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장악원 비록 (4)
“아이고, 삭신이야.”
“에고 힘들다.”
엠케이와 남궁찬이 재이와 이진홍이 앉아 있던 테이블로 다가와 걸터앉으며 보란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밥차는 마침 저녁 촬영 전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싶어 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 덕에 성황리에 영업을 종료했다.
배식하는 내내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며 영업용 미소와 함께 접대성 멘트를 던져 대던 녀석들의 얼굴에 살짝 피로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기척을 민감하게 읽은 재이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남궁찬과 엠케이는 최근 둘이 함께 유닛 형태로 출연한 댄스배틀예능에서 쟁쟁한 프로 비보이들을 제치고 종합 2위를 따냈다. 아이돌의 참가 소식에 비판적이던 비보잉 마니아, 속칭 고인 물 시청자들에게서 ‘좀 하네’라는 반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두 사람은 그대로 시즌2 격인 왕중왕전에 출연을 결정지었다.
요새 거기 올릴 안무 연습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더니.
남의 촬영장에서 배식 같은 데에 체력을 쏟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왕중왕전 때문에 바쁜 거 아니었어? 짬 나면 좀 쉬지 뭐 하러 직접 오냐?”
두 사람이 자신들 몫으로 가져온 식판 위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있는 것을 딱하다는 듯 바라보며 재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온 게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해.”
“둬라, 부끄러운가 보지.”
식판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대꾸하는 두 사람에게 재이가 말했다.
“앞으론 밥차만 보내.”
그 말을 들은 엠케이가 그제야 식판에 고정되어 있던 고개를 들어 재이를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떻게 차인혁이랑 똑같은 말을 하냐.”
“뭐?”
“전에 차인혁 촬영장에 다녀온 은규가 그러더라고. 기껏 갔더니 첫마디가 ‘앞으론 밥차만 보내.’였다고.”
“오지 마라도 아니고, 밥차만 보내는 건 또 뭐냐고.”
“너희는 필요 없지만, 밥은 소중하다 이거지.”
“뭐, 밥이 소중한 건 맞긴 맞지만.”
엠케이와 남궁찬이 자기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첫 주연작의 촬영을 끝낸 인혁의 촬영현장에 이환과 은규가 응원차 다녀왔다는 것을 떠올린 재이가 아, 하고 짧게 내뱉었을 때는 두 녀석의 관심은 이미 음식으로 돌아간 뒤였다.
“와 이거 진짜 맛있다.”
“그치 아까 배식하는데 이거 맛있다고 또 가져가시고들 하더라고.”
“우리 몫이 남아 있었어?”
“그럴 줄 알고 미리 따로 챙겨 뒀지.”
“와 남궁찬 센스 갑.”
“훗 이게 바로 갈빗집 알바 n년에서 나오는 바이브니라.”
어느새 할 말 끝났다는 듯 다시 식판으로 고개를 돌린 녀석들이 반찬으로 나왔던 치킨을 뜯으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보고 재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배식하러 온 건지 먹으러 온 건지.”
“둘 다지. 우리가 이거 고르는 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아냐.”
“그럼 알지. 이건 네가 좋아하는 거고 저건 남궁찬이 좋아하는 거잖아. 완전 찬케이푸드.”
식판에 담긴 반찬들을 하나씩 짚어 가며 중얼거리는 재이의 말에 엠케이가 발끈해서 외쳤다.
“아 왜 뭐. 바쁜 스케줄 쪼개서 와 줬더니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둬라, 한재이 인성질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성격 좋은 우리가 참아야지 별수 있냐.”
“밥차 핑계로 참았던 먹부림 부리기 바쁜 인간들이 말은 잘해 아주.”
멤버들과 투닥대는 재이의 모습을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진홍이 조심스럽게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나도 여기 있는데, 나 잊은 거 아니지?’라고 하는 듯 소심하게 입을 뗀 이진홍을 나머지 셋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아, 진홍 배우님 계셨지, 참. 아하하”
“이 녀석 러닝메이트 해 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미안하다는 듯 꾸벅하고는 뒤늦게 다시 영업용 스마일을 장착한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한재이 말인데요, 까칠하다 싶으면 일단 고기를 먹이세요.”
“가성비는 안 좋아도 결과물은 만족스럽게 뽑는 편이에요.”
“쟤가 까칠해 보여도 또 아무나 들이받는 망나니는 아니니까 그건 걱정 마세요.”
“그쵸 까칠하게 구는 거랑 들이받는 거랑은 좀 또 다르거든요.”
어느새 싹싹 비운 식판을 옆으로 밀쳐 둔 채 진홍을 붙잡고, 부탁인지 디스인지 모를 말들을 끝없이 늘어놓는 두 녀석을 질렸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재이가 입을 열었다.
“너희 안 가냐.”
“와 밥숟가락 놓자마자 쫓아내는 거 봐.”
“어휴 그래. 간다 가, 근데 갈 때 가더라도 인증샷은 찍어야지.”
기가 찬다는 듯 투덜대던 남궁찬이 핸드폰을 꺼내 드는 것에 엠케이가 잽싸게 제 의자를 끌어다 재이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자자, 여기 보고.”
“악, 이것들아 저리 가!”
“남궁찬! 어서 찍어, 찍어!”
미리 짜고 온 듯 재이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밀착 어깨동무를 한 엠케이와 남궁찬이 버둥대는 재이와 사진을 찍어 대는 것을 한쪽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진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이좋네.’
세 사람이 들었다면 펄쩍 뛰었을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진홍이 마지막 남아 있던 치킨을 입에 물었다.
* * *
야간 촬영은 민계황의 잔칫집에서 나온 오동이 품삯을 빼앗기 위해 자신을 뒤따라 나와 시비를 걸어온 재인 패거리들과 싸움이 붙는 장면으로 시작될 예정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팔을 휘둘러서 치면 조금 더 간격을 벌릴 수 있으니까 이쪽이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가기가 더 쉬울 거야.”
오동의 동료이자 왕세자 율의 호위무사 팽사헌 역을 맡은 이진홍이 어색하게 쥔 연습용 목검을 비스듬히 그어 보였다.
“이 이렇게?”
“그치. 근데 그걸 그냥 내리긋는 게 아니라 조금만 더 크게 후려치듯이. 이렇게.”
부-웅
이진홍이 들고 있던 목검을 크게 휘둘러 보이며 재이가 말했다. 분명 같은 동작이었음에도 자신이 내리쳤을 땐 나지 않던 파공음이 귓가에 울리는 것에 이진홍이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재이를 돌아보았다.
“재이 씨 살살해라, 진홍 씨 눈 튀어나오겠다.”
오늘 합을 맞추기 위해 대기 중이던 액션 팀 사람 중 하나가 재이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 서 있던 액션 감독이 맞장구치며 물었다.
“하하 그러게. 근데 오늘은 몸싸움 아니었어?”
“아, 칼은 틈나는 대로 많이 해 둬야 손에 익는다고.”
재이가.
이진홍이 재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진홍을 따라 재이 쪽을 쳐다본 액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맞는 말이긴 하지. 아니 근데 진짜 이거 역할이 바뀐 거 아니야? 아무리 봐도 재이 씨가 칼 쓰는 역 해야 할 것 같은데.”
스케줄이 맞지 않아 이번 작품에서는 함께하지 못한 김용철 감독 대신 작품에 합류한 액션 감독은 김용철과는 막역한 선후배 관계였다. 재이의 실력은 이미 김용철을 통해 귀가 닳도록 들어서 알고 있기도 했거니와 이미 몇 번의 리허설을 통해 제 눈으로도 확인한 바였다.
자칫 잘못하면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액션 현장에서 실력이 검증된 배우와의 작업만큼 든든한 일이 없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액션 감독에게 재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어쩌겠습니까, 제가 왕이 될 상이라는데.”
아하하하.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신기하단 말이지. 까칠하게 생긴 것치고는 또 두루 잘 지낸단 말이야.’
주변의 웃음소리에도 태연하게 검을 몇 번 더 휘둘러 본 뒤 자신에게서 건네받은 검집에 능숙하게 집어넣는 재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진홍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언뜻 다가가기 힘들게 생긴 외모와 달리 재이는 촬영장에서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지냈다. 아까 만난 엠케이와 남궁찬이 말했던 것처럼 까칠하게 생겼다고 아무나 들이받는 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슛 들어가겠습니다.”
조연출의 한마디에 느슨했던 현장 분위기가 팽팽하게 달아올랐다.
스윽.
이진홍은 말없이 한 걸음 앞서 걷는 재이를 따라나서며 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
시선을 느낀 것인지 이쪽을 돌아본 재이와 눈이 마주친 이진홍이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조금 전까지 액션 팀 사람들과 허물없이 웃고 떠들고 있던 것이 거짓말처럼 재이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
.
.
“이봐, 거기. 기생오라비. 잠깐 좀 서 보지?”
조금만 더 연주하고 가라는 중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여전히 거문고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대궐 같은 기와집을 빠져나와 동료 팽사헌과 함께 거처로 돌아가던 오동은 등 뒤에서 자신을 불러 세우는 목소리에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걷고 있던 팽사헌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시끌벅적했던 잔칫집에서 벗어난 주변은 어느새 짙게 내리깔린 어둠 속에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드문드문 촛불을 밝힌 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하늘에 뜬 달만이 길가를 희미하게 밝히는 가운데 잔칫집에서 봤던 재인 중 몇몇이 이쪽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다.
“아, 피곤한데.”
오동이 나직이 중얼거린 말에 패거리 중 우두머리인 듯한 남자가 건들대며 말했다.
“오늘 그쪽 때문에 제대로 벌지도 못했으니 좀 나눠 달라고. 보아하니 두둑이 받는 것 같던데.”
“그러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건 같은 처지 아닌가.”
핑-
맑은소리와 함께 엽전 몇 개가 바닥을 굴렀다.
“……!!”
“그 정도면 되겠어?”
오만할 정도로 차갑고 느긋한 목소리.
딱 보기에도 수적 열세인 상황임에도 겁먹기는커녕 태연하다 못해 딱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며 묻는 오동의 말투에 발끈한 사내가 눈을 부라리며 버럭 소리 질렀다.
“이노옴, 쥐새끼만 한 게 건방지게! 높으신 분들한테 예쁨 좀 받는다고 너도 같이 귀한 신분인 줄 아는 거냐? 그래 봐야 저잣거리에서 떠돌며 기예나 파는 천것인 주제에.”
“그런 천것이 번 품삯을 나눠 달라 구걸하는 네놈은 나보다 더 천한 것인가 그럼?”
“이, 이 새끼가!!”
사내가 오동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서운 기세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오동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팽사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작지 않은 체구인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붙은 것처럼 큰 키의 팽사헌이 갑자기 끼어들자 당황한 사내가 멈칫했다.
“왜, 나는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얘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거참, 누가 쥐새끼인지 모르겠군.”
“너, 너, 너, 가만두지 않겠어!”
팽사헌의 등 뒤에서 느긋하게 뒷짐을 진 채 사내를 바라보며 능글맞게 내뱉는 오동의 말에 약이 바짝 오른 사내가 달려들었다.
빠-악
“아악!!!”
어림없다는 듯 안면을 강타한 팽사헌의 주먹에 사내가 코를 쥐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악기나 다루는 악공 따위 쉽게 협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패거리들이 의외의 상황에 주춤 물러서며 웅성거렸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우두머리 사내가 피가 터진 코를 움켜쥔 채 소리를 빽 질렀다.
“아 뭣들 해! 제깟 것들이 떼로 덤비는데 장사 있을 것 같아!? 얼른 돈이나 챙겨서 튀자고!”
그 말에 용기를 낸 사람들이 오동과 팽사헌을 향해 뛰어들었다. 오동이 들고 있는 돈주머니를 빼앗으려 여기저기서 달려드는 사내들을 쳐 내는 데 여념이 없는 팽사헌의 등 뒤에 서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의 움직임을 구경하고 있던 오동이 느긋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하늘에 뜬 저것이 무엇이냐
동그랗게 꽉 찬 것이 거 참 맛나 보이느니
쭉쭉 뻗는 목소리가 밤하늘을 가르고 오동에게 손을 뻗치던 사람들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귀신같이 가로막는 팽사헌에게 얻어맞고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흙먼지투성이로 바닥을 구르는 사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입술 끝을 말아 올리며 느긋하게 팽사헌의 뒤쪽을 거닐며 오동이 노래를 이어 갔다.
한 입 베어 무니 크으 야물진 찰떡이냐
한 움큼 먹어 보니 어허 다디단 배로구나
휘영청 밝은 것을 보고 있노라니
하하 세상이 다 내 것이로구나
노래를 끝맺는 순간, 팽사헌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한 명이 오동을 향해 와락 달려들었다. 당황한 팽사헌이 뒤를 돌아보며 뭐라 외치려는 순간, 풍취에 잠긴 듯 밤하늘에 뜬 달을 올려다보고 있던 오동이 훌쩍 몸을 돌려 간격을 벌리고는 한 발을 들어 올려 그대로 사내의 어깨를 찍어 내렸다.
“크억.”
호리호리한 생김새와는 달리 단호하고 날카로운 찍어차기 한 방에 집채만 한 몸집의 사내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싸움을 벌이던 사내들도 그들을 막아서던 팽사헌도 모두가 놀라 멈춘 사이 오동이 자신의 발아래 무릎 꿇은 채 신음하고 있는 사내를 향해 말했다.
“가라.”
서릿발보다 차가운 그 한마디에 완전히 의욕을 잃은 사내들이 하나둘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이내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흙투성이에 봉두난발을 한 채 서로를 부축해 가며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사내들의 뒷모습을 끝까지 경계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던 팽사헌은 뒤쪽에서 느껴져야 할 기척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형님?”
당황해 두리번거리던 팽사헌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멈춰 섰다.
“……오동 형님.”
“응? 왜?”
안도했다는 듯 어처구니없다는 듯 자신을 부르는 팽사헌의 목소리에 오동이 쭈그리고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 그를 돌아보았다.
“그건….”
“그놈들이 도망갈 때 흘렸나 봐. 나 참, 돈 뜯으러 왔다가 적선하고 가는 놈들은 살다 살다 또 처음이네.”
이야, 이거면 내일 국밥 한 그릇은 먹겠는걸?
난전을 벌이던 사내들이 흘리고 간 엽전을 하나하나 주워 담으며 행복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오동을 바라보던 팽사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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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며칠 후.
“*아니, 이게 말이 돼?”
성질 급한 붉은 머리 전직 드래곤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재이는 내심 머리를 짚었다. 한창 촬영 중인 현장에 투자자들의 방문 소식이 들려왔을 때 이런 사태가 될 거라 짐작했어야 하는 건데.
재이는 궁핍한 형편 탓에 태평관 앞 공터에 천막을 치고 살았던 악공들의 처소를 재현해 놓은 세트장을 둘러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빽 지르는 이번 작품의 메인 투자자, 클라크 컴퍼니의 아태지역 지사장이자 자신의 예비 형수, 그리고 태생적으로 잠자리에 민감한 전직 드래곤 라일라 클락의 얼굴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어, 라일라. 그러니까 이건 세트라는 거예요. 세트, 무슨 뜻인지 알죠?”
“*날 바보로 아는 거야? 알지 당연히. 그러니까 여기서 사람이 잠도 자고 생활도 하고 했단 소리잖아.”
“*그, 그렇죠….”
“*그게 가능하냐고. 저렇게 좁고 더럽고 냄새날 것 같은 곳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을 위아래로 쳐다보는 라일라의 눈빛을 마주한 재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전히 강적은 강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