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86화 (186/224)

#186

광기의 흑마법사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일부가 되고 싶은 Part of you, PART.Y입니다!”

하이라이트 무대가 끝나고 CF가 지나가자 곧바로 피디의 큐사인이 들어왔다.

붉은 램프가 반짝이는 카메라를 향해 이제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진 팀 구호와 함께 인사를 마친 재이는 스튜디오 한쪽에 마련된 게스트석에 앉으며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신기하네.’

전직 야구선수, 소설가, 비영리단체 대표, 그리고 국제법 전문 변호사로 구성된 패널에 개그맨 사회자와 방송국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아침 프로그램이라니.

좋게 보자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서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쁘게 보자면 그냥 정신없어 보이기도 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는 패널들의 면면을 훑고 있던 재이의 귓가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나 우리 사와베 선생님이 저렇게 넋 놓고 쳐다보는 거 처음 봐. 옆에 에미카 상이랑 표정 판박이잖아? 이보세요? 카메라 돌아가고 있다고. 어서 현실로들 돌아와요!”

사회자의 호들갑스러운 코멘트에 패널석에 앉은 다른 패널들과 아나운서 그리고 스튜디오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스태프들이 다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게스트석 뒤편에 앉은 동시 통역사에게서 반 박자 늦게 상황을 전해 들은 파티의 멤버들이 뒤따라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고토 상이 몰라서 그래요. 파티하면 지금 한국에서 제일 핫한 아이돌이라고요.”

“*헥사짱들보다도 더?”

“*더블 헥사곤의 초창기 때 못지않죠. 와, 진짜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이 프로그램 출연하기로 한 제 결정이 이렇게나 새삼 뿌듯하게 느껴지긴 또 처음이네요.”

“*와, 에미카 상 완전 신난 모양이네. 그 사심 좀 어떻게 자제 좀 해 봐요. 시청자 여러분한테서 항의 들어오겠어.”

자칭 한류 마니아라는 사토 에미카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떠드는 것에 사회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사와베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사회자 옆에 앉아 있던 아나운서가 사토 에미카의 옆에 앉은 사와베 카오리에게로 화제를 넘겼다.

“*예? 아…….”

그때까지 넋을 놓고 파티 쪽을 쳐다보고 있던 사와베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한마디 했다.

“*저 사실, 조금 전에 머릿속에서 팡파르가 울렸어요.”

“*아하하, 그게 무슨 소리야?”

사와베의 한마디에 사회자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파티분들 무대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천사의 나팔 소리 같은 게 들리잖아요. 순간 아, 이거 위험한데? 라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어, 뭐. 좀 늦은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일단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신오쿠보라도 들러야겠어요.”

사와베의 의욕적인 대답에 스태프의 사인을 받은 인혁이 재빨리 멘트를 쳤다.

“시청자 여러분들을 위해 저희가 사인 CD를 준비했으니 많은 응모 바랍니다!”

그러자 응모 방법에 관해 설명하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끝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패널석에 앉아 있던 사토 에미카가 냉큼 손을 들고 외쳤다.

“*저도 응모하고 싶은데요. 혹시 패널 우대권 같은 건 없나요?”

“*에미카 상, 진정하고 그 사심 좀 어떻게 넣어 둬 보라니까. 지금 생방송 중이라고요.”

사회자가 사토 에미카를 뜯어말리는 사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앉아 있던 사와베가 살짝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 잠깐만 나갔다 와도 되나요?”

“*어디 가시게요?”

“*사인 CD 응모 좀 하고 오려고요.”

“*아니 근데, 이 사람들이 진짜.”

“*하하하.”

사회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허리에 양손을 얹은 채 중얼거리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나운서가 다음 코너로 진행을 이어갔다.

“*조금 전 스튜디오에서 보여주신 생동감 넘치는 무대에 저 두 분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모든 분이 파티 여러분의 팬이 된 것 같은 느낌인데요. 그런데 고토 상, 여기 이 파티분들, 춤과 노래로만 유명하신 분들이 아닌 거 알고 계시는가요?”

“*얼굴 저 정도 생겼으면 됐지 또 뭐 잘하는 게 있는 거야? 작작 좀 해 먹으라고 좀 전해 줘요.”

우리 같은 사람들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사회자가 짐짓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동시 통역사에게 하소연하듯 말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화제 전환에 성공했음을 확인한 아나운서가 진행을 이어갔다.

“*사실 파티 여러분을 잘 모르는 분들도 이건 알고 있는 분들 계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백스크린 한가득 자료 영상이 떠올랐다. 이환과 은규가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 으악, 야, 이환! 거기는 설탕이 아니라 소금이지!

- …야, 왠지 여기다가 이거 얹으면 맛있을 것 같지 않냐?

(무언가를 촥촥 거침없이 뿌리는 소리)

- 아, 이환 너 미X 거 아냐? 그걸 거기다 뿌리면 어떡해!

- 왜, 어때서? 자 먹어 봐, 생각보다 괜찮다니까.

- 아악, 저리 가, 저리 가……. 우웁.

- …괜찮은데?

- 그치? 거봐.

-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는 비주얼인데.

일본어 자막이 덧입혀진 시끌시끌한 영상이 짤막하게 흐르고 곧이어 완성된 요리의 사진이 화면에 등장했다.

“*…저게 뭐야?”

“*이게 바로 환시미즈의 괴식 컬렉션, ‘초코시럽 생크림 계란 비빔밥’, 일명 코크라이스입니다. 얼마 전 모 심야 프로그램에서 ‘세계의 괴식’ 시리즈에 소개되면서 인터넷상에서 화제를 모았죠.”

화면에 올라와 있는 것은 계란 후라이와 간장으로 가볍게 비빈 따뜻한 밥 위에 생크림과 초코시럽을 듬뿍 얹은 계란 비빔밥의 모습이었다.

“*저게 이분들 손에서 나온 거였다고?”

사회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파티 멤버들을 돌아보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이어 말했다.

“*아니 생긴 건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왜 음식 가지고 장난을.

사회자가 중얼거리는 말에 이환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저게 보기엔 저래도 맛은 꽤 괜찮아요, 이따가 제가 크게 한 입 드릴 테니 기대하세요.”

이환의 대답에 사회자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

.

.

휘릭- 차차찹

“*와, 지금 보셨나요? 재사마의 계란 뒤집기!”

“*어떻게 한 번에 세 개를 뒤집지?”

“*괴식보이즈한텐 과분한 조수인 거 아닌가?”

이환과 은규의 보조 자격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두 사람을 대신해 계란프라이를 하고 있던 재이가 계란을 뒤집는 것을 보고 패널석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카메라가 자신을 클로즈업 하는 것을 눈치챈 재이가 무심하게 프라이팬을 내려다보고 있던 눈을 들어 카메라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씩 웃어 보였다.

패널석에 앉아서 스튜디오 바깥쪽에 설치된 실황 모니터를 통해 그 모습을 본 사와베가 순간 숨을 들이켜면서 심장에 좋지 않다는 듯 가슴께를 꾹꾹 눌렀다.

“*환짱, 진짜 여기다가 생크림 얹어야 되는 거야? 그냥 먹어도 맛있어 보이는데.”

어느샌가 존댓말 대신 친근한 말투로 거리감을 좁힌 사회자가 이환에게 다가가 심히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걸었다.

이환은 조금 전까지 열심히 휘저어 만든 뽀얀 생크림 주머니를 손에 들고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간장으로 밥에 밑간한 은규가 재이의 손에서 탄생한 먹음직스러운 계란프라이를 그 위에 얹어 이환의 앞에 내려놓았다. 통역사가 속삭이는 말을 들은 이환이 사회자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바로 화룡정전인데 무슨 말씀이세요.”

“풉.”

“어휴.”

“아, 제발.”

통역을 위해 이환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통역사가 저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주변에서 파티 멤버들이 못 살겠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것을 보고 사회자가 물었다.

“*왜, 지금 환짱이 뭐랬길래 다들 웃는 거야?”

통역사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사회자와 멤버들 쪽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본 이환이 발끈해서 외쳤다.

“뭔데, 맞잖아. 여기까지 해 놓고 이걸 안 하겠다는 건 용 거의 다 그려 가는데 정전되는 거랑 똑같다고.”

“아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고.”

“그러니까 심은규 네가 그렇게 오냐오냐하니까 애가…….”

[30 sec

평소처럼 투덕대려던 멤버들은 스튜디오 밖에서 스태프가 다급하게 흔드는 사인을 보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자, 이렇게 생크림을 듬뿍 얹어 데코레이션 해 주고요…….”

마음 같아서는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져 말리고 싶다는 표정으로 이환을 쳐다보고 있는 사회자의 시선을 무시한 채 이환이 따끈따끈한 계란프라이 위로 호쾌하게 생크림을 얹었다. 그러자 옆에서 기다렸다는 듯 은규가 들고 있던 초코시럽을 무자비하게 뿌려 댔다.

“*으으으으…….”

사회자가 더는 못 보겠다는 듯한 얼굴로 신음을 흘렸다.

밥과 계란프라이의 열기에 이미 줄줄 녹아내리기 시작한 생크림과 그 위에 번들거리는 초코시럽을 푹,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 퍼내 아래쪽 밥과 싹싹 야무지게 비빈 이환이 커다랗게 한 숟갈 퍼서 사회자에게 내밀었다.

“*이거 왜 나 아침부터 벌칙 게임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사회자가 살려 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스튜디오 안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패널석에 앉은 코멘테이터를 포함해 중계를 위해 사회자의 바로 옆에 서 있던 아나운서까지 모두가 사회자의 눈길을 피해 다른 곳을 쳐다보며 애써 못 들은 척하고 있는 가운데 혼자 신난 이환이 기대에 가득 찬 눈을 빛내며 사회자에게 재촉하듯 말했다.

“하야꾸, 하야꾸.”

이환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입을 연 사회자가 한입 가득 코크라이스를 받아먹는 것을 끝으로 CF가 송출되었다.

* * *

“어? 코크라이스 일본 쪽에서 실트 올라갔다네?”

“우리가 아니라 환심이네 괴식이 실트에 올라가다니.”

“왠지 모를 패배감이 느껴진다.”

팬 게시판을 모니터링 하고 있던 남궁찬이 내뱉은 말에 엠케이와 재이가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아침방송을 무사히 마친 멤버들은 가장 고생한 사회자와 출연진들에게 인사와 함께 사인 CD를 선물하고 매니저 김석관과 기획팀 심진우를 따라 방송국 관계자들과 돌아가며 몇 번의 미팅을 하고서야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분명 2인 1실로 방을 배정받았음에도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방 하나에 모여들어 여기저기에 앉거나 누운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 그룹 관련 검색어에 괴식보이즈 뜨는 거 실화냐고.”

남궁찬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소리에 은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우리도 선겸 선배네처럼 헥사짱 뭐 이런 별명으로 불리고 싶었는데.”

“현실은 괴식 보이즈고?”

“망했다. 아무래도 일본 진출은 접는 게 좋겠다.”

엠케이가 망연자실한 듯 중얼거렸다.

파티의 출연분은 코크라이스의 기괴함이 입소문을 타며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인 아후재팬에 관련 기사들이 올라오면서 SNS에서는 실제로 만들어 봤더니 의외로 맛있더라, 무슨 말이냐, 이건 인간이 먹을 게 아니다. 등등의 감상과 함께 관련 포스트가 급격하게 불어나고 있었다.

일차적으로 코크라이스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은 이걸 만든 것이 옆 나라에서 요새 잘나가는 아이돌이며 그 아이돌의 공식 채널에 가면 코크라이스보다 더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소리에 흥미를 표하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활약하는 영상만 봐서는 다들 멀쩡하게 생긴 얼굴들에서 오는 괴리감이 묘한 호기심에 더욱 불을 지폈다.

특히 두 눈 가득 신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이 바닥 경력 40년의 베테랑 개그맨의 입에 괴식 한 숟갈을 무자비하게 밀어 넣고 있는 이환의 사진은 ‘광기의 흑마법사’라는 타이틀과 함께 새로운 팬덤을 구축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옆 나라 인터넷에서 시작되고 있는 움직임에 대해 알 리가 없는 멤버들은 그저 간만에 주어진 휴식을 느긋하게 즐기는 중이었다. 침대 위에서 뒹굴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남궁찬이 소파에 걸터앉아 자신과 마찬가지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재이를 쳐다보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나 일본 오면 한번 해 보고 싶은 거 있었는데.”

“뭐?”

“뭔데?”

다른 쪽 침대를 차지하고 지루하다는 듯 널브러져 있던 엠케이와 이환이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핸드폰에서 눈을 떼 자신을 바라보는 재이를 다시 한번 쳐다본 남궁찬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도장 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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