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91화 (191/224)

#191

꿀꿀할 땐 삼겹살

그날 오후.

점심시간이 다 지나도록 화장실 갈 새도 없이 미친 듯이 바빴던 회사원 김은지는 밖으로 나온 김에 이대로 퇴근하고 싶은 유혹을 애써 떨쳐 내며 오피스 근처 김밥 전문점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원한 냉수를 반쯤 들이키고는 주문한 김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겨우 느긋해진 마음으로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하려던 김은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읽지 않은 메시지 999+]

대화 목록의 가장 상단에 있던 파티 덕톡방에 붙은 읽지 않은 메시지의 숫자를 확인한 김은지의 심장이 불길함으로 두근대기 시작했다.

‘설마 누구 스캔들 터진 건 아니겠지, 갑자기 누가 군대 가고 뭐 그런 것도 싫어, 너희 아직 한 삼십 년은 더 벌어야지 않겠니 얘들아. 누나가 너희를 위해 오늘도 저 빌어먹을 박 부장이 깐죽대는 것도 참고 정년퇴직이라는 웅대한 꿈을 향해 간신히 한 발자국 더 나아갔는데 너희가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 그치.’

김은지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잡생각을 떨쳐 내기라도 하듯 고개를 한 번 휘휘 내젓고는 메시지 창을 열었다.

몇 달 전 그간의 솔플생활을 청산한 김은지는 공방에서 만난 비슷한 나이대의 직장포션들과 단톡방을 만들어 새로운 덕질의 장을 활짝 열고 있던 참이었다. 어젯밤만 해도 이번 재재님 탄신일에는 나눔카페를 하는 게 어떻냐는 의견에 나라의 살림에 보탬이 되는 건전한 주제로 즐겁고 알찬 덕질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본 메시지 창은 이미 혼돈의 카오스였다.

- 아직도 공홈 그대로지?? 설마 나만 이런 거 아니지?

- ㅇㅇ 여전히 터져 있음

- 내 속도 터진 듯

- 아 X발 팀장 새X 눈치 없이 이 타이밍에 회의 잡았어 미친 다 죽여 (회의다녀올게ㅠ

- 혐생수고

- 빨리 해치우고 오셈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최신 대화들을 봐도 무슨 말을 하던 중인지 감이 안 잡힌 김은지가 스크롤을 위로 올려 안 읽은 쪽을 쓱 훑었다.

- [속보]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 A군 퇴원 도중 괴한에게 피습당해

- [1보] 인기 절정 아이돌의 메인 보컬 A군 퇴원하던 중 괴한에게 피습…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어

- [특종] 백주에 아이돌 상대로 병원 앞 칼부림 …… 이유는 ‘잘나가는 게 아니꼬워서’

.

.

.

“대체 이게 다 뭐야.”

- 진정해 아직 공식발표 안 올라왔잖아 카더라일 가능성은

- 1퍼도 안 되지ㅇㅇ

- 0.00001퍼도 안되지 거기 모여있던 기자만 몇인데

- 아침에 인증 글만 안 올라왔어도 안 믿는 건데

- 케이엠 제발 빨리어서 소식 하야꾸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어

“대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김은지가 중얼거리며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는 대화 내역을 눈으로 훑고 있는데 마침 가게 주인이 틀어 놓은 TV에서 사건 사고 소식을 읽어 내려가고 있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오늘 오전 XX동에서 퇴원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인기 아이돌 A 군이 괴한의 습격을 받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자세한 소식 현장에 나가 있는 취재 기자를 연결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조윤 기자.

앵커의 호명과 함께 장면이 바뀌고 어수선한 병원 입구를 배경으로 서 있는 기자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 네. 저는 지금 사건이 일어났던 XX동 병원 앞에 와 있습니다. 오늘 오전 10시경 바로 이곳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내원해 있던 인기 아이돌 A 군이 갑자기 튀어나온 괴한이 휘두른 나이프에 피습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짚고 있던 목발로 막아 낸 덕에 최악의 상황은 피했는데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보시죠.

기자의 멘트와 함께 장면이 바뀌고 밀려든 취재진 사이로 매니저의 부축을 받아 목발을 짚고 병원 문을 걸어 나오는 한 사람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 되어 있었으나 김은지는 곧바로 그게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재이야.”

김은지가 얼어붙은 듯 시선을 고정한 채 TV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화면은 병원에서 쳐 놓은 포토라인 아슬아슬하게까지 몸을 빼고 사진을 찍어 대는 취재진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목발을 짚은 채 대기 중인 차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재이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차에 거의 다다른 순간, 옆을 휙 돌아본 재이가 그대로 목발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어디에선가 튀어나와 그를 향해 달려들던 괴한이 휘두르던 무언가가 허공으로 튕겨 나가는 것이 보였다.

- 지금 보신 대로 취재진 사이에 잠입해 있던 괴한은 아이돌 A 군을 발견하자마자 그에게로 달려들며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순간의 기지를 발휘한 A 군이 목발로 막아 내지 않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의 증언을 들어보시겠습니다.

기자의 말과 함께 병원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 깜짝 놀랐죠. 그때 거기 XXX 씨 보겠다고 사람들이 엄청 몰려 있었거든요. 저희가 포토라인을 쳐 두긴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이거 잘못하면 큰일 나겠다 하고 있었는데.

숨을 돌린 병원 관계자가 이어 말했다.

- XXX 씨가 걸어 나오는데 갑자기 누가 확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XXX 씨한테 달려들면서 XXX를 휘두르는 거예요. 어휴. 진짜 잘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죠. 다시 생각해도 섬뜩합니다.

화면이 다시 바뀌어 취재 기자를 비추자 그가 입을 열었다.

- 괴한은 그 자리에서 모여 있던 기자와 시민들에게 제압당해 곧바로 경찰에 넘겨졌습니다. 범인은 20대 직장인 김모 씨로 몇 달 전부터 A 군의 주변을 맴돌며 그를 스토킹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유명해지고 싶었다’, ‘(XXX 군이) 잘나가는 게 아니꼬웠다’라고 횡설수설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김모 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하고 그가 관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여죄에 대해 추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주문하신 김밥 나왔습니다.”

반쯤 넋을 놓은 채 뉴스를 보고 있던 김은지는 눈앞에 김밥을 내려놓는 사장님의 목소리에 퍼뜩 놀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김밥이고 자시고,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었다.

정신을 추스르고 들어가 본 공홈은 접속자가 많아 서버가 다운되었다는 메시지만 반복해서 뜰 뿐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팬카페에 들어가 보자 이미 소식을 전해 듣고 몰려온 팬들이 올린 글로 게시판은 이미 홍수 상태였다.

└ 같은 20대 직장인 김모로서 용서 못 한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임

└ 전국의 십만 20대 직장인 김 모 씨들 집단행동 들어갈 각

└ 이런 때 농담이 나오냐

└ 농담 아닌데

└ 근데 직장과 스토킹 병행이 가능한 거야? 난 직장과 덕질 병행도 힘들구만

└ 미친놈이 괜히 미친놈이겠냐고

└ 재재님 괜찮겠지? ㅠㅠㅠ 제발 누가 글 하나만 올려줬으면 좋겠다

└ 지금 같은 시기엔 좀 그냥 놔두면 안 되냐

└ 걱정돼서 그러잖아

└ 그럼 조용히 걱정이나 하던가. 이런 때까지 애들 감정노동 시키려고 하지 말고.

└ 와, 지 맘에 안 든다고 ㅈㄴ 두들겨 패네.

└ 스토커가 케이엠 직원이라는 얘기 돌던데

└ 헐 미친 이거 진짜임??

└ 연생 출신이라는 말도 있음

└ ㄹㅇ??? 그런 건 회사에서 걸러야 되는 거 아님??

└ 일반인으로 정식 직원 채용한 건데 뭘 보고 걸러. 걔들도 먹고살아야지.

└ 이거지 그렇다고 다들 이 미친놈처럼 미친 짓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 카더라 왤케 당당함??

└ 내 말이. 스토커 신상 따위 관심 없다고

└ 이러다 콘서트 일정에 차질 생기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 멤버가 대낮에 스토커가 휘두른 칼에 명줄 날아갈 뻔한 마당에 너는 지금 콘서트가 걱정이냐 어휴

└ 22 공감 능력 어딨

└ 팬 맞냐 ㅉㅉ

└ 이런 애가 20대 직장인 김모 씨 되는 거임ㅇㅇ

└ 넌 너무 나갔다

.

.

.

대형 팬덤으로 급격하게 체급을 불리며 무섭게 성장 중인 와중에도 비교적 온건한 기조를 유지 중이던 팬덤 전체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바짝 날이 서 있었다.

미친 스토커에 멤버의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를 상황이었는데 그와 그룹을 아끼는 마음으로 모인 팬덤이 제정신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글을 읽고 있는 김은지 또한 텍스트가 머리에서 튕겨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읽으면서도 도저히 내용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때.

띠링

라이브 앱의 알람이 울렸다.

멤버 중 누군가가 지금 이 순간 라이브 앱을 켜고 방송을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설마…….”

김은지는 다급히 백을 뒤져 에어팟을 찾아 귀에 꽂으며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

.

.

- 안녕하세요, 포션 여러분. 파티의 한재이입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자 김은지는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을 꾹 쥐었다.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걱정으로 얼어붙었던 심장이 녹아내리듯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멤버들의 자체컨텐츠 등에서 수도 없이 봐 온 탓에 자신의 집만큼이나 익숙한 숙소 거실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 앉은 재이가 화면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 시선이 마치 정말로 화면 너머의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김은지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했다.

- 뉴스 보고 많이 놀라셨죠?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아니야,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그 미친 스토커 새끼 탓이지. 네가 뭐가 죄송해.’

김은지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한 듯 짧게 웃은 재이가 이어 말했다.

- 아무래도 포션 여러분이 많이 걱정하고 계실 것 같아서. 괜찮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서 잠깐 들어왔어요. 여기는 지금 숙소고요, 보시다시피 이렇게 아픈 곳 없이 편하게 잘 쉬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자신의 무릎 위에 올라앉은 도도 님을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재이가 말했다. 그 목소리가 평온한 것을 확인한 김은지가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잠시 손가락으로 도도 님이 좋아하는 목덜미를 살살 긁어 주며 자신에게 장난을 걸어오는 고양이에게 장단을 맞춰 주고 있는 재이 뒤로 편한 차림에 부스스한 머리를 한 남궁찬이 도도님 밥그릇을 들고 카메라 앵글로 들어왔다가 후다닥 뒷걸음질 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야! 차인혁! 한재이! 뭐야, 너네 설마 라이브앱 켜고 있었던 거 아니지 그치, 아니라고 말해, 어서!

멀찍이서 들려오는 남궁찬의 목소리에 재이 대신 카메라 너머로 누군가가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혁이 재이를 찍어 주고 있던 모양이었다.

- 아, 차인혁 웃지 마! 카메라 자꾸 흔들리잖아. 남궁찬! 팬분들이 궁금해하시니까 기왕 얼굴 비춘 거 이리 와 봐 봐……. 아 어때 너 숙소에서 그러고 다니는 거 모르는 포션분 없으니까 그냥 오라고.

평소와 다름없는 재이의 목소리에 남궁찬이 이대로 혼자 당할 수는 없다며 부산스럽게 여기저기서 멤버들을 끌어모았다. 얼결에 카메라 앞에 모두 모인 멤버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 한재이 진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여러분.

엠케이가 들고 온 삼각대에 핸드폰을 고정하고 멤버들과 함께 카메라를 마주 보고 앉은 인혁이 입을 열자 남궁찬이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 아까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허기진다고 삼겹살 구워 먹었다고요!!

- 목발 블로킹 성공했으니 먹을 자격은 충분하다.

엠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있던 재이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음식은 원래 골고루 먹는 게 좋죠. 소 돼지 닭, 이 기본 로테이션이 중요해요. 아, 지루하면 중간중간 양고기나 오리고기로 변화를 주는 것도 괜찮아요.

- 오늘은 돼지가 딱이었던 듯. 꿀꿀할 땐 원래 삼겹살이 진리잖아요.

재이가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남궁찬이 맞는 말이라는 듯 장단을 맞추는 것을 보고 이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 하여간에 먹는 얘기 나오면 끝을 몰라요, 아주. 지금 그 얘기 하려고 켠 게 아니잖아.

- 왜지, 먹는 것보다 중요한 게 또 어딨다고, 아, 자는 거 빼고. 포션 여러분은 식사하셨어요? 뭐요? 아직도 안 하셨다고요? 어서 하세요, 어서!

이환의 말에 정색하고 반박한 남궁찬이 팬들의 식사를 챙기자 엠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 잊지 마세요! 한재이는 혼자서 앉은자리에서 삼겹살 3인분을 뚝딱 해치웠다는걸.

- 앉은자리 3인분!

- 진짜 기회를 놓치지 않는 한재이. 매니저 형이 좀 딱하다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고 했더니 냉큼 혼자 삼겹살 3인분을 뚝딱! 대체 그렇게 먹고 살은 다 어디로 가는지.

남궁찬이 중얼거리자 이환이 혀를 차며 타박했다.

- 그 옆에서 같이 3인분 뚝딱하신 분이 말이 많으시네요.

- 아 그러는 이환 씨도 같이 먹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 저는 괜찮거든요. 누구랑 달라서 아직 기준 체중에 여유가 좀 있거든.

- 와 얄미워라.

남궁찬과 이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채팅창에 빠르게 올라오는 글들을 훑고 있던 은규가 반복되어 올라오는 팬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며 말했다.

- 식단 조절요? 아, 저희 콘서트 때까지 연습량 많아서 일단 식단 스탑했거든요. 덕분에 남궁찬이 살판났죠.

- 세상은 아름다운 거예요, 여러분.

- 매니저 형이 일주일 치라고 사 둔 고기를 하루 만에 끝내 버리는 저력 있는 그룹이죠. 저희가.

남궁찬의 말에 엠케이가 자랑스럽다는 듯 덧붙이자 다른 멤버들이 제각각 수군댔다.

- 하도 고기만 구워 대서 화재경보기 울리는 줄 알았잖아.

- 설마 한재이가 남궁찬만큼 먹어 치울 줄 몰랐지.

- 그걸 몰랐다고? 한재이가 다른 건 몰라도 고기 욕심은 엄청난데?

- 고기는 살 안 찌거든.

재이가 단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이 정신없이 쏟아지는 멤버들의 수다에 김은지는 왠지 코끝이 시큰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에도 아랑곳없이 서로 투닥거리기 바쁜 멤버들 사이에서 인혁이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 아 그냥 한재이랑 얘기하다가 글로 쓰는 것보다는 괜찮다는 모습 직접 보여 드리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어서 잠깐 켠 건데. 어쩌다 보니 또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하하.

- 저희 걱정하지 마시고 아직 식사 안 하신 분들 어서 식사하세요.

- 밥이 중요합니다. 한국인은 밥심이죠!

- 포션 여러분 모두 맛점하세요!

인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다투어 한마디씩 하며 손을 흔드는 멤버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정신 사나웠던 라이브 방송이 끝났다. 멍하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김은지는 까맣게 꺼진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뒤늦게 자신이 울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김밥 한 줄과 다 식어 가는 오뎅 국물을 앞에 둔 채 울고 있는 이십 대 직장인이라니. 누가 보면 상사한테 제대로 깨진 줄 알겠네. …어, 잠깐. 그거 좋은데? 이대로 박 부장 핑계로 오후 반차 내고 삼겹살이나 먹으러 갈까.’

티슈로 눈물 자국을 닦아 내며 김은지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단 점심부터 먹고. 애들이 밥 잘 챙겨 먹으라고 했어.’

“사장님, 여기 소고기 치즈 김밥 하나랑 참치김밥 하나 더 주세요.”

재이도 앉은자리 3인분이랬으니까.

김은지는 조금 전까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김밥에 젓가락을 가져다 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그래서 그쪽에선 뭐래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 줄곧 병원 치료받고 있었다고 진단서 들이밀면서 선처해 달라고 하고 있단다.”

“헐. 그래서요?”

“선처는 무슨. 법대로 가야지.”

멤버들은 숙소 거실에 모여 외출에서 돌아온 석관을 둘러싸고 사건의 진행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단호한 석관의 말에 한시름 놓았다는 듯 표정을 풀며 인혁이 말했다.

“회사 쪽 입장이 확고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우리도 이번 일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까. 직원 관리 제대로 못 했다고 욕먹고 있는 거야 귀여운 수준이지.”

석관이 골치 아프다는 듯 중얼거렸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뒤흔들어 놓은 재이의 스토커 피습 사건은 소문대로 범인이 케이엠 소속 직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 번 더 발칵 뒤집혔다.

사고가 날 때까지 회사가 손 놓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질책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문선일 대표는 직접 나서서 기자 회견을 통해 선처 따위 없이 철저히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성명을 냈다.

그와 함께 매년 회사 차원에서 스토킹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에 기부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지고서야 여론은 겨우 진정세로 접어들었다.

“아 그 목발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었는데.”

엠케이가 중얼거린 말에 옆에 앉은 이환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재이도 아니고 네가 그걸 왜.”

“왜, 좋잖아. 스토커의 칼날을 막아 낸 전설의 목발 블로킹! 한재이 그림 대신 회사 로비에 걸어 두면 딱 좋지 않냐.”

엠케이가 꽤 괜찮은 아이디어 아니냐는 듯 동의를 구하는 얼굴로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 거냐, 넌.”

“가끔 보면 한재이보다 쟤가 더 엉뚱함.”

“원래 시대를 앞서가는 아이디어는 기발함과 엉뚱함에서 시작되는 거야.”

“그래, 엠케이 네가 우리 그룹 아이디어 박스이긴 하지.”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가 지금 개고생 중이잖아.”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다른 멤버들의 반응에 엠케이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더 개고생하고 싶으면 더 해 봐,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하도 들여다봐서 너덜거리는 콘서트 자료집을 흔들어 보이며 엠케이가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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