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95화 (195/224)

#195

Phase 1 Convergence (융합) (1)

‘휴우. 큰일 날 뻔했어.’

김은지는 자신의 가방을 꾹 끌어안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멍하니 서 있다가 하마터면 일찍 나온 보람도 없이 눈앞에서 굿즈가 매진되는 상황을 겪을 뻔했다. 콘서트 시작도 전에 거하게 현자 타임을 맞이할 뻔한 김은지는 위기를 모면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으아, 이게 그 사탕이구나.”

정신없이 사들인 굿즈를 하나하나 꺼내 보던 김은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얼마 전 남궁찬이 자신이 디자인했다며 SNS에서 소개한 멤버별 캐릭터 사탕이 유리병 가득 들어 있었다. 완두콩 크기 정도의 자잘한 사탕에 솜씨 좋게 새겨진 여섯 명의 캐릭터는 확실히 멤버들의 얼굴 특징을 제대로 살려 내고 있었다.

“찬이가 진짜 그림에 소질이 있네.”

재재님보다 이쪽이 더 나아 보이는데.

김은지는 재이의 추상화를 떠올려 보고는 중얼거렸다.

“근데 이건 아까워서 못 먹겠다.”

한 다섯 통쯤 살 수 있었으면 하나쯤은 먹어 봤을지도 모르는데. 아쉽게도 사탕은 1인당 2통으로 제한이 걸려 있었다.

하나는 관상용, 다른 하나는 관상용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를 대비한 보관용. 시식용은 없었다. 김은지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사탕이 가득 든 유리병을 다시 가방 속으로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이것도. 한 사람당 다섯 세트 정도 구매할 수 있게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인간적으로.”

김은지는 투덜거리며 파티의 로고가 적힌 상자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상자 안에는 멤버들이 직접 고른 파티 굿즈가 랜덤으로 들어 있었다.

“카드, 초, 폭죽……. 코코아 향, 체리, 민트… 고춧가루 향이라고? 게다가 이건… 뿅망치? 대체 파티를 하라는 거야 레이드를 뛰라는 거야.”

고춧가루 폭죽에 이어 어른 주먹만 한 미니 뿅망치를 발견한 김은지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이템을 고르며 한참 티격태격했을 멤버들을 상상하니 입가에 슬쩍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오, 이거 생각보다 튼실하네?”

흐흐흐.

이번 콘서트 굿즈 중 모두의 관심을 끈 것을 손에 넣은 김은지가 그것을 들어 위아래로 훑어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가를 씰룩였다. 김은지의 손에는 그간 팬덤 차원에서 꾸준히 케이엠을 압박해서 얻어 낸 결과물이 들려 있었다.

[PART.Y의 액션형 TRPG: 어느 날 차에서 내렸더니]

이번 콘서트에서 현장 판매에 한해 한정 수량만 발매한다는 소식에 이 새벽부터 콘서트장에 도착해 줄을 서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매끈하게 포장된 상자를 꼼꼼히 살펴보던 김은지의 시선이 상자 구석에 조그맣게 적혀 있는 설명 문구에 가 멎었다.

[플레이 인원: 6인+]

“6인플……. …아니 뭐 어차피 안 할 건데.”

다섯 개 정도 샀으면 그중 하나쯤은 꺼내 놓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밖에 구입하지 못한 이상 어차피 이것도 보관용이었다. 김은지는 플레이를 위해 인원을 모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하며 상자를 다시 조심스럽게 다시 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 * *

어느새 관객들로 가득 찬 콘서트장에 서서히 어둠이 내리깔렸다.

그리고 정면의 대형 스크린에 오프닝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포칼립스를 연상시키는 황폐한 거리에 뿌연 먼지 바람이 흩날리고 죽어 버린 듯 고요한 길거리 한쪽에서 갑자기 와장창 무언가가 깨지듯 요란한 소리가 나며 누군가가 거리 쪽으로 몸을 굴려 튀어나왔다.

“으와아아아!!!!”

그 인영의 정체를 알아본 관객에게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액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몸놀림으로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거리에 나타난 것은 파티의 리더 인혁이었다. 블랙 계열의 테크웨어에 밀리터리 부츠 차림의 인혁이 손에 쥔 것을 휘두르자 푸른 불빛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탁한 공기를 날카롭게 반으로 갈랐다.

그러자 그 안에 숨어 있던 검은 그림자가 와락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갈라진 공간 사이로 확 튀어나오는 검은 그림자의 위세에 인혁이 뒤로 재빨리 물러났다. 다음 순간 주변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번쩍, 화려한 문양의 마법진과 함께 공중에서 내려친 라이트닝이 그 검은 그림자를 향해 쏘아져 내렸다.

새하얗게 눈부신 라이트닝의 불꽃이 검은 그림자를 태워 버릴 듯 옥죄는 것을 바라본 인혁이 시선을 들어 맞은편 폐건물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라이트닝의 잔재가 남아 아직까지 스파크가 파직거리는 완드를 손에 쥔 이환과 그 옆에 선 은규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혁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그의 뒤에서 갑자기 팽창하던 검은 그림자가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맞고는 그대로 허공으로 팍, 흩어졌다.

그림자가 소멸하며 피어오른 아지랑이 너머에서 등장한 것은 조금 전 그것을 명중시킨 라이플을 등 뒤로 고쳐 매며 발을 굴러 스케이트보드의 속력을 높이는 엠케이와 그와 보폭을 맞추어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는 남궁찬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비스 레이드 때와는 전혀 다르게 청량하게 울리는 맑은 피리 소리에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서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남궁찬, 엠케이와 합류한 인혁의 시선이 부서진 거리 한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진 길거리에 깨진 가로등에서 새어 나오는 창백한 형광 불빛 아래 천천히 가까워지는 피리 소리와 함께 파티의 마지막 멤버, 재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헐, 대박, 재재님 머리 언제 저렇게 길었지?”

“요새 활동 뜸하더니 머리 기르고 있었냐고!”

“순간 환이인 줄 알았잖아!!”

“미친! 콘서트 준비하는 사이에 영화도 찍었냐고!!!”

케이엠의 새로운 캐시 카우라는 소리가 과언이 아닌 듯 심혈을 기울인 듯한 영상 속 멤버들의 모습을 확인한 관객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어느샌가 아래쪽으로 내려온 이환, 은규와 합류한 재이가 천천히 걸어 인혁과 다른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여섯 명의 멤버들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화면 너머 이쪽을 바라보고 선 여섯의 모습 위로 콘서트 타이틀이 떠올랐다.

- Phase 1 Convergence (융합)

다음 순간, 눈부시게 터지는 조명과 함께 스크린과 똑같은 포즈의 멤버들이 중앙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이어 익숙한 반주와 함께 파티의 데뷔곡인 [Like a Tutorial]이 시작되었다. 조금 전 오프닝 영상에서 입고 있던 의상 그대로의 모습을 한 멤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파워풀한 동작으로 칼군무를 시작했다. 첫 시작부터 클라이맥스로 한달음에 치닫는 여섯 명의 무대에 객석의 열기 또한 순식간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

.

“여러분! 드디어!!! 드디어 저희가! 첫 단독 콘서트를 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랑해요!!!”

토크 시간이 되자마자 마이크를 집어 든 엠케이가 기다렸다는 듯 객석을 향해 외쳤다. 그에게 뒤질세라 다른 멤버들이 하나둘 외치는 소리에 객석의 함성이 한층 더 커졌다.

“와, 지금까지 연습하면서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 해 왔는데. 실제로 이렇게 보니 정말 감동인데요.”

“이렇게 많은 포션분들과 한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있다니!!”

재이가 인혁과 주고받는 말에 은규와 이환이 끼어들며 외쳤다.

“진짜, 여러분의 함성에 막 몸에서 힘이 솟는 것 같아요!”

“우리 포션들 성능 너무 좋은 거 아닌가요?!”

객석을 향해 외치는 이환의 목소리에 관객들이 한층 더 큰 소리로 화답했다. 커다란 콘서트장 객석을 가득 메운 채 파도처럼 물결치는 보라색 불빛이 어둠과 섞여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진짜 마법이라도 부려 놓은 것 같네.’

저쪽 동네에서 가끔 마법사들이 펼치던 광역 마법을 보고 있는 듯 눈부시게 빛나는 보랏빛의 향연에 재이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객석을 훑어보았다. 가만히 그 빛무리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흥분이 가라앉기는커녕 왠지 모르게 심장이 점점 더 빠르게 뛰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거 안 좋은데.’

재이는 후, 하고 숨을 골랐다. 자신과 멤버들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어딘지 아득하게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옆에 서서 객석 쪽을 바라보고 있던 인혁이 힐끔 재이를 살피고는 슬쩍 재이의 팔을 쥐면서 말을 걸었다.

“와, 재이 씨가 완전 감동한 얼굴인데요?”

인혁의 목소리에 정신을 가다듬은 재이가 한 손에 쥐고 있던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이 광경을 눈앞에 두고도 가슴 벅차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죠. 안 그래요. 여러분?”

인혁의 말을 능숙하게 되받아치며 객석을 향해 묻는 재이의 질문에 관객들이 대답 대신 함성을 질렀다. 어떠냐는 듯 자신을 돌아보며 씩 웃는 재이를 쳐다본 인혁이 픽 웃는 사이 엠케이가 외쳤다.

“오늘 엄청 많이 준비했으니까, 기대해 주세요. 여러분!”

그러자 이환과 은규가 신나서 덧붙였다.

“맞아요! 오늘 신나게 놀아 보자고요!”

“달릴 준비 되셨죠!?”

객석의 환호를 들으며 멤버들은 다음 곡을 준비하기 위해 무대에서 내려왔다.

.

.

.

“아까 어떻게 된 거야?”

다음 곡은 남궁찬과 엠케이의 특별유닛 순서였다.

멤버별 인터뷰를 담은 VCR이 흐르고, 그사이 다음 무대 준비를 위해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재빨리 다음 의상으로 갈아입고 순서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큐시트를 들여다보고 있던 재이에게 인혁이 다가와 불쑥 물었다.

‘하여간에 귀신같은 놈.’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태연한 얼굴로 인혁에게 되물었다.

“뭐가?”

“넋이 나갔던데?”

“아, 잠깐 정신이 팔렸던 것뿐이야.”

재이의 대답에 여전히 미심쩍다는 얼굴로 인혁이 물었다.

“컨디션은?”

“문제없음.”

“진짜야?”

“가짜겠냐.”

“……어째 불안불안 하단 말이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태연한 얼굴로 귀찮다는 듯 짧게 대답하는 재이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 인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심하게 생긴 주제에 세상 예민하다니까.’

미심쩍다는 듯 재이를 위아래로 살피던 인혁이 시선을 옮겨 큐시트를 들여다보고는 이제 막 무대에 오르고 있는 두 멤버들을 꼼꼼히 살피는 것을 바라보며 재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딱히 컨디션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다리도 괜찮고. 어제 잠도 푹 잤고. 두통도 없고.’

재이는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요 며칠 컨디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발 부상의 회복도 순조로워 다행히 엠케이와 남궁찬, 그리고 안무팀이 고심해서 짠 안무를 수정하지 않고도 뒤늦게나마 원안 그대로 연습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두통도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가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던 잠도 최근 숙소-회사-숙소의 ‘규칙적인’ 생활을 한 덕인지 조금씩 나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산 그 돌팔이가 말한 두 사람분의 영혼이란 게 드디어 하나로 섞여 든 건가 싶은 생각에 조금 안도하고 있던 차였다.

그랬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니었어?’

재이는 눈을 찌푸렸다. 스스로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함이 밀려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데 언제 또 아까 같은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손끝이 차갑게 식는 듯한 기분이었다. 고장 난 형광등이 깜박이듯 의식의 간격이 띄엄띄엄 벌어지는 감각은 당할 때마다 아주 더러웠다.

“제발 콘서트는 무사히 넘기자고.”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재이는 손을 꾹 말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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