에 따라 자신이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의 부스에서 바람잡이로 춤을 춰 줄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행사 자체는 센트럴 파크에서 거리 축제 형식으로 열릴 예정이니 가볍게 함께 즐길 마음으로 와도 된다는 권유에 솔깃해 버린 것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엄청 본격적이잖아.”

혹시 몰라 가져온 여우 가면을 꺼내 쓰면서 재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라의 설명에 센트럴 파크 한쪽에서 소소하게 여는 길거리 그림 축제 정도를 예상했던 재이는 넓은 잔디광장 하나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행사를 취재하러 온 카메라들을 두리번거리며 당황스러운 마음에 중얼거렸다.

사라의 부스 말고도 광장 이곳저곳에는 사라와 같은 NYMAC 소속 아티스트들의 부스가 몇 군데 더 자리 잡고 있었다. 재이가 여우 가면을 꺼내 쓰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라가 여우 가면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아이디어 마음에 드는데? 꼬마 손님들이 좋아하겠어.”

썼던 가면도 벗고 싶게 만들어지는 말인데, 그거.

재이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가 이어 말했다.

“*긴장할 것 없어. 그냥 재밌게 춤추고 논다고 생각하고 해 줘. 그게 이번 내 작품의 가장 큰 주제니까. 음악을 색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관객들이 ‘재밌는 경험’을 공유했다고 기억하게 만들고 싶거든. 그 과정에서 가능한 한 사람들을 여기 이 게스트 캔버스 쪽으로 유도해 주면 더 좋고.”

사라가 지도에 표시된 게스트 체험 코너를 손으로 짚어 보이며 말했다. 다시 만난 후, 자신이 여행객이며 영어에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는 설명을 한 재이를 위해 사라는 최대한 천천히 쉬운 말로 설명해 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사라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재이가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그들에게도 캔버스값만 받는 거야?”

“*플러스 아티스트 지원금 정도?”

“*아하.”

자신을 가리키며 한쪽 눈을 찡긋하는 사라의 말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재이가 물었다.

“*오늘 쓸 곡은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거야?”

“*생각 같아선 무작위로 하고 싶었는데.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 여기 이렇게 미리 뽑아 뒀지 .”

사라가 설명과 함께 오늘 쓸 플레이 리스트를 보여 주었다 . 재이도 익숙할 만큼 누구나 다 알만한 팝송 사이사이 눈에 띄는 것은 특이하게도 한국어가 섞인 노래 제목들이었다.

“*케이팝도 있네?”

심지어 우리 노래도 있어. 우린 아직 해외 진출도 안 했는데?

아니, 그런데도 날 못 알아본다니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냐?

재이가 내심 중얼거리며 사라에게 물었다.

“*아, 그거. 리스트는 사무국에 부탁해서 받았거든. 요새 붐이잖아, 케이팝. 우리 사무국 직원 중에도 몇 명 있지, 케이팝 마니아가.”

“*재미있네. 근데 이건 네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텐데?”

재이의 물음에 사라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상관없어. 오히려 재밌잖아? 나는 음악에서 느껴지는 대로 그렸는데, 나중에 보니 가사의 의미랑 정반대였다던가 하는 거.”

“*예술가다운 발상이네.”

“*사실 다른 부스들은 클래식이네 오페라네 하면서 완전 각 잡고 나왔거든. 팝을 쓰는 건 내 부스뿐이야.”

댄스 퍼포머를 쓰는 것도.

사라의 말에 재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다른 부스는 클래식 연주자를 부르거나 성악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기도 했다. 아예 퍼포머가 없는 곳들도 눈에 띄었다. 재이가 사라에게 물었다.

“*혼자 할 생각이었나 봐?”

“*모닝사이드 파크를 어슬렁거리던 여우를 보기 전까진 그럴 생각이었지.”

사라가 여우 가면을 쓴 재이를 바라보며 눈을 찡긋했다.

“*어깨가 무거운데.”

“*많이 팔면 보너스 줄게.”

사라의 말에 재이가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최선을 다할게요, 보스.”

“*하하. 기대할게.”

사라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재이는 처음 가졌던 어색함과 긴장감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뭐 어차피 놀러 왔는데. 실컷 놀고 간다고 생각하면 되지 뭐.

“*참, 나는 캔버스 무제한 무료 이용인 거 맞지? 나중에 내 일당에서 깐다고 하면 곤란한데?”

재이가 마지막으로 확인해야겠다는 듯 묻는 말에 사라가 당황한 듯 얼굴을 찌푸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쳇, 들켰네.”

“*뭐?”

“*하하, 농담이야. 페인트도 마음껏 써도 되니 오늘은 두 가지 말고 더 많은 색을 써 보라고.”

사라가 웃으며 엄지를 척 들어 올려 보였다. 재이는 안심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여우 가면을 고쳐 썼다.

* * *

음악이 시작되고 비트에 맞춰 재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대는 보도블록, 스포트라이트는 내리쬐는 햇살.

알아보는 사람 없는 곳에서 혼자 추는 춤.

정해진 안무 없이 생각나는 대로 리듬에 몸을 맞춰 흔드는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가슴 속에서 저도 모르고 있던 열기가 피어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상하고 우아한 음악들 사이로 퍼지는 강렬한 팝사운드에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이쪽으로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지자 짜릿한 기분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재이는 새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진짜 좋아하는구나, 이런 거.’

주변을 둘러보다 여우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신기한 듯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첫 번째 손님 발견.’

- 원래 손님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작은 상전을 공략해야 하는 법이라고.

까마득한 기억 속에서 자신에게 류트를 처음 가르쳐 줬던 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재이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아이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는 손을 내밀었다.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잊은 채로 이쪽을 쳐다보던 아이가 놀란 듯,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에 재이가 뒤로 달려가 붓에 한가득 물감을 묻혀 양손에 하나씩 들고 왔다.

- 어느 쪽이 좋아?

아이에게 양손을 내밀어 보이며 고개를 갸웃하자 아이가 머뭇머뭇 상큼한 초록색이 가득 묻은 붓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이에게 붓을 쥐여 주고 경쾌한 스텝으로 가까이에 설치된 캔버스 쪽으로 아이를 유도하면서 재이가 먼저 흰 캔버스 가득 물감을 칠했다.

쿵짝쿵짝에 맞춰 리듬감 있게 붓질을 하는 재이를 보고 있던 아이가 재밌겠다는 듯 눈을 빛내며 따라 하기 시작했다. 뒤따라온 아이의 부모가 어색하게 웃는 것을 본 재이가 눈치껏 부모들에게도 붓을 건네며 아이 쪽을 가리켰다. 아이는 이미 들고 있던 붓을 내려놓고 캔버스 여기저기 신나게 물감 가득한 손자국을 내고 있었다. 부모가 아이를 따라 캔버스에 다가가는 것을 확인한 재이가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첫 손님의 즐거운 웃음소리에 호기심이 동한 듯 걸음을 멈추고 있는 다른 꼬마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만선의 예감.’

신난 여우의 스텝이 한층 더 경쾌해졌다.

.

.

.

“후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재이는 여우 가면을 벗어 던지고 들고 있던 생수병의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아직 쌀쌀한 주변 공기가 오히려 기분 좋게 느껴질 정도로 열기에 가득 차 있던 재이는 목을 타고 흐르는 시원한 느낌에 겨우 흥분이 좀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한 듯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던 관객들이 하나둘 몰려들어 사라의 부스 주변은 얼마 안 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행사 지원 요원들이 관객들을 유도해야 할 정도로 몰리는 바람에 열기가 과열되는 것을 우려한 운영 측이 사라와 자신에게 잠시 휴장할 것을 요청했을 정도였다. 그동안 흥에 취해 지칠 줄 모르고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재이도 그제야 인적이 조금 뜸한 곳으로 나와 겨우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도 참. 이게 뭐라고 이걸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

재이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지금 상황에 헛웃음을 지었다. 기껏 편하게 쉬라고 보내놨더니 뜬금없이 아르바이트에 뛰어든 것도 모자라 그깟 보너스 좀 더 받겠다고 발에 땀이 나도록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이라니.

“근데 그건 기분 좋았어. 꼭 버스킹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단 말이지.”

자신의 춤에 하나둘 걸음을 멈춘 사람들과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캔버스에 색깔을 입혀 가는 느낌이란. 처음엔 춤만 추려던 게 흥에 겨워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관객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있었다. 자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유쾌한 감정적 교류에 또다시 심장이 두근대는 듯한 기분이었다.

‘천상 사람들과 어울려 춤추고 노래할 팔자인가 보네.’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검을 쥐고 전장을 누비던 리온의 삶이나 기댈 곳 없이 홀로 외롭던 재이의 삶 모두 이 두근대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위한 윤회의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이봐.”

재이는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나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 여우 소년 . 혹시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 없어?”

“아…….”

연습생 경력 n년, 아이돌 경력 2년 차 현역 프로 가수 한재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당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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