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205화 (205/224)

#205

뜀박질 한 것뿐인데

출발은 순조로웠다.

미리 카메라를 세팅해 둔 순찰차에 올라탄 일행은 임 경사의 안정감 있는 운전과 옆좌석에 앉은 투머치 토커 장 경장의 설명을 들으며 야간 패트롤을 시작했다.

평가 시즌마다 딱히 기동대가 필요 없는 곳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평화로운 구역이라는 장 경장의 소개가 과장은 아니었는지 담당 구역을 한 바퀴 순회할 동안 그들을 찾는 무전은 한 건도 울리지 않았다.

“오늘은 유독 더 조용하네. 원래는 아무리 그래도 이 시간대쯤이면 민원 한두 건쯤은 들어오는데.”

이래서야 방송 나가면 진짜 세금 도둑 소리 듣는 거 아닙니까, 우리.

결국, 휴식 시간이 다 되도록 출동이 필요한 민원이 접수되지 않자 장 경장이 민망하다는 듯 말을 흐리며 차에서 내리는 임 경사를 쳐다보았다. 그 말에 상혁과 재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차례차례 입을 열었다.

“평화로우면 좋은 거죠.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이잖아요.”

“매일 이렇게 꼼꼼하게 순찰을 해 주시니까 치안 유지도 잘 되는 거죠.”

긴급 상황 이 없다고 해서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프로토콜에 맞춰 줄곧 패트롤을 돌아야 하는 그들의 노고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닌 법.

두 사람의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에서 자신들에 대한 이해와 위로를 읽은 장 경장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장 경장이 말했다.

“두 분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힘이 나는데요? 감사의 의미로 이 동네 숨은 맛집으로 안내해 드리죠.”

장 경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상혁과 재이가 한마디씩 거들었다.

“오오, 역시 장 경장님 배우신 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 뭐든 곱빼기로 부탁드립니다! 아직 성장기거든요.”

두 사람의 열렬한 반응에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장 경장이 물었다.

“아니 저보다 훨씬 더 잘 버시는 분들께서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쥐꼬리만 한 공무원 월급을 기어코 쥐어짜 내시려고.”

그러자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상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공짜 앞에선 원래 만인이 평등한 법 아니겠습니까.”

“억울하면 경봉 대결 한 번 더 하실래요?”

상혁의 옆에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재이가 장 경장에게 물었다. 그의 어그로성 질문에 장 경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와 재이 씨, 선 넘네? 좀 봐줬더니 너무 기고만장한 거 아니야?”

“아 봐주신 거였어요? 안 그러셔도 됐는데. 그럼 역시 다시 한판 할까요?”

재이의 대꾸에 장 경장이 정색하며 딱 잘라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근무 중이라.”

“성실하시네요, 경장님.”

“존경합니다.”

그 후로도 적당히 이야기를 나눠 가며 걸음을 옮긴 일행은 장 경장이 새로 발굴했다는 편의점표 오뎅을 사 먹으며 그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응?”

“왜?”

어묵 꼬치의 마지막 한 입을 입에 욱여넣고 우물거리고 있던 재이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에 옆에서 종이컵을 후후 불어 가며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고 있던 상혁이 돌아보며 물었다.

“어, 아뇨. 뭔가 좀.”

“왜? 뭔데?”

재이의 시선이 조금 전 편의점을 나서서 자신들 옆을 지나쳐 그대로 걸어가고 있는 한 학생의 뒷모습에 멈춰 있었다. 상혁에 이어 재이의 시선이 멎은 사람의 뒷모습을 돌아본 임 경사와 장 경장이 차례차례 중얼거렸다.

“이상한 거라도 있어?”

“응? 무슨 일 있어?”

그들의 반응에 재이가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그냥 좀.”

재이는 조금 전 스쳐 지나며 마주쳤던 녀석의 눈빛을 떠올렸다.

까맣게 죽어 버린 눈.

예전에 거울 속에서 보곤 하던 익숙한 눈빛.

짓눌리고 숨 막혀 서서히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아냐 별거 아닐 거야. 그냥 공부하기 겁나 힘든가 보지.’

왠지 술렁이는 가슴에 재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재이, 오지랖 부리지 말자고.

침착하게.

심호흡 한 번 하고.

잠시 가만히 있던 재이는 들고 있던 종이컵에 들어 있는 오뎅 국물 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으… 야, 그거 엄청 뜨겁던데.”

“와, 내 속이 다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

“재이 씨 뜨거운 거 엄청 잘 먹네?”

뜨거운 국물을 냉수처럼 들이켜는 재이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휘-익. 탁.

다 마신 컵을 쓰레기통에 보기 좋게 던져 넣은 재이가 휙 몸을 돌렸다.

“어디 가?”

“잠깐 화장실 좀.”

자신을 돌아보며 묻는 상혁에게 짧게 대답한 재이가 시선을 한쪽에 고정한 채 그대로 걸음을 내디뎠다.

“응? 재이 씨, 화장실 거기 아닌데?”

“재이야?”

그제야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은 일행이 재이를 불렀다. 재이는 그들을 돌아보며 급하다는 듯 짧게 말했다.

“저쪽에도 혹시 주택가가 있던가요?”

재이가 가리킨 곳을 돌아본 장 경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저기는 공사 중인 쇼핑몰밖에 없…….”

학생이 사라진 곳은 얼마 후 새로 오픈할 예정인 쇼핑몰이 있는 곳이었다. 그 주변은 상업지구인 탓에 문 닫은 상점과 오피스 빌딩이 몇몇 들어서 있을 뿐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재이가 묻는 말에 왜 그런 걸 묻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하던 장 경장이 이상함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까지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하게 달아올랐다. 재이를 비롯한 일행이 다급히 학생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임 경사가 본부에 상황을 보고하는 무전을 보내며 따라오는 것을 확인한 재이와 장 경장이 속도를 높였다. 학생은 이미 출입 금지 라인이 쳐져 있는 쇼핑몰 안쪽으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

“잠깐, 곧 지원 도착할 거니까 상혁 씨랑 재이 씨는 여기서 지원 올 때까지 잠시 대기해…….”

“경사님, 잠깐만요. 지금 무슨 소리 안 들리세요?”

상혁과 재이의 안전을 염려하며 지시를 내리는 임 경사의 말을 가로막으며 재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 경사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외관 공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쇼핑몰은 인기척 하나 없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잠시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음에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자신을 향해 뭐라 입을 열려는 임 경사를 손짓으로 제지한 재이가 쇼핑몰 한쪽을 가리켰다.

“… 응?”

임 경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 여러 사람의 발소리였다. 일행의 얼굴에 일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구대에서 사람 좋은 얼굴로 농담 따먹기를 하던 장 경장이 무섭게 굳은 얼굴로 재이와 일행의 앞쪽을 가로막듯 버티고 섰다.

그리고.

“하하하, X신 새끼 …….”

쇼핑몰 한쪽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딱 보기에도 건전해 보이지 않는 복장 상태의 청소년들이었다. 무리 뒤편에 조금 전 편의점에서 마주친 학생이 다른 두 명에게 어깨동무를 당한 채 끌려 나오듯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대여섯 명쯤 되는 무리의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녀석이 낄낄대며 걸어 나오다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경찰의 무리를 발견하고 우뚝 멈춰 섰다.

“에이 X발!”

그리고 다음 순간, 녀석들이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쇼핑몰 입구 쪽으로 달아나던 녀석들이 마침 임 경사가 부른 지원팀이 타고 온 순찰차의 불빛을 보고 놀라 다른 쪽으로 튀기 시작했다. 장 경장과 상혁, 재이는 눈빛을 교환하고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을 쫓기 시작했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지원 온 기동 대원들이 나머지 녀석들을 하나씩 마크해 잡고 있었다. 지원팀에게 쉴 새 없이 지시를 내리며 동시에 편의점에서 지나쳤던 소년이 주저앉아 있는 것을 부축해 일으키는 임 경사를 확인한 재이가 눈앞의 목표물에 신경을 집중했다. 학생치고는 지나치게 밝아 보이는 머리카락 색 덕에 어둠 속에서도 쫓기가 퍽 수월했다.

‘여길 한두 번 돌아다녀 본 솜씨가 아닌데? 아주 완벽히 꿰고 있잖아.’

쇼핑몰은 규모가 제법 컸다.

아직 내부 공사가 한창인 탓에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길을 요리조리 잘도 뛰어다니는 목표물의 뒤를 쫓으며 재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옆에서 뛰고 있는 장 경장과 상혁은 딱히 지친 기색이 아니었지만, VJ는 이미 힘에 부친지 헐떡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오래 끌면 별로 좋진 않겠는데.’

장 경장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부쩍 스피드를 끌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재이가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어엇?”

자신과 나란히 달리던 재이가 갑자기 옆쪽으로 방향을 비트는 것을 본 상혁이 당황해서 그를 돌아보았다. VJ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는 듯 어느 쪽을 쫓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상혁을 쳐다보았다.

앞쪽을 바라보니 이미 멀리 달아나고 있는 우두머리 녀석과 그를 바짝 쫓고 있는 장 경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재이가 사라진 쪽을 돌아본 상혁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새 길을 익혔나 보네. 우리 전직 용병 씨께서.”

“예?”

“아뇨. 따라잡긴 힘들 것 같은데, 그냥 여기서 좀 쉴까요?”

“안 따라가도 돼요?”

“장 경장님 계시잖아요. GPS 확인되면 곧바로 지원팀 따라붙을 테니 좀만 쉬죠.”

상혁이 먼지투성이 대리석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VJ가 그런 그에게 카메라를 댄 채 물었다.

“재이 씨 저렇게 혼자 둬도 괜찮습니까? 범인이랑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런 운 나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빌어야죠. 뭐.”

태연한 목소리로 대꾸한 상혁이 어둠 속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어 말했다.

“아직 어린 학생이던데, 그 정도 운은 따라 주길 바라봅시다.”

한재이랑 맞짱이라니.

설마 그렇게 운이 없으려고.

상혁이 내심 중얼거렸다.

.

.

.

‘에이 X발. 완전 X됐네. 죽었어 이 X같은 X새끼, 감히 짭새를 끌어들여? 다음에 보면 가만 안 둬.’

한참을 뛰어다녔더니 다리가 온통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자신의 뒤에서 흉흉하게 눈을 빛내고 있는 산적 같은 덩치의 경찰을 힐끔 바라본 소년은 몸을 틀어 바깥으로 이어지는 쪽문이 위치한 통로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쪽에는 어떻게 안 건지 비리비리한 몸집의 경찰 하나가 길목을 막은 채로 서 있었다. 퇴로를 차단당해 당황한 소년이 품속에서 휴대용 나이프를 꺼내 들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에이 썅, 저리 비켜!”

소년이 꺼내든 나이프가 불길하게 번쩍였다. 장 경장은 한참을 뛰어다닌 탓에 땀으로 흠뻑 젖었던 몸이 싸늘한 밤공기를 맞아 차갑게 식는 듯한 기분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소년의 뒤쪽으로 그의 퇴로를 막아선 재이의 모습이 보였다.

‘저쪽으로 돌아나가서 막을 생각은 어떻게 했지? 그사이에 위치를 익힌 거야 설마? 진짜 용병 출신인가?’

장 경장은 속으로 감탄하며 주변을 훑었다. 자신과 재이가 막고 있는 통로를 제외하면 소년이 더 이상 튈 수 있는 곳은 없어 보였다. 소년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나이프를 쥔 손이 초조함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일단 최대한 이쪽으로 어그로를 끌어야 해. 저쪽으로 튀게 했다가 사고라도 나면 시말서 정도로는 안 끝날 거라고.’

재빨리 생각을 정리한 장 경장이 넉살 좋은 아저씨처럼 자신과 대치 중인 소년에게 외쳤다.

“아이고 얘야, 좋은 말로 할 때 그거 내려놓고 거기 서. 이제 그만하자, 아저씨 지친다.”

그러나 어린아이 달래듯 하는 장 경장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소년이 빽 소리를 질렀다.

“X발 지치면 걍 거기서 뒈지던가. 왜 따라오고 X랄이야!”

“네가 도망가니까 그러지. 여기 출입 금지 인 거 몰라? 좋은 말로 할 때 그거 내려놔. 그런 거 함부로 휘두르고 그러는 거 아니다.”

그렇게 말하며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앞으로 내딛는 장 경장을 경계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소년이 버럭 소리쳤다.

“웃기시네. 이거 내려놓으면 이때다 싶어서 잡아갈 거잖아.”

“왜, 나쁜 짓이라도 한 거 있어? 아, 출입 금지 구역 에 들어온 건 확실히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니긴 하지.”

“가까이 오지 마, X새꺄.”

“입에 걸레를 물었나 아주 구린내가 진동하네.”

다시 한 발자국 자신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장 경장에 움찔한 소년이 몸을 뒤로 틀었다.

“에이 X바알!!!”

소년이 재이 쪽으로 몸을 트는 것을 본 장 경장이 그를 따라 뛰며 외쳤다.

“재이 씨, 그쪽으로 간다! 조심해!!!”

안 돼, 이쪽에서 막기에는 거리가…….

장 경장이 입술을 꾹 깨물며 소년과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기 위해 땅을 박차는 순간.

후웅

따-악

경쾌한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아흐아아아…….”

어느샌가 꺼내 든 경봉으로 자신을 향해 나이프를 휘두르는 소년의 손목을 제대로 가격한 재이가 바닥에 주저앉은 소년을 무심한 얼굴로 힐끔 쳐다보고는 그 옆에 구르고 있는 나이프를 발로 멀찍이 걷어 냈다 .

“평화로운 구역이라더니, 대체 어디가…… .”

“허…….”

긴박한 상황과는 달리 태평하게 구시렁거리는 재이의 목소리에 장 경장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어깨를 내려뜨리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재이야!”

“재이 씨!!!”

“장 경장!”

“모두 무사해요!?!”

마침 멀리서 상혁과 임 경사, 그리고 지원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이에게 손목을 얻어맞은 소년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아픈 손목을 다른 손으로 쥔 채 엉엉 울고 있었다.

“어허어엉, X발 두고 봐, 다들 가만 안 둘 거야. 어허엉,”

“자자, 일단 일어나, 서에 가서 이야기합시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여성청소년계 팀원들이 소년을 인도해 가고, 여전히 어수선한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매니저 김석관이 재이를 붙들고 위아래로 몇 번이고 훑어보고서는 그제야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한재이 넌 좀 제발 좀. 가만히 좀 있으면 안 되냐, 응?”

“전 뜀박질한 것밖에 없는데요.”

대체 왜 자신이 혼나는 상황에 놓인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재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자 김석관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잖아.”

“안 났잖아요.”

“그런 말이 아니잖아.”

“어… 죄송해요?”

어딜 어떻게 봐도 죄송해 보이지 않는 재이의 사과에 김석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그래서 이런 프로에 한재이는 안된다고 그렇게 반대했는데 사람들이 내 말은 들어 처먹지도 않더니. 결국, 또 이렇게 수명 닳는 건 내 몫이잖아, 내 몫.”

“어… 석관이 형?”

“후…… . 아냐. 별일 없으니 됐다. 저, 피디님, 오늘 더 찍어야 합니까?”

김석관이 피디를 돌아보고 물었다.

“일단 서로 복귀하는 것까지는 찍는 게…….”

사건은 사건이고 촬영은 촬영이었다.

하마터면 유혈 사태 로 번질 수 있었던 상황을 모면한 마당에 촬영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하기가 껄끄러웠던 피디가 곤란하다는 듯 말을 흐리자 김석관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가 이쪽을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던 장 경장을 돌아보고 물었다.

“장 경장님, 혹시 수갑 남는 거 있으면 얘 순찰차에 좀 묶어서 가면 안 됩니까?”

“예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두 눈을 휘둥그레하게 뜨고 되묻는 장 경장의 반응에 김석관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한번 한숨을 길게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하, 역시 안 되겠죠? 후우.”

“제가 볼게요.”

사고뭉치 아들내미 걱정에 속이 타는 아버지처럼 온통 얼굴을 찌푸린 채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 김석관과 그런 김석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고 있는 재이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상혁이 손을 들고 나서자 김석관이 그제야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상혁 씨도 공범이야. 맹 이사님한테 보고 올릴 거니까 혼날 각오나 하고 있으라고.”

“아니 저는 왜요?”

“안 말렸잖아.”

“말리기도 전에 뛰쳐나갔는걸.”

“그러게 내가 재이 말고 인혁이도 가자고 그렇게……. 후우, 됐다. 아무튼, 제발 마무리까지 좀 안전하게 갑시다. 장 경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 예…… .”

너한테 말해 뭐 하냐는 듯 상혁을 힐끔 쳐다보고는 장 경장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여 보이는 김석관의 모습에 상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한재이 녀석 때문에 내 신용까지 말이 아니잖아.’

여전히 태연해 보이는 재이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상혁이 내심 중얼거렸다.

* * *

며칠 후.

“헐, 이게 그거라고?”

“올린 사람 제정신임?”

“담도 커, 아주.”

멤버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돌려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마디씩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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