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204화 (204/224)

#204

전직 용병의 최대 무기

“이거 진짜 찍고 있는 거예요? 오 신기하다.”

기동경찰대 관내.

젊은 경관 하나가 데스크에 설치된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장 경장, 제발 좀.”

“아 왜요. 경사님도 좀 보세요. 완전 신기해요. 꼭 사람 눈동자 돌아가는 것 같다니까.”

“다른 건 모르겠고, 네가 지금 우리나라 경찰 채신머리를 실시간으로 깎아 먹고 있다는 것만은 잘 알겠다.”

“경사님도 참. 이럴 때는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피디님, 이거 편집, 편집 부탁드려요? 맞죠?”

“하하하.”

자신의 말에 한숨과 함께 핀잔을 주는 선배 경관의 태도에도 아랑곳없이 장 경장이 손가락으로 가위 모양을 만들어서 피디에게 흔들어 보이고는 뒤에 서 있던 상혁과 재이를 바라보고 물었다. 익살스러운 그의 말에 웃어 주며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분위기 괜찮은데.’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 투입되는 만큼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지만 촬영은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서 내 제일의 친화력을 자랑하는 경관이 있는 팀으로 배치했다는 기동대 대장의 너스레가 빈말은 아니었던 듯 넉살 좋아 보이는 젊은 경관이 다행히 호의적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주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상혁을 힐끔 돌아보니 그도 마찬가지인 생각이었는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차상혁 씨는 TV에서 보던 것보다 실제로 보니까 체격이 더 좋네요? 운동 따로 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따로 한다기보다는 제대한 지 얼마 안 돼서.”

상혁이 예의 바르게 웃으며 대답하자 장 경장이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제대 때는 말년 짬 붙어서 더 찌는 게 국룰 아니었어? 와, 이 사람 안 되겠네?”

“일반인의 룰을 연예인한테 따지면 어떡하냐. 당연히 관리하시겠지.”

보다 못한 선배 경관 임 경사가 끼어들자 장 경사가 이번에는 상혁의 옆에 서 있던 재이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한재이 씨는 이제 스물인 거야? 스무 살에 그렇게 유명해지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이에요? 상상도 안 가네.”

“장 경장 한가하면 보고서 좀 쓰지?”

보다 못한 임 경사가 끼어들자 장 경사가 짐짓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저 바쁘죠. 완전 바쁘죠. 이것 보세요. 제가 지금 톱스타 두 분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저 친구가 원래 저렇게 좀 깃털같이 가벼운 성격이라.”

“저희 아버지가 아직도 그러세요. 너 같은 놈도 경찰관이 되다니 세상 진짜 좋아졌다고.”

“아하하…….”

장 경장의 셀프디스에 상혁과 재이가 어색하게 웃음으로 화답했다.

“근데 어쩌다가 하필이면 저희 쪽으로 오셨어요? 저 아랫동네 쪽이 좀 빡세긴 해도 찍을 맛 나실 텐데. 여긴 거기에 비하면 별로 사건도 없어서 분량 안 나오실지도 모르는데?”

“장 경장아, 제발 좀.”

“아니 우리 입장에서야 꿀 빤다고 좋다고 하지만 저분들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순찰차 뒷좌석에서 졸다가 끝나 버릴 수도 있는데 미리 말씀드려야죠.”

장 경장의 말에 임 경사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짚었다. 반박하는 대신 한숨을 내쉰 것은 장 경장의 말이 아주 틀린 표현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구역은 사건·사고가 급증하는 연말연시를 빼고는 그다지 기동대의 수요가 없는 곳이었다. 좋게 말하면 치안이 좋아 살기 좋은 동네였고 나쁘게 말하면 대기 시간이 길어 일반 경관들의 눈치가 보이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안전하면 좋죠. 뭐.”

“요새는 시청자분들도 너무 자극적이면 보기 피곤하다고들 하시니까.”

재이와 상혁은 서로 슬쩍 쳐다본 후 경관들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이유야 별거 없었다.

너무 본격적인 출동과 사건 진압이 이루어지는 구역은 예능 찍자고 연예인 투입해서 카메라 들이밀고 끼어들면 일선에서 부담스러워서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혹시 모를 사고의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타협점을 찾다 보니 기동대답지 않은 기동대로 귀착하게 되었으나 좋은 게 좋은 거였다. 범인과 추격전을 벌이고 몸싸움을 하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면 될 터. 이 프로그램에서는 취지에 맞게 기동대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자신들의 이웃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잠시 함께 체험하는 정도로 족했다.

이러한 기본 축에 흔들림이 없었던 덕에 프로그램은 수많은 스타를 출연시키면서도 잡음이나 구설에 오르는 일 없이 롱런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작진이 영리한 거지.’

같은 포맷으로 오랫동안 지속해 온 프로그램들이 사멸하거나 대부분 주 시청자층과 함께 쇠락하는 것을 감안하면 전 연령층에 고루 호평을 얻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독특하기도 했다.

“근데 모자까지 쓰고 있으니까 그럴듯해 보이긴 하는데요? 어때요? 위화감 없죠?”

“그러게. 두 분은 딱 홍보 포스터 각이긴 하네. 같은 제복인데 정말 이렇게 차이가 나냐 어떻게.”

기동대 제복 차림의 상혁과 재이에게 다가간 장 경장이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하며 묻는 말에 임 경사가 감탄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장 경장이 너무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와 너무하네. 아무리 그래도 파트너한테.”

“시끄럽고. 시간 있으면 경봉 쓰는 법이나 좀 알려 드리던가.”

“아, 그럴까요?”

임 경사의 한 마디에 찌푸렸던 얼굴을 활짝 펴고 장 경장이 말했다.

.

.

.

“자 여길 이렇게 쥐고 어깨 전체를 이용해서 휘두르시는 겁니다. 너무 힘을 주지 마시고…….”

후웅-

“이렇게 말인가요?”

“…….”

장 경장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시범을 보이는 동작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재이가 들고 있던 삼단봉을 가볍게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쇳소리에 주변이 잠시 적막에 휩싸였다. 태연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느냐고 묻는 재이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장 경장이 뒤늦게 표정을 수습하며 말했다.

“…아, 맞아요. 그렇게. 재이 씨는 검도 같은 거나 호신술 같은 거 뭐 따로 배웠나 보죠? 말 좀 해 주지. 사람 민망하게. 하하.”

“아, 제가 시골에서 자라서 어렸을 때 형들 따라 뱀 좀 쳐 봤거든요.”

“…뱀, 이요?”

“네. 뱀이요. 이거 딱 뱀 치는 동작인데?”

재이가 경봉을 쥐고 어깨를 사용해 다시 한번 풀스윙을 해 보이며 대답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재이를 쳐다보고 있는 장 경장의 얼굴을 본 상혁이 대신 나섰다.

“한재이 쟤가 생긴 거랑 달리 이런 거 잘하거든요. 본인은 산골 출신에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서 그렇다는데 사실 일각에서는 한재이 전직 용병설 같은 거 돈다고요.”

“용병… 설이요?”

“용병이요?”

장 경장과 재이가 함께 돌아보며 되묻는 말에 상혁이 몰랐냐는 듯 재이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네. 저 녀석이 몸으로 쓰는 건 귀신같이 다 잘하거든요. 시골 과수원 집 출신이라 그렇다는데 그건 그냥 설정이고 사실은 어디 해외에서 조기 교육 받은 전직 용병 아니냐는 소리가 있다니까.”

“헐 저 나이에 용병하다가 때려치우고, 아이돌이라니 그거야말로 설정이 너무 과한데요.”

과장이 심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장 경장을 보고 있던 상혁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미심쩍으면 직접 대련 한번 해 보실래요, 장 경장님?”

“예?”

“한재이가 이기면 경장님께서 야식 쏘시고 지면 제가 쏘겠습니다.”

장 경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긴 야간 근무의 유일한 낙이라면 휴식 시간에 24시간 하는 맛집을 탐방하며 먹는 야식이었다.

“그 말씀, 물리기 없기입니다?”

“물론이죠.”

상혁에게 다짐을 받은 장 경장이 재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 교대 들어가기 전이기도 하고. 가볍게 몸이나 풀 겸 한번 붙어 볼래요?”

“아깐 못 믿으시겠다더니…….”

재이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말에 장 경장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공짜 밥 앞에 장사 있나요.”

“태세 전환이 번개 같으신데요.”

“사람은 자고로 코드명 닮아 가는 법이라잖아요.”

“장 경장님 아무 말이 완전 수준급이시네요.”

황당하다는 듯 투덜대면서도 시키는 대로 자신과 마주 보는 자세로 서서 경봉을 고쳐 쥐는 재이의 모습을 보고 있던 장 경장이 입에 걸려 있던 웃음기를 싹 지우며 말했다.

“자 준비됐으면 갑니다?”

장 경장의 말과 함께 현직 경찰과 전직 용병으로 의심받는 아이돌의 경봉 호신술 대련이 시작되었다.

.

.

.

‘하여간에 괴물이라니까.’

상혁은 팔짱을 낀 채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대결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재이 전직 용병설은 웃자고 지어낸 낭설이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사람의 대련은 자신이 아주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자신의 소속사 후배이자 잘나가는 탑티어 아이돌이 현직 경찰관, 그것도 위급 상황만을 전담으로 처리하는 기동대 소속 경장급 인물과의 대련에서도 밀리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맞서고 있었다. 촬영장에서 간간히 보여 주던 체술이 겉멋 부리기용은 아니었던지 꽤 그럴싸한 대련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생각이 착각이 아니라는 듯 대련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장난스럽게 눈을 빛내던 장 경장이 어느샌가 진지하게 굳은 얼굴로 제 쪽을 향해 파고드는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와, 한재이 씨 진짜 전직이 수상하긴 하네.”

어느샌가 옆에 나란히 서서 구경 중이던 임 경사가 감탄 섞인 어투로 중얼거렸다.

“저게 저렇게 보여도 초심자가 들고 가볍게 휘두를 수 있을 만한 무게가 아닌데. 장 경장이 말이 가벼워서 그렇지 몸 쓰는 거로 어디 가서 밀리는 사람이 아닌데 저걸 다 막네. 장 경장! 너무 봐주지 말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임 경사가 재이의 공격에 한 발 뒤로 물러서고 있는 장 경장을 향해 외쳤다.

“아 선배님, 제가 지금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아앗!”

빠-악

조금 전까지 경쾌하게 맞부딪치던 소리가 아닌 일방적으로 두드리는, 혹은 얻어맞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장 경장이 크게 비틀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앗, 너무 세게 들어갔나? 괜찮으세요?”

재이가 황급히 장 경장 쪽으로 달려갔다.

“아이고, 하마터면 놓칠 뻔했네.”

장 경장이 괜찮다는 듯 그 와중에도 놓치지 않고 경봉을 쥐고 있던 손을 흔들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놀라서 다가온 임 경사가 장 경장에게 말했다.

“일반인하고 대련해서 경봉 놓치는 거 방송 타는 날엔 너랑 나랑 나란히 서장님한테 불려가는 거였는데 말이다.”

“대장님도 가셔야죠. 대장님도.”

“그래, 대장님도. 대장님 내년에 승진 케이스인데 네가 이렇게 물 먹여 버리면 참도 예뻐라 하시겠다. 안 그냐?”

“안 떨어트렸잖아요. 와 재이 씨 보기보다 악력이 대단하네. 이것 봐 손 빨개진 거.”

장 경장은 자신의 손을 내밀어 보였다. 재이와 대련하느라 줄곧 경봉을 쥐고 있던 손바닥이 빨개진 것을 보고 상혁이 말했다.

“거봐요. 전직 용병, 맞죠?”

“뱀 치던 가락이라니까요.”

상혁의 말에 재이가 입을 삐죽하며 투덜거렸다.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장 경장이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용병이나 뱀꾼이나 잘나가는 아이돌의 전직치고는 좀 많이 살벌한 것 같은데.”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 내기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재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장 경장이 머뭇거리는 사이 상혁이 대답했다.

“설마 민중의 지팡이 신뢰의 대명사 경찰관 아저씨께서 선량한 시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진 않겠지.”

“전국 수백만의 시청자께서 보고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상혁의 말에 재이가 잽싸게 덧붙이는 것에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 장 경장이 자신의 상관이자 파트너인 임 경사를 돌아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임 경사님, 연예인 하고 예능 찍는다더니 웬 꾼이 두 명이나 붙은 거죠?”

“삼거리 국밥집이랬지? 오늘 운전은 내가 한다.”

장 경장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시계를 보며 교대 준비를 하자며 몸을 돌리는 임 경사를 따라가며 재이와 상혁이 한마디씩 했다.

“역시 흐름을 읽을 줄 아시는 분!”

“크게 되실 분입니다!”

“난 연예인이라길래 엄청 도도하고 콧대 높은 사람들일 줄 알았더니 뭐야, 그냥 사회생활에 닳고 닳은 직장인들이잖아.”

사람들을 따라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리는 장 경장의 말에 재이가 웃으며 대꾸했다.

“저도요, 기동경찰대에 간다길래 근육근육하고 우락부락하고 눈빛으로 사람 넷은 한번에 꼬챙이에 꿰어 버릴 것 같은 분들만 계실 것 같아서 완전 쫄았는데.”

눈에 장난기를 가득 담은 채 자신을 쳐다보는 재이를 바라본 장 경장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재이 씨 가만 보면 은근히 잘 멕이는 것 같아, 평소에 그런 소리 많이 듣지?”

그 말에 임 경사와 나란히 걷고 있던 상혁이 생각났다는 듯 뒤따라오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쟤 용병 시절 최대 무기가 혀였대요, 혀.”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재이 씨, 그쪽으로 간다! 조심해!!”

…평화롭고 한가로운 구역이라며, 대체 어디가?

재이는 장 경장이 했던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손에 든 경봉을 다시 한번 고쳐 쥐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