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94화 (194/224)

#194

화니재재의 치포차포

“아니지, 여기선 꺾어야지.”

“사라앙아아-, 이렇게?”

“아니, 사라흥으아-, 이렇게.”

두 사람은 빈 병상에 걸터앉아 할머니에게 불러 드릴 곡의 합을 맞춰 보고 있었다.

재이는 트로트 창법 특유의 꺾임을 직접 불러 보이며 자신에게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는 이환의 진지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환의 할머니는 트로트 마니아였다. 그리고 말을 겨우 뗐을 무렵부터 그런 할머니 밑에서 할머니 전용 주크박스로서 영재 교육을 받고 커온 이환의 트로트 실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스텝 업]에서 은규와 함께 유닛 곡으로 트로트를 들고 나왔을 때도 범상치 않아 보였지만 다시 들으니 역시 제대로였다.

“…….”

“……왜, 왜?”

재이의 시선을 느낀 이환이 당황한 듯 물었다.

“잘하네.”

“뭐, 뭔데 갑자기 왜 그래 무섭게.”

“칭찬한 건데?”

뭐 문제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재이의 눈빛에 움찔한 이환이 할머니 쪽에서 들리지 않도록 재이에게 몸을 기울이며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잘못했다니까.”

조금 전 병실 밖으로 끌려 나가 들었던 이환의 구구절절 장황한 참회의 랩을 떠올린 재이가 눈을 찌푸렸다. 곁눈질로 힐끔 재이 쪽을 살핀 이환의 표정이 눈에 띄게 불안해졌다.

“아니, 진짜 잘해서 칭찬한 거라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진짜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응?”

재이의 대답에 참회의 랩 두 번째 벌브를 시작하려고 시동을 걸고 있던 이환이 할 말을 잃은 채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잘한다고.”

다시 한번 짧게 대답한 재이가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된다는 듯 반쯤 입을 벌리고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이환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역시 한두 번 따라 해서 될 만한 게 아니네. 제대로 소리 내려면 연습 많이 해야겠는데?”

“어? …어어……. 그, 그렇지.”

이환이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럼 속성으로 좀 가르쳐 줘 봐. 나 잘할 것 같다고 했다며, 형이.”

“그 형이란 말은 빼면 안 될까. 잘못했다고 했잖아. 진짜 내가 미친놈, 죽일 놈, 도른맨이다…….”

울상이 되어 자신을 쳐다보며 애원하듯 말하는 이환의 말에 재이가 눈썹을 추어올리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왜, 나 동생 같아서 막 챙겨 주고 싶고 막 그렇다며. 다섯 중에 가장 동질감 느낀다고 했다고 하시던데. 우리 중에 트로트 너만큼 할 것 같은 녀석은 나밖에 안 보인다며? 싹수 좋은 동생 좀 가르쳐 달라는데 왜 그래, 환이 형.”

분명 차분한 목소리로 조용조용 내뱉는 말이었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묵직하게 머리를 내리치는 듯한 감각에 이환이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질어질하다는 표현을 이렇게까지 실감 나게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나 잠깐 나가서 벽에 머리 좀 박으면 안될까. 차라리 할머니 옆에 나란히 눕는 게 낫겠어.”

이환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재이가 태연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할머니 기다리시니까 얼른 하자, 형.”

“후우우…….”

저 형 소리 들을 때마다 수명이 팍팍 깎이는 것 같아…….

입 밖에 내 봤자 누가 뿌린 씨앗이냐는 핀잔밖에 듣지 못할 것이 뻔한 소리를 속으로 집어삼키며 이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자 그럼 우리 장옥희 여사만을 위한 특별한 무대. 지금 막 동남아 순회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인기 절정의 두 남자, 흥청만점 화니재재의 ‘사랑은 치포차포’ 시작하겠습니다!”

몇 분 동안 커튼까지 쳐 놓고 옆쪽 병상에서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쑥덕대던 이환과 재이가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고는 곧바로 커튼을 활짝 걷으며 등장했다.

이환이 노래방 앱에서 찾아낸 할머니의 애청곡 반주를 배경으로 익숙한 솜씨로 대사를 치자 이환의 뒤를 따라 등장한 재이가 천연덕스럽게 어깨춤을 추며 어디서 난 것인지 쇠숟가락 두 개로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병원 관계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뒤 ‘무대 준비’를 한다고 병상 하나를 점거하고 커튼을 쳐 버린 두 사람을 대신해 할머니의 말동무 겸 시중을 들고 있던 홍정수가 재빨리 일어나 직업병처럼 두 사람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익숙한 듯 그런 홍정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자신들을 놀랍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할머니를 향해 찡긋 웃어 보이고는 곧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어두운 새벽

희미한 기적 소리

아아 떠나가네

무정한 기차가

하얀 연기 속에

야속하게 흩어지는

나의 사라흥으아

치치포 치치포

사랑 사라항아

(사라흥으아)

차차포 차차포

아하 내 사라항아

(나의 사라흥으아)

하이라이트 부분을 능숙하게 밀고 당기며 꺾어 치는 이환의 가락에 재이가 숟가락 박자와 함께 추임새를 넣으며 따라 붙었다. 할머니의 얼굴이 놀라움과 기특함 그리고 즐거움으로 물들었다.

* * *

- 아하 내 사라하앙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병원 복도를 지나던 환자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보호자가 함께 귀를 기울이다가 말했다.

“사랑은 치포차포잖아? 누가 TV라도 보나?”

“아니 제집도 아니고 누가 병실에서 TV를 그렇게 크게 틀고 봐? 병원 전세 냈대?”

“그러게. 저기 안 그래도 간호사 오시네.”

두 사람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상황을 살피러 온 간호사가 병실 문을 열도록 자리를 내주며 그 등 뒤에서 안쪽의 상황을 구경하기 위해 힐끔 고개를 내빼고 열리는 문틈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궁금한 건 자신들뿐이 아니었는지 여기저기서 모여든 병원 관계자와 환자들 그리고 그들의 일행으로 병실 문 밖은 어느새 구경꾼이 불어나 있었다.

- 치치포 차차포

- 사랑 사라흐아아

“뭐야 진짜 부르는 거야?”

“뭐? TV 소리가 아니라?”

문틈으로 보인 것은 TV 볼륨을 맥스로 틀어 놓은 민폐 환자의 모습이 아니라 침대에 기대앉아 있는 할머니와 입원하신 할머니를 위해 열성적인 재롱 잔치를 벌이고 있는 두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당황한 간호사가 잠시 머뭇대는 사이 뒤쪽에서 구경하던 환자 한 명이 말했다.

“저기요, 간호사 선생님, 그, 어차피 후렴구인데 조금만 더 듣죠.”

“그러게. 그러게, 얼추 다 끝나 가는구먼.”

어느새 자신의 등 뒤로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구경꾼들의 만류에 당황한 간호사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보는 사이 노래는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시작했다.

- 치치포 치치포

- 차차포 차차포

- 치치포 치치포

- 차차포 차차포

흥에 취해서 고개를 반쯤 꺾고 한껏 감정을 잡아 부르는 이환의 옆에서 재이가 숟가락 두 개로 마치 탬버린이라도 두드리듯 현란하게 박자를 넣고 있었다.

조금 전 속성으로 전수한 트로트 창법이 그새 목에 익었는지 찰지게 달라붙는 재이의 코러스가 이미 고삐가 풀린 듯 열창 중인 이환의 노래에 감칠맛을 더했다.

두 사람이 뽑아내는 찰진 가락에 구경꾼 중 몇몇이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사랑아 내 사라흥아

- 그대 따라가리라

- 치치포 차차포 핫하아

.

.

.

탄식 같은 감탄사와 함께 노래가 끝나고 동시에 반주가 멈추자 병실에 짧은 침묵이 맴돌았다.

“오오오!! 잘한다! 잘한다!”

“크으으 이 맛이지! 앵콜 앵콜!!”

“한 번 더! 한 번 더!”

1인용 특등석에 앉아 두 사람의 리사이틀을 감상 중이던 이환의 할머니 장옥희 여사보다 먼저, 어느샌가 활짝 열린 병실 문 바깥에서 멋대로 구경 중이던 이름 모를 구경꾼들에게서 환호가 터졌다.

두 사람 몫의 성량 충만 보이스에 시끄러운 반주 소리, 그리고 숟가락 박자까지 더해져 병실 문이 열린 줄도 모르고 노래에 몰입해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을 향했다.

이환과 재이는 그제야 병실 바깥에서 팔짱을 끼고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는 간호사와 그 너머로 모여든 구경꾼들을 발견하고는 머쓱한 듯 어깨를 움찔하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아, 너무 시끄러웠나요.”

“죄송합니다.”

두 사람이 꾸벅 인사하자 간호사의 뒤에서 구경꾼들이 외쳤다.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한 곡만 더 해 줘요!”

“우리 할머니도 치포차포 좋아하시는데! 우리 병실도 좀 왔다 가요!”

“우리 딸이 팬이에요! 사인 좀!”

시끌벅적하게 외치는 구경꾼들의 소리에 홍정수가 재빨리 뛰어나가 간호사와 구경꾼들을 복도 쪽으로 밀어내며 나가면서 등 뒤로 병실 문을 닫아 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얼빠진 듯 굳어 있는 이환의 옆에서 문 쪽으로 뛰어나간 재이가 홍정수가 닫은 문을 그대로 걸어 잠가 버렸다.

“자, 잠가 도 되는 거야?”

“사태 진정되면 정수 형이 전화라도 하겠지, 뭐.”

재이가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을 보고서야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인지 뒤늦게 묻는 이환의 질문에 재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중얼거리며 대꾸했다.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갑자기 몰려든 구경꾼에 놀란 듯한 얼굴의 할머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놀라셨어요? 전 살살하려고 했는데 환이 형이 상의도 없이 쭈욱 뽑아 버리는 바람에.”

“그 형 소리 좀 그만하면 안 되…….”

“그래서 누가 더 잘했어요? 아, 저는 오늘 트로트 처음 불렀다는 거 잊으시면 안 돼요? 손자 친구도 손자인 거 맞죠? 친손자라고 환이하고 저 차별하시면 저 완전 서운하다고요.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중간에 끼어들려는 이환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듯 할머니에게 시선을 집중한 채 제 할 말을 쏟아 낸 재이가 아직까지 들고 있던 숟가락 두 개를 들어보이며 챙챙 박자를 맞춰 보였다.

‘한재이 이 여우 같은 자식, 내 할머니인데.’

이환의 입이 비죽 나오는 것을 힐끔 살핀 재이가 픽 웃었다.

‘하여간에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금방 삐져서는.’

샘낼 게 뭐가 있어. 그래 봐야 똥 기저귀 갈아 가며 금이야 옥이야 키우신 너랑 오늘 하루 본 내가 같겠냐고.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빙글빙글 웃으며 이환의 시무룩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이고, 이걸 어째. 이 예쁜 손이 다 빨개져서는.”

옆에 선 이환의 얼굴을 곁눈질하며 피식 웃고 있던 재이는 자신의 두 손을 감싸는 온기에 저도 모르게 움찔 어깨를 떨었다.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내려다보니 할머니가 어느새 자신의 양손을 감싸 쥐고는 숟가락을 쥐고 두드리느라 빨개져 있던 손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 아무렇지도 않은…….”

“아무렇지 않기는. 이렇게 빨간데. 쯧. 얘 환아, 저기 냉장고에서 물병 좀 꺼내서 재이한테 좀 쥐어 줘라.”

재이의 손을 꼭 쥐고 숟가락 자국이 아직 그대로 남은 손바닥을 꾹꾹 눌러 마사지하던 할머니가 재이 옆에 멀거니 서서 상황을 구경 중이던 이환에게 말했다. 이환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재이에게 던져 주고는 잽싸게 반대편으로 돌아가 할머니의 손 중 하나를 당겨 잡으며 투덜거렸다.

“아, 할머니 나는? 나도 핸드폰 들고 있느라 힘들었다고. 나도 토닥토닥 해 줘. 나도.”

“어구 그래 내 새끼 손도 아팠어. 이리 와, 이리.”

분명 자신의 손보다 훨씬 작고 힘없는 손이었건만 수고했다고, 너희가 최고라고, 세상의 어떤 약보다도 더 잘 듣는 것 같다고 토닥여 주는 그 손길을 거스를 엄두가 나지 않아 재이는 움쩍달싹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이환, 이 배신자.”

숙소 안.

밤늦게 모여 재이에게서 이환의 할머니 병문안 소식을 전해 듣던 멤버들 중 은규가 중얼거렸다.

“아니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인터뷰에서 환심이즈 포에버 외친 그날 바로 다른 살림을 차렸다고?”

재이와 병원에서 즉흥 듀엣으로 할머니의 애청곡을 불렀다는 소리에 은규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동안 저 까칠한 성격을 다 받아 줘 가며 꾸준히 활동해 온 덕에 두 사람의 이름으로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따내고 나름 알차게 꾸려 오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소리야.

어처구니없다는 듯 이환을 노려보며 중얼거린 은규의 말에 엠케이가 냉큼 맞장구를 쳤다.

“이환이 잘못했네.”

“그러게. 이환이 잘못했네.”

남궁찬이 거들자 이환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 그 상황에서는 그것밖에…….”

“상도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지.”

“심은규만 불쌍하게 됐네.”

이환이 말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엠케이와 남궁찬이 수군거렸다.

“이렇게 환심의 시대가 가고 화니재재의 시대가 오는 건가.”

소파에 앉아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인혁이 중얼거린 소리에 멈칫한 엠케이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아니 근데 그런 거로 치면 한재이가 너무하는 거 아니냐?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라니. 이건 진짜 재래시장 앞에 떡하니 대형마트 들어온 느낌이잖아.”

“비유 찰지네. 그러게, 내 생각에도 이건 한재이가 잘못함.”

그러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도 님을 배 위에 얹은 채 숙소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남궁찬이 바로 그거라는 듯 맞장구치며 말했다.

“문병 다녀오랬지 누가 남의 밥그릇 뺏고 오랬냐고.”

“심은규 의문의 1패.”

“어흑재가 어흑재 했네.”

어이없다는 듯 이쪽을 한 번 쳐다보고 혀를 차며 중얼거리는 은규의 뒤를 이어 환몰이에 이어 재몰이까지 하게 되어 신난 엠케이와 남궁찬이 덩달아 외쳤다. 멤버들의 화살이 또다시 자신을 향했음을 깨달은 재이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주 이 지구상에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것도 다 내 탓이지.”

“그럼, 우리 세계관 최고 흑막 어흑… 악.”

눈치 없이 한마디 더 하려던 남궁찬에게 재이가 던진 쿠션이 날아들었다.

* * *

“드디어…….”

김은지는 감개무량한 얼굴로 콘서트장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어느 주말 오후, 푹 절은 자반 고등어 같은 몰골로 조카가 보는 유튜브를 따라 보다 나이에 맞지 않은 인형 놀이를 세상 진지하게 하고 있던 어떤 녀석에게 거하게 치여 버린 후, 팔자에 없으리라 믿었던 덕질의 세계로 발을 내디뎠던 자신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쥐꼬리만 한 봉급 대신 체력과 열정과 의욕을 모두 회사에 헌납한 채 그저 아직 살아 있으니까 또 사는 삶을 살아오던 자신에게 벼락같이 내리꽂힌 녀석들이었다. 지나가는 세월에 무기력하게 끌려가기만 하던 자신에게 삶의 즐거움을 되찾아 준 존재들이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다 그림같이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월급만큼 소중한 연차를 내고 새벽부터 밤까지 그야말로 하루를 꼴딱 녀석들의 공개 방송에 쏟아붓고 지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올 때.

이건 결국 혼자 앓는 마음이고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란 그저 수없이 존재하는 모래 알갱이 중 하나겠지 싶은 생각이 들 때.

현생에 치일 때마다 바짝 벌어서 후회 없이 쓰자는 다짐이 흔들릴 때마다…….

“악, 저거 설마 굿즈 줄이야!? 아니라고 해 줘!”

감상에 젖어 있던 김은지가 가방을 고쳐 메고 잰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금부터가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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