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96화 (196/224)

#196

Phase 1 Convergence (융합) (2)

콘서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물론 자잘한 실수는 있었다.

남궁찬은 연습 때 그렇게 헷갈리던 안무를 무대에서도 결국 틀려 버렸고 다음 곡을 위해 무대 위로 뛰어오르던 엠케이는 급한 마음에 발을 헛디뎌서 예정에도 없던 슬라이딩 포즈로 무대에 등장했다. 관객들이 멤버들의 실수를 눈치챌 때도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갈 때도 있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어이쿠.”

“지금 건 조금 멘탈 나갔겠는데.”

무대 아래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은규의 솔로 무대가 시작되고 있는 무대 위쪽 상황을 모니터하고 있던 인혁이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자 옆에 서서 함께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재이가 중얼거렸다. 모니터에 비친 무대에서는 솔로곡을 위해 혼자 무대에 오른 은규가 전주 구간에서 애드리브를 넣다가 음 이탈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재이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카메라에 잡힌 은규의 얼굴을 살피고는 한마디씩 했다.

“그러게. 어쩐지 올라갈 때 어깨에 힘 빡 들어갔더라니.”

“표정 봐라, 저건 며칠 땅 팔 각이네.”

“나 같아도 그럴 듯.”

멤버들이 긴장된 얼굴로 모니터를 주시했다. 평소에도 무대 울렁증이 있는 은규였다.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면 이대로 무대가 꼬여 버릴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함께 무대에 올라 있는 상황이었다면 다른 멤버들이 어떻게든 돌아가며 커버해 줄 수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솔로 무대, 그것도 자신들을 보러 와 준 팬들 앞에서 라이브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멤버들의 말대로 음 이탈을 낸 순간 얼어붙은 듯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잠시 움찔했던 은규는 그러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부드럽게 흘려 보내면서 무대를 진행해 나갔다.

“…그래도, 저 정도면 혼자 수습 잘하는걸?”

“그러게. 패닉 와서 아무것도 못 하면 어쩌나 좀 걱정했는데.”

“심은규 많이 컸네.”

이환이 안심했다는 듯 감개무량하다는 듯 중얼거린 말에 멤버들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지금 스코어 몇이지?”

“남궁찬 4, 이환 2, 은규 1.”

재이가 묻는 말에 엠케이가 화이트보드를 돌아보며 거기에 적힌 스코어를 불렀다.

“뭐야 한재이랑 차인혁 아직 0이라고? 말도 안 돼!”

“그거 아니냐, 사실은 실수했는데 눈치챈 사람이 없어 보여서 그냥 얼렁뚱땅 넘어간 거.”

“그럼 그걸 과연 실수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걸 말이라고…….”

남궁찬과 이환이 투덜대는 말에 인혁이 한마디 하자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발끈하는 남궁찬을 바라보며 재이가 말했다.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도 실수가 벌써 네 개나 나왔다는 게 더 말이 안 된다고 생각 안 하냐?”

재이의 한마디에 그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움찔 몸을 떨었다.

.

.

.

“그래서 한재이, 아니 재이 씨가 그러잖아요. ‘그렇게 연습을 하고도 실수가 벌써 네 개나 나오다니 어이가 없다’고. 너무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사람이 원래 실수도 하고 그러면서 배우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은규 씨?”

은규의 솔로 무대가 끝나고 곧바로 이어진 멤버들의 토크타임.

마이크를 잡은 남궁찬이 무대 아래에서 멤버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면서 은규에게 동의를 구하듯 그를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조금 전 실수에 대한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상념에 잠겨 있느라 대답할 박자를 놓친 은규가 화들짝 놀라 어물쩍 대답했다.

“예? 예에.”

“은규 씨한테 묻지 마요. 아픈 데다가 소금 뿌리는 것도 아니고.”

보다 못한 이환이 끼어들며 말리자 남궁찬이 내가 아니면 누가 물어보냐는 듯이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아니, 나는 물어봐도 되지, 나는. 내가 이 중에서 가장 흑역사 부자인데 지금!”

“그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이환이 톡 쏘듯 되받아치는 소리에 발끈한 남궁찬이 뭐라고 입을 열려는 찰나, 조금 정신이 돌아온 듯한 얼굴로 은규가 먼저 말했다.

“근데 우리 다른 주제로 얘기 나누면 안 되나요? 하고 많은 주제 중에 대체 왜 이 얘기냐고요.”

“먼저 이 주제를 꺼낸 남궁찬 씨 애드리브의 실패죠. 그러니 찬이 씨, 흑역사 적립 기금에 1포인트 더 추가해 드릴게요.”

“아니 얘기가 왜 그렇게 되냐고요.”

은규의 말에 엠케이가 냉큼 끼어들어서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남궁찬이 얼굴을 팍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런 남궁찬의 얼굴을 재밌다는 듯 바라본 엠케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대로라면 찬이 씨가 한턱 쏘는 건 확정일 것 같은데요?”

“아, 이번 콘서트에서 모인 흑역사 적립 기금은 멤버들의 회식을 위해 알차게 쓰일 예정입니다.”

“1포인트당 만 원이예요. 완전 세죠!?”

엠케이의 말에 재이와 은규가 한마디씩 보탰다. 멤버들은 이번 콘서트에서 실수하는 개수를 카운트해서 그 숫자만큼 각출한 돈을 멤버들만의 회식비에 보탤 계획이었다. 은규의 말에 남궁찬이 1포인트당 만원은 너무 센 거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1포인트당 만원은 솔직히 너무 센 거 아니냐고요, 우리가 무슨 석유 재벌도 아니고.”

“그건 어쩔 수가 없어요. 찬이 씨가 워낙 잘 먹어서.”

“그건 아니죠. 재이 씨가 고기 아니면 안 먹겠다고 해서잖아요.”

“아니 그럼 벌칙 게임인데 고기 말고 다른 걸 사겠다고요? 양심 어딨습니까?”

티격태격하는 남궁찬과 재이 사이에 끼어들며 엠케이가 말했다.

“자자, 우리 오늘 토크쇼 하러 온 거 아니잖아요. 얼른 다음 순서 가죠?”

“어 우리 다음 순서 뭐였죠?”

“다음 순서는…….”

.

.

.

“……어휴 귀 따가워.”

2층 패밀리 구역에 앉아 있던 한준이 얼굴을 콱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어두워졌던 주변이 밝아지고 차례차례 무대에 오르는 멤버들 중 한재이의 등장에 객석에서 고막이 터질 듯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와, 재이 인기 장난 아니구나.”

“내가 그랬잖아. 이제 실감이 좀 나?”

“그러게. TV에서 볼 때는 별로 실감이 안 나더니. 이건… 진짜 장난 아니네.”

앞자리에 앉은 큰형 한다이가 셋째 한태이와 몇 마디 주고받고는 한준의 옆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머니는 어떠세요?”

“뭐?”

“재이 잘하죠?”

“…그래.”

“아버지도 오셨으면 좋았을걸.”

“그 양반이 이런 데 오실 분이니.”

“그래도.”

다이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른 멤버들과 함께 과수원에 들린 이후 본가와는 일절 연락을 끊어 버린 재이 대신 매니저가 콘서트 티켓을 보내왔다. 일부러 다이의 근무처까지 찾아온 매니저 김석관은 티켓을 건네며 가족분들 중 모시고 싶으신 분들 모셔 달라고 말했다. 굳이 이러시지 않아도, 라고 하는 다이에게 김석관이 웃으며 말했다.

- 저의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예?

재이도 아니고 김석관 본인의 자기만족이라니. 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다이에게 석관이 이어 말했다.

- 무대 위의 재이가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존재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녀석에게 기대고 있는지 직접 보시면 잘 알게 되실 겁니다. 가족분들께서 천덕꾸러기 취급했던 녀석이 사실 값을 제대로 매기기도 힘들 정도로 빛나는 보석이었다는 걸 제대로 알려 드릴 기회인데 이걸 놓칠 순 없죠.

오지랖인 건 아는데 원래 이 매니저라는 직업이 보통 오지랖 가지고는 못 하는 직업이라서.

빙긋 웃으며 말을 덧붙인 김석관이 이어 말했다.

- 아, 행여라도 제가 재이와 가족분들을 화해시키고 싶어서 이런다고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가 그렇게까지 보살 같은 성격은 아니라서요.

그 반대라면 모를까.

김석관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을 떠올리고 있던 다이는 자신의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휴 진짜 소리 엄청 지르네. 하나도 안 들리잖아.”

줄곧 투덜대고 있는 것은 다섯 형제 중 막내이자 재이의 천적 한준이었다. 재이가 다녀간 이후 눈에 띄게 풀 죽어 지내긴 했지만, 그 모난 성격이 어디 간 것은 아닌지 공연장에 찾아와 앉은 순간부터 한준은 줄곧 투덜대기 바빠 보였다.

“X나 기생오라비같이 입은 꼴 좀 봐.”

“준아, 입.”

“아 왜, 맞잖아. 두고 봐, 저기서 분명 삑사리 낼 거… 악.”

투덜대던 한준이 뒤통수를 감싸 쥐고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이 X, 어떤 X끼…….”

“*아 미안, 대가리만 더럽게 큰 돼지 X끼가 공연장에서 꽥꽥대길래 좀 조용히 하라고 주의하라고 한다는 게 그만. 설마 그게 사람일 줄 몰랐네.”

고개를 홱 돌려 뒤쪽을 바라본 한준은 자신을 향해 속사포같이 영어를 쏟아 내는 붉은 머리의 미녀를 보고 넋이 나간 듯 멍하니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아듣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정장 차림의 사내가 상체를 앞쪽으로 기울여 멍한 얼굴을 한 채 굳어 있는 한준을 들여다보고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어? 뭐야, 한줌이잖아? 재이가 널 불렀다고? 와, 한재이 부처가 따로없네, 아주.”

“…한산?”

집 나간 지 오래되어 기억도 가물거리는 둘째 형이 항상 자신을 부르던 별명으로 자신을 부르는 남자를 돌아본 한준이 뒤통수가 얼얼한 것도 잊은 채 중얼거렸다.

한준이 중얼거린 소리에 고개를 홱 돌려 뒤를 쳐다본 어머니는 십몇 년 만에 만난 멀끔한 얼굴의 둘째 아들과 그 옆에 앉은 낯선 외국인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산아? 이게 대체…….”

“아, 어머니도 와 계셨네요? 어휴, 다이 형에 한태이까지? 아버지만 안 오셨구나? 한재이 이 녀석 안 되겠네, 어렵게 번 돈일 텐데 아까운 줄도 모르고. 이 사람들 부를 거면 차라리 나한테 티켓을 주지. 보니까 이거 프리미엄 엄청나게 붙던데. 돈 아깝게, 쯧.”

하여간에 물러 터졌다니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중얼거리는 한산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 *

“야, 한재이, 가족석에 너희 집 개차반 와 있더라?”

“누구? 아아, 석관이 형이 부른다길래 맘대로 하라고 했어.”

VCR이 흐르는 사이 조금 전 무대에서 2층 돌출 쪽을 담당했던 남궁찬이 재이에게 건넨 말에 재이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집을 나설 때 이미 거기 두고 오기로 결심했던 사람들이었다. 객석에 와서 보고 있건 말건 알 바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이런 속마음을 모르는지 은규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아까부터 그쪽은 아예 쳐다도 안 봤구나.”

“아니 내가 언제…….”

재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이환이 버럭대며 끼어들었다.

“아니 근데 그럼, 거기 주변 팬분들은 무슨 죄냐고.”

“으, 근데 이해는 함. 아까 그쪽 돌다가 그 개차반 발견하고 인상 구길 뻔했잖아.”

남궁찬이 뒤따라 한마디 하는 것에 엠케이가 생각났다는 듯 끼어들었다.

“한산 형님도 계시던데?”

그 말에 인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돼서 클리닉 일 때문에 못 오실지도 모르겠다더니, 오셨네?”

“와 그러고 보니 그거 완전 이산가족 상봉이잖아?”

“아이돌 콘서트장에서?”

“눈물 콧물 안 빼도 되고 흥겨우니 오히려 잘된 거 아닐까?”

자기들끼리 쑥덕이던 멤버들 중 엠케이가 문득 깨달았다는 듯 재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가족들 싫다고 집 나간 한산 형님에게 굳이 그 사람들과 가까운 자리를 준비한 한재이라니.”

“와 진짜 어흑재 클래스 어디 안 가네. 한산 형님 얼마나 뻘쭘하실까.”

“본격 형님 뒤통수 후려치는 동생.”

“한 번 막장은 가출해도 막장이라 이건가.”

콘서트 중이라는 긴장과 압박감을 풀기 위해서인지 평소보다 더 정신없이 이어지는 멤버들의 수다를 듣고 있던 재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첫째, 내 몫의 초청 티켓은 석관이 형이 알아서 했으니 이건 다 석관이 형이 꾸민 짓이라 나랑 상관없고 둘째, 한산 그 인간은 이 정도로 뻘하고 자시고 할 얼굴 두께가 아니니 걱정 안 해도 됨.”

걱정하려면 너희들 걱정을 하라고. 흑역사 기금 적립하랬지 누가 파산하랬냐.

재이의 말에 쑥덕대던 녀석들이 김 샜다는 듯 한숨을 쉬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어휴, 말을 말자 말을.”

“내가 잘못했다.”

“그러게. 누구 걱정할 때냐 내가 지금. 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각자도생! 각자도생!”

멤버들을 쓱 둘러보고는 마침 이쪽을 향해 사인하는 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무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재이에게 인혁이 툭 내뱉었다.

“기왕 온 김에 똑똑히 보고 가라고들 해. 네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재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엠케이와 다른 멤버들이 끼어들어 외쳤다.

“그래, 뭉개 버려!”

“맞아, 한재이 하면 정면 돌파지!”

“제대로 보여 주고 와!”

남궁찬, 그리고 평소에 삐딱한 이환까지 합세해 외치는 말에 은규가 덧붙였다.

“흑역사 적립 같은 건 하지 말ㄱ… 우웁.”

“아, 심은규 플래그 쫌!!”

이환이 다급하게 은규의 입을 틀어막는 것을 보고 재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멤버들을 둘러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뭘 잘못 먹었나. 왜들 저래.”

닭살 돋게.

양손으로 팔뚝을 쓱쓱 훑은 재이가 멤버들을 향해 씩 웃어 보이고는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한재이 솔로 무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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