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99화 (199/224)

#199

난 이 결혼 반대야

“그래서, 누구이시라고요?”

재이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의 물음에 한산이 짧게 대답했다.

“네 형수 될 사람.”

“…농담이시겠지.”

재이가 중얼거린 말을 들은 것인지 조금 전 한산이 라일라 클락이라고 소개한 붉은 머리의 여인이 빙긋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재이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꾸벅하고는 다시 한산을 돌아보고 말했다.

“아무리 집안하고 연줄 끊고 혼자 사는 인생이라지만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야? 지난번에 봤을 때만 해도 평생 혼자 살 기세더니 갑자기 웬 결혼?”

“뭐, 그렇게 됐다. 원래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 않냐.”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한산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 재이가 중얼거렸다.

“…흠, 아무리 봐도 사랑에 빠진 멍청이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사랑에 빠진 멍청이가 되긴 했어도 여전히 일반인보다는 똑똑하니까?”

“여전히 재수 없는 거 보니 아주 정신이 나간 것 같지는 않고.”

재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한산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혓바닥 매서운 거 보니 너야말로 이제 좀 살 만한가 보다?”

“덕분에.”

콘서트가 끝난 후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진 재이는 한산의 조언대로 정밀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특별히 이상한 곳은 발견되지 않았고 과도한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뇌파 추적을 토대로 한 영혼의 융합이니 전생과의 결합이니 하는 천재 뇌 과학자의 견해는 아직 임상 데이터가 유의미한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한 이론에 바탕을 둔 견해라는 점에서 소수 의견에 그쳤다. 다만 당분간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경과를 관찰하자는 데에는 의료진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다만 절대 안정이라는 진단 덕에 다른 멤버들이 짧은 휴식기를 이용해 해외여행이다 뭐다 신나게 놀러 다니는 사이 꼼짝없이 병실에 갇혀 얌전히 쉬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강제로 주어진 휴식은 그만큼 확실한 효과를 보였다.

그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두통이 잦아들고 들쭉날쭉하던 수면 패턴이 차츰 제자리를 찾았다. 이상 수치를 보이던 재이의 뇌파가 안정을 되찾은 것에 한산은 이것이 이제껏 따로 놀던 두 사람 몫의 영혼이 성공적으로 합쳐졌다는 방증이라며 흥분으로 눈을 반짝였다.

그런 한산을 미친 과학자 취급하긴 했지만, 재이 또한 내심 안도한 것은 사실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뇌관을 성공적으로 제거한 듯한 기분이었다.

“*형제끼리 사이좋은 건 좋은데 사람 계속 이렇게 공기 취급할 거야?”

한산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던 재이는 불쑥 들려온 투덜거림에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보았다. 자신보다 십 년은 더 먼저 집을 뛰쳐나간 형이 조금 전 결혼할 상대라고 소개한 사람이 팔짱을 낀 채 자신과 한산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재이는 새삼 그 예비 형수님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타오르듯 새빨간 머리카락 밑 금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자신을 빤히 마주 보고 있었다.

‘묘하게 낯이 익단 말이지…….’

같은 색 외피와 같은 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던 저쪽 동네 문제아 중 하나를 잠시 떠올린 재이가 자신을 흥미롭다는 듯 관찰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라일라를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첫째, 피차 집안하고 인연 끊겠다고 나와 사는 마당에 인제 와서 사이좋은 형제 타령은 좀 아닌 것 같고요, 둘째, 환자에게 대접을 바라다니 평소에 문병 같은 거 많이 안 다녀 보셨나 봐요?”

재이의 말에 라일라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무대에서는 스윗해 보이더니 성질이 불같은데?”

머릿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라일라의 황금빛 시선에 재이가 말했다.

“*제 스윗은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 근데 그것보다…….”

“*그것보다?”

말을 흐리는 재이에 라일라가 재촉하듯 되물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시게 된 건지…….”

“*…궁금해?”

라일라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네.”

“*왜?”

“*의외라서.”

재이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라일라가 흥미롭다는 듯 재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짧게 말했다.

“*쫓겨났어.”

“*라일라.”

재밌다는 듯 눈을 빛내며 재이에게 대답하던 라일라가 자신을 부르는 한산의 목소리에 힐끔 그를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아, 왜, 맞잖아.”

태연한 얼굴로 한산에게 한마디 하는 라일라에게 재이가 물었다.

“*뭘 잘못하셨길래.”

“*뒤통수 맞았거든.”

“*어이쿠.”

“*나도 나름 때리는 쪽 전문이었거든? 이게 얻어맞아 보니까 그제야 알겠더라고.”

당하는 쪽은 기분이 아주 더럽다는걸.

이쪽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내뱉은 라일라의 말에 재이가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자 보다 못한 한산이 끼어들었다.

“*라일라, 그렇게 앞뒤 다 자르고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해.”

“*어? 이보다 어떻게 더 쉽게 설명을 하지?”

“*후우. 잠깐 기다려 봐.”

굳은 듯 말이 없는 재이의 표정을 힐끗 살핀 한산이 그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재이 너에게 라일라를 소개하는 건 인제 와서 새삼 가족 놀이가 하고 싶어서였다기보다는.”

너도 알고 지내면 좋겠다 싶어서였거든.

한산의 말에 재이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더 설명해 보라는 듯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거울 속 자신만큼이나 건조한 그 눈빛을 잠시 바라보던 한산이 이어 말했다.

“클락 컴퍼니. 들어 본 적 있지?”

“……갑자기 그 이름은 왜…….”

클락 컴퍼니는 랜플릭스의 창업자 조지 클락이 소유한 미디어 투자회사로 랜플릭스의 최대주주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스트리밍 사업으로 급부상한 랜플릭스의 기업 가치 덕에 클락 컴퍼니 또한 돈방석 위에 올라앉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그 회사 얘기는 왜 갑자기.

…설마?

재이가 라일라와 한산을 번갈아 쳐다보며 중얼거리자 한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라일라는 그 클락 컴퍼니의 패밀리 멤버 중 하나야. 이번에 한국 지사로 발령이 났거든.”

“쫓겨났다던데.”

“하하, 라일라가 말을 좀 거침없이 하는 성격이라.”

한산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패밀리 멤버들 내부에서 알력 다툼이 좀 있나 봐. 원래 맡고 있던 사업부 쪽에서 줄곧 경쟁하던 사촌이 계약을 가로채는 바람에 그 여파로 아시아퍼시픽 쪽으로 밀려났다더군.”

“어디서부터 놀라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재이가 중얼거리는 말에 한산이 피식 웃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재이가 이어 말했다.

“애초에 저런 거… 아니 그러니까 저런 거물을 어디서 만난 건데?”

재이의 물음에 한산이 답지 않게 살짝 쑥스러워하며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클락 컴퍼니에서 투자 중인 바이오테크 프로젝트 중에 내 연구팀이 포함되어 있거든. 후원회 행사에서 만났지. 라일라가 이쪽 분야에 관심이 굉장히 많거든.”

아, 그래.

재이는 다시 눈을 돌려 라일라 쪽을 바라보았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며 웃고 있는 라일라를 바라보던 재이가 입을 열었다.

“*다시 돌아가실 건가요?”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럼 행운을 빌어 드리죠.”

라일라의 대답에 재이가 잘됐다는 듯 냉큼 대답했다.

“*같이 가고 싶은 생각은 없고?”

“*결혼은 제가 아니라 저 인간이랑 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개족보냐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한산 쪽을 턱짓하는 재이에게 라일라가 농담도 못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럼, 도와줄 생각은?”

“*저따위의 도움이 필요하실 리가.”

“*해 보지 않고서야 모르는 거지.”

“*관심 없는데요.”

“*그렇게 쳐 내지 말라고. 어차피 시간은 있으니까.”

…거 되게 끈질기게 구네.

재이가 눈을 찌푸리자 한산이 라일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벌써부터 스카우트 제의인 거야?”

“*아? 아, 무,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나 진짜 돌아가고 싶거든.”

그 말에 한산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맨날 멍청한 것들이라고 욕하더니, 그래도 여기 사람들보단 거기가 나은가 봐?”

“*여긴 손발 다 잘려서 유배 온 거나 다름없지만, 돌아가면 내 세상이니까.”

한산을 향해 빙긋 웃어 보인 라일라가 재이를 돌아보고 이어 말했다.

“*앞으로 자주 보자고.”

그런 라일라의 황금빛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던 재이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한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를 불렀다.

“형.”

대부분 이 인간, 저 인간으로 불리던 한산이 새삼 자신을 제대로 된 호칭으로 부르는 재이의 부름에 놀라 이쪽을 돌아보았다.

“가출 동지로서의 의리를 생각해서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잠시 말을 멈추고 한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재이가 이어 말했다.

“난 이 결혼 반대야.”

한산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 * *

“으어 휴가가 끝나다니 믿을 수가 없다.”

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남궁찬이 거실에 배를 깔고 드러누우며 외쳤다. 휴가가 시작되고 자연스럽게 남궁찬과 함께 그의 본가로 잠시 거처를 옮겼던 도도 님이 오랜만에 보는 재이를 발견하자마자 남궁찬의 품에서 벗어나 재이의 무릎 위에 올라앉았다.

못 본 사이 부쩍 커버린 도도 님을 놀라운 듯 아쉬운 듯 여기저기 뜯어본 재이가 남궁찬과 고양이를 번갈아 바라보다 말했다.

“남궁찬하고 도도하고 둘이 살 오른 것 좀 봐. 그동안 엄청 잘 먹었나 봐.”

“밖에 나갈 수도 없고, 엄마 성화에 아침 점심 저녁에 간식과 야식까지 챙겨 먹으니 별수 있냐.”

“아예 관리할 생각이 없었던 거지?”

“바빴거든. 게임하고 먹고 자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더라고.”

운동 따위.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코웃음을 치는 남궁찬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던 멤버들이 한마디씩 했다.

“와, 당당하다 당당해. 정수 형이 뭐라고 안 하대?”

“그럴까 봐 엄마 차 타고 왔지롱.”

“내일 남궁찬의 얼굴에 뜬 보름달을 발견한 석관이 형 표정이 눈에 선하다.”

“한숨 푹 쉬면서 다이어트 식단 주문하시겠지.”

자신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하는 멤버들을 돌아보던 남궁찬이 차인혁에게 물었다.

“가족 여행은 잘 다녀왔냐?”

“그렇지 뭐.”

“의외야. 상혁이 형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독고다이처럼 보이는데 가족 행사는 딱딱 챙기고.”

“그러게. 차인혁 많이 컸어. 처음에 만났을 때만 해도 제 앞에서 상혁 선배님의 ‘상’ 자만 나와도 파르르 떨더니 이젠 선배님 제대하셨다고 같이 여행도 가고.”

“그거야 부모님이 결정한 사항이지 내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형 차상혁의 제대에 맞춰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온 인혁이 본의가 아니었다는 듯 심드렁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 모습을 본 이환이 엠케이에게 속삭였다.

“저러면서 은근 SNS에 올라온 사진 보면 상혁 선배님하고 친한 척한다니까.”

“원수 같은 친형제여도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이거지.”

“캬, 투철하다 차 리더. 역시 우리 리더가 큰 그림을 볼 줄 알아.”

멤버들의 몰이가 자신에게로 쏠린 것을 깨달은 인혁이 엠케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엠케이 너는 왜 빈손이야? 이번에 올 땐 자유의 여신상 가져온다며.”

“말도 마라. 심은규 온다는 소식에 아스트로넛에서 사람들이 모시러 와서 뉴욕에 있는 내내 나까지 작업실에 처박혀 있었잖아.”

그거 아니었으면 내가 진짜 이번에 갔을 때 그깟 거 진짜 확 뽑아오는 건데.

엠케이의 너스레에 멤버들이 하나둘 눈을 빛내며 다가와 앉았다. 휴가 기간 가족들을 만나러 뉴욕에 가 있던 엠케이는 본가에 들러 뉴욕으로 놀러 오기로 한 은규와 현지에서 휴가를 만끽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어디서 일정이 샌 것인지 은규가 뉴욕에 올 것이라는 소식에 그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한 조이 키넌이 공항으로 리무진을 보내면서 두 사람의 여유로운 휴가 계획은 순식간에 어그러져 버렸다.

“조이 키넌은 뭐래?”

“뭘 뭐래. 그 사람 아무래도 진짜 동물 애호가 맞나 봐. 한재이 보고는 여우 타령하더니 심은규는 보자마자 우리 서러운 펭귄 씨 왔냐고 막. 어휴 닭살.”

엠케이의 투덜거림에 은규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아니 키넌은 그냥 내가 영어도 잘 못 하고 어색해하니까 분위기 풀어 주려고 그런 거지.”

“나는? 나도 완전 어색했는데 왜 나는 그냥 엠케이고 너만 펭귄이냐고.”

엠케이가 발끈해서 투덜대는 것을 듣고 있던 이환이 은규에게 말했다.

“안 되겠다. 나중에 키넌한테 연락 오면 엠케이도 뭐 하나 붙여 주라고 하자.”

“그래그래, 어휴 얼마나 서러웠는지 시샘이 아직도 얼굴에 드글드글 하네.”

남궁찬이 옆에서 거드는 것을 듣고 있던 은규가 이환을 돌아보며 말했다.

“같이 갔으면 좋았을걸.”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덕분에 할머니랑 실컷 놀았으니까.”

“괜찮으셔?”

“많이 좋아지셨지. 한재이 언제 오느냐고 자꾸 물어보시는 것만 빼면.”

은규와 함께 뉴욕으로 놀러 가는 대신 할머니의 병실을 지킨 이환이 재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묻고 싶은 것이 많다는 얼굴로 재이를 쳐다보는 멤버들 사이에서 인혁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한재이 너는 이제 진짜 괜찮은 거야?”

멤버들이 돌아오기 며칠 전 퇴원해서 미리 숙소에 들어와 있던 재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멀쩡해. 여기서 다시 탈 나면 돌팔이가 의사 면허 반납하기로 함.”

“헐, 아니 뭐 그렇게까지.”

“친형을 상대로도 협박을 일삼는 거냐 한재이.”

“어휴 살벌해, 완전 진상 환자가 따로 없잖아.”

“저런 거 보면 개업의도 근무 환경 은근 빡세다니까.”

재이의 한마디에 나머지 멤버들이 차례차례 한마디씩 얹는 것을 보고 있던 인혁이 재차 물었다.

“형님 결혼하신다며?”

“…넌 대체 모르는 게 뭐냐.”

인혁의 물음에 재이가 진심 놀랍다는 듯 중얼거리자 남궁찬과 엠케이가 신나서 떠들었다.

“차인혁 은근 동네 아줌마 스타일.”

“차CTV가 괜히 붙은 별명이 아니라고. 낮말은 차인혁이 듣고 밤말도 차인혁이 듣는다.”

“상대가 랜플릭스 한국 지부장이라던데?”

인혁이 다시 한번 던진 말에 이번에는 흥미 없다는 듯 도도 님을 만지고 있던 이환과 은규까지 깜짝 놀라 돌아보며 외쳤다.

“헐, 진짜?”

“미친, 형님 수완 무엇?”

“아니 차인혁 사실 무슨 국정원 스파이쯤 되냐? 왜 모르는 게 없어?”

멤버들이 놀라서 웅성대는 사이에서 재이가 말했다.

“그 인간이 연애를 하는 건 맞는데 랜플릭스 지부장 아니고 클락 컴퍼니 쪽이라더라. 어차피 우리랑 엮일 일은 별로 없으니까 신경들 끄시지? 게다가 아직 확실하게 결혼 날짜가 잡힌 것도 아니고.”

재이의 말에 실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만 느꼈어? 지금?”

“남궁찬, 네가 느꼈을 정도면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다 느꼈다고 볼 수 있다.”

“하다못해 우리 도도 님도 느끼신 듯.”

멤버들이 자신을 흘낏대며 쑥덕이는 것에 재이가 불편한 듯 눈썹을 모으며 짧게 내뱉었다.

“아 뭔데.”

그러자 엠케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한재이 씨, 어째, 형님의 결혼 소식이 탐탁지 않아 보이십니다?”

“랜플릭스보다 클락 컴퍼니 쪽이 알짜 아닌가?”

“그러게, 대체 뭐가 문제죠? 천재 형님께서 능력 있는 형수님을 얻으신 게 배 아프십니까?”

“집안과 연을 끊고, 남남이라더니 왜 남 잘되는 꼴이 배가 아프신 거죠?”

“천하의 한재이도 시샘의 늪 앞에서는 평등한 인간이었다는 건가요!”

엠케이를 따라 신나게 외쳐 대는 멤버들의 막말 섞인 질문을 듣고 있던 재이가 짜증스럽다는 듯 인상을 팍 구기며 말했다.

“아 귀 따가워, 시끄러워.”

재이의 한마디에 일순 조용해진 실내에 인혁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까 석관이 형 만났는데 그러더라고. 내일모레 시사회 때 두 분 오실 거라고.”

휴가 후 파티의 첫 공식 일정은 오랫동안 기다려 온 픽처스의 [붉은 머리 용사 이야기]의 개봉 전 프리미엄 시사회였다. 인혁의 말에 얼굴을 팍 찌푸린 재이가 중얼거렸다.

“아니 왜? 딱히 가족석 준비한다는 말 같은 거 없었잖아.”

“형님은 혹시 너한테 무슨 일 생길까 봐 오시는 거고, 형수님은 투자사에 티켓 간 거일걸?”

클락 컴퍼니면 픽처스 단골 투자사 중 하나잖아.

인혁이 덧붙인 말에 재이가 얼마 전 만난 예비 형수를 떠올리고는 내심 중얼거렸다.

‘이거 일이 묘하게 되어 가는데.’

* * *

[붉은 머리 용사 이야기] 애니메이션 프리미엄 시사회

붉은 머리의 용사가 동료들과 함께 광포한 레드 드래곤과 사악한 대마도사를 무찌르는 장면을 보고 있던 라일라 클락이 푹신한 객석 등받이로 몸을 깊게 묻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흥미로운데?”

어둠 속에서 황금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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