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내기의 결과 -3 >
한 눈에 봐도 괜찮은 스킬.
‘그러고 보니 이런 비슷한 스킬을 흑마법사 직업 게시판에서 본 적이 있네.’
흑마법사도 수많은 소환물을 거느리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종종 소환술사와 비슷한 직업 스킬을 가진 유저들도 있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다 안정적인 사냥에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이었다.
다만 한 군데 정확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보였다.
‘그런데 스킬 최초 시전 시 1회에 한해 링크된 두 개체의 체력이 같은 비율로 맞춰진다는 건 정확히 무슨 말이지?’
이안은 정확한 스킬의 이해를 위해 곧바로 스킬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마침, 전투가 끝나 소환수들 생명력이 들쭉날쭉하니까….’
이안은 라이와 떡대의 남은 생명력을 체크한 후 스킬을 발동시켰다.
“라이, 떡대. 링크!”
그러자 라이와 떡대의 주변으로 붉은 빛이 맴돌더니 두 소환수 사이에 희미하고 반투명한 사슬 같은 것이 생겼다.
그리고 30%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던 떡대의 생명력이 쭈욱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어?”
반면에 흡혈로 인해 거의 최대 체력을 유지하고 있던 라이의 생명력이 60% 정도까지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이안은 스킬 설명이 곧바로 이해되었다.
‘아하, 비율을 맞춰준다는 게 이런 소리였구나. 최대 생명력이 몇 이든 관계없이 퍼센트 수치로 맞춰서 평균을 내 버리네.’
쉽게 말해 링크된 두 소환수의 남아있던 생명력 비율의 평균치가 각 소환수에게 부여된 것이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무려 3시간이나 되고 최초 시전 시 1회 밖에 적용시킬 수 없는 효과였지만, 활용하기에 따라서 충분히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양날의 검이야. 지금이야 생명력 최대치가 높은 떡대의 생명력이 라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을 때 사용했으니 이득을 봤지만, 반대로 라이 생명력이 바닥이고 떡대 생명력이 최대일 때 링크를 걸면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겠어.’
이안은 스킬을 사용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잘 체크하며 다음 스킬로 눈을 돌렸다.
‘동화 스킬은 뭘까?’
그리고 스킬 정보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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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 -
분류 - 엑티브 스킬
스킬레벨 - lv 0
숙련도 - 0%
재사용 대기 시간 - 60분
지속 시간 - 30분
사용조건 - 소환중인 소환수에게만 사용 가능. 소환수가 역 소환 되거나, 소환해제 되면 동화 스킬도 해제됩니다.
소환술사가 자신의 소환수에게 동화됩니다.
‘동화’ 가 적용되면 소환술사의 전투능력치 비율이 해당 소환수의 전투능력치 비율과 동일하게 맞춰지며, 추가로 소환수 능력치 중 가장 높은 능력치의 20%를 획득합니다.
*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재사용 대기시간이 줄고 획득하는 능력치의 비율이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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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설명을 전부 다 읽은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내 능력치 비율이 소환수와 동일하게 맞춰진다고?’
역시 써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안은 잠시 생각한 뒤 동화 스킬을 사용할 대상을 뿍뿍이로 정했다.
‘뿍뿍이가 능력치 비율이 가장 비정상적으로 한 쪽에 쏠려 있으니까.’
이안은 등에 메달려 있던 뿍뿍이를 내려 놓았다.
“뿍뿍아.”
그리고 이안의 부름에 등껍질에서 쏙 빠져나와 얼굴을 내미는 뿍뿍이.
뿍뿍-?
매번 봐도 귀여운 모습에, 이안은 실소를 지었다.
“잠시 있어봐. 스킬 한번 써 보게.”
뿍뿍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뿍-
뿍뿍이에게 동의(?)를 얻은 이안은 뿍뿍이의 등껍질 위에 손을 올리고 동화 스킬을 시전했다.
“동화!”
그러자 뿍뿍이에게서 파란 빛이 빨려 나와 이안에게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스킬 발동이 끝나자 이안은 상태창을 열어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헛웃음을 지었다.
“컥…. 정말 능력치가 뿍뿍이처럼 되 버렸잖아?”
장비로 인해 추가되는 방어력까지 합하면 1500에 육박하는 방어력을 갖게 된 이안.
‘이 정도면 거의 떡대 수준이네.’
하지만 반대로 공격력과 순발력은 바닥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그때.
뿍-뿌뿍-!
뿍뿍이가 신이 나서 웃으며 이안의 주변을 쪼르르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뭐야, 뿍뿍아. 왜 그래?”
뿍-!!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는 뿍뿍이.
이안은 불현듯 불안해졌다.
‘뭐지? 미트볼 먹을 때 보다 더 좋아하잖아?’
그리고 불가사의한 뿍뿍이의 반응을 보며 불안해하던 그의 눈에, 상태창 옆에 떠있는 자신의 홀로그램이 들어왔다.
“이게 뭐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이안!
홀로그램에 떠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등에 생긴 등딱지 같은 것은 그렇다 쳐도, 머리는 왜 이렇게 커진 거야? 게다가 키도 조금 작아졌잖아…!’
뿍뿍이에게 동화된 것은 능력치 뿐 만이 아니었다.
비주얼도 동화되어버린 것!
이안의 신체 비율이 대두 거북 뿍뿍이처럼 변해버린 것이었다.
‘내 훌륭한 비주얼이…!’
이안은 황급히 동화 스킬을 해제하였다.
“해제!”
후우웅-
그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뿍뿍이에게 이 스킬을 쓰는 것은 최대한 자제 해야겠어….”
아마 일반적인 전투를 할 때에는 라이나 레이크에게 동화 스킬을 쓸 것 같았기 때문에 상관이 없었다.
어떤 외형의 변화가 있을지 감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방금 전의 충격적인 비주얼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뿍뿍이에게 동화 스킬을 써야만 할 상황이 올 것만 같았다.
‘아무리 죽기 싫어도 떡대에게 동화를 썼으면 썼지, 뿍뿍이에게만은 쓰지 않겠어.’
한편 주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신이 났던 뿍뿍이는 그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흥미를 잃었는지 시무룩해 져 있었다.
이안은 뿍뿍이를 째려보았다.
“뭘 웃어 인마.”
뿍-!
주인이 다시 변신(?) 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뿍뿍이의 시선에 이안은 인상을 썼다.
“재밌냐.”
뿍뿍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뿍뿍!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 방금 형이 왜 그렇게 변한 줄 알아?”
궁금하다는 듯 이안을 응시하는 뿍뿍이를 향해 이안이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었다.
“너 닮아진 거였어, 이 바보야.”
뿍뿍이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생긴 거북인 자신 외모가 절대로 그렇게 우스꽝스러울 리 없었다.
뿍-!!
현실을 부정하는 뿍뿍이.
잠시 뿍뿍이를 데리고 놀던 이안은 곧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후, 이제 몇 시간만 눈 좀 붙여볼까…?”
접속시간을 보니 어느덧 60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이안의 정신력에도 한계가 오고 있었다.
“그래도 90레벨은 찍었네 결국.”
90레벨대에서 3레벨을 올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는 이안이었지만, 89레벨일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래도 앞자리수를 맞추고 나자 힘이 좀 나는 것 같았다.
“한 다섯 시간만 자고 와야겠어.”
이안은 좌절하고 있는 뿍뿍이를 비롯해 모든 소환수들을 소환해제한 뒤 접속을 종료했다.
* * *
‘음, 가상현실과가 분명 이 건물에 있다고 유현이가 그랬는데….’
로터스 길드에 들어온 뒤, 하린은 길드원들과 점점 친해졌다.
특히 학교도 같은 곳에 다니는 진성과 유현은 하린과 대화도 많이 나누는 편이었다.
학년은 하린이 하나 더 높았지만, 빠른년생으로 나이는 같았기 때문에 친구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극구 거부하는 진성을 설득해서 이제는 말도 편하게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나저나 진성이 얘는 왜 메시지도 안 보는 거지? 수업중인가?’
개강 첫날.
수강변경 기간이어서 그런지, 첫 수업이 일찍 끝난 덕에 하린은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진성과 유현이 다니는 가상현실과에 놀러온 것이었다.
그리고 가상현실과 복도에서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많은 학생들이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우리 과에 저렇게 예쁜 애가 있었어?’
‘뭐야, 연극영화과 학생인가? 아니면 연예인 지망생?’
그렇게 여기저기서 관심을 받으며 복도를 두리번거리던 그녀의 눈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어, 유현아! 유현이 맞지!”
수업을 마치고 세원과 함께 과방으로 돌아오고 있던 유현은 자신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한 그는 더욱 당황했다.
“어… 어?”
분명히 자신을 아는 듯 한 상대방의 목소리.
상대는 나를 아는데, 나는 상대를 모르는 굉장히 난감한 상황에 봉착한 유현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이렇게 예쁜 여자를 내가 알 리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떼려는데, 유현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혹시, 하린이 인가…?’
그리고 그녀가 다가오자 유현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하린이…?”
자신을 알아보는 유현의 목소리에, 하린은 반색했다.
“와아, 유현이 너는 바로 알아보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해 투덜거렸다.
“씨, 내가 그렇게 많이 고치지 않았는데 역시 못 알아본 게 이상한 거였어.”
사실 유현은 하린의 얼굴을 보고 알아본 것이 아니었다.
하린이 가상현실과에 놀러오겠다고 아침에 메시지를 미리 보내놓았기에 추측했던 것 뿐.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유현과 세원은 벙찐 상태였다.
가까이서 본 하린은 멀리서 봤을 때 보다도 훨씬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른 유현은 겨우 입을 떼었다.
“수업 다 끝나고 놀러온다더니, 벌써 수업이 다 끝난 거야?”
유현의 물음에 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수업이 끝난 건 아니고. 공강 시간이 좀 길어져서 한번 와 봤어.”
대답을 한 하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말했다.
“그런데 유현아, 진성이는?”
“진성이 오늘 학교 안 왔어.”
“응?”
하린은 이유를 되물으려다 곧 스스로 해답을 깨닫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강변경 기간이라고 학교도 안 오고 게임하고 있나보네.”
진성을 제법 잘 파악하고 있는 하린의 모습에, 유현은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 * *
어둡고 칙칙한 회백색의 로브.
검정색 고깔모자에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지팡이를 든 우스꽝스러운 모습.
북부대륙의 어느 설원에서, 흑마법사 ‘간지훈이’는 열심히 레벨을 올리고 있었다.
“어둠의 심판!”
그의 주문과 함께 그의 손에서 뻗어나간 시커먼 광선이 90레벨대의 화이트 오우거의 몸통에 작렬했다.
콰앙-!
찰진 타격음과 함께 오우거의 생명력을 쭉 깎아내리는 준수한 공격력.
그리고 오우거의 주변을 둘러싼 블랙 스켈레톤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훈이의 전투는 무척 깔끔하고 체계적이었다.
외모는 조금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그 컨트롤만큼은 누가 봐도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좋아, 곧 레벨이 하나 더 오르겠군.”
전장의 화이트 오우거 세 마리를 깔끔하게 처치한 훈이는 ‘영혼흡수’ 스킬을 통해 스켈레톤 한 마리를 희생시켜 생명력을 최대치까지 회복시켰다.
그리고 한 손으로 모자를 잡고 삐딱한 각도로 움직였다.
“이안, 놈은 어디 있는 거지?”
훈이는 잊지 않았다.
루키 리그 장외패의 서러운 기억을.
뿌득-
그리고 자신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던 대두 거북이도 함께 떠올랐다.
주먹을 꾸욱 말아 쥔 훈이는 계속해서 전의를 불태웠다.
“이 훈이님이 85레벨이 되었으니, 놈도 이제 80레벨은 넘었겠지?”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놈은 야비한 소환술사. 어쩌면 비겁한 방법을 써서 벌써 85레벨을 넘었을 수도 있어.”
혼자 중얼거리던 훈이는 품 속을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한 인형(?) 이었다.
훈이는 인형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비겁한 이안놈!”
퍽-
주먹으로 인형을 한 대 때린 훈이는 성에 안 차는지 저주 스킬까지 시전했다.
“망자의 저주!”
하지만 인형에게 스킬이 발동할 리가 없었다.
잠시 씩씩거리던 훈이는 곧 인형을 다시 품에 넣고 사냥을 위해 움직였다.
‘비겁한 이안놈을 확실히 이기려면 좀 더 강해져야 해.’
훈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학이 끝난 뒤로 레벨업 속도가 많이 느려졌다.
‘분발해야겠어.’
이안을 이기지 못한다면 방학숙제도 하지 않고 사냥만 한 보람이 없었다.
못다한 방학숙제 때문에 두 손 들고 교실 뒤에 서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치욕스러웠다.
훈이의 걸음걸이가 조금 더 빨라졌다.
< (4). 내기의 결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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