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208화 (208/224)

#208

라일라의 권능

“*법과 이성이라…….”

식탁 앞에 앉아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 색만큼이나 붉게 타오르는 듯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던 라일라가 짧게 중얼거렸다. 마침 가져온 냄비를 식탁에 내려놓고 맞은편 자리에 앉던 한산이 평소와는 달리 골똘히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라일라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왜, 설마 누가 또 못 해 먹겠다고 도망이라도 간 거야?”

“*이씨, 그런 거 아니거든? 내가 진짜 이번엔 완전 다 맞춰 주고 있는데 도망을 가긴 왜 가, 도망을!”

그가 끓여 온 김치찌개에 막 스푼을 가져다 대려던 라일라가 그 소리에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날카롭게 자신을 노려보는 황금빛 눈동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조림을 하나 집어 그녀의 밥그릇 위에 올려 주며 한산이 평온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아니면 다행이고. 일단 밥 한 숟갈 먼저 먹고 먹어, 속 버린다. …그럼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

한산의 말에 김치찌개로 향하던 스푼을 되돌려 그가 올려 준 장조림과 함께 하얀 쌀밥을 푹 퍼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라일라가 툭 내뱉었다.

“*자기 동생 말이야.”

식탁 맞은편에 앉아 와인으로 목을 축이고 제 몫으로 차려 놓았던 스테이크를 썰던 한산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동생? 내가 동생이 어디 있어?”

“*크으. 죽이네.”

이번에야말로 한산이 끓여 준 김치찌개를 한 숟갈 크게 떠먹은 라일라는 입 안 가득 퍼지는 뜨겁고 맵고 짠 맛의 향연에 잠시 눈을 감은 채 그 자극적인 맛을 음미했다. 그사이 한산이 채워 준 소주잔의 소주를 한 번에 입 안으로 털어 넣은 라일라가 이어 말했다.

“*아, 왜. 있잖아, 피도 한 방울 안 섞였다면서 너랑 닮아서 속이 시커먼 놈.”

밥 위에 콩자반을 올려 주는 한산의 손길에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포크를 들어 그걸 밀어내고는 대신 손을 뻗어 썰어 놓은 스테이크를 한 조각 집어 우물거리는 라일라를 바라보며 한산이 말했다.

“*그 얘기 그 녀석이 들으면 질색할 것 같은데? 아무튼 그래서 재이가 무슨 얘기를 했길래?”

“*이 세계가 법과 이성이 지배하는 곳이라던데.”

큼지막하게 새로 썬 스테이크를 라일라의 밥 위에 올려 주던 한산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누가 그랬다고?”

“*당신 동생.”

“*어쩌다 그런 얘기가 나온 건데?”

“*아.”

라일라가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산이 밥 좀 더 달라며 빈 그릇을 내미는 라일라에게 새로 따뜻한 밥을 퍼다 주며 물었다.

“*그래서 어쩔 건데?”

“*고민 중이야. 그냥 내 식대로 밀어 버리고 싶은데 자기 동생 놈이 법이니 이성이니 하니까 갑자기 머리가 아프잖아.”

“*당신이 언제 그런 거 따졌다고.”

한산이 와인을 홀짝이다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리자 라일라가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왜 이래, 나도 그 정도 상식은 있거든?”

권능만 쓸 수 있었어도 싹 다 깨끗하게 쓸어버리는 건데.

작게 중얼거리는 라일라의 모습을 바라보던 한산이 중얼거렸다.

“*라일라, 아직 멀었구나.”

“*뭐가.”

“*당신의 세계에서 신이 당신에게 선물했었다는 그 권능 말이야.”

그게 뭐.

퉁명스럽게 내뱉으며 김치찌개 국물에 비빈 밥을 한 숟갈 커다랗게 퍼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라일라를 바라보며 한산이 말했다.

“*내가 보기엔 그 선물, 여기에서도 엄청나게 많이 갖고 있어서 주체가 안 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지금 나 놀리는 거야?”

한쪽 볼이 불룩한 채로 라일라가 한산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산이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그럼 뭔데.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자신을 노려보는 황금빛 눈동자를 잠시 바라보던 한산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녀석도 참. 일을 시키려면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 주던가.”

한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라일라가 얼굴을 팍 찡그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이야?”

“*라일라가 가지고 있다고, 그 권능. 이 세상에서도 잘 통하는 아주 강력한 거.”

“*…뭐? 그게 뭔데?”

마지막 스테이크를 라일라의 숟가락 위에 얹어 준 한산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라일라를 마주 보며 짧게 말했다.

“돈.”

그 한 마디에 라일라의 황금빛 눈동자가 순간 반짝였다.

* * *

며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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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동 아이돌 갑질 사건의 피해자라 주장하는 피아노 특기생 A군에게]

피ㅋㅋ앜ㅋ닠ㅋ슼ㅋㅋ틐ㅋㅋㅋㅋㅋㅋㅋ K예고 2학년 A 군아 너 악보는 제대로 읽을 줄이나 아냐?ㅋㅋ 콩쿠르 준비 중이라고 해서 난 진짜 처음에 다른 사람 얘긴 줄 알았잖앜ㅋㅋ 우리 학교 애들 중에 너희 부모가 학교에 13번째 셔틀버스 기부하고 너 꽂아 넣은 거 모르는 애들 있냐? ㅋㅋ

그래서 너 별명도 13호잖아ㅋㅋ 피아노 특기생이 아니라 버스 기부생이겠지ㅋ 연습은커녕 맨날 네 돈 보고 달라붙는 거머리 같은 것들하고 몰려다니면서 사고나 치고 다니고 그거 너희 부모가 다 돈으로 닦아주고 다닌거잖아ㅋㅋ

손목 부러졌다더니 피시방에서 게임만 잘 하대? 이번에 아이돌 인생 하나 조져놓을 거라고 신나서 떠벌리고 다니던데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ㅉㅉ 저런 개쓰레기하고 엮인 아이돌만 불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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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피해자라 주장하는 학생의 실태를 고발하는 반박 글이 올라온 것은 재이가 라일라와 이야기를 나눈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음엔 2차 가해네, 케이엠의 수작이네 하던 여론은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다른 학생의 글을 기점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13호 부모에게 입막음 당했습니다]

예고에 진학하고 나서 줄곧 13호의 학폭에 시달려온 사람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하면서 제 뒷바라지를 하고 계십니다. 부모님의 가게가 입점해 있는 건물 소유주가 13호네 부모님이고요. 13호는 그걸 안 순간부터 저를 집요하게 괴롭혔습니다.

저희 집이 자기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머슴이라면서 저를 머슴이라고 불렀고 술이나 담배를 사 오라고 시키기도 했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폭력도 썼습니다. 한번은 얻어맞다가 손목이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13호네 부모님이 사실을 말하면 가게를 빼게 하겠다며 협박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참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빼앗긴 건 13호가 아니라 저였습니다.

그 일이 있었던 날 그 아이돌은 13호가 시킨 심부름을 하러 편의점에서 잠깐 마주쳤습니다. 평소에 연예인에 관심도 없어서 그냥 경찰들이 모여있나보다 하고 지나쳤는데 쫓아와 주셨을 줄 몰랐습니다. 그분들 아니었으면 저 그날 또 밤새도록 끌려다니면서 얻어맞았을 거예요. 13호가 콩쿠르 예선 탈락했다고 심기 불편했거든요.

일 터지고 13호 부모님이 찾아오셔서 가겟세 내려줄 테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잠자코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이제 안 그러려고요. 가만히 있다가 저 구해주신 분들이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걸 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얻어맞는 것보다 이게 더 힘들더라고요. 부모님하고도 얘기 끝났습니다. 이거 다 까발리면 학교도 그만둘 거니까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K예고 조ㅅㅊ X새끼야 너 인생 그렇게 살지 말아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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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는 학생의 글과 함께 맞은 흔적이 선명한 증거 사진들이 올라오고 얼마 되지 않아 어디서 샌 것인지 가해자의 신상 정보가 돌기 시작했다. 자정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는 괘씸죄가 더해져서인지 성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윗선으로 들어온 강한 압력에 SBC는 [일하러 갑니다] ‘기동순찰대 24시 편’의 방송 일정을 대폭 앞당겼다.

피디를 비롯한 제작진들이 갈려 나가는 하드 스케줄이었지만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하는 법. 결국 차상혁의 복귀 기념이라는 당초의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프로그램은 재이를 중심으로 재편집되었다.

기동대 사람들과 소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무해하게 웃는 재이의 얼굴이라던가 야간 순찰 당시 편의점에서 해당 학생을 발견했을 때 모두가 그냥 지나치는 가운데 혼자 멀어져 가는 학생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재이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경찰 제복 차림의 재이가 화면에 비추며 제작진의 질문이 자막으로 올라왔다.

[그때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었나요?]

어두운 거리 속으로 멀어져 가는 학생의 뒷모습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는 재이의 모습이 다시 한번 재생되었다. 주변에서 다른 경관들과 상혁이 오뎅을 먹느라 분주한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제작진의 질문에 재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문을 열고 나오는 학생과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잠시 말을 멈추고 뜸을 들이는 재이를 카메라가 클로즈업 했다.

프로그램에 맞춰 검게 염색한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넘긴 얼굴이 화면 가득 잡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잠시 카메라 너머를 응시하며 말이 없던 재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익숙했거든요. 그 눈빛. 지치고 힘들어서 도와 달라고 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

담담한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짧은 침묵이 흐르고 카메라 너머 제작진과 시선이 맞은 듯 멋쩍게 웃어 보인 재이가 살짝 어깨를 으쓱하고는 이어 말했다.

- 저도 예전에 그랬던 적이 있어서. 다른 분들보다 좀 더 신경이 쓰였던 것 같아요.

재이의 말이 끝나면서 화면이 바뀌어 아직 오뎅을 먹고 있는 경관들과 몇 마디 주고받고 다급하게 학생의 뒤를 쫓는 그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다. 그런 재이의 움직임에 차상혁과 경관들이 따라붙고 쇼핑몰에서 한 무리의 소년들과 맞닥뜨린 장면에서 카메라는 모자이크 처리한 소년 중 한 명의 움직임을 클로즈업 했다.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출입금지 구역에서 나오던 소년들이 경찰을 발견하고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한 순간 한 명의 학생만은 도망치는 대신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일순 카메라에 잡혔다. 그리고 정지된 화면 위로 자막이 흘렀다.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그 소년은 조금 전 편의점에서 마주친 그 학생이었다]

곧이어 아래쪽으로 고정된 카메라 앵글에 교복 바지를 입은 학생의 모습이 비치며 인터뷰가 이어졌다.

- 살았다. 라는 생각이 들었죠. 경찰들이 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오늘도 밤새 끌려다니겠구나 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경찰들을 보니까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진 것 같았어요.

변조된 음성 너머로도 떨림이 생생히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맞잡은 양손을 불안한 듯 꾸물거리며 학생이 말을 이었다.

- 말 안 들으면 차고 때리고. 자기 삼촌이 호신용으로 사 준 거라고 나이프도 가지고 다니거든요. 칼날 잘 듣나 본다고 막 저한테 그어 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카메라 앞으로 내미는 팔뚝은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그 녀석’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어깨높이에 달린 보디캠의 위치 탓인지 얼굴까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불량하게 입은 교복 차림의 소년이 손에 모자이크된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것은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 가까이 오지 마, X새꺄!

보디캠을 달고 있는 경관 쪽을 위협하듯 모자이크 처리된 나이프를 휘두르며 외친 소년은 조심스럽게 한 발 더 앞으로 내딛는 경관의 움직임에 뒤로 한 발자국 주춤 물러나더니 그대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서 있던 누군가를 향해 뛰어들었다.

- 에이 X바알!!!!

- 재이 씨! 그쪽으로 간다! 조심해!!!

다급하게 외친 경관이 소년의 뒤를 따라 뛰는 탓에 보디캠의 시야가 심하게 출렁였다. 다급한 발소리 카메라가 옷깃에 스치며 서걱대는 소음이 뒤섞여 온통 혼란스러운 화면이 바뀌며 정면에서 모자이크 처리된 무엇인가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소년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한재이 순경의 보디캠 촬영 장면]

자막이 사라짐과 거의 동시에 코앞까지 다가온 번쩍이는 것이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멀찍이 튕겨 나가는 것이 카메라에 비쳤다.

-아악!!

다음 순간 몸을 웅크리고 바닥을 구르는 소년의 모습이 보이고 그에게서 등을 돌렸는지 바닥을 향한 카메라에 검은 워커가 슥 하고 날붙이를 멀찍이 걷어차는 장면이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프로토콜에 따라 위험물을 용의자에게서 멀찍이 떼어 놓는 한 순경]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그런 세 사람의 모습을 멀찍이서 발견한 카메라가 다급히 당겨 찍었다. 화면 너머에서 제작진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섞여 들었다.

- 뭐야, 잡았어?

- 잡았어요! 잡은 것 같아요!

- 다쳤어?

- 아뇨. 재이 씨는 무사해 보이고, 장 경장님이 용의자 앉혔네요.

- 휴 다행, 어서 가자 어서.

열심히 달리느라 헉헉거리는 소리와 함께 점점 가까워지는 화면 안에 주저앉아 있는 학생 앞에 경관이 서서 뭐라 뭐라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재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화면이 바뀌고.

- 후우, 한재이 제발 좀. 임 경사님 있는 곳에 있지 왜 따라가 거길, 위험하게!

- 장 경사님 혼자 가시게 할 수도 없잖아요.

- 그러다가 큰일 나면 어쩌려고

- 안 났잖아요.

- …장 경장님, 남는 수갑 있으면 얘 좀 묶어서 가면 안 되나요?

- 예에???

매니저와 재이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들과 경관의 어처구니없어하는 얼굴이 차례차례 클로즈업 되었다.

[학교 폭력의 현장을 검거한 한재이 순경, 차상혁 순경과 함께 감사장을 전달받고 명예 기동대원으로 위촉]

화면에는 경찰 정복 차림의 재이가 차상혁과 경찰 간부, 그리고 기동 순찰 대원들에 둘러싸여 꽃다발과 함께 상패와 호신용 경봉을 선물로 건네받는 모습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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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 전 한재이잖아.”

“진짜, 너무한다. 상혁 선배님 분량 어디 갔어.”

“그러잖아도 차상혁이 다신 한재이랑 예능 안 하겠다고 하더라.”

숙소에서 온에어를 함께 보고 있던 멤버들이 하나둘 중얼거리는 말에 인혁이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그 말에 다른 녀석들이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엠케이가 소파에 앉아 있는 재이를 돌아보고 물었다.

“근데 그 학생 섭외는 어떻게 한 거야? 처음에는 아니라고 막 발뺌한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거.”

재이가 읽고 있던 것에서 눈을 떼고 멤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곤란해하던 걸 해결해 줬더니 먼저 증언하게 해 달라고 했다던데?”

“무슨 소리야.”

“누가 한 건데?”

“심 팀장님이?”

“석관이 형인가?”

고개를 갸웃하는 멤버들을 쓱 둘러본 재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생각보다는 제법 머리도 쓸 줄 알잖아, 라일라.’

라일라의 대처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했다. 핵심이 되는 부분을 과감하게 쳐 내고 방송국과 케이엠을 압박해 차상혁 대신 재이를 전면에 부각시켜 재편집한 방영분을 최대한 빨리 방송되도록 조율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 학생에게 후원금 명목으로 거액을 지급해 부모의 가게 이전을 도운 것은 덤이었다. 수틀리면 브레스 뿜고 튀는 게 일상이던 레드 드래곤치고는 꽤 치밀하고 괜찮은 대처였다.

“뭐, 나도 받기만 한 건 아니니까.”

재이는 중얼거리며 읽고 있던 대본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건 대체 어디서 물어 온 건지 원.”

분명 공짜로 해 주기엔 자기가 판 발품이 아깝다는 생각에 책상 위에 쌓여 있던 안건 중 아무거나 충동적으로 집어 온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며 재이가 다시 대본으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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