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법과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
“전화 좀 하고 올게요.”
회의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핸드폰을 흔들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재이를 좇았다 .
“전화? 누구한테?”
엠케이가 물었다.
그를 비롯한 멤버들뿐만 아니라 김석관과 심진우까지 고개를 갸웃하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쓱 둘러본 재이가 평소와 다름없이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있어. 나보다 더 성질 더러운 사람.”
재이가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려 웃으며 중얼거렸다.
* * *
“*이게 드래곤 레어라고? 왜 이렇게 칙칙해? 그냥 딱 봐도 딱딱하고 습해 보이잖아. 저런 데서 자다가 비늘에 곰팡이 만들 일 있어? 좀 더 화사하고 아늑하게 표현하라니까. 여기라면 천 년 쯤 자도 중간에 안 깨고 쭉 통잠 잘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말이야 .”
클락 컴퍼니 아시아 태평양 총괄 지사장실
도심의 빌딩 숲과 그 사이로 난 도로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도록 커다랗게 난 통유리 창 이 인상적인 사무실 안.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 머리카락의 인물이 부하로 보이는 사람에게 열변을 토해 내고 있었다.
라일라 클락.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총괄 담당하고 있는 라일라가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 나 다름없는 붉은 머리칼이 춤추듯 들썩거렸다. 각종 서류와 파일 폴더, 캐릭터 스케치 등 여러 가지 자료들이 여기저기 정신없이 쌓여 있는 책상 너머에서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있는 라일라를 쳐다보며 부하 직원이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라일라, 원작 설정을 살리려면 어쩔 수가…….”
“*그놈의 원작 타령! 원작에서 어떻게 했건 우린 다르게 갈 거라니까.”
“*라일라, 잊은 거 아니죠? 우리가 만드는 건 스핀오프예요. 너무 막 나가 버리면 원작과의 시너지가…….”
부하 직원이 곤란하다는 듯 얼굴을 흐리는 것을 보고 있던 라일라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아, 시너지 따위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왜 다들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아휴, 속 터져!”
“*그럼 라일라가 직접 감독하고 만나 보시겠어요?”
나는 더 이상 모르겠으니 그렇게 불만이면 네가 직접 해 보라는 듯 어깨를 늘어뜨린 부하 직원이 물었다.
“*그랬다가 저번처럼 또 그만둔다고 날라 버리면 어쩌려고! 안 돼 . 더는 못 기다린다고.”
“*그럼 이쯤에서 타협하시는 게…….”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라니까.”
“*그럼 역시 감독님을…… .”
“*아니, 아니. 일단 알았으니까 나가 봐.”
라일라가 내린 축객령이 반가운 듯 부하 직원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그녀의 마음이 바뀔세라 냉큼 사무실을 나섰다. 잰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서는 부하 직원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라일라는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깊게 한숨을 내쉬며 푹신한 가죽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어휴. 이놈이고 저놈이고 답답해 죽겠네. 차원 이동이고 자시고 확 한 번 쓸어버려?”
울컥울컥 치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한쪽 손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라일라가 중얼거렸다.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 차원으로 억지로 떠밀리며 깎여 나간 권능은 회복되지 않았다. 지금 쥐고 있는 마지막 한 줌은 차원의 문을 열 때를 위해 아껴 둬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 몰라 그냥 쓸어버릴까 싶은 유혹에 휩싸이곤 했지만,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잘 참아 왔다 .
‘… 뭐, 나름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니까.’
이쪽 동네에서의 생활은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럭저럭 할 만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아주 조금 재미있었다. 권능 없이 살아야 하는 삶이라니 손발에 족쇄라도 찬 듯 끔찍하게 무겁고 답답하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살아 보니 오히려 아무것도 없기에 더 자극적이고 더 신선하고 더 선명했다.
쉽게 울고 쉽게 분노하고 쉽게 좋아하고 또 쉽게 잊는 미개한 족속들이라 생각해 왔던 인간이 권능 속에 영생을 살아가는 자신으로서는 느껴 본 적 없는 다채로운 감정의 파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저쪽 동네에서도 몇 번 유희를 즐겨본 적은 있었지만 결국 수틀리면 마법으로 쓸어버리고 튀기 바빴던 탓에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건 좀 X 같지만.’
라일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껏 무력을 앞세운 협박이라는 카드밖에 써 본 적 없는 라일라에게 그 카드 말고 다른 카드를 써서 인간들을 제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듯 느껴졌다. 그래도 작가와 감독 선정 단계 에서 몇 번 엎어지면서 나름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한 덕에 어찌어찌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다.
‘두고 봐라, 이 프로젝트 내가 꼭 성공시키고 말 테니까. 그 허접 애니메이션을 사람들 뇌리에서 지워야 내가 발 뻗고 잘 것 같단 말이지.’
말도 안 되는 억지 설정과 편향, 왜곡의 결정체인 픽처스의 애니메이션 영화 [붉은 머리 용사 이야기]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기억에도 없는 추태로 박제된 흑역사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다 같이 돌려 보며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용사의 전격 계열 공격 한 방에 나가떨어져 전기 맞은 개복치처럼 단박에 뒈져 버리는 레드 드래곤이라니. 그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억울해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다.
저쪽 동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에게 이런 식으로 제 입맛에 맞춰 날조한 이야기를 퍼뜨리다니. 모르고 살았으면 모를까 안 이상 바로잡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돌아갈 때 돌아가더라도 이것만큼은 꼭 끝장을 봐야 했다.
‘두고 봐라. 이번 프로젝트가 터지기만 하면 그 기세를 몰아서 영화랑 드라마 시리즈까지 만들어서 원작의 존재를 철저히 지워 주겠어 .’
라일라가 앞으로의 계획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때, 책상 위에 던져두었던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Prrrr Prrrrr
발신인의 이름을 확인한 라일라가 눈썹을 팍 찡그렸다.
“*뭔데.”
- *너한테 사과해야 할 일이 좀 생겨서.
전화를 받은 라일라는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온 의외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했다.
“*… 뭐?”
환청이 들리나? 조금 전에 용사 놈이 사과라고 한 것 같은데? 이게 드디어 미쳤나?
당황한 라일라가 멈칫하는 사이 용사 놈, 아니 이쪽 동네에서 나름 잘나가는 연예인 한재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네 그 프로젝트, 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나 때문에.
재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라일라는 벌떡 일어나 사무실 뒤편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가방을 낚아채듯 집어 들고는 그대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나오는 자신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최 비서, 차 좀 준비해 줘. 케이엠에 가야겠어.”
“*지, 지금 당장 말씀이세요?”
“*어, 지금 당장. 완전 당장.”
당황한 비서가 다급한 손길로 전화기를 집어 드는 것을 힐끔 본 라일라가 비서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앗! 라일라, 신발! 신발!”
“*아 괜찮아, 하이힐 불편해. 얼른 다녀올게.”
뛰기 시작한 라일라의 뒤로 부하 직원의 외침이 들려왔으나 지금 신발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 빌어먹을 용사 놈이 이쪽 동네에서까지 자기 일에 훼방을 놓으려 하는데 지금 신발 따위가 중요하냐고.
라일라는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망하다니. 어림없지. 누구 맘대로.”
반짝이는 엘리베이터에 비친 황금빛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
* * *
“와, 진짜 왔어.”
케이엠 회의실.
계속되는 대책 회의 와 향후 활동 방안 의 수정안에 대한 논의 탓에 꼼짝없이 회의실에 발이 묶여 있던 멤버들은 빼꼼 연 회의실 문 뒤에 옹기종기 모여서 타오르듯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다가오고 있는 인물을 바라보며 속닥거렸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재이의 전화 한 통에 채 30분도 되지 않아 케이엠 사옥에 등장한 클락 컴퍼니의 아태지역 총괄 라일라 클락이 서 있었다. 마중 나와 있던 재이와 심진우 팀장과 인사를 나누는 라일라를 바라보던 멤버들이 속닥였다.
“바쁘신 분 아니었어?”
“붉머용 광팬이라더니 소문이 진짠가 봐.”
“얼마나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저 신발 봐.”
“푸흡. 사무실에서 곧장 왔나 봐.”
“킥킥. 무서운 분인 줄 알았는데 취향은 좀 귀여우신데?”
몸에 딱 맞는 비즈니스 정장에 킬 힐 을 갖춰 신은 라일라의 모습만을 보아 왔던 멤버들은 여전히 고급스러운 정장 차림인 것과는 달리 위협적인 킬 힐 대신 뒤꿈치에 달린 앙증맞은 드래곤 날개가 인상적인 솜털 실내화를 신고 있는 라일라의 모습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하긴 원작자가 한재이라는 거로 대대적으로 밀고 있는데 그 한재이한테 악재 터지면 붉머용 흥행에도 타격 오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미성년자 폭행으로 엮였는데. 일이 커지면 애들 관람가 영화에 직격탄이긴 하지. 어휴 진짜 재활용도 안 되는 핵 쓰레기 같은 놈들.”
곱씹을수록 분통이 터진다는 듯 이환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클락 컴퍼니 일원이 뒷배라니. 한재이 언제 저렇게 컸냐.”
새삼 거리감 느껴진다는 듯 중얼거리는 은규의 말에 남궁찬이 별말을 다 한다는 듯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아 우린 클락 컴퍼니를 뒷배로 가진 한재이가 뒷배잖아.”
“어 그런가?”
“하긴, 그럼 최종 승자 는 우리네?”
은규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이환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지.”
“그 말 들으니 왠지 진짜 세계 정복 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형수님하고 한재이가 나란히 서 있는 거 보니까 둘한테 시키고 우린 그냥 구경만 해도 되겠다.”
“그러게. 그러게.”
“근데 저 두 사람 영어로 대화하는 거야?”
남궁찬과 이환의 주거니받거니를 듣고 있던 엠케이가 문득 궁금하다는 듯 엘리베이터 홀에 멈춰 선 채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라일라와 재이 그리고 심진우 팀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엠케이 네가 가서 좀 들어 봐, 뭔 소리 들 하는지 궁금하다.”
“그래. 차인혁은 다 듣고 와서 쓸데없이 세 줄 요약 같은 거 할 것 같다고.”
“맞아. 그러니 엠케이 네가 가서 듣고 요약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해설까지 얹어서 뭔 얘기들 하는지 중계 좀 해 줘라 .”
마침 잘됐다는 듯 자신의 등을 마구잡이로 떠밀기 시작하는 멤버들의 채근에 문 바깥으로 떠밀려 나오며 엠케이가 싫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외쳤다.
“아 싫어 왠지 저기 분위기…… .”
* * *
‘… 살벌할 것 같단 말이야…… .’
회의실 안.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재이를 노려보고 있는 라일라의 황금빛 눈동자를 힐끔 쳐다본 엠케이가 조금 전 멤버들에게 다 하지 못했던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재이와 심진우 팀장과 마주 앉은 라일라가 반대편으로 다리를 고쳐 꼬아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 프로젝트가 ‘너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마치 맹수가 으르렁대는 듯 나직이 깔리는 박력 있는 목소리에 엠케이가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재이 옆에 앉은 심진우 팀장조차 안경 너머 눈동자가 순간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은 엠케이가 손 아래에서 열심히 타이핑을 시작했다.
[MK]야, 시작부터 형수님 눈에서 레이저 쏘시는데 유탄 맞고 사망하는 줄. 참고로 지금 심 팀장님도 중상.
기다렸다는 듯 멤버들의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왔다.
[심은규] ㅎㄷㄷ 재이는? 재이는 괜찮음?
[남궁찬] 심은규 왜 쓸데없는 걸 묻냐 당연히 괜찮겠지
[이환] 설마 한재이도 마주 쏜 거 아니지? 레이저빔
[차인혁] 엠케이야 너 잘 보고 있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몸으로 막아
[이환] 아니 잠깐 근데 싸우려고 부른 거였냐고
[심은규] 그러게 왜 분위기 험악해?
멤버들의 반응을 재빨리 훑은 엠케이가 앞쪽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그사이에 재이가 들이받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 스캔들 터질 것 같거든요.”
“*결혼하냐?”
“푸핫. ”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엠케이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는 자신 쪽을 돌아본 세 사람에게 꾸벅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 죄송. 나도 모르게 그만. 신경 쓰지 마시고 하시던 말씀 계속하세요.”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엠케이의 말에 세 사람이 다시 시선을 돌려 서로를 마주 보았다. 라일라가 눈썹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스캔들이라니 뭔데. 네 원작이 드래곤을 음해하기 위한 허무맹랑한 날조와 사기극이라는 게 드러나기라도 했어?”
“*라일라, 그런 걸 이 세상 사람들은 ‘관점의 차이’라고들 해요.”
“*아, 시끄럽고. 그거 아니면 뭔데.”
눈썹을 찌푸리며 재촉하는 라일라를 바라보며 재이가 입을 열었다.
“*누가 저한테 맞아서 손목이 부러졌다고 하더라고요.”
“*…손목만?”
“큽…… . *아, 죄송.”
엠케이는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문 채 두 사람에게 다시 한번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 붉은 머리 예비 형수님은 대체 언제 봤다고 한재이를 저렇게 꿰뚫고 있는 거지. 통찰력이 장난 아니신데?’
그러게. 한재이가 저 성미에 작정하고 팼으면 손목만 나갔겠냐고.
엠케이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열심히 타이핑을 했다. 그 사이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러게요. 이번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경찰들하고 같이 순찰하다가 칼 들고 설치는 녀석한테서 날붙이 떨어내느라 한 대 쳤는데 그걸 그렇게 부풀리더라고요. 자기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다짜고짜 와서 쥐어박더니 손목을 분질러 놓더라고.”
“*… 그래서 그걸 가만뒀어?”
손목이 아니라 모가지를 분질러 줬어야지, 라는 표정으로 재이를 쳐다보는 라일라의 얼굴을 바라본 엠케이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꾹 깨물었다.
‘구경하다가 입 안 다 터지겠어.’
그치만 소리 냈다가는 형수님 레이저빔에 맞고 죽을 것 같단 말이야.
속으로 중얼거린 엠케이가 헛기침과 함께 똑바로 정면을 쳐다보았다.
“*어쩌겠어요,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영화에서처럼 다 때려 부수고 브레스로 쓸어버리고 할 수도 없잖아요. 인간인데.”
“*… 그래서, 지금 그 똥물이 내 프로젝트에 튈지도 모른다?”
“*이대로 가면 시간문제긴 하죠. 인성에 문제 있는 거로 찍히면 제대로 묻히잖아요. 이 바닥이.”
“*그건 안 되지 . 망하려면 혼자 망해. 왜 나까지 끌어들여.”
“*잊었어요? 라일라 프로젝트 런칭하면 나한테 로열티 들어오는 거. 내가 원작자잖아.”
라일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눈앞의 용사 놈이 말한 대로였다. 저 용사 놈이 먼저 침을 묻혀 놓은 탓에 뭘 하건 원작과 싸잡아 한 세트 취급이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끌고 온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건 드래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라일라가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똥물이 누구라고?”
그때까지 태연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채 라일라를 쳐다보고 있던 재이가 씩 웃으며 테이블 위로 몸을 당겨 앉았다.
“*살살해요 , 라일라. 이 세계가 법과 이성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요.”
위험하게 번뜩이는 황금빛 눈동자를 바라보는 재이의 눈이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