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작열의 대지 -4 >
‘뭐, 뭐야?! 이걸 뭐라고 불러야 돼? 용암폭포?’
이안의 눈 앞에는 말 그대로 거대한 용암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마치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 사이에 있는 거대한 폭포인 ‘나이아가라 폭포’를 연상시킬 법 한 웅장한 광경이었다.
‘으, 그런데 진짜 열기가 엄청나네. 숨 쉬기도 힘들 정도잖아?’
그렇지 않아도 더운 던전인데 용암의 폭포까지 코 앞에 두었으니 숨이 막히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이안이 폭포를 앞에 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의 눈 앞에 느닷없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용암의 근원, 열염폭(烈炎瀑)을 최초로 발견했습니다.]
[화염 속성에 대한 친화력이 5%만큼 증가합니다.]
[화염 속성에 대한 저항력이 +10만큼 증가합니다.]
[이제부터 화염 속성 몬스터와의 친밀도가 30 이하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연달아 울려 퍼지는 메시지.
‘뭐야, 이런 경우가 있다는 얘긴 한 번도 못 들어 봤는데…?’
이안은 얼떨떨했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처음이라니. 업데이트 이후에 생긴 맵이라고 해도 그동안 여기 방문한 유저가 제법 있을 것 같은데… 흠….’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촤아아-!
갑자기 이안이 바라보고 있던 거대한 폭포의 한 쪽 면이 꿈틀대면서 어떤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 것!
“어…?”
이안은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고, 용암은 점점 거대한 어떤 형태로 변해가며 이안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건… 뭐, 뭐지? 지금 도망이라도 쳐야하나?’
일단 그 크기부터가 압도적인데다, 엄청난 위압감을 뿌리는 용암 괴물의 모습!
이안은 순간 갈등했지만 발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한 것 보다, 어차피 도망가봐야 잡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이안의 앞까지 다가온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오! 드디어 이 용암의 근원지에 들어올 자격을 갖춘 소환술사가 나타났군…!]
다짜고짜 공격할까봐 잠시 겁먹었던 이안은 그의 첫 마디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퀘스트인가?’
그리고 그의 말을 듣자 궁금증 하나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아, 여긴 소환술사 직업을 가져야만 들어올 수 있는 히든 맵 이었던 거구나!’
그렇다면 이안이 처음 용암의 근원지를 발견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지금 이안보다 레벨이 높은 소환술사는 아마 없을 것이었으니까!
용암괴물(?)은 어느새 형태를 다 갖춰졌는데, 허공에 둥둥 떠 있는데다, 거대한 낫 같은 무기를 들고 있어 그 외모가 흡사 저승사자 같은 느낌이었다.
‘유령 같기도 하고… 악마 같기도 하고….’
이안은 설레는 표정으로 등장한 NPC에게 말을 건네었다.
이제는 하도 NPC를 많이 상대하다보니, 말을 붙이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저… 이 곳이 용암의 근원지인가요?”
그리고 거대한 용암 덩어리 NPC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용암의 수호자 헬리얀. 그리고 이곳은 용암의 근원지가 맞다.]
자신을 헬리얀이라 소개한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네 이름은 무엇인가?]
“전 이안이라고 합니다.”
[그렇군….]
잠시 뜸을 들인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안, 자네는 이 용암의 근원지에 생긴 문제를 해결해 줄 의사가 있는가?]
알려지지 않은 히든퀘스트가 분명한 상황.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떤 퀘스트가 등장할 줄 알고?’
이안은 곧바로 대답했다.
“예, 헬리얀님. 제 능력으로 가능하다면 기꺼이 돕고 싶군요.”
공손한 이안의 말에 헬리얀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겠다니 정말 고맙군. 그럼 내 이야기를 먼저 좀 들어 보시게.]
그리고 헬리얀의 입에서 진행될 퀘스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5분 정도에 걸친 제법 긴 내용이었지만 한 줄로 요약하자면, 오염되고 있는 용암의 근원지를 정화하는 데 도움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이안이 물었다.
“그러면 헬리얀님, 용암의 근원지를 정화하기 위해서 제가 해야 할 일은 뭔가요?”
이안이 묻자 헬리얀은 대답 대신 입김을 살짝 내뿜었다.
후욱-!
이안은 그 엄청난 열기에 깜짝 놀라야 했다.
‘어우 화염 방사기라도 쏘는 줄 알았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는 이안을 향해 헬리얀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그 전에 자네의 능력을 시험해야겠어.]
“말씀하세요.”
[이 봉인석을 가지고 가 20마리 이상의 오염된 라바 몬스터들을 포획해 오게.]
헬리얀의 입김이 뿜어진 자리에는 붉게 빛나는 주먹만한 돌이 새빨간 빛을 내뿜으며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손을 슬쩍 들어 올리자, 새빨간 물체가 이안을 향해 움직여왔다.
[시간 내에 많이 포획해 올수록 좋아. 할 수 있겠나?]
헬리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안의 눈 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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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용암의 근원지 정화-
용암의 수호자 헬리얀은 용암의 근원지를 정화하기 위해 오염된 라바 몬스터를 스무 마리 이상 포획해 와 달라 부탁했다.
그에게 용암의 봉인석을 받아 라바 몬스터들을 최대한 많이 포획한 뒤 돌아오자.
(용암의 봉인석은 몬스터 봉인 주문서와 같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하나의 봉인석에 여러 마리의 오염된 몬스터를 봉인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 난이도 : B
퀘스트 조건 : 레벨 50 이상의 소환술사.
제한 시간 : 3시간
보상 - 포획한 오염된 몬스터 한 마리당 42500의 경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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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두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한 마리당 42500 경험치를 준다고?’
퀘스트로 획득하는 경험치는 사냥해서 얻는 경험치와 달리 나눠지지 않는다.
이안을 비롯한 모든 소환수에게 42500의 경험치가 고스란히 부여되는 것.
42500이면 던전 안의 몬스터를 12마리 정도 사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정도의 경험치였다.
이안은 비슷한 레벨의 희귀 등급 몬스터였던 클로피아를 포획할 때를 생각했다.
‘클로피아 한 마리 잡는데 15분 정도가 걸렸었지…? 클로피아는 희귀등급 몬스터였으니까, 일반등급인 라바스폰을 잡는다고 가정하면 시간이 더 조금 걸릴 거고….’
잠재능력 폭발 스킬이 재사용 대기 시간이라면, 이안이 12마리 정도의 라바스폰을 사냥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정말 최소로 잡아도 20분 정도가 소요될 것이었다.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20분이면 라바스폰 세 마리는 잡을 수 있을 거야.’
세 마리만 포획해도 거의 40마리 가까이 잡아야 획득할 수 있는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히든 퀘스트인 것 치고 평범한 보상이었지만, 막대한 경험치는 지금의 이안에게 그 어떤 보상보다도 달콤했다.
“최대한 많이 포획해 오겠습니다!”
이안의 씩씩한 대답에 헬리얀은 슬쩍 못 미더운 표정이 되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세 시간 안에 총 스무 마리를 포획해야 한다네. 결코 쉽지 않을 텐데….]
자신보다 3~5레벨 정도 높은 레벨의 소환수를 일반적인 소환술사가 포획하려면 10분이 넘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게 계산해 본다면 세 시간 만에 스무 마리를 포획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일반적인 소환술사들보다 친화력 능력치가 최소 1.5배는 높았다.
기본적으로 ‘테이밍 마스터’ 히든클래스가 일반 소환술사보다 친화력 능력치를 더 많이 부여받았고, 이안이 최초 달성 보상으로 친화력 능력치를 야금야금 획득해 왔기 때문이었다.
계산이 끝난 이안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좋아, 그렇다면 한 번 믿어 보도록 하지.]
헬리얀이 대답하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띠링-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남은 시간 02:59:59]
남은 시간이 뜨자마자 이안은 허겁지겁 헬리얀이 허공에 띄워 놓은 봉인석을 챙겼다.
한 마리의 몬스터라도 더 포획해야 하는 지금, 1분 1초가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대답도 듣지 않고 후다닥 돌아 나가는 이안을 보며 헬리얀은 작게 중얼거렸다.
[왠지 믿음이 안 가는데….]
헬리얀의 시선이 이안이 사라진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 * *
이안은 정확히 제한 시간 2분 정도를 남기고 헬리얀에게 돌아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뛰어오는 이안이 보이자 헬리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스무 마리 이상 포획해 왔나?]
“헉… 헉….”
헬리얀의 앞에 도착한 이안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
“네, 헬리얀님. 총 31마리 잡아왔어요.”
그리고 이안은 인벤토리에서 오염된 몬스터들이 봉인된 봉인석을 꺼내어 헬리얀에게 건네었다.
그러자 헬리얀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오… 오오! 정말 서른 한 마리가 봉인되어 있군!]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한 표정이 되었다.
세 시간은 스무 마리를 포획하는데도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하, 제가 자신 있다고 했죠?”
이안은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었고, 헬리얀은 순순히 인정했다.
[정말 놀랍군. 내가 자내를 얕봤어. 그 점, 사과하도록 하지.]
그리고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띠링-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총 31마리의 오염된 라바 몬스터를 잡으셨습니다.]
[131750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130만의 경험치를 본 이안은 헤벌쭉한 표정이 되었다.
반나절 동안 죽어라 사냥만 해야 획득할 수 있는 경험치였기 때문이었다.
경험치 바를 보자 어느새 71레벨 까지도 10% 정도의 경험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좋아, 좋아.’
뿌듯해 하는 이안에게로 헬리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수고했네 이안.]
“감사합니다, 헬리얀님. 이제 더 해야 할 건 없는 건가요?”
이안은 신이 나서 헬리얀에게 물었다.
이런 꿀 같은 퀘스트라면 열 번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헬리얀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더 있다네.]
곧바로 이어진 헬리얀의 대답과 함께 연계 퀘스트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말 그대로 불지옥의 시작인 것을, 이안은 이 땐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 *
루스펠 제국의 황성.
그리고 제국의 주인, 황제인 셀리아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내의 이름은 헬라임.
루스펠 황실의 근위 기사단장 이었다.
“헬라임. 그 소환술의 선지자에게선 아직 아무런 보고가 없는가.”
헬라임은 부복하며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폐하. 제가 수소문하여 그자를 찾아 대령하오리까.”
셀리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황실의 대학자들도 반년이 넘게 방법을 찾지 못했던 일이야. 고작 한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네.”
너그러운 황제 셀리아스.
하지만 만약 이안이 제국 퀘스트는 안중에도 없고 레벨업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는 분노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폐하. 그 자를 너무 믿으시는 것이 아니온지….”
헬라임의 말에 빙긋 웃어 보인 셀리아스는 잠시 찻잔을 홀짝인 뒤 입을 떼었다.
“개국기념일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헬라임?”
“넉 달 정도가 남았습니다, 폐하.”
“그렇군, 넉 달이라….”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셀리아스의 입이 다시 떨어졌다.
“개국 기념일 전에는 그리핀의 알이 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군. 제국의 상징인 그리핀이 개국 기념일 행사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면 황실의 위엄이 드높아 질 테지.”
황실의 창공을 수호하는 그리핀의 모습을 상상한 셀리아스는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어떤가, 헬라임. 그리 될 수 있겠는가?”
헬라임은 고개를 숙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셀리아스는 헬라임을 응시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앞으로 두 달 뒤에도 그로부터 보고가 없다면 그를 찾아오도록 하라.”
< (3). 작열의 대지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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