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짜고 치는 거였어?
‘와, 세트 퀄리티 좀 봐. 픽처스에서 힘 좀 줬다더니 장난 아니네.’
김은지는 이벤트 홀 정면에 설치된 무대 세트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속편은 물론 실사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영화의 기세를 반영하듯 웅장하게 세팅된 무대는 제작진이 이번 이벤트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이거 혹시 오늘 레전드 찍는 거 아니야.’
김은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자신에게 파티의 무대는 하나하나 모두가 다 레전드였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이 티켓을 손에 넣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김은지는 무대가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오는 객석 1층 중앙 블록 통로석에 위치한 자신의 좌석 팔걸이를 뿌듯한 마음으로 쓱 쓸어 보며 생각에 잠겼다.
[붉은 머리 용사 이야기]의 500만 관객 돌파 기념 감사 이벤트로 기획된 [붉머용 히어로 쇼]의 티켓을 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헬 오브 헬이었다. 천 명 남짓 들어가는 규모의 객석 중 파티의 팬덤에게 배정된 티켓은 고작 100석뿐.
관계자 및 VIP석과 더빙판 성우 팬덤 및 픽처스 팬덤에게 배정된 일부 좌석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사연을 보내 당첨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일반 관객을 위한 일반석이었다.
취준생 시절 자기소개서도 이렇게 공들여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500자 사연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대체 몇 날 밤을 새웠던가.
김은지 본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 전용 티켓 대행처인 아버지, 어머니, 앞자리 동료, 건너 자리 후배 몫의 사연까지 써야 했으니 사실상 2,500자 정도의 작문이었던 셈이다. 그나마도 응모를 대행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더 모으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직장 포션들의 단톡방에도 매일같이 작문 팁을 공유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쯤 되면 대체 자신이 아이돌을 파고 있는 것인지 작가로서의 등단을 준비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결국, 다 떨어졌지만.’
그렇게 회사에서 돌아와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서 며칠 밤을 새워 가며 갖은 노력을 다했는데도 응모한 사연 중 하나도 당첨된 것이 없었다는 게 유머라면 유머였다. 자신은 아무래도 작문에는 재능이 없는 모양이었다.
팬덤에 풀린 티켓조차 손에 넣지 못하고 실황 중계로나마 마음을 달래며 그저 조상신이 보우하거나 전생에 나라를 구해 둔 덕에 운 좋게 티켓팅에 성공한 사람들이 베풀어 준 후기나 기다리고 있어야겠다고 체념하고 있던 때 김은지를 살린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이모, 나 배고파.”
옆자리에 앉은 김은지의 구원자가 말했다.
나름 MSG 팍팍 쳐 가면서 회사 연수에서 배운 대로 ‘매력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5단계’의 스킬을 활용해 야심 차게 준비했던 사연들은 전부 광탈했다. 간만에 맛본 세상의 쓴맛에 좌절하고 있는 김은지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어 온 구원자는 자신에게 재재님과 파티에 입덕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조카님이었다.
재재님의 열렬한 추종자인 조카님께서는 500자 중 달랑 18자, 그것도 [ㅈㅐ재니ㅁㅏ사랑ㅎㅐ요재ㅈㅏㅣ님쵝오] 라는 파격적인 본문과 크레파스로 휘갈겨 그린 한 장의 그림 파일만으로 보호자 1석, 본인 1석의 좌석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조카 같은 능력자를 둔 걸 보니 자신도 전생에 나라 하나쯤은 구해 둔 모양이라고, 김은지는 생각했다.
옆자리에 앉은 작은 구원자께서 인상을 팍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본 김은지가 말했다.
“왜? 아까 치즈랑 과자 먹었잖아.”
조금 전 입장을 위해 대기하고 있을 때 다리 아프다고 투덜대는 조카에게 언니가 들려 보낸 주전부리를 쥐여 준 것을 떠올린 김은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아이가 대답했다.
“응, 근데 또 배고파.”
“어쩌지 먹을 거 없는데, 이제.”
챙겨 온 과자는 이벤트 홀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모두 먹어 버렸다. 어차피 이벤트 시작하면 먹을 새도 없을 테고 미리 먹여 두면 편하겠지 싶어서 달라는 대로 다 줬더니.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남겨 둘걸.’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배고파아.”
“좀만 참아, 이제 금방 시작한다고.”
“못 참아, 배고파.”
“어쩌라고, 지금 다시 못 나가.”
“배고프다니까.”
“안 돼 이따 끝나고 먹어.”
“이모 미워.”
진짜 배고픈데 먹을 게 없어서 서운했던 건지 그저 떼가 부리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조카가 입을 쑥 내밀고 의자가 들썩거릴 정도로 털썩 주저앉는 것에 옆자리에서 힐끔 이쪽을 살피던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저기, 이거 괜찮으면 애기 좀 주세요. 이거 먹을래? 우리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인데, 우리 친구도 이거 좋아하니?”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온 데에 경계 섞인 눈동자로 그쪽을 쳐다보던 조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와, 포캣몬 초콜릿!”
“아, 고맙습니다. 서준아, 고맙습니다, 해야지?”
“고맙습니다!”
신나서 초콜릿을 까먹고는 금세 만족한 듯 입가에 웃음을 짓고 있는 조카를 바라본 김은지가 옆자리 사람에게 꾸벅 인사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간식을 챙겨 오긴 했는데 아까 다 털려서…….”
“괜찮아요. 저희 애도 그래서 항상 넉넉하게 가지고 다녀요.”
다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맞장구쳐 주는 옆자리 사람과 몇 마디 더 주고받는 사이 공연 시작을 알리는 버저음이 들려왔다.
“오-, 한다, 한다.”
“이모 무서워…….”
“어? 어어, 이리 와, 이리.”
무대가 암전하자 갑자기 어두워진 주변이 무서웠는지 조카가 울먹였다. 옆자리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있는 것을 확인한 김은지가 아이를 재빨리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완전히 어두워진 실내에 전쟁터를 연상케 하는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 군대의 뿔 나팔 소리 등등 온갖 소음이 점차 가까워져 오면서 몬스터의 괴성이 섞여 들자 객석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 다른 의미에서 아비규환의 예감.’
자신의 팔뚝을 꾹 잡고 무서운 것을 참고 있는 조카님은 양반이었다. 벌써부터 무섭다고 훌쩍이기 시작하는 옆자리 아이를 힐끔 쳐다본 김은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봐요, 제작진. 쓸데없는 데서 고증에 집착하지 말라고요. 애들 울잖아.’
김은지가 속으로 본 적 없는 제작진을 나무라고 있는 사이 뒤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꺄아악!!!”
“엄마아아!!!!!”
“으와아앙!!!”
객석 문을 통해 들어온 것은 몬스터 분장을 한 엑스트라들이었다. 영화에서 본 몬스터들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나자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도 몸을 움찔 떨며 고개를 뒤로 뺐다. 숨을 죽이고 그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김은지는 운 나쁘게도 통로를 따라 어슬렁거리며 무대 쪽으로 내려가던 몬스터 하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 이건 안 좋은 예감…….’
김은지가 조카의 어깨를 꼭 끌어안는 것과 동시에 몬스터가 김은지의 무릎에 앉아 웅크리고 있던 조카에게 훅 얼굴을 들이밀었다.
“으와아아앙!!! 저리 가!!! 저리 가!!!!”
“으악! 저리 가! 저리 가!!!”
몬스터가 객석 통로로 들어왔을 때부터 애써 참고 있던 조카가 깜짝 놀라 울며 몬스터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그것이 속에 사람이 들어 있는 가짜임을 알고 있는 김은지조차 박력 있는 몬스터의 얼굴에 덩달아 깜짝 놀라 한 손에 들고 있던 팸플릿으로 몬스터의 얼굴을 퍽퍽 쳐 대며 비명을 질렀다.
아이는 그렇다 쳐도 보호자 측의 격렬한 반항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듯 당황한 몬스터가 두 사람의 합공에 잠시 비틀대고 있는 사이 갑자기 환한 스포트라이트가 눈앞에 번쩍였다.
펄럭.
몬스터의 못난 얼굴에 공격을 퍼붓고 있던 조카와 이모는 시야를 가리는 붉은 빛에 동작을 멈추고 눈앞에서 나부끼는 붉은 빛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삿된 것이여 어둠으로 돌아가라!”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와 함께 후웅- 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하얗게 빛나는 검이 몬스터를 옆으로 그었다.
일격을 맞고 과장된 몸짓으로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무대 아래쪽을 향해 줄행랑을 치는 몬스터를 바라보던 망토의 주인공이 몸을 돌려 자신과 조카를 바라보는 것에 김은지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괜찮니?”
붉은 머리에 파란 눈.
갑자기 어디선가 등장해서 몬스터를 단칼에 해치워 버린 붉은 머리 용사가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추고 부드럽게 물어오는 것에 눈물범벅인 얼굴로 굳어 있던 조카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용감하네.”
짧은 칭찬과 함께 아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은 용사가 휙 몸을 돌려 그대로 통로를 내달렸다. 몸을 돌리기 전 자신과 잠시 마주친 푸른 눈동자가 희미하게 웃고 있던 것을 뒤늦게 깨달은 김은지는 저도 모르게 심장 근처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지금… 지… 금. 그… 거. 우리 애 맞지. 그치. 그치???
조금 전 자신과 조카를 몬스터의 손아귀에서 구해 준 것이 붉은 머리 용사, 아니 자신의 최애 한재이인 것을 깨달은 김은지가 숨을 헐떡이며 쥐어짜 내듯 말했다.
“흐헉, 서… 서준아, 이… 이모 죽을 것 같…….”
“용사님!! 뒤에!!! 몬스터!!!!! 조심해요!!!”
그러나 김은지의 중얼거림은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밀어 버리며 무대 위로 올라가고 있는 용사님을 응원하느라 정신없는 조카의 환호성에 묻혀 그대로 흩어져 버렸다.
* * *
- 이걸로 마지막이다.
- 크와아아앙!!
“*아니 브레스 뿜어 브레스! 거기서 그냥 무너지면 어떡해!!”
무대 위에서 붉은 머리 용사가 검을 휘두르자 스포트라이트가 번쩍이며 우르르하는 효과음과 함께 집채만 한 크기로 무대를 장악하고 있던 레드 드래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관계 자석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붉은 머리의 외국인이 소리를 빽 내지르는 것에 주변 좌석에 앉아 있던 관계자 중 몇몇이 돌아보고는 아아, 하는 눈빛으로 수군대기 시작했다.
“누군가 했더니, 클락 컴퍼니 지사장이잖아.”
“과몰입 쩐다. 소문대로 완전 찐 팬인가 봐.”
“한국어도 못 알아듣는 거 같던데, 여기까지 오고. 진짜 팬심이 대단한 듯.”
“덕질에 국경 없다잖냐.”
“이번 이벤트에 쓰라고 제작비를 따로 지원했을 정도로 열성이라면서.”
“덕업일치가 이런 건가 봐? 성덕이네, 성덕이야.”
자신을 알아보고 수군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무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붉머용의 찐 팬, 아니 클락 컴퍼니 아시아 퍼시픽 대표 라일라 클락은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용사의 검을 맞고 패퇴하는 레드 드래곤을 바라보며 분하다는 듯 발을 굴렀다.
“*아니 왜 이기질 못해! 저기서 발라 버렸어야지!!!”
“*…라일라, 진정해.”
흥분해서 들썩이고 있는 라일라와 대조적으로 깔끔하게 빼입은 정장 차림으로 차분하게 다리를 꼬고 기대앉아 있던 한산이 말했다. 자신을 다독이는 한산의 침착한 목소리에 라일라가 그를 홱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 자기야, 너는 저게 이해가 되냐? 어떻게 저 상황에서 레드 드래곤이 또 지느냐고! 그냥 밟아 버리면 끝인데! 왜 안 해? 역시 좀 더 크게 만들라고 해야 했나? 돈 아끼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제작비 아낀다고 몸통 크기를 저것밖에 안 만들었으니 또 진 거 아니냐고! 애초에 이따위 코딱지만 한 홀에서 한다고 했을 때 더 세게 반대했어야 해. 더 큰 데서 했어야지 드래곤의 위용이 살지! 이래서야 그냥 동네 도마뱀 수준이잖아!”
흥분해서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라일라의 불평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한산이 말했다.
“*라일라 혹시 히어로 쇼 처음 봐?”
한산의 말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씩씩대고 있던 라일라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 근데 그게 뭐?”
“*저거 다 짜고 하는 거라는 거. 혹시 모르나 싶어서.”
“*……!!!”
라일라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침대 머리맡에 선물을 가져다 놓던 부모를 발견해 버린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굳어 버린 라일라의 얼굴을 힐끗 쳐다본 한산이 짧게 웃었다.
“*…뭐야, 그럼 레드 드래곤이 못 이기는 거야?”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묻는 라일라의 말에 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진짜로? 진짜 애초에 다 짜고 치는 거였다고?”
“*그치. 움직이는 거 보니까 연습 많이 한 모양인데?”
“*레드 드래곤이 못 이긴다고……. 그럴 리가. 세계관 최강자인데…….”
미련을 못 버린 듯 중얼거리는 라일라에게 한산이 물었다.
“*라일라, 저기 몬스터들 안에는 사람 들어가 있는 건 알지?”
자신을 바라보는 한산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한 것을 본 라일라가 인상을 콱 찌푸리며 말했다.
“*날 바보 취급 하는 거야, 지금?”
“*지금 눈으로 확인한 근거만을 토대로 추론해 보면 아주 불가능한 결론도 아닌 것 같은데.”
“*닥쳐.”
고개를 홱 돌려 무대를 바라보자 사악한 마법사를 물리치고 합류한 일행에게 둘러싸인 용사 놈이 눈에 들어왔다. 붉게 염색한 머리에 푸른 컬러 렌즈를 끼고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는 용사의 갑옷과 망토까지 몸에 걸친 한재이는 그럴싸해 보였다.
모형이라고는 해도 장검을 익숙하게 휘둘러 보이는 품새에서 전장을 종횡무진하던 그때의 느낌이 묻어나는 듯했다. 자신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던 용사 놈과 똑 닮은 듯 전혀 다른 느낌의 이 세계의 한재이를 뚫어지라 쳐다보던 라일라가 중얼거렸다.
“*…사기꾼 같으니.”
조용히 중얼거린 말을 들은 한산이 힐끔 이쪽을 쳐다보고 말했다.
“*라일라, 히어로 쇼는 원래 히어로가 이겨야 끝나는 거야.”
“*닥쳐. 그런 게 어딨어, 이따위 쇼에 투자하게 하다니, 이건 사기야.”
“*그럼 나갈까?”
“*아직 안 끝났는데 어딜 나가.”
“*아, 그래.”
한산이 짧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라일라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팔짱을 끼고 객석 등받이 깊숙이 몸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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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마지막으로 다 같이 [on the road]를 불러볼까요.”
엠케이의 신호에 파티가 부른 영화의 주제곡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는 노래가 나오자 객석에 앉은 어린 관객 몇몇이 목소리를 높여 박자보다 먼저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는 것에 무대 위에 서 있던 멤버 여섯이 나란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 틈을 타 객석에서 자신들의 최애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용사님!!!!”
“늑대왕!!! 멋있어요!!!”
“황태자 나랑 결혼해!!!”
“오빠!!!”
도입부에 맞춰 노래를 시작하던 재이가 웃으며 다들 진정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자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뒤에 서 있던 멤버들이 함께 어깨동무하고 객석의 반응을 유도하며 선창하자 이미 몇 번이고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노래가 터져 나왔다.
재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샌가 몬스터 복장을 한 엑스트라와 거대한 레드 드래곤까지 다시 등장해 무대 위는 출연진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적군과 아군, 어린아이와 어른, 출연진과 관객,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함께 어우러져 부르는 노래가 이벤트 홀을 가득 메웠다.
객석을 둘러보던 재이는 한산과 나란히 앉아있는 라일라를 발견했다. 불만인 듯 팔짱을 낀 채 자신을 주시하고 있던 황금빛 눈동자가 이쪽의 시선을 깨닫고는 홱 다른 곳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본 재이가 씩 웃었다.
‘거봐, 안 된다니까.’
일단 이 세계에 적응부터 더 하셔야겠어, 도마뱀 양반.
라일라가 들었으면 펄펄 뛰었을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재이가 자신에게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