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85화 (185/224)

#185

잘라파고스의 덕통사고

“…잘라파고스라더니.”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 입국장 안쪽 세관 구역.

자동 출입문 너머로 살짝살짝 보이는 환영 인파를 확인한 멤버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국내 팬들에게는 야속한 곳, 소속사에게는 쏠쏠한 곳, 그리고 가수에게는 이상한 곳, 일본.

모든 마켓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일본 마켓은 특히 그 특유의 폐쇄성 탓에 매우 독특한 시장으로 분류되곤 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 규모를 고려한다면 분명 무시할 수는 없는 마켓이었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그야말로 본전도 못 건지기 쉬운 탓에 마케팅 전략을 고심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취향 되게 독특하시네.”

남궁찬의 말에 나머지 멤버들이 동의한다는 듯 앞다투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딱히 해외 팬을 겨냥한 프로모션을 진행한 적 없는 파티였지만 국내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해외의 k-pop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꽤 알려진 상태였다.

그렇지만 라이브 앱이나 SNS, 그리고 유튜브의 자체 컨텐츠 등에 달리는 반응을 통해 해외에서도 어느 정도 팬덤이 형성되어 있음을 추측만 하던 것과 이렇게 실제로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역시 천지 차이였다.

특히.

“이쯤 되면 월드 스타 각인데? 아니 뭘 보고 이렇게들 꽂히신 거지?”

엠케이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대중적 인지도나 인기로서는 한재이 원탑인 세계에서만 살아오던 여섯 명에게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낯설기 짝이 없었다.

“*환짱! 환짱!!!”

“*규꾼! 웰컴 투 재팬!”

낮은 펜스 너머 옹기종기 모인 팬 중 많은 수가 이환과 은규의 이름을 부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네 우리 몰래 일본 쇼케라도 뛰었냐? 와, 분위기 적응 안 되네.”

남궁찬이 돌아보며 묻는 말에 은규의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하던 이환이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은규랑 하는 쿡방이 일본에서 전파 탄 적 있다는 소리 들었었는데.”

“맞아, 그러고 나서 확실히 일본 팬분들이 많이 늘긴 했어.”

이환의 말에 은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파티는 데뷔 이래 줄곧 여섯 명이 모두 함께 하는 TRPG를 비롯하여 재이의 [재재님의 용사 이야기]나 인혁의 차CTV와 같은 개인 컨텐츠를 업로드하면서 팬들의 니즈를 조금 더 직접적으로 반영함과 동시에 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창구로써 활용해 왔다.

그중 이환과 은규는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자취 요리를 컨셉으로 쿡방 컨텐츠를 줄곧 유지 중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별 볼 일 없었던 두 사람의 요리 실력이 가끔 하는 간단한 요리 정도로 나아질 리가 없었으므로 방송은 언제나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나 그 무모한 도전 정신이 매력이라는 평과 함께 구독자 수는 파티의 상승세를 등에 업고 오히려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였다. 그리고 은규의 말처럼 최근에는 코멘트란에 부쩍 일본어와 영어 등 외국어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거 무슨 괴식 소개 프로그램이었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심야 토크쇼에서 한 세계의 괴식 소개인가 뭐 그랬을 듯?”

남궁찬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린 말에 엠케이가 맞장구쳤다.

“괴식 컨셉으로 팬을 끌어모으다니, 어이가 없다 진짜.”

“그냥 흔한 망손이 미디어를 거쳐 괴식 전문가로 재탄생하다니.”

“이쯤 되면 이환이 흑마법 쓴 거 아니냐는 썰이 나도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 컨셉을 그렇게 써먹나.”

“…우리 여기서 괴식가 개념으로 밀어야 하는 건 아니지 설마?”

“설마…….”

엠케이가 걱정스럽다는 투로 꺼낸 말에 수다를 떨고 있던 멤버들이 표정을 흐리며 하나둘 입을 닫았다. TVM Music Festival이 끝나면 3일간 현지 프로그램 녹화 일정이 잡혀 있었다.

“아냐, 섭외 온 건 그냥 평범해 보이는 아침방송 라이브였어.”

“아침방송에서 다짜고짜 라이브라니. 그건 그것대로 뭔가 각오가 필요할 것 같다만.”

“그래도 심야 프로그램에서 환심이가 만든 음식 먹고 리액션 해야 하는 것보단 낫잖아.”

“그건 그래.”

“일단 이동하자. 준비 다 된 것 같으니까.”

불안한 기색으로 수군대던 멤버들은 마침 나갈 준비가 다 되었다는 듯 이쪽을 향해 손짓하는 석관의 모습을 발견한 인혁의 말에 하나둘 스태프들을 따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가끔 그런 경우가 있긴 하더라.”

TVM Music Festival, 약칭 티뮤페에 참석하기 위해 파티보다 며칠 먼저 일본에 입국해 현지 프로모션 스케줄을 돌았다는 더블 헥사곤의 선겸이 대기실에서 만난 파티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해외 시장은 아무래도 문화적 차이라는 변수가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엉뚱한 데서 터지기도 하더라고.”

“와, 선겸이 형 그렇게 얘기하니까 되게 전문가 답고 막 그렇네요.”

“여윽시 7년 차 아이돌의 관록.”

대기실에서 자신과 마주치자마자 우르르 몰려들어 자기들이 공항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 늘어놓는 파티 녀석들의 이야기를 귀엽다는 듯 듣고 있던 선겸의 설명에 재이와 엠케이가 앞다투어 손뼉을 치며 그를 추켜세웠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본 선겸이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왜 너희들이 하는 칭찬은 곧이곧대로 들리지가 않는 걸까.”

아무래도 내가 너희들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된 모양이야.

선겸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물었다.

“끝나고 바로 돌아가? 아니면 프로모션 뛰나?”

“아, 예의상 몇 군데 인사만 하고 돌아가자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저희는 이번 시즌 크게 노리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거 다행이네. 여기서까지 밀리면 은퇴할 때가 됐나 싶을 뻔했는데.”

인혁의 말에 선겸이 한시름 놨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이미 연차가 쌓여 일본 내에서도 어느 정도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선겸의 입장에서는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후배 그룹이 마냥 예뻐 보일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일본 시장을 적극적으로 노리지는 않는다니 일단 골치 아픈 경쟁자 하나는 줄인 셈이었다. 한결 밝아진 선겸의 표정을 보고 있던 재이가 입을 열었다.

“근데 어떻게 될지 저희도 몰라요.”

“그게 무슨 말이야?”

“방금 전 형 말마따나.”

선겸이 되묻는 말에 재이가 옆에 서 있던 이환과 은규를 턱짓하며 이어 말했다.

“노리지 않아도 터질 때가 있잖아요, 가끔.”

재이의 말에 선겸을 포함한 파티 멤버들의 얼굴이 불길하게 흔들렸다.

* * *

도쿄 도내 방송국 스튜디오.

-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최정상 한류 스타들의 축제, TVM Music Festival이 도쿄 돔에서 화려하게 펼쳐졌습니다. 이번 콘서트에는 …….

“…플래그는 심은규만 세우는 줄 알았더니.”

스튜디오 중앙에 앉은 아나운서가 멘트를 읽어 내리는 것을 바깥쪽에서 구경하고 있던 남궁찬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 그룹 최강 플래그가 누군지 잠시 잊고 있었던 거지.”

눈앞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린 남궁찬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엠케이가 작게 맞장구를 쳤다.

“내가 뭘 어쨌다고. 원래 예정되어 있던 스케줄 온 것뿐이잖아.”

“예정이야 되어 있었지. 아주 평범해 보이는 아침 프로그램이라고 우리 리더가 그랬는데.”

“저거의 어디가 아주 평범해 보이냐고.”

억울하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소곤대는 재이의 말에 남궁찬과 엠케이가 앞다투어 한마디씩 하며 스튜디오 한쪽에 마련된 세트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조리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 프로그램에서 뜬금없이 라이브 무대를 섭외했다고 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하는 건데.”

“그거야 문화 차이고.”

정보 전달이 주가 되는 우리나라의 아침 프로그램들과 달리 일본의 아침 프로그램은 쇼의 성격이 짙었다. 뉴스 전달이 5%라면 나머지 95%는 연예 토픽이나 가십 리포트, 혹은 맛집 탐방에 할애되었다.

할리우드 배우가 영화 프로모션을 위해 라이브 출연을 하거나, 스튜디오에 출연한 가수들이 자신의 노래를 라이브로 열창하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었다.

남궁찬의 투덜거림에 재이가 대답하자 곧바로 엠케이가 받아쳤다.

“그럼 라이브 뛰고 난 게스트에게 곧바로 요리 시범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것도 문화 차이인 거야?”

“그건 한재이 플래그 탓이지.”

“명쾌하네.”

재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연 인혁의 대답에 남궁찬과 엠케이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야, 나 이게 뭐라고 긴장되잖아.”

“긴장될 만도 해. 나도 카메라 앞에서 라이브로 요리해 본 적은 없거든.”

“아… 한재이…….”

재이의 심드렁한 말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던 은규의 얼굴이 아예 흙빛으로 물들었다.

“야, 한재이 살살해라. 저러다가 방송 들어가기도 전에 심은규 기절하겠어.”

“아 미안. 음. 긴장할 게 뭐가 있어. 어차피 너희들한테 기대하는 건 요리를 잘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건데.”

인혁의 말에 재이가 금세 말을 바꾸자 남궁찬과 엠케이가 거들었다.

“그러게 평소에 하던 대로 망하는 꼴을 보여 주면 돼.”

“그래 그래, 편하게 해. 괜히 잘해 버려서 분위기 망치지 말고.”

그 말에 조금 안도한 듯 심은규의 안색이 돌아오는 것에 재이가 이환을 돌아보며 말했다.

“열도스타 환짱, 오늘 어깨가 무겁네. 센터도 뛰고 요리도 하고.”

재이의 말에 엠케이가 새삼 깨달았다는 듯 속닥거렸다.

“와 그러고 보니 이환이 한재이 포지션 다 빼앗았네?”

“이렇게 이환에게도 볕들 날이 오는구나.”

“내가 다 감개무량하다.”

엠케이에 이어 남궁찬과 인혁까지 거들자 긴장으로 굳어 있던 이환의 입가가 흐물흐물 풀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여간에 쉬운 녀석.’

재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출연이 예정되어 있던 프로그램에서 방송 시간을 조금 더 줄 테니 은규와 이환의 요리쇼를 넣어 줄 수 있겠냐는 오퍼를 받았을 때는 팀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아직 이미지가 고착되기 전인만큼 예능 노출은 최소화하는 게 향후 포지셔닝을 위해서는 좋을 것이라는 의견과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환심이즈 쿡방의 괴작 컬렉션 중 그나마 가장 대중적이라 평가받는 메뉴를 간단히 시연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 *사실 오늘, 이 스튜디오에 조금 전 화면에서 보셨던 콘서트에 출연했던 한류 스타 중 하나가 생방송으로 출연해 주실 예정입니다. 고토 상, 누구인지 아시겠어요?

- *아, 글쎄. 누구지? 앗, 저기 에미카 상이 웃고 있는 걸 보니까 남자 그룹인 것 같은데?

- *오오, 예리하신데요!

콘서트 영상 송출이 끝나고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가 사회자와 함께 능숙하게 바람을 잡기 시작했다. 대본에 적힌 대로 출연진들이 주거니 받거니 스무고개를 하는 사이 스튜디오 밖에서는 스탠바이 중인 파티 멤버들의 등장을 위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 5, 4, 3, 2, 1…….

- *자 그럼 모셔 볼까요? 팝씬의 올 마스터라 불리는 조이 키넌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한류 아이돌 PART.Y의 C'est la vie!

아나운서의 호명과 함께 C'est la vie의 하이라이트 무대가 시작되었다.

.

.

.

‘*와, 박력이 장난 아니네.’

패널석에 앉아서 조금 전 시작된 파티의 무대를 구경 중이던 변호사 겸 코멘테이터, 사와베 카오리는 코앞에서 펼쳐진 옆 나라 아이돌 그룹의 라이브에 내심 감탄을 터뜨렸다.

한류 스타라고는 몇 세대 전에 유행한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 이름 정도밖에 모르는 사와베로서는 파티라는 이름보다는 그들이 콜라보레이션을 했다는 조이 키넌의 이름 쪽이 귀에 익숙했다.

옆자리에 앉은 소설가이자 한류 마니아로 알려진 사토 에미카가 촬영이 시작되고부터 마치 복권이라도 맞은 듯한 표정으로 스튜디오 바깥쪽을 흘끗거릴 때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그저 키 크고 잘생긴 게 전부인 것 같아 보이는 앳된 젊은이들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의 라이브쇼 현장이 어색한지 세트 여기저기를 힐끔거리며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고 있는 것이 풋풋하다 못해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그들이 큐사인과 함께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자 조금 전의 분위기가 거짓이었던 것처럼 능숙한 얼굴로 온에어 송출 중인 카메라의 위치를 확인하며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단박에 휘어잡는 것에 사와베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온통 한국어로 된 가사 중에 알아들을 수 있는 거라곤 이따금 들려오는 영어 랩과 C'est la vie라는 후렴구뿐이었지만 그들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성량 죽이네. 마이크 볼륨 너무 크게 잡은 거 아니야?

후렴구를 맞춰 가는 보컬 세 명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넘어 스튜디오 한가득 울려 퍼졌다. 바깥쪽에서 모니터하고 있던 음향 스태프들이 허용치를 아슬아슬하게 위협하는 꽉 찬 볼륨에 잔뜩 긴장한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약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리드보컬의 섬세한 목소리를 옆에 선 차가운 눈매의 서브 보컬이 곧게 뻗어 나가는 보이스로 탄탄하게 받쳐 주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의 부드러운 음색이 더해지고 빠른 비트에도 흐트러짐 없는 호흡에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힐끗 시선을 돌리니 옆자리의 사토 에미카는 이미 앞 라인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댄스 라인의 세 명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두 손을 맞잡고 있는 것이 반쯤 넋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C'est la vie!”

각자 포즈를 잡으며 마지막 후렴구를 외치는 멤버들 중 하나와 시선이 맞았다. 아까 마이크를 뚫고 나오는 목소리로 음향 스태프들을 당황하게 했던 그 서브 보컬이었다.

낯선 무대에도 긴장한 기색 없이 태연해 보이는 그 눈이 주변을 훑다 자신과 마주치자 활처럼 부드럽게 휘었다.

마치 슬로우 모션을 보는 것 같이 그 부분만 선명하게 심장을 파고드는 것 같은 느낌에 사와베는 직감했다.

‘*낚였구나.’

흔히들 덕통사고라고 하는 입덕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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