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가장 효율적인 방법
이상함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인혁이었다.
‘어디가 안 좋은가?’
재이의 움직임이 평소와 달랐다.
표정이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소의 모습이었으나 항상 합을 맞추던 안무에서 살짝 벗어난 느낌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쳤을 사소한 움직임이었지만 재이와 줄곧 합을 맞춰 온 같은 그룹 멤버라면 누구나 느꼈을 위화감이었다.
슬쩍 옆을 살피니 같은 생각을 한 듯 자신과 나란히 후방 포지션으로 빠져 있던 남궁찬이 힐끔 자신과 시선을 맞춰 왔다.
‘이상하지?’
‘어, 뭔가.’
남궁찬과 시선을 교환한 인혁이 슬쩍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저 둔한 남궁찬이 눈치챘을 정도이니 다른 멤버들도 다들 낌새는 알아차렸다고 봐야 했다. 은규의 보컬과 엠케이의 랩으로 이어지는 브릿지 구간에서 포메이션을 바꾸며 힐끗 재이 쪽을 쳐다보자, 스텝을 밟으며 뒤로 빠지던 재이가 가볍게 왼발을 들어 올리며 몇 번 제자리 뛰기를 해 보였다.
‘왼발에 이상이 있단 소린가 보네.’
재이의 시선을 확인한 인혁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다행히 C'est_la_vie의 안무는 애초에 재이보다 다른 멤버들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보컬 라인에서도 재이가 아닌 이환을 중심으로 하는 포메이션인 덕에 재이의 움직임은 기존 파티의 곡들에 비한다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더군다나.
‘카메라 동선을 신경 써야 되는 것도 아니니.’
미리 맞춰 둔 동선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방송도 아닌 만큼 자신들의 움직임에도 제약은 없을 터. 생각을 정리한 인혁이 슬쩍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큰 키와 랩 담당이라는 공통분모 덕에 자신과 대칭 포지션에 서는 일이 잦은 남궁찬이 인혁의 눈짓을 기다렸다는 듯 시선을 마주치고는 이쪽의 움직임에 맞춰 왔다.
노래는 슬슬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원래라면 메인의 이환을 제외한 다섯 명의 멤버가 함께 들어가는 동작이 이어져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인혁과 그와 시선을 교환한 남궁찬은 정해진 안무를 하는 대신 와락, 양쪽에서 재이에게 어깨를 걸었다.
‘그냥 서 있어.’
슬쩍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재이에게 눈짓하자 반대편의 남궁찬이 눈치껏 애드립을 걸어왔다. 재이를 가운데 두고 장난스럽게 주거니 받거니 애드리브를 주고받는 두 멤버에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다른 멤버들이 돌아보고 놀란 척, 혹은 부러운 척 받아넘기며 무대는 마지막 소절만 남겨 두고 있었다.
“C'est_la_vie!”
“C'est_la_vie-.”
“C'est_la_vie!!”
어느샌가 한자리에 모여든 멤버들이 각자 주저앉거나 서거나, 마주 보고 혹은 서로 서로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 후렴구를 다 같이 함께 불렀다.
평소 서로에 대해 비즈니스 관계라고 입버릇처럼 선을 긋던 녀석들의 말이 입에 발린 말이었음을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 허물없는 그 모습에 관객들이 환호했다.
.
.
.
“조심해서 내려가, 천천히. 천천히.”
무대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여전히 환호하고 있는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태연한 얼굴로 손까지 흔들어 보인 재이가 무대 아래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불안한 듯 옆에서 따라오며 쳐다보던 인혁이 잔소리를 했다.
“호들갑 떨 것 없어. 괜찮으니까 티 내지 말고, 일단 대기실로 돌아가자.”
평소와 다름없는 재이의 목소리에 긴장으로 딱딱해졌던 멤버들의 얼굴에 침착함이 돌아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다들. 파티 무대 매너 좋다더니 진짜네.”
“하하,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이를 둘러싼 멤버들이 주변에서 인사를 건네는 스태프들에게 꾸벅 인사해 보이며 빠르게 대기실로 이동했다. 대기실 천막이 내려지고 주위에 보는 눈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인혁이 의자에 앉은 재이에게 말했다.
“한재이, 신발 벗어 봐.”
“무슨 일이야?”
“한재이가 다친 것 같아요.”
땀에 젖은 의상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재이를 둘러싸고 선 멤버들을 둘러보며 묻는 석관의 말에 엠케이가 재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다쳐?”
당황한 석관이 재빨리 다가오는 사이 재이가 운동화를 벗었다. 드러난 왼발 한쪽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피…….”
“진정해, 호들갑 떨 것 없으니까.”
은규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리는 것을 끊으며 재이가 말했다. 피를 본 당사자치고는 놀랍도록 침착한 그 목소리에 동요하던 멤버들이 정신을 가다듬었다.
“대체 뭐가 들어있었길래… 헉.”
짤그락.
간이 의자에 앉은 재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엠케이가 하던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켰다. 운동화를 뒤집어 탁탁 털어 내는 재이의 손길에 튀어나온 것은 잘게 부서진 커터날 조각들이었다.
“경찰에 연락…….”
“형, 밖에 아직 기자들 돌아다닐 거예요. 여기서 일 키우지 말죠.”
여전히 남의 얘기 하듯 평온한 재이의 말투에 옆에서 듣고 있던 인혁이 혀를 차며 말했다.
“너는 지금 이게 남의 일이냐. 형, 일단 병원부터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시선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인혁의 목소리에 석관이 미간에 주름을 모은 채 대답했다.
“정수야, 회사에 전화해서 차 하나만 더 보내 달라고 해. 아, 여기로 보내지 말고 중간 지점쯤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곁에 서 있던 홍정수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린 석관이 재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의 발을 유심히 살폈다. 석관이 뭐라 하기 전에 재이가 입을 열었다.
“살짝 베인 것 뿐이에요. 양말을 신고 있어서 깊게 박히거나 한 곳도 없는 것 같고요. 처음에 갈아 신고 무대까지 이동하면서도 눈치 못 챘을 정도니까요.”
“그건 의사가 판단할 일이고.”
재고의 여지도 없다는 듯 자신의 말을 자르고 짧게 대꾸하는 석관을 바라보던 재이가 말했다.
“그것보다, 협찬사 리스트 확인 좀 해 주세요, 형.”
“뭐?”
“새로 협찬 들어온 거라고 했거든요, 이거.”
들고 있던 운동화 한 짝을 흔들어 보이며 말하는 재이에 석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의외였어.’
재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걸을 때는 잘 몰랐는데 춤을 추기 시작하자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발 여기저기를 찌르는 것 같은 감각에 뭔가 제대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시작된 무대를 내팽개치고 내려올 수도 없는 일이었다.
길어 봐야 3분.
저쪽 동네에선 옆구리에 독화살을 꽂고 두 시간 넘게 말을 달린 적도 있던 자신이었다. 이 정도 통증이야 별 것 아니었다.
다만 신성력도 없는 동네에서 무턱대고 휘젓고 다니다가는 첫 단독 콘서트 내내 앉아서 춤춰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안 될 일이었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대충 왼쪽 발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안무를 맞추고 있자 귀신같은 차인혁이 먼저 알아보고 눈짓을 해 왔다. 그리고 줄줄이 소시지처럼 다른 녀석들이 자신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대놓고 보면 어떡하냐고. 남들이 눈치라도 채면 어쩌려고.’
하여간에 눈치 없는 것들.
쓸데없는 덴 눈치들 좋으면서 어째서 중요한 곳에서 그 눈치를 안 챙기냔 말이지.
자신과 눈이 마주친 은규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걸 봤을 땐 정말이지 나 괜찮으니까 네 노래나 챙기라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이렇게까지 임기응변이 안 되는 팀이었나 싶은 의구심과 함께 아무래도 콘서트에서 생길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비해 따로 빡세게 훈련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갑자기 양쪽 어깨가 묵직해지는 느낌에 돌아보니 어느 틈엔가 다가온 차인혁과 남궁찬이 자신의 좌우에서 동시에 어깨를 걸어오고 있었다.
…땀 냄새 풀풀 나는 두 명에게 갑작스러운 샌드위치라니.
정말이지 무대 위라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발차기 나갈 뻔.’
재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를 고쳐 누웠다.
“왜, 잠이 안 와?”
가까이서 피곤에 잠긴 매니저 김석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관은 재이의 침대 옆 간이 의자에 불편하게 기대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중이었다.
대충 자신보다 발 사이즈가 큰 인혁의 신발을 빌려 신고 공연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탄 재이는 석관이 미리 지정해 뒀던 중간 지점에서 홍정수가 불러 둔 회사 차로 바꿔 탄 끝에 병원에 도착했다.
재이가 한 말과 달리 발바닥 안쪽까지 파고든 파편이 남긴 상처를 포함해 군데군데 찢어진 크고 작은 상처들을 치료받고 하루 정도는 경과를 보자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재이는 숙소로 돌아가는 대신 VIP실에서 머물게 되었다.
“어, 그러게요.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가.”
“하긴, 아무리 너라도 이런 상황에 쉽게 잠이 오진 않겠지.”
이해한다는 듯 김석관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이의 말을 듣고 곧바로 스타일리스트 팀을 붙들어 둔 석관이 확인한 결과, 그들도 급하게 결정 난 사항이라 곧장 현장으로 온 거라며 운동화를 가지고 온 직원에게서 물건을 건네받았을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직 그 직원이 누군지까지는 모르는 거예요, 그럼?”
잠이 다 달아난 듯 고쳐 앉는 석관을 바라보던 재이가 물었다.
“음… 스타일리스트들 확인한 다음에 곧바로 지원팀하고도 확인했는데 그쪽에서는 그런 연락 한 적 없다는 거야. 혹시 몰라서 VD실도 확인했는데 의심할 만한 사람은 안 나오더라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석관의 말에 재이가 생각에 잠겼다.
“그림을 찢어 놓은 것도 모자라 운동화에 칼날이라니. 대체 너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진짜.”
회사 사람들 다들 모난 데 없어 보였는데 이렇게까지 음습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의외고.
석관이 중얼거리는 말에 재이가 말했다.
“원래 사람이란 알 수 없는 법이잖아요. 내부자 소행이 의심된다고는 하지만 진짜 내부자 소행인지도 아직 모르는 일이고.”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듯 무심한 재이의 말투에 석관이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꿋꿋해 보여서 다행이긴 한데.”
묘하게 남의 말 하듯 하는 게 걸린단 말이지.
석관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에 재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드러내고 설친다는 건 본인을 좀 알아봐 달라는 소린데. 제가 거기에 반응 안 하고 계속 무시하면 아마 곧 직접 덤벼들걸요.”
그때 잡는 게 제일 쉽죠.
태평한 목소리에 석관이 펄쩍 뛸 듯 기겁하며 말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렇게까지 번지기 전에 찾아내서 잡아야지.”
그리고는 어린아이 타이르듯 한 얼굴로 재이를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재이야, 세상은 혼자 사는 거 아니다. 꼰대같이 들리겠지만 너 가끔 보면 너무 주변에 벽 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이번 일도, 내 입장에서는 네가 과민하게 반응하고 지레 겁먹지 않아서 든든하고 좋긴 한데, 그렇다고 그렇게 모두 다 혼자 해결하려고 할 필요 없다는 말이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재이가 입을 열려는 것을 보고 손을 들어 그를 저지한 석관이 말을 이었다.
“네 주변에 너 걱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당장 멤버 녀석들만 해도 번갈아 가면서 오 분에 한 통씩 한재이 괜찮냐고 문자 보내오는 통에 핸드폰 과열돼서 터질 지경이라고.”
석관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들어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행여라도 너 다친 거에 이상한 소문 번져서 범인 잡아내는 데 지장 생길까봐 홍보본부 박 이사님이 직접 미디어 대응 확인하고 계신다. 심 팀장님은 시큐리티 회사 못 믿겠다고 직원 출입기록 명부랑 감시 카메라, 그리고 오늘 행사장에 다녀간 인원 조사 직접 하고 있고.”
아니 그렇게까지 않으셔도…….
재이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석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람이 다쳤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너를 동료로 여기는 사람들은 멤버들 말고도 많이 있다고.”
물론 너를 자신의 밥줄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지만.
답지 않게 분위기를 잡은 것이 새삼 낯간지러웠던 듯 석관이 웃으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요는, 우리가 해결할 테니 너는 그냥 좀 쉬고 있으라는 말이야. 괜히 나대다가 상처라도 덧나면 큰일이니까.”
‘아니, 그냥 내가 기다렸다가 치는 게 제일 빠르고 편한데…….’
석관에게 애매하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 재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람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과 비효율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간만에 자신의 담당 연예인에게 좋은 말을 해 줘서 뿌듯하다는 듯 웃고 있는 석관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내일은 퇴원해도 된대요?”
대신 화제를 돌리며 재이가 붕대를 감은 자신의 왼쪽 다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응? 아아, 응. 일주일 정도는 절대 무리하지 말라는 조건부이긴 하지만.”
“다행이다. 붕대를 하도 무식하게 감아 주셔서 다리 부러진 줄 알았잖아요.”
“언론에는 발목 삐끗했다는 거로 기사 나갔으니 이 정도는 해도 돼.”
내일 퇴원할 때는 목발도 줄 건데? 하는 석관의 말에 질색하던 재이는 싫으면 휠체어 탈래? 라는 석관의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다음 날.
“으어, 취재진 엄청 몰렸는데요.”
“…이거 뚫고 나가는 게 쉽지 않겠는걸.”
회사와 연계된 병원이 아닌 석관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병원으로 향한 덕에 재이는 미디어의 방해 없이 편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재이의 퇴원 수속을 위해 잠시 원무처를 찾은 석관을 마침 병원에 들렀던 팬이 알아보면서 순식간에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파티의 인지도가 높아짐에 따라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 얼굴이 팔린 석관은 김석관이라는 이름 석 자보다 파티 매니저라는 타이틀로 유명해진 지 오래였다.
파티의 매니저를 병원에서 봤다는 팬의 짤막한 인증 글이 SNS를 타고 퍼지기 시작하자 밤새 재이의 행방을 찾아 시내 병원을 쑤시고 돌아다니던 연예부 기자라는 이름의 하이에나들이 병원 입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병실로 돌아온 석관과 주차장으로 향한 재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어느새 소식을 듣고 밀려든 미디어와 구경꾼들 그리고 갑자기 몰려든 인파에 당황한 병원이 다급하게 설치해 둔 포토 라인이었다.
“차라리 휠체어를 타고 돌파하는 게 빠를 뻔했나요.”
“휠체어로 몇 명 정도 밀어 버린다는 가정이라면 그쪽이 확실한 방법이긴 하겠다.”
목발을 짚은 채, 야구 모자를 눌러쓴 재이가 석관에게 슬쩍 몸을 기울이며 소곤대자 석관이 눈을 찌푸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들이 등장하자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여기 좀 보라고 외쳐 대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재이가 중얼거렸다.
“아니 이게 이렇게 사람이 몰릴 일인가.”
“몰릴 일이지. 몰릴 일이고말고. 탑 아이돌이 다리에 붕대 감고 목발 짚고 서 있는데. 조회 수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들려.”
“진짜 대중의 관심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요.”
재이가 중얼거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길 때마다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파도처럼 모였다가 흩어졌다.
미리 도착해 대기중이던 홍정수가 기다리고 있는 차 앞까지 거의 다다른 순간. 부산스러운 포토 라인 안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목발이 바람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