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Phase 1 Convergence (융합) (4)
‘괜찮을까…….’
파티의 랩 멤버 3인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인혁은 멍하니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솔로 무대를 마치고 다음 무대를 위해 스탠바이 중이던 자신이 있는 쪽으로 내려오던 재이가 휘청 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곧바로 가까이 다가가 부축하려는데 녀석이 자신을 밀쳐 내며 말했다.
“…묻으니까 저리 가.”
무슨 소린지 몰라 멍하니 쳐다보는 시야로 들어온 것은 녀석이 감싸 쥔 손 너머로 뚝뚝 흘러내리고 있는 붉은 핏방울이었다.
“야, 너… 피…….”
“한재이 피!!!”
“석관이 형! 의사 좀!! 한재이 피 나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고개를 빼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엠케이와 남궁찬이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급히 몰려들었다.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부축하려고 다시 손을 뻗자 그런 인혁의 손길을 재차 밀쳐 내며 녀석이 짧게 말했다.
“저리 가, 옷에 묻는다.”
“지금 그게 문제냐.”
“그럼 뭐가 문젠데. …저기 너 부른다.”
목소리에 힘은 없어도 성질머리는 아직 살아 있는 듯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재이의 대답에 조금 안심한 인혁은 그제야 몰려든 사람들 너머에서 진행 스태프가 초조한 얼굴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 분 이제 올라가셔야 하는데.”
다급하게 뛰어온 석관과 홍정수가 재이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재이만큼이나 하얗게 질린 멤버들을 훑어본 인혁은 자신처럼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는 엠케이와 남궁찬의 어깨를 다독였다.
“일단 올라가자.”
팬분들 기다리신다.
인혁이 나직이 덧붙인 말에 엠케이와 남궁찬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무대로 향했다. 인혁은 자꾸 뒤돌아보고 싶어지는 것을 눌러 참으며 자신만큼이나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는 두 멤버의 등을 앞으로 꾹꾹 밀어내며 걸음을 재촉했다.
.
.
.
간주 구간, 2층 방향의 돌출무대 쪽에서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던 인혁은 힐끔 무대 아래로 연결된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 내려가 재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무대가 우선이었다. 4분 남짓한 러닝 타임이 이렇게까지 길게 느껴질 수 있다니.
멀쩡히 대화도 나눴으니 그리 큰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코를 움켜쥔 손 틈 사이로 흘러내리던 선명한 진홍색의 피를 떠올리니 가슴속에 불안감이 답답하게 차올랐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인혁은 멀찍이서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는 엠케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움찔 몸을 떨었다.
‘아니 아무리 애드리브 구간이어도 그렇지 포지션에서 이탈하면 어떻게 해.’
인혁이 슬쩍 눈에 힘을 주며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눈치를 주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쪽까지 달려온 엠케이가 이쪽으로 펄쩍 뛰어들며 어깨를 걸었다. 신장 차이 때문에 어깨동무보다는 헤드록에 가까운 느낌이 나는 그 동작에 인혁이 허리를 굽히며 휘청대자 객석에서 웃음과 함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아 왜 갑자기 이리로…, 응?’
가뜩이나 심란한데 엠케이까지 돌발 행동을 하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눈썹을 씰룩이던 인혁은 자신에게 어깨동무한 엠케이가 어느 한 곳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엠케이의 시선은 2층 돌출무대 가까이에 있는 패밀리 구역으로 향해 있었다.
‘산이 형님이 가셨구나.’
불안했던 마음이 살짝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한재이 녀석은 돌팔이라고 매도했지만 어쨌거나 한산은 그의 주치의였다. 녀석의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의사가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과 그가 지금 한재이를 확인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온통 곤두섰던 신경이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슬쩍 엠케이에게 고맙다고 눈짓하자 그가 정신 차리라는 듯 팔꿈치로 툭 옆구리를 찔러 왔다.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은 언뜻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인혁은 자신과 마주친 엠케이의 눈빛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럴 때가 아니지.’
자신이 객석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허둥대고 있었음을 깨닫고 인혁은 마음을 다잡았다. 무대에 올랐으면 우선은 무대에 집중해야지.
실수라도 했다간 평생 욕 먹을 거야.
인혁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마이크를 움켜쥐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 * *
“형님, 좀 어떤 것 같나요?”
대기실.
부산스럽게 마련된 간이침대에 누워 있는 재이의 옆에서 의무실에 구비되어 있던 장비로 간단하게 바이털을 체크하고 있던 한산에게 김석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산은 그제야 김석관을 비롯한 직원 몇 명과 멤버들이 초조한 얼굴로 자신과 재이를 번갈아 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한산의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자세한 건 병원으로 옮겨서 정밀 검사를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석관의 말을 자른 한산이 이어 말했다.
“코피가 난 건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다행입니다. 코로 터졌으니 다행이지 머릿속에서 터지기라도 했으면 지금 이렇게 여유롭게 이야기 나누고 있을 겨를도 없었을 겁니다. 우선은 이대로 좀 쉬게 하고 공연 끝나는 대로 병원으로 옮기도록 하죠.”
한산의 말에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잠시 말이 없던 김석관이 물었다.
“그럼 남은 공연은…….”
앞으로 두 곡.
콘서트를 마치기까지 앞으로 두 곡만을 남겨 둔 상황이었다. 김석관의 질문에 한산이 눈썹을 찌푸렸다.
“…어렵네요. 가능하면 이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석관의 입장을 이해하는 한산이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의무실 스태프가 놓아 준 링거를 맞은 재이는 그새 고른 숨을 내뱉으며 잠들어 있었다. 한쪽에서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환이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우리끼리 하면 되죠.”
“뭐?”
딱 잘라 말하는 이환의 한마디에 석관과 한산을 비롯해 대기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두 곡쯤. 우리끼리 하면 어때서요.”
“그렇지만 관객분들이…….”
“관객들 눈치 본다고 아픈 애 억지로 무대 세웠다가 평생 후회할 일 만드는 것보단 당장 조금 까이고 마는 게 나을걸요”
안 그래?
이환이 단호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은규를 돌아보자 은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하면 돼요. 관객들 동요하는 거야 뭐. 감수해야죠.”
어차피 이대로 재이 병원 가면 소문 날 거.
은규가 중얼거린 말에 이환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지금 쟤 무리하게 움직였다가 평생 못 쓰게 되는 것보다는 지금 좀 아껴 두고 나중에 두고두고 써먹는 게 좋지 않겠어요?”
한재이에게 빚을 지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데. 이걸 어떻게 그냥 넘어가요.
이환이 덧붙인 말에 김석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허허 웃었다.
그때였다.
“누굴 빼, 누구 맘대로.”
언제 깬 것인지 누워 있던 재이가 중얼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축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옆에 있던 한산이 재빨리 그를 부축하며 입을 열었다.
“그냥 누워 있어.”
“괜찮다니까.”
부축하는 듯하던 한산이 사실은 자신을 도로 눕히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은 재이가 팔을 뿌리치며 대꾸하자 그런 재이를 타이르며 그가 말했다.
“말 들어. 의사는 나지 네가 아니란다.”
“돌팔이 주제에.”
느긋한 말투와는 달리 단호한 한산의 손길에 결국 도로 침대에 누운 꼴이 된 재이가 툭 내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솔로곡을 끝내고 무대 아래로 내려올 때쯤의 기억이 희미했다. 솔로 무대의 중반부부터 마치 타는 것처럼 아프던 머리는 곡이 끝날 때쯤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물속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무대 아래로 내려오다가 뭔가가 팍 터지는 느낌에 내려다보니 코에서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다음 무대를 위해 스탠바이하고 있던 인혁이 달려와 뭐라고 하는 것 같았으나 사실 귓가를 윙윙대는 소리 탓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다시 눈을 떠보니 대기실이었다. 무대에서 내려올 무렵 머릿속을 온통 태워 버릴 듯 끓어오르던 고통은 어느새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 정도면 참을 만했…….
“석관이 형, 일단 우리끼리 올라갈게요.”
이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지금은 안 돼요. 지금 올라왔다간 또 코피 쏟고 쓰러질 각이라고.”
이환의 말에 옆에 선 은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래, 한재이 고집 피우지 말고 쉬고 있어.”
재이가 뭐라고 하려 입을 열려는 것을 본 이환이 그보다 먼저 말했다.
“정 올라오고 싶으면 이따가 마지막 곡 할 때 올라와. 그때까진 우리끼리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이환이 눈썹을 찌푸린 채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한산을 돌아보고 말했다.
“어차피 저거 말린다고 해도 들을 인간도 아니고. 잘은 모르겠지만 정신은 멀쩡해 보이니까 잠깐 올라오게 해 주세요. 안 그랬다간 저희가 두고두고 욕먹을 거라고요.”
“맞아요. 애초에 형님이 말리신다고 들어먹을 인간이 아님요.”
오오, 애들 내려올 시간 됐다.
안 되겠다, 뛰자!
모니터로 무대 위 상황을 확인한 두 녀석이 짜기라도 한 듯 대기실을 뛰쳐나갔다. 얼결에 혼자 남겨진 재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것을 본 한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어째 너보다 저 녀석들이 더 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허…….”
“일단 좀 더 누워 있어. 이환 말대로 마지막 곡 할 때쯤 잠깐 올라갔다 와.”
그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으니까.
한산의 말에 재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박차고 일어나서 달려 나가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대로 누워서 잠들면 일주일 정도는 안 깨고 잘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피곤했다.
일어나기만 해 보라는 듯 엄한 표정을 짓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산을 힐끔 쳐다본 재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슬쩍 들어 올렸던 뒤통수를 다시 침대에 푹 갖다 대었다.
그래, 쉬라는데 뭐.
멀리서 들려오는 관객들의 함성을 듣고 있자니 어쩐지 심장 한쪽이 쿡쿡 쑤시는 듯한 기분에 재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꾹 감았다.
* * *
“왜 다섯 명이지?”
김은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우 소년 버전의 C'est_la_vie를 부르기 위해 무대에 오른 멤버들을 둘러보던 김은지는 재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고 중얼거렸다.
“어디서 중간에 튀어나오는 설정인 건가?”
다섯이서 하는 여섯의 무대는 멤버들의 매끄러운 커버에도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와아아!!! 차인혀어어억!!!!”
“끄아아아!!!! 남궁찬!!!! 사랑해!!!!!!”
“민국아!!! 아빠다!!!!!”
재이의 빈자리를 메꾸려는 듯 멤버들이 큰 무대 곳곳을 종횡무진하자 그때마다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콘서트 내내 뛰어다니고도 지치지도 않는지 넓은 공연장의 객석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챙기는 멤버들의 무대 매너에 감탄하면서도 김은지는 계속해서 무대 주변의 통로를 확인했다. 다른 팬들도 마찬가지인지 재이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무대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C'est_la_vie는 결국 다섯 명만의 무대로 끝이 났다.
“원래 다섯이서 하기로 했었나?”
“아닐걸. 유닛이면 유닛 스테이지라고 쓰여 있었을 텐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솔로까지는 별로 이상한 거 못 느꼈는데?”
“재이야…….”
인터벌 타임이 되자 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웅성거림은 마지막 곡을 위해 무대에 오른 멤버의 숫자가 여섯이 아니라 다섯임을 확인하고 더 커졌다. 누군가가 재이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하자 한재이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의 목소리가 콘서트장을 가득 메웠다.
“한재이! 한재이!”
보랏빛 응원봉의 물결과 함께 재이를 부르는 관객들의 함성이 점점 더 켜졌다. 무대를 시작하려 대형을 맞춰 서 있던 멤버들 중 인혁이 인이어를 빼더니 스태프에게 사인을 보내고는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여러분, 재이 씨가 왜 없는지 궁금하세요?”
인혁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자 객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팬들의 함성이 잦아들기를 잠시 기다린 인혁이 조금 망설인 끝에 입을 열었다.
“사실 재이 씨가…….”
“아이코, 늦어서 죄송합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인혁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을 비롯한 관객들의 시선이 천천히 무대를 오르고 있는 한 사람에게로 집중되었다. 마지막 곡의 의상으로 갈아입은 재이가 느릿한 걸음으로 무대를 오르고 있었다.
재이의 모습을 발견한 구성원들이 우르르 그에게로 뛰어갔다.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멤버들의 눈빛에 담긴 걱정과 안도를 읽은 재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어 말했다.
“환복하려고 하는데 다음 곡 의상이 없잖아요. 한참 찾으러 돌아다니다 보니까 무대 올라갈 시간에 늦은 거 있죠, 정말 죄송합니다. 흐허어.”
천연덕스럽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재이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던 멤버들이 재빨리 하나둘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아니 재이 씨, 자기가 무슨 선녀라도 되는 줄 아시나. 의상을 숨기다니, 대체 누가 의상을 숨겨요. 그걸 또 왜 찾으러 다녀, 대체 말이 되냐고.”
“그러게, 변명을 하려면 좀 더 그럴싸한 거로 해 봐요. 가령 화장시…….”
엠케이가 어이없다는 듯 내뱉은 말에 남궁찬이 냉큼 덧붙이는 것을 듣고 있던 이환이 깜짝 놀라 남궁찬의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아이고, 이봐요, 찬이 씨 지금 무슨 말씀을. 제발 좀 아무 말이나 하지 좀 말라고요, 진짜.”
“진짜, 이건 흑역사 적립금 10포인트짜리다.”
이환의 옆에서 은규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것을 보고 있던 재이가 객석을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맹세코 그것 때문에 늦은 건 아닙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아무튼, 그래서 보아하니 의상은 잘 찾으신 것 같네요?”
화제를 돌리는 인혁의 말에 재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예. 근데 이게 사실 찾은 게 아니라 샘플 있던 걸 그대로 입고 나온 거라, 과하게 움직이면 뜯어질 것 같다 이거죠.”
어깨를 돌려 보이며 이야기하는 재이의 대답에 남궁찬이 과장된 제스쳐로 기겁하며 말했다.
“으아, 재이 씨가 아이돌에 대한 환상을 와장창 깨고 있어.”
“아까 남궁찬 씨 본인이 하셨던 말씀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어쨌거나 그럼 우리랑 같이 노래할 수 있는 거죠?”
이환이 남궁찬을 타박하는 사이 다시 주제를 돌린 인혁이 재이에게 물었다.
“팬분들이 걱정 많이 하셨어요.”
덧붙이는 엠케이의 말에 재이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좀 선녀긴 해도 여러분을 두고 하늘나라로 가지는 않을 겁니다.”
“옷 찾았으니 이대로 승천하는 거 아니냐고요.”
“저거 자기 거 아니라잖아요. 승천은 틀렸어. 한재이 씨, 포기하세요.”
“아 의심된다. 혹시 제 의상 숨기신 분……?”
“안 되겠다, 재이 씨도 왔으니 이제 마지막 곡 가 볼까요?”
끝없이 늘어지는 멤버들의 수다에 인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객석을 향해 외쳤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팬들의 함성에 객석을 돌아본 재이가 활짝 웃었다.
* * *
[데일리 엔터] PART.Y 리드 보컬 한재이 그룹 첫 콘서트 직후 병원행 …… 소속사 측 누적된 피로 탓
PART.Y의 리드 보컬 한재이 씨가 그룹의 첫 단독 콘서트 Phase 1 Convergence 도중 쓰러졌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최근 스토커 습격 사건으로 발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첫 콘서트를 위해 매진한 그는 콘서트 도중 극도의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쓰러졌으나 마지막 곡까지 무대에 서서 팬들과 함께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콘서트가 끝난 후 곧바로 병원을 찾은 것으로 알려진 그에 대해 소속사 측은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피로가 원인이었으며 현재 상태는 양호하다고 밝혔다.
.
.
.
“그래서, 누구시라고요?”
재이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재이의 물음에 한산이 짧게 대답했다.
“네 형수 될 사람.”
“…농담이시겠지.”
재이가 중얼거린 말을 들은 것인지 조금 전 한산이 라일라 클락이라고 소개한 붉은 머리의 여인이 빙긋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붉은 머리카락에 금빛 눈동자라니. 얼굴에 칼자국 하나만 있으면 완벽하겠는데.
재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