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82화 (182/224)

#182

같이 탈 사람?

* * *

그날 밤, 숙소.

“그때 그러고 끝난 줄 알았는데.”

언제나처럼 거실에 모여 앉은 멤버들 중 도도님을 무릎에 얹은 채 소파 자신의 자리에 앉은 재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조이 키넌 정도면 주변에 날고 기는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일 텐데 단발성 아르바이트로 쓰고 끝낼 것 같았으면 애초에 그때 굳이 널 불렀겠냐.”

“내 말이 그거야. 그때 그렇게까지 대놓고 깠는데 이렇게 빨리 다시 입질이 올 줄은 몰랐다 이거지.”

엠케이의 말에 재이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때 내가 분명히 얘기했거든.”

재이의 말에 바닥에 쿠션을 깐 채 드러누워 있던 이환이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아-, 나 그거 알아. 뭐랬다더라? 귀찮게 하지 말고 꺼지라고 했다던가?”

“국내 정복 끝나는 대로 곧 갈 테니까 보채지 말라고?”

“네까짓 거 도움 없어도 다 발라 버릴 자신 있다고 했다고 하지 않았어?”

이환의 말에 엠케이와 남궁찬이 기다렸다는 듯 앞다투어 말을 보탰다.

“어휴, 무슨 말을 못 하겠다니까.”

재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리는 말에 한쪽에서 줄곧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은규가 불쑥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제안, 우리 때문에 거절한거면…….”

그 말에 시끌시끌하던 숙소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돌아온 재몰이 타임에 신난다는 듯 한마디씩 보태고 있던 이환과 남궁찬도 그런 두 녀석에게 핀잔을 주는 척 함께 웃고 떠들고 있던 엠케이도,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인혁도 그리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고 있던 재이까지.

은규의 입에서 나온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은 듯 침묵하고 있었다.

‘…….’

불쑥 치켜든 감정을 삭이기 위해 은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한재이네 팀.

데뷔 전 [스텝 업]에서 경연을 위해 팀을 결성했을 당시부터 데뷔 후 지금까지 꾸준히 들어오던 말이었다. 어딜 가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자신의 팀메이트는 요란한 주제에 속이 꽉 차기까지 한 수레였다.

춤과 노래 실력이라는 아이돌로서의 기본 토대는 물론이고 연기에 대한 재능과 예능적 감각, 그리고 단단한 멘탈까지. 자신이 보기에도 연예인에 최적화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능력의 스펙트럼이 다채로웠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그 비교 대상이 한재이라면 그야말로 의미 없는 제 멘탈 제가 깎아 먹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파티의 멤버라면 모두가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 그 녀석은 ‘규격 외’니까.

- 비교해 봤자 신을 원망하는 루트 타고 금방 끝나 버림.

- 이거 인정. 내가 많이 해 봤는데 결국 그 녀석이 이상한 놈이라는 결론밖에 안 나더라고.

- 이거지. 잘 하고 있는 나를 나무랄 게 아니라 뭘 해도 이상하게 잘 튀는 그 녀석을 탓해야 한다니까.

재이가 반쯤 등 떠밀려 미국으로 휴가를 떠나고 난 뒤, 항상 여섯이 모이던 숙소 거실에 그를 뺀 나머지 다섯이 모여서 나누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쉬러 간 미국에서까지 그놈의 일에 대한 집착을 못 버리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한재이에 대한 멤버들의 평은 그동안 은규 자신이 수없이 고민을 반복한 끝에 내렸던 결론들과 별다른 바 없었다.

그것이 자신의 한계를 둘러대기 위한 치졸한 자존심의 말로가 아니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은규는 숨통이 트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최근 몇 년 팝씬의 트렌드를 리드하는 제작자로 알려진 그 조이 키넌과의 합작이라니. 득만큼 실이 많고 성공보다 실패의 리스크가 큰 도박이라고 일컬어지는 해외 진출이었지만 조이 키넌과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말이 달랐다. 그와의 합작은 분명 그 실패의 리스크를 크게 줄여 줄 수 있는 확실한 발디딤 판이 될 터였다.

그런 조이 키넌이 직접 내민 손을 거절하고 돌아왔음에도 스스로의 결정에 한 줌의 후회도 없어 보이던 재이의 그 당당함이라니.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꿈꾸는 월드 스타로 도약할 기회를 그렇게 미련 없이 차 버릴 수 있는 배짱, 아니 자신감이 과연 자신에게도 있었을까.

‘어쩌면 그래서 더 빛나 보이는 것일지도.’

그래서 그 조이 키넌조차 미련을 못 버리고 그새 몸이 달아 다시 움직인 거겠지.

그런 ‘규격 외’의 녀석이 자신들과 보폭을 맞추기 위해 더 큰물에서 놀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재이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느꼈던 자괴감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슴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차라리 못난 비교질을 하고 있을 때가 속이 편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규격 외’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만한 재능은 가지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기에 누구보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한재이의 입장에서 봤을 때 우리는 녀석의 발목을 잡는 존재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걸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아닐 거로 생각하면서도 한 번 시작된 마이너스적 사고는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맞아.”

“…뭐?”

상념에 잠겨 있던 은규는 재이가 내뱉은 짧은 대답에 놀라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도도님을 무릎에 앉힌 채 부드러운 손길로 고양이가 좋아할 만한 곳을 쓰다듬어 주며 재이가 이어 말했다.

“맞다고, 너희 때문에 거절한 거,”

그렇게까지 대놓고 고개를 끄덕일 줄은 몰랐다는 듯 은규를 비롯한 녀석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둘러본 재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예전에도 말했잖아. 혼자 하고 싶었으면 애초에 솔로로 데뷔했지, 그룹으로 데뷔했겠냐고.”

그거 그냥 허세 아니었…….

누군가가 중얼거린 말에 짧게 코웃음을 친 재이가 말을 이었다.

“혼자 하기 싫다고. 같이 하고 싶다고.”

재이가 내뱉은 말에 주변이 다시 한번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진 공간에 재이의 말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더 직접적으로 말해 줘? 너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한 번 나랑 파티 맺었으면 끝까지 같이 갈 각오들 하라고. 뒤처졌다고 먼저 갈 생각도 없고 앞섰다고 버리고 갈 생각도 없으니까.”

“한재이…….”

“조이 키넌이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때 되면 다 씹어 먹어 버릴 거.”

“야…….”

“근데 그러려면 일단 한국부터 잡아야지. 우리 아직 단독 콘서트도 못 했는데.”

적어도 올림픽 주경기장 정도는 채우고 나가야 어디 가도 체면이 설 거 아니냐고.

남의 손 잡고 걷는 건 걸음마 배울 때 뗐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인간적으로.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끄집어낸 듯 한바탕 쉴 새 없이 쏟아 낸 재이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너희 때문이냐고?”

주변의 온도가 한층 낮아진 듯 느껴질 정도로 서늘한 목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재이와 시선을 마주한 멤버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당연한 얘길 또 하게만 해 봐, 아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거실이 다시 깊은 정적에 휩싸였다. 재이는 할 말 다 했다는 듯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놀아 달라 보채는 도도님에게 손가락으로 장단을 맞춰 주고 있었다. 긴 침묵 끝에 엠케이가 입을 열었다.

“후. 그렇담 어쩔 수 없네.”

짧게 한숨을 내쉬며 툭 내뱉은 엠케이의 한마디에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한재이가 저렇게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하는데, 매정하게 거절할 수도 없고.”

“헐, 내가 언제…….”

어처구니없다는 듯 재이가 반박하려고 입을 연 순간 남궁찬이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러게. 천하의 한재이도 세계 정복까지 혼자 하기는 조금 무서웠나 봄.”

“뭐, 저렇게까지 부탁하는데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인간 된 도리가 아니긴 하지.”

남궁찬에 이어 이환이 거들고 나섰다.

“우리 아니면 누가 저 성미를 다 받아 주겠냐고. 우리나 되니까 같이 다녀 주지.”

“그치. 진짜 우리 정도 인격자 아니면 솔직히 한재이 저거 감당하기 힘들지.”

“같은 거 두 번 물었다고 당장 죽여 버릴 듯이 노려보는 인성인데, 저걸 누가 데리고 다니겠냐고.”

“그치그치. 우리가 진짜 부처님 가운데 토막인 거야.”

이정도면 거의 생불이지, 생불.

부처님이 나 이번 생에 공덕 많이 쌓으라고 일부러 한재이 만나게 해 주신 듯.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할머니의 영향 탓에 집안 전체가 독실한 불교라는 이환이 중얼중얼 염불까지 외우는 것을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재이가 입을 열었다.

“…착각도 병이라더니.”

재이의 중얼거림에 이환이 딱 걸렸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와, 저거 봐라. 이제 하다 하다 안 되니까 멤버를 병자 취급까지 하네.”

“딱해서 어쩌냐, 한재이. 착각병자들이랑 세계 정복 해야 되게 생겼는데.”

“안타깝게도 인제 와서 물리기는 없어. 아까 그거 다 녹음해 뒀거든.”

남궁찬에 이어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엠케이가 핸드폰을 들이밀며 말하자 재이가 발끈해서 외쳤다.

“몰래 녹음하는 거 위법이지 않냐? 그런 건 법적으로도 효력 없다고.”

“법적 효력은 없을지 몰라도 재몰이에는 꽤 효과적일 것 같은데?”

엠케이가 웃으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 혼자 하기 싫다고. 같이 하고 싶다고.

핸드폰의 내장 스피커를 타고 재이의 목소리가 실내에 울렸다.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 재이를 제외한 모두가 입술을 씰룩이며 그가 앉은 쪽을 힐끔힐끔 살피는 것이 다들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는 게 역력해 보였다.

“제목, 혼자가 싫은 한재이.”

“뭐든 같이 하고 싶은 한재이.”

“제목만 들으면 완전 미운 다섯 살인데?”

“다섯 살은 모르겠고, 미운 건 맞는 듯.”

엠케이 덕에 조금 분위기가 풀어진 것을 확인한 인혁이 재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하고 싶은데? 이미 눈치 빠른 사람들이 조이 키넌 새 뮤직비디오에 잠깐 나오는 여우 소년이 너 아니냐고 술렁이는 것 같던데.”

“아 나도 봤어. 근데 그 뮤비만 보고는 곧바로 저게 한재이구나 하는 느낌은 잘 안 오는 것 같던데.”

“조이 키넌의 여우 소년이 너무 신비로운 청량 비타민 컨셉이라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보다. 한재이에게 청량 비타민 컨셉이라니. 청양고추 컨셉이면 몰라도.”

인혁의 말에 멤버들이 하나둘 말을 보탰다.

조이 키넌의 신곡 [Find the fox]의 뮤직비디오는 그의 레이블인 Astronaut Records가 거액의 광고를 쏟아부어 찾은 여우 소년이 잠깐 등장한다는 입소문을 타고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앨범 프로모션을 위해 TV 토크쇼에 출연한 조이 키넌이 이번 곡의 모티브가 된 여우 소년의 에피소드를 언급하며 직접 만나 본 그가 자신이 내건 최상의 조건을 마다하고 홀연히 떠나 버렸음을 밝히면서 대중과 미디어의 여우 소년에 대한 궁금증에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조이 키넌이 자신의 SNS에 신곡 뮤비 링크와 함께 올린 해시태그는 여우 소년의 행방을 쫓고 있는 이들에게 좋은 떡밥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회사 쪽으로 재이의 미국 휴가 중 일정에 대한 문의와 관련 인터뷰 섭외가 하나둘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미국 휴가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 재이와 직접 이야기를 나눈 문선일 대표가 향후 여우 소년과 관련한 행보는 재이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미리 선을 그어 준 덕에 회사 또한 재이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인혁의 물음에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잠시 뜸을 들인 재이가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깔아 주겠다는 판을 매번 마다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긴 하니까.”

좀 전까지 혼자는 싫다, 같이 하자 하더니.

그새 마음이 바뀐 거니, 그런 거니.

거절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번엔 제법 타협할 의향이 있어 보이는 재이의 말에 실망했다는 듯 남궁찬이 작게 중얼거렸다.

“올라타 볼까 하는데, 어때 다들?”

…우리도 같이? 어떻게?

재이의 물음에 멤버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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