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장악원 비록 (3)
“자 그럼 들어 볼까요. 환디 규디가 부릅니다. 재재님, 힘내세요.”
세상이 너한테 덤비나요
지치고 피곤한 그대 얼굴이 낯서네요
재이의 멘트가 끝나자마자 은규의 키보드 반주와 함께 이환의 매끄러운 보이스가 흘러나왔다. 온 에어의 불이 켜지기 직전까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미간을 콱 찌푸리고 입술 끝을 잘근잘근 씹어 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당장 꿀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한껏 감정을 끌어 올린 이환의 얼굴을 보며 재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우리가 누구죠
꿈을 잡는 드림캐처 환디와 규디
치유 담당 법사와 힐러의
당신을 위한 회복의 주문
데뷔 초부터 꾸준히 합을 맞춰 온 데다 라디오를 함께 하면서 임기응변이 눈에 띄게 좋아진 덕인지 척하면 착으로 쿵짝이 맞는 이환과 은규가 능청스럽게 주거니 받거니 노래를 이어 갔다. 잔잔하게 시작했던 은규의 반주가 점점 기세를 몰아 긴장감을 더해 가고 있었다.
자 이제 눈을 감고
준비해 곧 들려올 힐링의 FLEX
두 사람이 잠시 숨을 멈추고는 서로 눈빛을 마주하며 박자를 맞췄다.
재재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재재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재이 씨 파이티잉~
이환과 은규의 콧소리 섞인 응원으로 즉흥곡이 마무리됐다. 마지막 구절의 충격에 잠시 말을 잊고 있던 재이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이야아……. 감사… 합니다?”
“왜죠. 별로 안 감사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요?”
“그러게요. 저희가 걸어 드린 회복의 주문이 마음에 안 드셨나요, 혹시?”
재이의 떨떠름한 대답에 이환과 은규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하며 캐물었다. 스크린에 빠르게 올라오고 있는 청취자 반응을 훑은 이환이 말했다.
“에이 설마. 우리 게시판 난리 났는데?”
“재이 씨? 감상평을 한번 들어 보고 싶은데요?”
은규까지 가세해 재촉하자 여전히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재이가 입을 열었다.
“아, 뭐랄까. 그 마지막 부분에 그 ‘우리가 있잖아요’ 거기 말이죠.”
“네. 그게 왜요?”
“원곡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것 같은데. 환디랑 규디 주문은 왠지 ‘우리가 있는 거 잊은 거 아니지?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좀 하자, 응?’ 하는 약간 이런 느낌으로 들리던데.”
재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환과 은규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런 재이의 눈빛을 마주한 이환과 은규가 불편한 듯 자세를 바로 하며 앞다투어 말했다.
“하하하, 설마요.”
“어휴 재이 씨 많이 피곤하신가 보다, 응원송을 이상하게 들으시네.”
“회복의 주문 다시 한번 걸어 드려요?”
“아뇨, 아뇨. 괜찮아요. 다시 들으면 꿈에 나올 것 같아.”
이환의 물음에 재이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은규가 반색하며 외쳤다.
“와 그거 좋은데요. 회복 주문으로 꿀잠 루트!”
“아니 두 사람이 ‘잘 좀 하자, 한재이. 응?’ 하고 쫓아다니는 악몽이라고.”
머리를 쥐어 싸매는 시늉을 하며 중얼거리는 재이의 반응에 이환이 웃으며 은규에게 말했다.
“아하하, 와 규디, 이거 좋은데요? 다음 앨범에 정규로 넣을까요?”
“버프를 가장한 디버프 주문으로 말이죠?”
“하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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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재재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재재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음…….”
달달한(?) 알람이 귓가에 울리는 소리에 재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은 [장악원 비록] 첫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처럼 콜타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재이는 제작진과 선배 연기자들을 찾아가 인사와 함께 눈도장을 찍고 자신의 차례를 위해 차 안에서 대기하던 중이었다.
“재이야, 일어났어?”
“예. 벌써 나갈 시간이에요?”
자신이 일어난 기척에 앞 좌석에 앉아 있던 홍정수가 룸미러를 통해 뒤를 돌아보며 묻자 재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어. 그나저나 너 진짜 그거 알람음으로 해 놓은 거야?”
“제가 했겠어요? 엠케이 그 자식이 남의 핸드폰에 멋대로 장난친 거지.”
어쩐지 배터리가 없다고 잠깐 빌린다 어쩐다 하더니만.
재이의 말에 홍정수가 ‘그럼 그렇지’라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마음에 들었나 보네? 안 바꾸고 그냥 두는 거 보면.”
“지금 바꿔 봤자 다른 녀석들이 또 바꿔 놓을걸요. 이것들 지금 재미 들려서 그러는 거니까 그냥 붐이 사그러들 때까지 놓아두는 게 나아요.”
아, 형 그 훈훈하다는 눈빛 좀 치워 주세요. 우리 그런 사이 아니라는 거 형도 알잖아요.
룸미러 너머로 마주친 홍정수의 눈빛을 읽은 재이는 왠지 억울한 기분에 입을 삐죽이고는 양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쭉 한 번 켜고 문을 열었다.
“어후 오늘은 싸늘하네.”
재빨리 따라나선 홍정수가 두툼한 파카를 어깨 위에 얹어 주며 중얼거렸다. 세상은 어느덧 겨울이었다. 그리고 재이는 오늘 홑겹의 낡은 바지와 저고리 차림으로 첫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옷매무새와 분장을 확인하고 있던 스태프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휴 추워서 어째. 속에 좀 더 입을 걸 그랬나.”
“아뇨. 어차피 움직이면 더워질걸요. 여기서 더 껴입으면 보시는 분들이 저 살쪘다고 하실걸요.”
딱 좋아요.
선 자리에서 몇 번 제자리 뛰기를 해 보이며 움직임을 확인한 재이가 싱긋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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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높은 담장 너머로 흘러나온다. 평소라면 굳게 닫혀 있었을 으리으리한 대문이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축하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활짝 열려 있었다. 안쪽에서는 당대 최고의 권세가라 일컬어지는 민계황 대감의 회갑연이 한창이었다. 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대청과 연결된 쪽문 너머에는 대목을 맞아 자신의 재주를 팔고 삯을 받아 가기 위해 몰려든 재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직도 안 왔어?”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빼고 누군가를 찾던 중인이 옆에 선 사내에게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예에. 올 때가 됐는데.”
“연주 끝나 가는데 왜 아직도 안 와? 시간 확실하게 전한 거 맞지?”
중인이 초조한 듯 대청 쪽을 바라보고 다시 물었다. 대감마님은 까다로운 분이었다. 축하연의 연주는 나라님의 연회를 주관하는 장악원의 악생들을 불러 모아 맡겼다. 장악원의 연습날인 이륙회와 겹치는 날짜가 문제이긴 했지만, 어차피 장악원 소속 악생과 악공들의 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었으니 돈 준다는 데로 몰리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고향에서 그들의 몸값 대신 보내오는 가포만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품삯을 두둑이 챙겨 주겠다고 하자 앞다투어 손을 드는 바람에 그중에서 실력 있는 자들로 추려서 회갑연의 연주자를 꾸릴 수 있었을 정도였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중인이 묻는 말에 연회에 참여시킬 연주자들의 수급을 담당한 사내가 연신 허리를 굽혀 보이며 대답했다.
“그럼요. 그럼요. 이륙회(*장악원의 정기 연습) 끝나자마자 잽싸게 오겠다고 확답 받았는뎁쇼.”
“그깟 이륙회 하루쯤 건너뛰면 뭐가 어때서. 저들도 다 그거 건너뛰고 와 있는 것을.”
“그러게 말입니다. 넌지시 남들보다 더 얹어 줄 테니 그냥 일찍 오라고도 구슬려 봤는데 이습을 쉬면 기예가 녹슨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을 전들 어쩌겠습니까.”
“기껏해야 노비 주제에 건방지기는. 설마 우리한텐 이륙회에 가야 한다고 하고 다른 집 잔치에 간 건 아니겠지?”
“아이고 오늘 민 대감댁 잔칫날인 줄 온 도성 사람들이 다 아는 마당에 같은 날 잔치를 벌이는 집이 있으려고요.”
제 놈도 눈치가 있으면 시간 안에 튀어 올 겁니다. 암요.
사내의 말에 중인이 찌푸렸던 얼굴을 조금 풀고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이는 쪽문 너머를 초조하게 쳐다보았다.
“어? 저기 오네요!”
“어디? 어디?”
사내의 말에 중인이 고개를 길게 빼고 기웃거렸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이리저리 돌아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낡아 빠진 옷차림과 어수선한 머리 모양새에 중인이 인상을 콱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아니 연회에 오른다는 놈이 이런 몰골로 오면 어째!”
“어휴, 혹시라도 늦을까 봐 장악원에서 여기까지 발에 땀 나도록 뛰어왔는데 호통부터 치십니까, 나리.”
능글맞은 목소리로 꾸벅 인사를 하는 인물은 요새 풍류 좀 안다 하는 사대부 집 연회에 최우선 섭외 인물로 꼽히는 악공 오동이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중인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붙임성 좋게 웃는 얼굴에 재기 넘치는 눈빛이 반짝였다.
“어찌, 낭청을 구워삶아서 백주중단(*악공이 관복 아래에 받쳐 입던 흰색 비단옷)이라도 걸치고 오지 않고.”
중인의 눈치를 보던 사내가 나무라듯 말하는 것에 오동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아이고 나리 큰일 날 소리를. 지난달에 장판서 댁 혼롓날 연주 갔던 악공들이 그 짓 했다가 싸그리 경을 친 거 모르십니까.”
그 말을 듣고 있던 중인이 기분이 나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댁이 우리 대감마님과 어디 견줄 바가 되던가.”
“나리 그러지 마시고 깨끗한 창옷 하나 있으면 잠시 빌려주시지요. 제가 깨끗하게 입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중인의 못마땅해하는 태도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오동이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삯에서 깔 거야.”
“어이쿠 그럼 연회에서 많이 얻어먹어야겠네요.”
“동냥 온 거지꼴이 따로 없구먼. 대감마님 보시는 앞에서는 절대 그러지 말아라, 너 하나 잘못 들였다가 우리까지 줄초상 나게 하지 말고.”
“그럼 그 몇 푼 안 되는 삯에서 까겠다는 말씀은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저, 저, 고얀.”
“아이고, 오동아 얼른 이거 걸치고 준비해라, 노래 다 끝나 간다.”
사내가 눈치껏 끼어들며 마침 다른 하인이 가져온 창옷을 오동에게 건넸다. 오동이 옷을 두르고 모양새를 다듬는 사이 중인이 못마땅한 듯 중얼거렸다.
“소문만 믿고 부르긴 했는데 시작부터 저래서야 영 믿음직스럽지가 않아서 원.”
“걱정 마십시오. 나리, 쟤가 저래 봬도 전악 나리께서도 인정한 재주꾼입니다. 심려 붙들어 매시죠.”
“혹시 사고라도 치면…….”
사내의 호언장담에도 못 미더운 눈빛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중인은 채비를 마치고 이쪽을 돌아보는 오동의 모습을 보고 하려던 말도 잊은 채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이리저리 제멋대로 얼굴을 가리고 흐트러져있던 머리를 단정히 모아 하나로 묶어 올리고 하인이 가져다준 푸른 창옷을 몸에 걸친 오동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높이 올려 묶은 검은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훤칠한 키가 창옷의 푸른빛과 제법 근사하게 어울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재주가 보통이 아니라더니 눈빛 요살스러운 것 좀 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중인은 눈앞의 악공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언뜻 차가워 보이던 눈매가 시원하게 휘어지며 싱긋 웃었다. 느긋한 걸음걸이로 문 안을 향해 성큼 내딛는 모습이 재주를 팔아 먹고사는 천한 재인이 아니라 세상 구경을 위해 홀연히 나타난 선인 같은 모양새였다.
* * *
“컷. 오케이.”
“이야,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염 피디의 컷 사인이 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는 소리와 함께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조롭게 이어지는 촬영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가고 있었다.
“와, 우리만 호강했네. 여기가 로열석이었어, 여러분.”
민계황 대감 역을 맡은 배우 김강신이 자신의 양옆에 앉아 함께 잔칫상을 받으며 연회를 즐긴 사대부 역할의 보조 출연자들을 둘러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이 정도면 우리 그냥 동시 녹음 갔어도 될 걸 그랬지 않아요?”
“와 전 빼 주세요. 전 안전하게 후시 갈래요.”
“저도요.”
“그럼 모두의 의견을 존중해서 오동이는 동시 가고 나머지는 후시 가죠?”
첫 촬영의 순조로운 출발에 고무된 출연진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었다. 대사를 제외한 노래와 연주는 촬영이 끝난 후 후반 작업과 함께 후시 녹음으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현장에서는 장면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스튜디오에서 미리 레코딩해 두었던 AR을 이용해 촬영이 진행되었고 출연자들은 그 위로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덧대면서 각자의 감정선을 잡아 나갔다.
조금 전 끝난 오동의 독무대를 두고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배우들 틈에서 재이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다들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누가 할 소리를 하냐. 재이 씨야말로 동시도 아닌데 너무 힘주지 말라고. 쫄려 죽겠다고.”
“그러게. 최 감독님 눈 이글거리는 거 봐라, 진짜 저러다 동시 하겠다는 소리 나올까 봐 무섭다니까.”
“얼른 누가 동시 녹음은 꿈이란 걸 알려 드려야 할 텐데. 진홍아, 네 차례 아직 멀었냐?”
“재이보다 먼저 찍었는데요.”
“저런. 묻혔네 묻혔어.”
“괜찮아 진홍아, 다 이러면서 크는 거야.”
“어 배고파. 얼른 먹고 좀 쉬자. 나이트 빡셀 것 같던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함께 배우들이 걸음을 옮겼다. 고된 연습을 함께 해 온 덕인지 서로 건너 건너 아는 사이여서였는지 촬영장의 분위기는 다른 곳들보다 좀 더 끈끈한 느낌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것 좀 드세요!”
“와, 얼른 이리로 오세요. 완전 추워 보이시네!!”
밥차가 있는 곳으로 다 함께 걸음을 옮기던 배우들은 눈에 익은 낡은 트럭 대신 세련된 연보라색으로 반짝반짝 코팅된 케이터링 트럭에서 자신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는 인물들을 발견하고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저거.”
“누구야?”
“누군 누구야, 재이네 그룹 분들이네.”
밥차 대신 화려한 푸드트럭과 함께 사람들을 맞은 것은 재이의 얼굴이 박힌 캔 배지를 단 앞치마까지 세트로 장착한 엠케이와 남궁찬이었다. 이미 모여들기 시작한 스태프들에게 따뜻한 국과 반찬을 퍼 주느라 분주한 두 사람을 본 중견 배우 하나가 반갑다는 듯 외쳤다.
“와, 우리 애가 좋아하는데. 사인 받아야겠다.”
“저기 선생님, 얘도 그 그룹 소속인데.”
“에이, 쟨 태평관 앞에 움막 치고 노래 파는 오동이고.”
엠케이 씨, 찬이 씨, 나 사인 좀.
뒤도 안 돌아보고 엠케이와 남궁찬을 향해 뛰어가는 선배 배우를 바라보던 이진홍이 옆에 선 재이를 딱하다는 듯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와, 진짜 그냥 가 버리셨어.”
“아니 굳이 직접 올 필요 없다니까 꼭 저래, 꼭.”
며칠 전 이번에도 밥차 출동해 주겠다며 신나하던 녀석들을 떠올린 재이가 중얼거렸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다가가 보니 들려오는 대화가 가관이었다.
“재이, 아니 오동이가 그랬어요? 어휴, 제가 걔 그럴 줄 알았어요. 요새 숙소 안에서도 역할에 몰입한다고 두루마기? 창옷? 그거 입고 돌아다닌다고요. 밤에 자다 깨서 나왔다가 귀신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랐게요.”
“쟤가 야무져 보여도 제 것도 못 챙기고 그래요. 선배님이 옆에서 잘 좀 챙겨 주세요.”
“가끔 애가 못난 말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해 주세요. 애가 재능은 있는데 성격이 모나서.”
“오죽 걱정되면 저희가 이렇게 직접 왔겠어요.”
“쟤한테 쌓인 거 있으면 오늘 여기서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다 푸세요. 곱빼기로 드릴게요!”
아니 너희들 여긴 대체 뭐 하러 온 거냐고.
재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