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80화 (180/224)

#180

음유의 진가는 물리력

- 진짜 이상한 놈들이에요.

- 우리 같았으면 애저녁에 멱살 잡고 치고받고 싸웠을 텐데.

- 결국, 자세히 보면 묘하게 사이가 좋단 말이죠.

더블헥사곤 멤버들이 한마디씩 하면서 화면이 시작되었다.

- 자기들끼리는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고들 하는데.

- 입으로만 싸우죠, 입으로만.

- 옆에서 듣고 있기 기 빨린다니까.

RS6의 면면이 가세하면서 화면 안이 더블헥사곤과 RS6 멤버들의 얼굴로 가득 찼다.

- 그러고 결국엔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는.

- 하여간에 묘한 녀석들이에요.

더블헥사곤의 리더 선겸과 RS6의 리더 황재민이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씩 던지는 것과 함께 프로그램 타이틀이 등장했다.

[PART.Y 액션형 TRPG: 어느 날 차에서 내렸더니]

EP3 아이돌 세 그룹이 모이면 세계를 구한다..

특별출연: 더블헥사곤 (lv.0 초보 길잡이) RS6 (lv.1 조금 덜 초보 서포터)

.

.

.

- 으아악, 은규야! 심은규! 얼른 와서 도와줘!!

실감 나는 비명과 함께 엠케이가 허우적대며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은규와 힐러 파티의 멤버들을 쳐다보며 외쳤다. GM을 맡은 윤효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씨프 파티가 보스몹의 공격에 휘청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방어력이 약한 서포터나 길잡이 중 하나가 리타이어할 절체절명의 상황. 힐러, 이동하시겠습니까?

GM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은규가 외쳤다.

- 네! 갑니다! 이번에야말로! 형, 빨리 던져요!

은규의 재촉에 옆에 서 있던 길잡이 역할의 더블헥사곤 멤버가 떠밀리듯 주사위를 굴렸다.

- 좌1 우1 전진1 !!!

- 아악 미친!!

- 또 트랩이야? 실화냐고.

- 힐러님 가시는 걸음걸음마다 트랩이네, 아주.

- 쟤넨 저러다 레이드 다 끝난 다음에야 오겠어

구경 중이던 다른 파티 멤버들이 저희끼리 모여 수군대는 가운데 GM이 심은규와 그의 파티원들에 말했다.

- 동일 숫자 셋이 나왔으므로 트랩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GM의 말이 끝나자마자 은규와 파티원들이 머리를 쥐어 싸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구경 중이던 재이와 그 옆에 선 선겸이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클로즈업 됐다.

- 윤 선배 대단하네요. 차인혁보다 주사위 못 하시는 분 처음 봤어요.

- 공부만 해서 그래 공부만. 쟤가 저래 봬도 수능 신동 소리 듣던 우리 그룹 브레인인데.

선겸이 그래도 제 식구라고 더블헥사곤의 게임 구멍 멤버를 감싸는 것에 그 말을 듣고 있던 재이가 입을 열었다.

- 원래 길잡이보고 주사위 던지게 하는 게 차인혁이 하도 주사위를 못 던져서 밸런스 패치 차원에서 넣은 룰이었는데.

- ……하아, 우리 그룹 엑스맨 덕에 엉뚱하게 은규가 얻어맞고 게임 오버 때리게 생겼네.

재이의 말에 더는 보호할 기력도 없어진 선겸이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자 그런 선겸의 축 처진 어깨를 보고 있던 재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 게임 오버라니 제 앞에서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 뭐?

선겸이 그를 돌아보는 사이, 재이가 손을 들고 GM을 향해 외쳤다.

- 음유 필살기 써도 됩니까?

- …… 가능합니다. 다만 실패 시 페널티와 함께 3턴의 강제 휴식이 부여됩니다만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

- 아, 잠깐, 잠깐만요! 잠깐만 타임! 타임!

GM의 말에 재이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옆에서 듣고 있던 남궁찬이 다급하게 타임을 외치며 진행을 끊고 재이에게 다가와 말했다.

- 야, 너 진짜 할 거야? 여기서 네가 3턴 쉬면 그사이에 우리 끝장날걸?

- 맞아, 나 아까 얻어맞은 거로 HP 20밖에 안 남았어, 필살기 써서 내 피통 채워 줄 거 아니면 그냥 가자.

재이에게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그건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남궁찬 옆에서 어느새 다가온 엠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자 남궁찬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 엠케이 네 피통에 한재이의 공격 3턴을 걸으라니 그런 수지 안 맞는 장사가 어딨냐. 그냥 가자, 한재이.

- 와, 역시 사람은 궁지에 몰려 봐야 한다더니. 남궁찬 인성 무엇? 지금 동료를 버리고 간다고 했냐고.

- 아니 누가 널 버린대? 심은규 올 때까지만 좀 버텨 봐.

남궁찬의 말에 엠케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의 트랩 페널티로 오늘만 10세트째인 팔굽혀펴기를 하느라 헉헉대고 있는 은규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엠케이가 말했다.

- 쟤가 언제 올 줄 알고. 저건 글렀어. 윤 선배가 주사위 던지는 이상 오늘 안에 도착하기는 텄다고.

- 그래서 한재이 필살기 뭐 쓸 건데?

엠케이의 말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남궁찬이 순간 머뭇대는 사이 인혁이 재이에게 물었다.

-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고들 하잖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싱긋 웃는 재이의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됐다.

- 음유시인 필살기 [레퀴엠] 가겠습니다.

- [레퀴엠]은 성공 시 시전자의 HP, MP의 50%를 소모하는 것을 대가로 적으로 간주한 모든 것에게 기본 공격력+최대 300%의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음유시인의 광역 필살기입니다. 물론 실패 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페널티로 아이템 회수와 공격 턴 3회 강제 휴식이 부과됩니다.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

GM의 설명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보스몹과의 전투는 클라이맥스였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굳이 따지자면 힐러가 없어서 데미지와 디버프가 중첩되고 있는 이쪽이 열세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군의 공격과 방어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한재이, a.k.a. 음유시인이 3턴이나 쉬게 된다면 아슬아슬하게 잡혀있던 균형이 무너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 야, 그거 꼭 해야 하냐?

- 그래, 그냥 무난하게 가자. 이대로 몇 턴만 더 버티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으아아, 그치만 우리 파티는 다음 턴에서 얻어맞으면 그대로 전멸할 것 같다고!

- 힐러가 제때 도착하기만 하면…….

- 쟤네 아직도 저러고 있는데?

- 으음…….

술렁이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쪽 구석에 모여 있는 힐러파티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 턴에서 또다시 트랩 페널티를 받은 은규와 그 파티원들이 페널티로 부과된 팔굽혀펴기를 겨우 마치고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 헉헉, 아이고 삭신이야. 파장아, 나 힐 좀.

- 그래, 어차피 다른 놈들한테 쓰지도 못할 거 우리한테 좀 줘 봐.

- 아이고 죽겠다. 아니 TRPG 하러 와서 왜 우리 팀만 체력장이냐고.

사람들의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퍼져 있는 힐러파티를 힐끔 바라본 재이가 GM에게 물었다.

- 힐러 없이 한 번에 끝내려면 어떤 게 터져야 되죠?

- 계산해 볼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동안 회차를 거듭하며 제법 두툼해진 룰북을 뒤적이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던 GM이 말했다.

- 지금 가지고 계신 아이템을 3차 강화까지 성공시키고 마법사가 [증강] 주문을 걸어준 상태에서 먼저 격투가와 검사, 그리고 씨프가 한 턴씩 공격을 마친 뒤 음유시인의 [레퀴엠]에서 크리티컬 히트가 터지면 HP -5 MP 0의 상태로 승리하게 됩니다. 원래라면 HP가 모자라서 그대로 사망입니다만 크리티컬 히트의 보상으로 컨디션 100% 회복과 디버프 중첩 해소가 적용되므로 살아남게 되는 시나리오죠.

GM의 설명을 듣고 있던 남궁찬이 중얼거렸다.

- 그래서 결국 보스몹을 한 방에 잡으려면 저 수많은 조건을 다 클리어하고 크리티컬 히트까지 터뜨려야 한단 얘기야?

- 아니면 그 전에 그냥 죽는 거고?

- 성공했다고 해도 일단 죽다 살아나는 거잖아?

남궁찬의 말에 이환과 엠케이가 끼어들어 한마디씩 거들었다. 남궁찬이 재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 너무 위험 부담이 큰 거 아니야?

- 그래도 일단 해 보는 데까진 해 볼까? 어차피 아이템 3차 강화가 실패하면 이 루트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거니까.

옆에 서 있던 인혁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은규가 저기서 헤매고 있는 한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 아니었다. 지금은 이환의 회복 주문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딜러가 매 턴마다 회복 주문을 걸어야 하는 탓에 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3차 강화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어차피 아이템 강화는 걸어야 할 승부수였다.

- 좋아 그럼 일단 아이템 강화부터 해 보자.

- 재민아, 준비됐어?

- 응? 어어. 어.

긴장한 얼굴로 황재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 여기서 실패 뜨면 보스 몹한테 갈리기 전에 너희들한테 먼저 맞아 죽는 거 아니냐.

주사위를 집어 들며 황재민이 중얼거린 말에 남궁찬과 이환이 동시에 대꾸했다.

- 설마 우리를 어떻게 보고.

- 우리는 괜찮은데 너희 파장이 가만둘지는 잘 모르겠다.

황재민이 그들의 시선을 따라 뒤쪽에 서 있던 재이를 돌아보았다.

- 윽…….

팔짱을 낀 채 조용히 황재민을 바라보고 서 있는 재이와 시선이 마주친 황재민이 작게 숨을 들이켰다.

- 그, 그럼 가겠습니다.

비장한 얼굴로 주사위를 흔드는 황재민의 얼굴 위로 개인 인터뷰 영상이 오버랩 됐다.

- 그때 진짜 초조했어요. 심장이 벌렁대서 죽는 줄 알았죠. 상상 속의 보스몹보다 뒤에서 보고 있는 누군가가 더 무섭더라고요. 여기서 실패하면 보스몹한테 죽기 전에 쟤한테 먼저 끝장이 나겠구나 싶었다니까요.

황재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화면이 스튜디오로 돌아오며 주사위의 결과가 클로즈업 되었다.

[1차: 4] (판정: 성공)

[2차: 5] (판정: 성공)

[3차: 6] (판정: 성공 / 크리티컬 히트!)

연달아 겹쳐지는 화면과 함께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 으와아아아!!!!

- 황재민!!! 역시 믿고 맡기는 신뢰의 서포터!!!

- 오오오!!! 강화의 신!!!!!

3연속 강화에 성공한 황재민의 신들린 주사위 솜씨에 감탄 섞인 환호가 터져 나왔다. 정작 그 놀라운 스킬을 보여 준 황재민은 제가 해 놓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빤히 주사위를 바라보고 있다가 한 박자 늦게서야 커다랗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외쳤다.

- 살았다으아아아아!!!! 어허어엉, 진짜 쫄려서 죽는 줄 알았다고오.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어깨를 들썩이는 황재민과 그를 둘러싼 RS6 멤버들의 뒤편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 있던 재이의 얼굴이 카메라에 잡혔다.

-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스튜디오 화면에서 오버랩 된 인터뷰 영상 속에서 잠시 말을 끊고 카메라 너머에 앉은 스태프를 향해 씩 웃어 보인 재이가 이어 말했다.

- 재민 씨가 입으로는 못하겠다 망했다 하면서도 강화 타이밍에 실패한 적이 없거든요. 저번에 같이 했을 때도 결과적으로 주사위 값만 놓고 보면 아마 저보다도 효율 높았을걸요.

재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교차 편집된 자료 영상이 화면 한쪽에서 재생되었다. 화면 속 황재민은 재이의 말처럼 온갖 다이내믹한 표정들 속에서도 아이템 강화가 필요한 타이밍에 원하는 주사윗값을 얻어 내고 있었다.

[Q: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 같던데.]

- 하하. 설마요.

자막으로 처리된 스태프의 질문에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짧게 대답하는 재이의 얼굴 위로 황재민의 인터뷰 영상이 오버랩 됐다.

[Q: ……라던데요.]

자막이 뜨는 것과 동시에 인터뷰 부스에 앉은 황재민이 순간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 와, 딱 걸렸네.

황재민이 놀랐다는 듯 눈을 깜박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진짜 인혁이 말이 맞았잖아…….

[Q: 차 리더가 뭐라고 했는데요?]

- 귀신을 속이지 한재이는 못 속인다고요.

황재민의 한마디와 함께 화면은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와 조금 전 그의 신들린 3연속 강화로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피리를 GM에게서 건네받고 있는 재이의 모습을 비추었다.

- 그래서 저게 뭔데?

- …3연속 강화라는 게 피리를 몽둥이로 만드는 거였어?

- 설마…….

- 역시 파티 음유의 진가는 물리력이었나?

- 살벌하다. 저 기세면 보스몹 아니라 세계도 때려 부수겠어.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튜디오의 중앙으로 걸어 나온 재이가 조금 전 윤효민에게서 건네받은 길이 1m 정도의 검은색 봉을 휘둘러보았다.

부-웅

- 와 이 소리가 진짜 나는 거였구나?

- 그러게. 나 얘네 그 데뷔 무대 연습 영상 봤을 때도 효과음 오지게 넣는다고 생각했었는데.

- 실화냐고…….

※ 효과음 제로의 실제 영상입니다.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웅성대는 화면 위로 자막이 지나가고 그대로 몇 번 더 봉을 휘둘러보던 재이가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봉의 중간 부분을 맞잡고 손잡이 돌리듯 끼릭, 돌려 빼냈다. 조금 전까지 위협적인 소리를 내던 봉이 반으로 쪼개지면서 피리와 짧은 곤봉으로 나뉘는 것을 보고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 오오오오!!!

- 이야……. 저게 저렇게 되는 거구만?

- 역시 컨셉명가 케이엠 답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귓가로 흘려들으며 재이가 GM에게 말했다.

- 그럼 쓰겠습니다. [레퀴엠]

- 주사위를 던져 주세요. 앞서 설명해 드린 대로 성공 시 보스몹을 비롯한 주변의 적들에게 스킬의 기본 공격력 + 최대 300%까지의 데미지를 입힐 수 있습니다.

GM의 차분한 설명에 옆에 서 있던 인혁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 실패하면요?

- 사망입니다.

GM의 간단한 대답에 주변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마음을 굳힌 재이가 주사위를 들어 올렸다.

- 으으 제바알…….

- 믿는다, 한재이!

- 여기까지 와서 몰살엔딩은 좀 아니지.

- 그래. 이런 엔딩을 보자고 후배님들한테 굽신대 가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고!!

- 제발제발제발제발!!!!

스튜디오의 모든 사람이 재이와 그의 손에 들린 주사위를 주목했다.

차락-

데구르르르

- …….

- …….

- ……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된 가운데 화면이 멈추고 듣기만 해도 숨이 멎을 듯 거칠고 음산한 피리 소리가 서서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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