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224화 (완결) (224/224)

#224

네게 어울리는 자리 (완) (삽화)

- *세기의 결혼식으로 화제를 모은 클락 컴퍼니의 라일라 클락과 한국계 천재 뇌과학자 닥터 한산의 결혼식은 이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죠.

TV 화면 속 연예 전문 프로그램에 나온 패널들이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세기의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로 한창 달아올라 있었다.

- *전 세계 셀럽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으니까요.

- *축복받아 마땅할 결혼식이 하마터면 끔찍한 비극의 장이 될 수도 있었던 거죠.

- *그래도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 정말 기적이지 않나요.

- *신의 가호가 있었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죠.

- *시청자 여러분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렇게 여기 이랬던 예배당이 이렇게, 이렇게 완전히 반파되어 버렸으니까요.

사회자가 준비해 온 자료 화면을 화면에 비추며 말했다. 붕괴 사고가 일어나기 전 아름다운 모습의 예배당의 사진과 함께 사고 후 처참하게 무너져 군데군데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사진이 화면을 채웠다.

-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조사 중이라죠?

- *네. 그렇습니다. 워낙 아직 규명되지 않은 것이 많은 신비의 섬이니까요. 그런 곳에 민간 리조트 건설을 허가한 것부터가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죠.

사회자가 다른 패널을 돌아보며 물었다.

- *클락 가의 후계 구도에도 변동이 있었다면서요?

-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죠. 차기 후계자로 거론되던 로이스 클락이 심신의 충격을 호소하며 무기한 휴양에 들어가 버렸으니까요.

- *그 자리를 라일라 클락이 차지하게 되는 건가요?

- *같은 날 같은 사건을 겪고도 더 단단해져 돌아왔으니까요. 결혼 서약을 맹세하고 있는데 무너져 내린 예배당이 사랑하는 사람을 덮치는 경험을 한 신부라니. 그 심정이 어땠을지 전 상상도 할 수 없는걸요.

짧은 침묵이 지나간 후 패널 하나가 말했다.

- *그래도 살았잖아요.

- *그리고 사랑하고 있죠.

다른 패널이 그 말을 받아치듯 이어 말하자 사회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와우. 세기의 커플의 세기의 명언이네요. 지금 두 분이 말씀하신 것이 바로 라일라-한산 커플이 구조되고 나서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한 말이었다죠.

-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커플이예요.

- *둘이 너무 잘 어울리죠.

- *천년만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 *이렇게 응원하게 되는 셀럽커플도 드문데 말이죠.

- *하하하 그건 그래요.

동감이라는 듯 패널들과 함께 웃은 사회자가 이어 말했다.

- *그리고 이 세기의 결혼식에서 일어난 이 사건으로 온 세계에 이름을 알린 스타가 있죠.

사회자의 말에 패널들이 기다렸다는듯 눈을 빛내며 앞다투어 입을 열었다.

- *그 사고 현장에서 라일라와 닥터 한을 구해서 나온 걸로도 유명해졌잖아요.

- *붕괴 현장에서 고립되었을 때 이 파티의 여섯 명이 힘을 합쳐 두 사람을 구해 냈다고 하죠.

패널의 말이 끝나자 화면이 바뀌며 사고 현장에서 구조되는 여섯 명의 모습이 찍힌 자료 사진이 화면에 비췄다. 먼지와 흙으로 엉망인 얼굴에 모포로 몸을 감싼 여섯이 서로를 부축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 *당장이라도 예배당의 남은 부분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안전한 곳에 숨어 있는 대신 라일라와 닥터 한을 찾아내 구조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 *재이가 닥터 한의 동생이니까요.

사회자가 감탄스럽다는듯한 제스쳐와 함께 말했다.

- *아무리 동생이어도 자신의 목숨도 위험한 상황에서 가족을 구하겠다고 뛰어드는 데엔 용기가 필요한 법인데 말이죠.

- *그렇죠. 재이뿐 아니라 그런 재이를 외면하지 않고 그를 도와 두 사람을 구조한 멤버들도 훌륭하죠.

- *여섯 명이 한마음 한뜻이라는 게 정말 감탄스럽네요.

사회자의 말에 패널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이듯 말했다.

- *그때 입은 부상 덕에 한동안 쉬었잖아요.

- *그리고 그 쉬는 와중에 점점 더 인기가 치솟아 오른 케이스죠.

- *잘생긴 데다 능력도 좋고 용감하기까지 한 스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나요.

양손 을 벌려 어깨를 으쓱하고 웃어 보이며 말하는 사회자의 멘트에 잠시 눈치를 보던 패널 하나가 불쑥 입을 열었다.

- *여기서 고백하지만 저 사실 포션입니다.

- *어머 저돈데. 저 이번에 LA 콘서트도 갈 거라고요.

- *하하, 이게 그 말로만 듣던 포밍아웃의 현장인가요.

사회자의 말에 두 패널이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 *취재차? 아니면 프라이베이트로?

- *둘 다요. 취재로도 가고 사적으로도 갈 겁니다.

- *티켓을 구했다고요? 믿을 수가 없군요. 전 다 떨어졌다고요!

- *사적으로 가는 티켓은 제가 직접 구한 겁니다 여러분. 신께 맹세할 수 있어요.

티켓을 구했다는 패널이 필사적인 얼굴이 되어 카메라를 바라보며 성호를 그어 보였다. 사회자와 나머지 패널이 못참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 * *

“야, 나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누가 나 좀 어떻게 해 봐.”

PART.Y의 첫 월드 투어 콘서트 현장.

이미 바깥은 자신들의 등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함성 소리로 떠나갈 듯 했다. 슬쩍 무대 위의 상황을 비춘 모니터를 확인한 은규가 진정이 안 된다는 듯 대기실 안을 잰걸음으로 왕복하며 다른 멤버들을 향해 외쳤다.

그런 그를 힐끔 쳐다본 엠케이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심은규 아까 청심환 먹지 않았어?”

“먹었지. 두 개나.”

“헉, 그걸 두 개나 먹으면 어떡해!”

“혹시 과다 복용 해서 부작용 온 거 아니야? 남궁찬 너는 안 말리고 뭐 했냐?”

엠케이의 말에 태연하게 대답한 남궁찬을 돌아보며 이환과 엠케이가 동시에 그를 나무랐다.

“약은 원래 사람마다 복용법이 다른 법이라고. 지금 보니까 심은규한텐 세 개도 안 들을 것 같은데?”

“심은규가 무슨 실험용 모르모트냐고. 야, 심은규 괜찮아?”

여전히 별일 아니라는 듯 거울을 들여다보며 완벽하게 세팅된 헤어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남궁찬의 등 뒤로 빽 소리친 이환이 은규를 살피며 물었다.

“어? 어어. 아니. 두 개 먹은 건 상관없는데, 긴장해서 손에 땀 찬다고. 이러다가 마이크 놓치겠어.”

그런 이환에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듯 중얼거리며 땀이 흥건한 두 손을 들어 올려 보인 은규가 팔자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한쪽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재이가 은규를 돌아보고는 짧게 한마디 했다.

“묵찌빠라도 좀 해 보던가.”

그 말에 상황을 보고 있던 인혁이 은규에게 다가가 주먹을 내밀었다.

“아 차인혁, 너 갖고는 안 될 것 같은데. 야, 한재이 한판 하자.”

“응? 나?”

은규가 자신에게 다가온 인혁 너머 재이를 바라보며 외치는 소리에 재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엠케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심은규 정신 차려. 너무 긴장해서 주제 파악이 안 되나 봐, 다짜고짜 한재이라니.”

“역시 약의 부작용인 듯.”

그 말에 이환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데 바깥쪽에서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파티 스탠바이 해 주세요.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스탠바이 지점으로 걸음을 옮기며 멤버들이 한마디씩 했다.

“아, 대박. 미친. 나 심장 떨려 죽어.”

“호들갑은 그만 떨고. 이제 진짜 정신 차리고 가자고.”

“아직 시간 조금 있으니까 묵찌빠 한판 더 할래?”

“이번엔 오기부리지 말고 순한맛 차인혁으로 가자.”

“그래, 자신감 충전엔 차리더의 순한맛이 제일이지.”

스탠바이 지점에 도착한 재이가 잠깐 스탑 사인을 내며 허리를 숙였다.

“아 잠깐 나 신발 좀.”

“아 나도.”

“나도?”

기껏 신었던 운동화를 벗어 탈탈 털어 내고는 다시 신는 재이와 그를 따라하는 멤버들을 바라보고 있던 스태프들이 수군거렸다.

- *스탠바이 하랬더니 신발들은 왜 벗는대?

- *재이 징크스 몰라? 무대 올라가기 전에 신발 속 다시 한번 확인하는 거.

- *아, 나 들은 적 있어, 그거.

- *그걸 다 따라 하고. 다들 서로 사이좋아 보이네?

- *그치 보기 좋은 듯.

- *저 연차에 저러기도 힘들지 않나?

- *그러니 잘나가는 거겠지.

스태프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돌아가며 묵찌빠를 하던 멤버들이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서로의 손을 포개어 얹고는 파이팅을 외쳤다. 한 박자 늦은 은규에게 타박을 하며 무대 위로 올라가는 여섯 명의 머리 위로 관객들의 함성과 함께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져 내렸다.

- PART of You, 여러분의 일부가 되고 싶은 PART.Y입니다!

여섯 명의 하나된 목소리가 콘서트장에 울려 퍼졌다.

.

.

.

“*완전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네.”

패밀리 구역에서 나란히 앉아 무대 위를 종횡무진 하고 있는 재이를 눈으로 쫓던 라일라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투덜거렸다.

“*아이돌이 자기 천직이라잖아.”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라일라가 그쪽을 돌아보았다. 한산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있었다.

“*누가 들으면 진심인 줄 알겠어.”

“*적어도 본인은 매우 진심일걸.”

“*망할 녀석.”

라일라가 투덜거린 말에 한산이 곤란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며 짐짓 나무라듯 말했다.

“*망하면 안 되지. 가족인데.”

“*자기는 호적 파였다며.”

눈썹을 콱 찌푸리며 툭 내뱉는 라일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한산이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가출동맹?”

“*이상한 물만 들어서는.”

“*형제라 닮았다니까.”

“*이…….”

와아아아--!!!!!

한산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를 돌아보며 뭐라고 한마디 더 쏘아붙이려던 라일라가 갑자기 커진 함성에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출무대를 뛰어가다 이쪽을 힐끔 살핀 재이와 눈이 맞자 저도 모르게 손을 흔들려 움찔하며 반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라일라가 자신을 보고도 아는 척은커녕 그대로 지나쳐 저 멀리 무대 끝까지 달려 나가는 재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작게 욕을 퍼부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산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저런 녀석과 닮은 게 자랑이라니. 자기야, 제발.”

“*하하, 알았어. 알았어.”

저 자식 내가 콘서트 끝나고 내려오면 진짜 가만 안 둬.

다음 작품에 제작비 신청 들어온 거 반려해 버릴 거야.

두고 보라지 .

투덜거리며 애꿎은 응원봉만 쥐어뜯고 있는 라일라를 바라보던 한산이 말했다.

“*공과 사는 구분한다며.”

“*공적으로 할 거야 공적으로. 권력의 쓴맛을 보여 주지.”

무대 끝까지 뛰어갔던 녀석이 어느 틈엔가 중앙 무대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활짝 웃고 있는 재이가 얄밉다는 듯 중얼거리는 라일라를 다독이듯 한산이 말했다.

“*그래도 재이 녀석 덕분에 [붉은 용 이야기]도 성공했잖아.”

그러나 그 말에 좀 진정하는 듯하던 라일라가 펄쩍 뛸 듯 한산을 홱 돌아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게 어떻게 저 자식 덕이야. 내 덕이지, 내 덕. 내가 그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면서 그렇게 얘기하냐? 자기 제정신이니?”

“*아 미안. 미안. 말이 헛 나왔네. 그럼, 그럼. 우리 라일라가 잘해서 그런 거지.”

라일라가 공을 들인 [붉은 머리 용사 이야기]의 스핀오프 [붉은 용 이야기]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성공적으로 개봉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회사로 찾아온 재이가 홍보 대사를 자청하고, 그 제안을 걷어찰 꿈에 부풀어 있던 라일라를 주변인들 모두가 총력으로 그녀를 뜯어말린 덕에 [붉은 머리 용사 이야기]는 재이의 홍보를 등에 업고 순조로운 흥행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원작자의 전폭적인 지지가 흥행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평이 대부분이었지만 단 한 사람, 라일라만은 터무니없는 폄하라며 펄쩍 뛰었다.

“*남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지 말라더니. 지금 자기가 딱 그 짝이잖아.”

“*미안 미안. 내가 실수했으니 오늘 집에 가면 김치찌개 해 줄게.”

자신의 화를 잠재우기 위한 유일하고도 가장 효과적인 카드를 꺼내 든 한산이 얄밉다는 듯 그를 향해 눈을 흘겨 보인 라일라가 투덜거렸다.

“*흥. 그깟 김치찌개, 나도 할 줄 안다고.”

“그럼, 그럼. 라일라 김치찌개 맛있지. 나 놀랐잖아. 라일라, 요리에 소질 있다니까.”

자신의 말에 라일라의 기세가 눈에 띄게 누그러진 것을 눈치챈 한산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아직 내가 더 잘하잖아.”

“*…그건 음. 그렇지.”

“*그래, 그래. 아무튼 내가 맛있게 해 줄 테니까 자, 이제 저거 보자.”

“*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코웃음을 치긴 했지만 라일라의 시선은 중앙 무대에 모인 재이와 나머지 다섯 명의 멤버들을 향했다. 여섯 명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하나의 화음이 관객들의 환호와 섞여 들어 콘서트 안을 꽉 채우며 울려 퍼졌다.

사람들로 가득 들어찬 콘서트장 한가운데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으며 자신에게 장난을 걸어오는 멤버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노래를 이어 가는 재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일라는 문득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혼자 하는 용사 놀이는 이제 지겨워.

춤추고 노래하고 떼 지어 돌아다니는 음유가 적성에 맞는다니까.

황폐한 벌판 위에 단 한 사람.

찢기고 해진 망토를 거친 바람에 휘날리며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대지 위에 홀로 서서 자신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공허한 눈빛을 떠올린 라일라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네겐 그 자리가 더 잘 어울리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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