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69화 (169/224)

#169

환심이의 드림캐처

- 아니 그걸 찼단 말이야?

화면 너머로 남궁찬의 경악스러운 목소리가 널찍한 실내에 울려 퍼졌다.

사라의 아틀리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온 재이는 하루에 한 번씩 ‘휴가 보고’라는 명목으로 강요당한 멤버들과의 영상 통화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있는 중이었다.

현대판 신데렐라 찾기라는 평과 함께 인터넷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진 아스트로넛 레코드의 [Finding the Fox] 프로젝트는 그들이 찾는 여우 소년의 정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슬슬 반향이 일고 있었다.

멤버들은 그 메이저 레이블이 찾고 있던 ‘여우 소년’이 재이라는 것에 1차로 놀라고 재이가 조이 키넌의 미국 진출 제안을 대놓고 거절했다는 말에 2차로 경악했다.

- 한재이 미친 거 아니야?

- 역시 우리가 따라갔어야 했어.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 제대로 폭주 중이잖아.

엠케이가 중얼거린 말에 은규가 옆에서 거들었다.

- 심 팀장님은 옆에서 안 말리고 뭐 하셨대? 아니 그것보다 이걸 대표님이 허락하셨다고?

- 넝쿨째 굴러온 호박을 발로 차도 정도가 있지.

- 발로 차다 못해 아주 뿌리까지 뽑아 버린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남궁찬과 이환, 그리고 잠자코 있던 인혁까지 한마디씩 거들자 재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애초에 너희도 내가 그 사람들이 밀고 싶어 하는 그런 이미지 아닌 거 알잖아.”

재이의 말에 화면 너머가 짧은 침묵에 휩싸였다. 찰나의 정적 끝에 엠케이가 중얼거렸다.

- …하긴. 신비롭고 자유로운 봄의 여우라니.

그러자 이환과 남궁찬이 덧붙였다.

- 겨울의 늑대면 몰라도.

- 어둠의 뱀파이어라던가.

은규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 난 또 우리 놔두고 혼자만 미국 데뷔하는 건 싫다고 의리 지킨 줄 알았더니.

그 말에 멤버들의 얼굴에 미묘하게 균열이 생겼다. 은규의 한마디에 다들 마음 한구석에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려는 찰나, 재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뭘 지켜?”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남궁찬이 한숨처럼 내뱉었다.

- …어휴 심은규 설레발에 하마터면 감동의 도가니탕 먹을 뻔.

그러자 이환과 엠케이, 인혁이 기다렸다는 듯 차례차례 덧붙였다.

- 으어, 생각만 해도 소오름.

- 안 돼 우리는 비즈니스 관계가 컨셉이잖아.

- 오래가려면 역시 동업자 마인드여야지.

미간을 찌푸린 채 소름 돋았다는 듯 제 팔뚝을 문지르던 이환이 문득 중얼거렸다.

- 잠깐, 아니다. 한재이 미국 가도 되는데. 그럼 내가 센터잖아.

- 또 나왔네. 저 센터병.

이환의 말에 엠케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데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은규가 못 참겠다는 듯 이환을 향해 툭 내뱉었다.

-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보컬인데 어째서 한재이가 빠지면 당연히 네가 센터일 거라고 그렇게 확신하는 거지?

- 야 그건 아니지. 한재이면 몰라도 너냐 나냐 하면 당연히 나 아니냐?

- 환아 거울은 보고 얘기하냐.

- 일단 마이크부터 잡고 얘기할까, 우리?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는 이환과 은규 두 사람의 실랑이를 듣고 있던 재이가 어이없다는 듯 말리며 말했다.

- 잠깐, 내가 나갈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쓸데없는 가정으로 싸우지들 말지?

- 아무튼, 그래서 아예 없었던 일로 하는 거야? 아스트로넛이 그렇게 대대적으로 광고를 때렸는데?

인혁이 눈치껏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재이에게 물었다.

- 아 그게 말이지.

인혁의 말에 재이가 그제야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떠올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

.

.

“*어질어질하군.”

재이의 확고한 거절 의사를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던 조이 키넌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인걸.”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인 키넌이 재이에게 말했다.

“*얕잡아 보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였다면 사과하지.”

자신의 말에 순순히 수긍하고는 짧게 사과의 말까지 건네는 키넌의 태도가 의외였던 듯 재이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런 재이의 얼굴을 쳐다본 키넌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내가 사과할 줄 몰랐던 거야 혹시?”

“*부정하기 힘드네요.”

빈말이라도 아니라고 하지 않는 재이의 태도에 키넌이 헛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 첫인상이 그것밖에 안 됐다니 좀 서운한데.”

“*안심하세요. 조금 전 말씀으로 일단 최악에서는 벗어났어요.”

재이의 말에 이제 정말 항복이라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키넌이 웃으며 심진우에게 말했다.

“*하하 이거, 아주 이가 날카로운 여우였구만. 미스터 심이 왜 다 맡기고 앉아만 있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은데.”

“*재이가 또래에 비해 좀 야무진 편이긴 하죠.”

두 번 야무졌다간 이쪽이 산 채로 잡아먹히겠군.

키넌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그때까지 짓고 있던 웃음기를 싹 지우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빈손으로 물러나기엔 내가 좀 너무 아쉬울 것 같은데.”

키넌의 진지한 눈빛에 재이와 심진우가 자세를 바로 했다.

.

.

.

- 아니 내가 지금 제대로 들었나?

재이의 설명을 듣고 있던 엠케이가 중얼거렸다. 다른 멤버들도 의외이긴 마찬가지였는지 화면에 옹기종기 들이댄 얼굴들이 제각각 얼빠진 표정으로 멈춰 있었다.

키넌의 제안은 간단했다.

원래 여우와의 계약이 성사되면 자신과 듀엣으로 진행하려고 이미 작업에 들어간 곡이 있다며 그것을 자신의 솔로곡으로 재작업하는 대신 재이가 여우로서 뮤직비디오에 잠깐 출연해 주면 안 되겠냐는 이야기였다. 물론 한재이가 아닌 센트럴 파크의 여우 소년으로 출연하는 것이니 정체가 드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솔로 협업에 대한 제안을 거절하기는 했지만 조이 키넌이라는 거물급 인사와의 연결 고리를 이대로 놓치기는 아쉬웠던 재이와 심진우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제안이었다.

- 남궁찬 내 머리 좀 쳐 봐 봐. 오늘 연습이 너무 빡셌는지 나 지금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

빡-

이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남궁찬의 찰진 스냅에 멍한 표정으로 재이를 쳐다보고 있던 멤버들의 표정에 그제야 제각각 활기가 돌아왔다.

- 아악! 야 치란다고 진짜 치냐!

- 아니 그럼 가짜 치냐고. 쳐 달랄 땐 언제고!

- 와, 나 뒤통수 함몰된 듯, 심은규, 여기 좀 만져 봐, 만져 봐!

- 아 시끄러워, 싸울 거면 저기 구석 가서 해, 저기. 그래서 한재이, 지금 한 말 진짜야?

“그럼 가짜겠냐.”

서로 투닥대는 이환과 남궁찬을 화면 밖으로 밀어낸 엠케이가 묻는 말에 재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어이없네. 그래서 조이 키넌 신곡 뮤비에 너도 나올 거라고?

“얼굴은 안 나오니까. 아마 봐도 나인 줄은 모를걸.”

- 아니 그래도 결국 나오는 건 나오는 거잖아.

“뭐, 그건 그렇지.”

재이의 대답에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들이민 남궁찬과 이환이 앞다투어 끼어들었다.

- 아까는 깠다더니! 의리 어디 갔어! 의리!

- 역시 한재이 그 와중에도 빼먹을 건 빼먹고 왔다는 거네? 그 조이 키넌을 상대로?

아니, 이쪽이 빼먹기도 전에 저쪽이 제 손으로 빼 주더라니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재이의 모습을 보고 있던 인혁이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 그럼 남은 일정 동안 그쪽 작업 들어갔다가- 뭐 픽처스 들러서 돌아오는 거야?

“아마 그럴 듯. 조이 말로는 이미 곡은 어느 정도 작업 진행되어 있던 상태라고 나 여기 있는 사이에 후딱 내 파트만 먼저 찍고 나머지 진행할 수 있게 스케줄 조율하겠다더라고.”

덕분에 내일부터 얼결에 그쪽으로 출근이라고.

재이의 혼잣말을 듣고 있던 은규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 아 맞다, 한재이. 대본 받았지?

“아? 어어. 김 작가님이 메일로 보내신 거 말이지? 근데 거의 비어 있던데?”

- 원래 대본을 꽉 차게 써 주시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어차피 반은 근황 토크기도 하고.

- 뭔데? 무슨 얘기야?

재이와 은규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엠케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끼어들었다.

“아, 환심이네 라디오.”

- 아, 그게 벌써 내일이야?

- 한재이가 일만 안 벌였어도 느긋하게 쉬다가 잠깐 나가는 느낌이었을 텐데.

- 이 무슨 저기 가서도 분 단위 스케줄.

재이의 대답에 엠케이가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은규와 이환이 번갈아서 중얼거렸다. 재이의 휴가는 대외적으로는 재재님의 용사 이야기 애니메이션 작업을 확인하기 위한 개인 출장이었으나 컴백을 목전에 둔 상황이라는 점에서 눈치 빠른 팬들을 중심으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재이의 건강 이상설은 그동안 팬덤 안에서도 꾸준히 돌던 화제이기 때문에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긴 했다. 파티 프로모션을 총괄하는 심진우가 ‘픽쳐스 이외의 스케줄은 절대 잡지 말고 쉬게 하라’는 문 대표와 장 이사의 지시에도 굴하지 않고 스케줄을 욱여넣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고작 몇 분 안 되는 전화 통화에 불과하지만, 재이가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팬들은 걱정을 조금 내려놓을 터였다.

라디오 출연은 팬들의 걱정과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쓸데없는 잡음을 미리 방지하는 동시에 쉬러 간 재이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고심한 끝에 내놓은 답이었다.

SNS 라이브처럼 얼굴까지 모두 다 공개해야 하는 매체들보다는 라디오를 통한 짧은 전화 통화 쪽이 그나마 부담이 덜할 것이라는 심진우 나름의 배려 아닌 배려가 담겨 있었다. 결국, 이 라디오 출연은 재이가 뉴욕에 온 이후 픽처스 방문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잡혀 있던 공식 스케줄이었다.

…갑작스럽게 여우 소년 관련 일정이 추가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 자업자득이 따로 없지. 누가 판 무덤이냐고 저게.

- 동정의 여지가 없다 진짜.

남궁찬과 엠케이까지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자 재이가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나라고 일이 이렇게 커질 줄 알았겠냐고. 내가 가장 큰 피해자라니까?”

- 그러게 애초에 거기까지 가서 알바를 왜 했냐고. 그냥 얌전히 좀 있지.

“그건…….”

인혁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재이가 머뭇대자 그 모습을 본 이환이 말했다.

- 이미 엎질러진 물인 걸 어쩌겠냐. 그보다, 우리 스타일 알지? 내일 곡 리퀘스트 들어갈지 모르니까 기타 준비 꼭 해 놔.

“그건 내일 기어코 노래를 시키겠단 얘기네? 언제는 자유롭게 그냥 근황 토크나 하면 된다더니.”

- 천하의 한재이를 불러 놓고 노래도 안 시키고 그냥 보내면 팬분들께서 서운해하시지 않겠냐.

기왕 들어가는 스케줄, 팬서비스 확실하게 부탁한다?

억울하다는 듯 투덜대는 재이의 말에 이환이 빙글빙글 웃으며 덧붙였다.

* * *

다음날 SBC FM 라디오 [이환, 심은규의 드림캐처]

- 자, 여러분. 오늘은 아주 특별한 분과 전화 통화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 그렇죠. 저희도 이분 직접 뵌 지 좀 됐죠?

이환과 은규가 전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주거니 받거니 멘트를 시작하자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라디오 채팅방에 코멘트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와, 채팅창 글 올라오는 속도 보세요, 저 아직 게스트분이 누군지 소개도 안 했는데?

- 오늘 이거 들으려고 아침부터 라디오 켜 놓고 기다리셨다고요? 진짜? 지금이 밤 열 시 반인데?

- 어, 너무 뜸 들이면 ‘그분’께서 노여워하실지도 모른다고. 와, 이분 예리하시네.

- 아하하, 자 그럼 더 이상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오늘 게스트분을 연결해 볼까요.

이환과 은규가 유리창 너머 피디의 사인에 따라 전화 인터뷰 상대를 불렀다.

- 재이 씨-

- 한재이 씨, 나와주세요-

그리고 전화 연결 특유의 탁한 느낌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힘찬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울려 퍼졌다.

“안녕하세요! 드림캐처 청취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파티의 한재이입니다!”

- 이야, 한재이 씨 오랜만이에요.

- 와, 재이 씨 잘 지내고 있죠?

- 혹시 모르실 청취자분들을 위해 설명해 드리자면 재이 씨는 지금 잠시 해외 출장 중입니다.

- 저희를 버리고 거기까지 가더니 워커홀릭의 버릇을 못 고치고 거기서도 일을 사서 하고 있다는 소문이죠.

이환과 은규의 소개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재이가 입을 열었다.

“규디랑 환디도 잘 지내죠? 규디는 걱정 없지만 환디는 좀 걱정인데.”

- 오, 인사하자마자 공격 들어오시나요?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시죠?

“아까 인혁 씨랑 문자 보냈는데 환디가 요새도 맨날 아침에 안 일어나고 버틴다고.”

- 아 그건.

- 하하하, 맞아요. 환디 진짜 아침에 안 일어나요. 재이 씨의 모닝 킥이 없으니까 아무도 못 말려요. 오죽하면 깨우기 힘든 거로 파티 내에서 환디랑 쌍벽을 이루는 엠케이 씨도 짜증 낸다니까요. 환디 아직도 자느냐고.

- 규디, 그런 사생활 토크 자제 좀 해주시죠? 흠흠

재이의 등장으로 채팅창에 한층 활력이 붙은 가운데 근황 토크가 이어지고, 피디의 사인을 받은 이환이 입을 열었다.

- 그럼 이쯤에서 천하의 재비스도 피해 갈 수 없는 환디의 돌발 퀘스트!

- 자, 오늘의 퀘스트는 뭐죠?

- 가수가 라디오에 나왔으면 무엇? 그쵸. 바로 노래죠. 오늘은 1388님께 받은 퀘스트입니다.

이환의 흥겨운 목소리가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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