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비즈니스 마인드가 팀의 모토라서
“와, 나 좀 전에 완전 쫄았잖아.”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며 자신들을 닦아세우던 재이가 카메라 불이 꺼지는 것과 동시에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 오는 것에 박윤섭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하하, 죄송해요. 피디님이 오프닝에서 제대로 힘줘서 들어가고 싶다고 하시는 바람에…….”
“진짜 소문대로 예능계 블루칩이네. 손님들 앞에서 공손하게 두 손 맞잡고 서 있는 윤섭이 형을 보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자신의 말에 소탈하게 웃으며 조금 전 상황을 깔끔하게 모두 피디에게 떠넘기는 재이를 향해 리키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 것을 보고 박윤섭이 투덜거렸다.
“그러는 너도 찍소리 못 하고 옆에 서 있었잖아.”
“형이 이빨도 안 먹히는데 내가 별수 있겠냐고요.”
“재이 씨가 저렇게 고단수일 줄 몰랐지. 이건 나중에 인혁이랑 얘기를 좀 해 봐야겠다. 사전에 귀띔이라도 좀 해 줬으면 우리도 준비를 했을 거 아니냐고.”
“맞아요, 맞아요. 어쩐지 우리가 스케줄 짤 때 인혁이 그 녀석 아무 말 없이 빙글빙글 웃고만 있더라니.”
박윤섭과 리키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소리를 듣고 있던 재이가 웃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그럼 스케줄은 새로 짜 주시는 거로 알겠습니다?”
“어? 어어. 그, 그럼 그럼.”
분명 웃는 얼굴로 부드럽게 부탁하는 얼굴인데 묘하게 느껴지는 압박감에 박윤섭이 잠시 주춤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리키가 옆에 서 있던 이환에게 몸을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이환 씨,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재이 씨 말이야, 원래 웃을 때 저렇게 입만 웃나?”
“하하, 쟤가 좀. 저럴 때는 그냥 하라는 대로 하시면 돼요.”
그러면 적어도 물어뜯지는 않더라고요.
이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리키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엠티 하우스는 입구에서 돌담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야 하는 야트막한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정갈하게 정비된 자갈길을 따라 오르던 사람들은 돌담 한쪽에 아기자기하게 쌓여 있는 돌탑들을 발견하고는 잠시 걸음을 멈춰 섰다.
“와 저기 저쪽에 쌓아 놓은 것 좀 봐.”
“엄청 공들였나 보네. 되게 간절했나 보다.”
긴 세월 동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쌓였다가 무너져내리기를 반복해 온 돌무덤들 사이에서 가지런히 쌓아 올린 돌탑 여섯 개를 발견한 이환과 은규가 주고받는 소리에 그들을 돌아본 리키가 웃으며 말했다.
“거기 그거 인혁이가 만든 거야. 여기가 예전에 이곳 주민분들이 돌탑 쌓아 소원 비는 명당자리였다는 소리 듣더니 촬영 올 때마다 하나씩 쌓더라고.”
리키의 설명에 돌탑을 구경하던 세 녀석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멤버들 인원수대로 하나씩 쌓은 거라던데?”
리키의 말에 세 사람의 시선이 다시 한번 가지런히 쌓아 올려진 돌탑들을 향했다. 한눈에 봐도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촘촘히 쌓아 올린 여섯 개의 돌탑들을 잠시 감상하듯 가까이서 들여다보던 세 사람이 차례차례 입을 열었다.
“…헐.”
“우리한텐 미신에 기대지 말라고 하더니.”
“그럴 시간 있으면 안무 연습이나 한 번 더 하라더니만.”
짧은 감탄사를 내뱉은 재이를 시작으로 은규와 이환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감동한 표정을 내심 기대하고 있던 리키와 박윤섭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이환이 이어 말했다.
“이래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니까.”
“그 덩치에 저기서 쪼그리고 앉아서 돌탑 쌓고 있었을 거 생각하면.”
“…그만 생각하자, 정신 건강에 해로워.”
은규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재이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나머지 둘을 바라보던 리키가 재미있다는 듯 눈을 빛내며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걷고 있던 이환에게 물었다.
“인혁이가 여기 올 때마다 엄청 공들여 쌓길래 되게 끈끈한 사이인 줄 알았더니 또 그렇지도 않은가 봐?”
그의 말을 들은 이환이 얼굴을 팍 찡그리며 말했다.
“아니 무슨 그런 섬뜩한 말씀을.”
“저희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팀 모토라서.”
“차인혁이 그냥 분량이 고팠던 거 아닐까요, 혹시.”
이환이 중얼거리는 옆에서 재이와 은규가 별 감흥 없다는 듯 건조하게 덧붙이는 말에 리키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비즈니스적 관계라니. 요새는 아이돌이 그런 거 그냥 대놓고 말하는 편이야? 팬들이 싫어하지 않아?”
그러자 은규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저희 팬분들은 이미 다 아시는데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솔직한 게 최고예요. 비즈니스의 기본이 원래 정직과 신뢰잖아요.”
조금 전까지 태연하게 자신들 둘을 닦아세우던 녀석과 동일 인물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렇게 이야기하는 재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리키와 박윤섭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비즈니스 마인드라더니.”
“사이만 좋아 보이는데요.”
엠티 하우스 안.
건물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인혁과 합류한 세 사람이 그를 둘러싸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박윤섭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리키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네 사람이 모여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차인혁을 둘러싸고 선 세 명은 한참 무언가에 관해 이야기 중이었다. 중간중간 한두 명이 인상을 찌푸리면 다른 한둘이 허리를 접어 가며 웃는 것이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왠지 다른 사람들이 섣불리 끼어들기 힘든 자신들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탓에 박윤섭과 리키, 그리고 한진섭은 대화에 끼어드는 대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진짜라고, 내가 세어 봤다니까. 다른 녀석들 건 다 스무 개였는데 내 것만 열여덟 개였다고.”
이환이 눈썹을 팍 찌푸리며 내뱉은 말에 나머지 셋이 어이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이환은 조금 전 하우스 입구에서 본 여섯 돌탑에 대해 그것들의 제작자인 인혁을 상대로 불만을 토로하는 중이었다.
“와 이환 집착 쩐다. 그 사이에 그걸 다 센 거야?”
“아니 그것보다 그 돌멩이 열여덟 개짜리가 네 거인 줄은 어떻게 알고? 거기 어디에 우리 이름이라도 쓰여 있었나? 난 못 본 것 같은데?”
재이와 은규가 한마디씩 하자 이환이 의기양양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척 보면 딱이지. 제일 커다란 돌 쓴 게 남궁찬이고 제일 작은 게 엠케이고, 제일 매끈한 돌 얹어 놓은 게 차인혁 자기 거고, 한재이 거는 맨 위에 뭐 구슬 같은 것도 얹어 줬더만 왜 내 건 개수도 안 맞춰 줬냐고.”
이환의 말에 인혁이 진심으로 놀랐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런 인혁의 표정을 확인한 은규가 다급한 목소리로 이환을 돌아보며 물었다.
“내 건? 내 거 빠졌잖아.”
“거기서 눈에 안 띄게 제일 평범한 게 네 거.”
“와, 너무해.”
“내가 너무하냐, 차인혁이 너무한 거지.”
특유의 팔자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중얼거리는 은규에게 이환이 비난의 화살을 인혁에게로 돌렸다.
“리더가 돼 가지고 멤버를 차별하고 말이야.”
진짜 내가 가위바위보만 아니었어도.
이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인혁이 눈썹을 꿈틀하고는 차갑게 툭 내뱉었다.
“뭔데, 그럼 지금이라도 이환 네가 리더 하던가.”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지금.”
“차인혁, 이환이 네 애정이 고프단다. 듬뿍 좀 줘라.”
옆에서 보고 있던 재이가 피식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으으으, 그런 뜻이 아니라니까.”
“아 시끄럽고, 왔으면 얼른 짐이나 풀고 스케줄이나 확인하던가.”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는 시늉을 하며 몸부림치는 이환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인혁이 내뱉은 말에 은규가 미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거 올라오기 전에 다 찼어.”
“차? 누가? 뭘?”
인혁이 되묻는 말에 은규가 태평한 얼굴로 실내 장식을 구경 중인 재이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스케줄. 올라오기 전에 여기 계신 진상 손님께서 보시고 마음에 안 드니까 처음부터 다시 다 짜 오라고 그 자리에서 반려 멕이셨다고.”
“헐, 그사이에 벌써 거기까지 했냐.”
인혁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말에 조금 진정한듯한 이환이 타박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차인혁 너는 저 두 분이 헤매실 동안 옆에서 뭐 했냐고. 그런 스케줄 표를 받으면 한재이 저게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면서 저렇게 짜실 동안 그걸 보고만 있었던 거냐고, 설마.”
“그러게. 한재이 스타일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가만 보면 차인혁 쟤가 제일 나쁘다니까.”
이환과 은규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신을 몰아가는 것에 인혁이 어이없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 사이 틈을 찾은 하이에나처럼 리키가 슬쩍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저기… 얘기들 다 끝나셨으면 진행을 좀 해도 될까요.”
“앗,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그냥 두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는 스타일이라.”
은규가 꾸벅 인사하며 대답하자 재이가 기다렸다는 듯 리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스케줄은 새로 나왔어요?”
…어째서 이 어린 녀석에게서 영업맨 시절 내 얼굴만 보면 쪼아 대던 부장님과 같은 향기가 나는 거지.
리키는 무명 시절 잠시 몸담았던 회사에서 부하들을 쪼는 맛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던 호랑이 부장님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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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조금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엠티 하우스]에 오신 파티의 보컬 라인 여러분, 환영합니다!!”
박윤섭의 멘트에 맞춰 스태프들과 출연진들의 박수 속에 재이와 은규, 그리고 이환이 꾸벅 인사했다. 리키가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신청하신 [파티 보컬 라인 단합대회]의 주제는 [팀워크]. 여러분의 엠티 일정은 이 [팀워크]를 컨셉으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잠시 말을 끊고 힐끔, 한 부장. 아니 재이의 눈치를 살핀 리키가 말을 이었다.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미 컨펌을 받았음에도 저 왠지 모르게 서늘하게 느껴지는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자니 긴장으로 입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일단 오늘은 저녁 식사 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에 엠티에서 빠질 수 없는 나이트 액티비티! 담력 훈련이 이어지겠습니다. 이쪽 산 너머에 오랫동안 방치된 폐사당이 하나 있거든요. 여기 주민분들 말로는 보릿고개가 심할 때 견디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고들 하시더라고요. 네, 이 주변 터가 좀 그래요. 어때요, 갑자기 좀 으스스하죠?”
설명을 듣고 있던 은규가 눈을 찌푸리며 몸을 움츠리는 것을 본 리키가 은규를 따라 오싹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어 말했다.
“그러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오늘 원래 예정해 뒀던 다른 일정들은 우리 보컬 라인 여러분들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삭제했으니까 이거 촬영이 끝나면 돌아와서 그대로 편히 쉬시면 되겠네요, 하하. 일단은 저희가 저녁을 준비할 때까지 잠깐 쉬고들 계세요.”
리키의 말을 신호로 한진섭 셰프와 박윤섭, 그리고 인혁이 저녁 준비를 위해 자리를 옮기려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재이가 문득 중얼거렸다.
“…괜찮을까.”
“응? 재이 씨, 혹시 담력 시험이 걱정되는 거야?”
재미있는 건수를 발견했다는 듯 리키가 눈을 빛내며 묻는 말에 재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담력 시험이요? 아뇨.”
“어, 그게 아니라면 방금 그 말은.”
당황한 리키가 말을 흐리는 것에 재이가 턱짓으로 주방으로 들어가고 있는 인혁의 등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쟤요. 차인혁. 쟤 저희 숙소에서는 주방 출입 금지인데.”
“뭐?”
리키가 되묻는 말에 은규와 이환이 걱정스럽다는 듯 덧붙였다.
“그러게. 쟤 저렇게 그냥 막 들여보내도 되는 건가.”
“여기 그릇 혹시 다 플라스틱 아니면 스테인리스밖에 안 쓰시나요?”
“하하……. 인혁이가 숙소에서는 뭘 잘 깨 먹나 봐?”
리키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잘 깨기만 하게요? 엎고 흘리고. 아주 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 건 다 하죠.”
재이가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자 은규가 거들었다.
“오죽하면 쟨 그냥 디저트 담당이라니까요.”
“그것도 뭐 만들고 그런 거 아니고 그냥 밖에 나가서 사 오는 거로요.”
“그나마 돈이라도 쓸 줄 아는 녀석이라 다행이지.”
이환에 이어 재이가 내뱉은 가차 없는 코멘트에 리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보면 비즈니스 관계가 맞는 것도 같은데.”
“아 근데.”
리키의 말을 끊으며 재이가 생각났다는 듯 재차 입을 열었다.
“‘밖안바’니까 안 샐 수도 있겠네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밖에서는 안 새는 바가지’. 차인혁 바가지는 선택적으로 새거든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키의 주변에서 이환과 은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오늘은 괜찮을 듯.”
“출연료 모두 그릇값으로 물고 다니는 거 아닌가, 하고 순간 걱정했는데. 다행이지 뭐야.”
이환의 말에 나머지 둘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리키가 더 이상 이해하기를 포기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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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 담력 훈련이 곧 시작되겠습니다!!!”
기적적으로 한 방울도 새지 않은 ‘밖안바’ 차인혁의 완벽한 보조에 한진섭 셰프가 만들어 낸 영양 밸런스 좋은 저녁을 먹고 잠시 각자 휴식을 취한 세 사람은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산속 하우스 뒷문에 모여 섰다. 진행을 맡은 리키가 말을 이었다.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듯 저 위의 사당은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지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올라오시면서 보셨던 그 돌무덤도 사실 여기 자신의 부모와 아이들을 먼저 보낸 사람들이 그들의 명복을 빌고 가던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죠.”
“저 말, 진짜일까.”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리키를 쳐다보고 있던 은규가 나직이 속삭인 말에 재이가 태연히 앞을 바라본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심은규 아직 멀었네. 그걸 믿냐.”
“아니 그래도.”
“설령 그랬다고 해도 벌써 몇백 년 전 얘기일 텐데.”
재이의 말에 은규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래도, 왠지 으스스하단 말이야.’
입 밖에 내면 또 플래그네 뭐네 타박만 받을 게 뻔하다는 생각에 차마 말은 못 하고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며 은규가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