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영지 경영 -2 >
* * *
로터스 길드 거점지의 외곽.
빠르게 거점지의 승급 요건을 충족시킨다고 영토를 많이 늘려놓은 덕에, 거점지 외곽의 부지들은 대체로 휑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널따란 부지에, 여러 몬스터들이 뛰노는 모습이 마치 동물원을 연상케 하는 시설물이 하나 외로이 지어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진욱교수가 만든 ‘몬스터 사육소’였다.
이진욱 교수의 몬스터 사육소는 이제 지어진 지 며칠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이안이 퀘스트 중간 중간 틈나는 대로 새로운 몬스터를 잡아 도감의 정보를 업데이트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휴우, 힘들기는 했지만 이거 제법 뿌듯하네.”
이제 제법 모양새를 갖춰가는 몬스터 사육소를 보며, 이진욱은 기분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비어있는 공간이 많았지만, 부지런히 몬스터들을 포획하고, 손님들을 받기 시작하면 곧 수많은 몬스터들로 북적이게 되리라.
진욱은 사육소 사무실의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땀을 닦았다.
“음, 이제 곧 있으면 나가봐야 하는데… 얜 왜 안 오는 거지?”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중얼거렸고, 마침 그 순간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끼이익-
“교수님, 말씀하셨던 거 가져왔어요.”
그리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하린이었다.
“오, 그래. 하린양. 고맙네.”
하린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어차피 저도 요리 숙련도 올릴 겸 겸사겸사 만드는 건데요 뭐. 진성이 말로는 교수님께서 하시는 작업이 길드에 도움도 많이 될 거라고 하구요.”
하린이 진욱에게 건넨 것은 커다란 도시락 같은 물건 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몬스터들이 좋아할 음식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하린은 다른 요리 직업을 가진 유저들과는 다르게 진성의 영향으로 몬스터들을 위한 요리도 자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와 관련된 특수 요리스킬까지 생긴 상태였다.
그렇기에 하린의 요리는 몬스터 사육소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린의 요리를 받아서 사무실 구석에 정돈한 이진욱은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냄새 한번 좋구만. 이거 내가 배고플 때 먹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하하.”
진욱의 말에 하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교수님. 이번에 가져온 요리들은 날것인 채로 들어간 재료들이 많아서 먹으면 아마 탈 날거예요.”
“허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잠시 너털웃음을 흘리던 진욱이 무언가 생각난 듯 하린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맞다. 하린양. 아까 진성군 거점지에 돌아왔던데, 그건 알고 있었는가?”
진욱의 말에 하린의 커다란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네? 정말요?”
“그렇다네. 아까 유현군이랑 같이 걸어 들어가는 것을 봤는데…. 그게 아마 15분 정도 되었을 거네.”
그의 말에 하린의 표정이 살짝 새침해졌다.
“나한테 연락도 안 하고…!”
하린은 진욱을 향해 멋쩍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교수님… 저 좀 가 봐도 될까요?”
그녀의 말에 진욱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보도록 해.”
“감사합니다!”
후다닥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 하린을 보며 진욱은 껄껄 웃었다.
“허허, 좋을 때지, 좋을 때야.”
* * *
한편 막 거점지에 도착한 이안은 헤르스와 피올란과 함께 거점지의 승급을 준비하고 있었다.
승급 가능 요건은 이미 다 맞춰 놓았고, 마지막으로 정보들을 꼼꼼히 정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냥 무턱대고 영지 승급에 들어갔다가 내정에서 우왕좌왕하며 실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안 네 말은 ‘인재양성소’를 첫 번째 내정 건물로 올리자는 거지?”
헤르스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인재양성소를 먼저 올리고 그 다음에 군사시설을 올리는 걸로 하게.”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이제 보호기간이 거의 다 끝나 가는데… 먼저 영지 방어력부터 확실하게 올려놓는 편이 낫지 않아?”
거점지를 영지로 승급시키는 순간, 최초로 지을 하나의 내정 건물은 아무런 비용이 없는 것은 물론, 건설기간조차 없이 곧바로 지어낼 수 있다.
내정건물에는 무척이나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거점지의 방어를 우선시 할 생각이었던 헤르스는 군사시설부터 먼저 지을 생각이었고, 그런 그에게 이안이 인재양성소를 우선으로 짓자는 제안을 한 것이었다.
물론 이안은 철저히 조사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아니야. 당장에 군사시설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1레벨의 군사시설에서 훈련시킬 수 있는 병사들은 끽 해야 30레벨 정도밖에 안 돼. 30레벨의 병사들 몇 백 정도 훈련시켜 놔 봐야, 고 레벨 마법사 광역스킬 한방이면 죄다 증발해 버릴 거라고.”
“그건 그렇지만….”
이안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군사시설에서 쓸모 있는 전력이 될 만한 병사들을 뽑으려면, 시설레벨을 최소 3레벨까지는 올려야 하는데, 3레벨이 되려면 어차피 100레벨 이상의 무술교관이 한 명 필요해.”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피올란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안님 말은, 일단 인재양성소부터 올려서 무술교관이 될 NPC부터 하나 육성시켜 놓고 그 다음에 빠르게 군사시설을 올리자는 건가요?”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리고 인재양성소에서는 무술교관 뿐만 아니라 다른 내정에 필요한 인재들도 계속 양성시킬 수 있으니까요. 당장에 보호기간 끝날 것에 대비한다고 군사시설부터 열심히 올려봐야 다른 내정시설 하나도 안 돌아가고 있으면 길드 자원도 바닥나 버릴 거구요.”
“그런데 책임자 NPC임명 안 해도 생산건물들이 안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능력치 좋은 NPC를 임명해 놓으면 효율이 엄청나게 차이난다고 하더라고. 거의 2~3배 이상 차이나는 것 같던데?”
“그… 그래…?”
이안의 정보력은 헤르스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었다.
‘아니, 커뮤니티 아무리 뒤져도 이런 정보들은 못 찾겠던데… 얜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알아온거야?’
다시 피올란이 이안에게 물었다.
“그럼 길드 방어는 길드원들로만 하는 건가요?”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방어타워도 지어야 하고, 성벽 증축도 어느 정도는 해야겠죠. 인재 양성소에서 등용한 NPC들도 방어에 도움이 어느 정도는 될 거구요.”
“그 정도로 될까요?”
“그리고 생각해 놓은 게 하나 더 있어요.”
생각해 놓은 게 또 있다는 이안의 말에 헤르스와 피올란의 시선이 다시 그의 입으로 모였다.
그리고 이안은 헤르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가 조사해보니까 직업길드를 지으면 거기서 제법 쓸 만한 전력을 얻을 수 있더라고.”
“뭐? 직업길드? 그걸 우리 거점지에 지을 수가 있어?”
직업길드가 생기면, 자동으로 길드에 해당하는 직업의 NPC들이 함께 딸려온다.
그리고 그들 중 최소 한명.
직업길드의 총 책임자로 생성되는 NPC는 120레벨의 고 레벨 NPC였다.
게다가 직업길드가 존재하면 군사시설에서 해당 직업의 병력을 훈련시키는 것도 가능해지고, 해당 직업의 뛰어난 인재가 인재양성소에 등장할 확률도 높아진다.
여러모로 도움 되는 건설물인 직업 길드.
하지만 이 직업 길드를 아무 거점지에서나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응, 지을 수 있어. 내가 그 건설 조건을 충족하더라고.”
“조건? 조건이 뭔데?”
잠시 생각을 떠올린 이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해당 직업이면서 100레벨 이상. 그리고 명성은 80만 이상이면서 마지막으로 준남작 이상의 작위까지 있는 유저가 영주로 있으면, 거점지에 그 직업의 직업길드를 건설할 수가 있더라.”
이안의 말을 쭉 들은 피올란과 헤르스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이런 조건을 알아낸 것도 신기했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안 네가 그 조건이 다 충족된다고?”
“이안님 레벨이 100이 넘었어요? 아니, 레벨이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명성 80만은요?”
두 사람의 격한 반응에 이안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저 레벨 지금 103이구요, 명성은 어디보자… 89만 이네요, 지금.”
“….”
이안의 말에 두 사람은 모두 벙 찐 표정이 되었다.
잠시간의 정적.
그리고 헤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야, 넌 혹시 지금 우리랑 다른 게임 하다 온 거냐?”
“이안님 무슨 치트 같은 거 쓰시는 건 아니죠? 버그라던가….”
“그럴 리가요.”
두 사람의 격한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일단 레벨이 103인 것도 기겁할 수준이었고, 89만이라는 명성치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사기에 가까웠다.
명성치 쌓아보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퀘스트에 매달려왔던 클로반의 명성이 고작 43만이었는데, 레벨만 주구장창 올린 줄 알았던 이안이 그 두배를 가지고 있었으니….
한편, 상의한 내용을 전부 메모한 이안은 그들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영지 승급 시작해 볼까? 이렇게 진행해도 되지?”
아직도 헤르스는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방향이랑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이안이 자신보다 정보력이 더 뛰어난 듯 했고, 충분히 일리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첫 번째 내정 건물로 군사시설을 안올리는 게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조사해 온 것을 보면 믿어도 될 것 같으니….’
헤르스는 인벤토리에서 거점지 상징패를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시동어를 발동시켰다.
“거점지 승급!”
그러자 헤르스의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거점지 승급 요건이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로터스’ 길드의 거점지를 ‘촌락’ 등급에서 ‘영지’ 등급으로 승급합니다.]
[승급하시겠습니까?]
“승급한다.”
[거점지 승급을 진행합니다.]
이번에는 모든 길드원의 눈앞에 한번 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로터스’ 길드의 거점지가 ‘영지’ 등급으로의 승급에 성공하였습니다.]
그 메시지와 동시에 그들이 서 있던 공간부터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통나무로 지어져 있던 거점지 길드 건물이 통 채로 사라지더니 새로운 석조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
세 사람은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와아… 이건 정말 장관이네요.”
피올란의 말에 이안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게요. 진짜 이런 걸 어떻게 구현한 거지?”
놀라고 있는 헤르스에게 다시금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길드의 유일한 ‘남작’ 등급의 유저인 ‘이안’ 유저에게 영주 자리를 계승합니다. 계승하시겠습니까? (귀족 작위를 가진 유저가 한 명 밖에 없으므로 거절 시 길드의 승급이 취소됩니다.)]
당연히 헤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승한다.”
그러자 길드의 인장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이안의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통나무 집이 있던 자리에는 웅장한 영주성이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거점지가 새롭게 탈바꿈 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이안의 눈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로터스 영지의 영주가 되셨습니다. 이제부터 내정을 시작합니다.]
조금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시지였지만, 이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럼 시작해 볼까…?”
미리 정보를 전부 수집해 놓은 이안은 막힘없이 영지의 내정을 이어갔다.
“오케이, 이건 이렇게 하면 되고… 세율은 일단 최저수준으로 유지시켜 놓고….”
물론 설정 값 하나하나가 미리 헤르스와 피올란과 상의한 그대로였다.
[로터스 영지의 기초설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영지의 내정을 시작합니다.]
기본 설정이 끝나자 내정 건물 건설 텝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안은 망설임 없이 인재양성소를 건설하였다.
[영지 서쪽 B-124 부지에 ‘인재양성소’가 건설됩니다.]
[‘인재양성소’ 에서는 하루에 한 번씩 20명의 새로운 인재들이 등장하며, ‘영주’와 ‘부영주’의 권한으로 영지 자원을 지출해 그들을 등용할 수 있습니다. (24시간이 지나면 인재목록이 갱신됩니다.)] [새로운 내정건물을 더 건설하시려면 언제든 내정 텝을 열어 건설하실 수 있습니다.]
내정건물을 더 짓고 싶었지만 자원이 부족했기에, 이안은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전문시설 건설 텝에 들어오셨습니다. 어떤 건물을 건설 하시겠습니까?]
전문시설도 첫 번째 건설시에는 자원과 시간이 하나도 소모되지 않았다.
이안은 곧바로 소환술사 길드 건물을 선택했다.
[영지 동쪽 A-89 부지에 ‘소환술사 길드’ 건물이 건설됩니다.]
[이제부터 로터스 영지에서 ‘소환술사’ 직업으로 전직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인재양성소에서 ‘소환술사’ 직업을 가진 NPC가 등장합니다.]
[이제부터 군사시설에서 ‘소환술’ 병과의 병사를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로터스 길드의 모든 소환술사들의 직업능력치가 5%만큼 추가로 상승합니다.]
그 밖에 자잘한 내정 시스템들이 많이 떠올랐지만, 대부분 아직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었고, 확인만 하고 지나가는 수준이었기에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모든 내정이 끝이 났다.
영지의 성장에 필요한 자원분배를 하는 부분에서 조금 시간을 잡아먹기는 했지만, 이안이 미리 연구해 놓았던 터라 그것마저도 쉽게 끝이 났다.
옆에서 이안이 하는 양을 구경하고 있던 헤르스와 피올란은 혀를 내둘렀다.
“헤르스님, 원래 이안님이 이런 면이 있었나요?”
“그… 글쎄요…? 저도 잘….”
그저 폐인처럼 레벨만 올리던 이안을 보아왔던 두 사람이었기에, 놀라움이 더했다.
“이 정도면 얼추 다 된 것 같고….”
일단 영지의 기본 설정을 끝낸 이안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헤르스와 피올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안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헤르스에게 말했다.
“우리 영주성이나 한번 구경하러 들어가 볼까?”
“그, 그럴까?”
그런데 그 때, 이안과 헤르스의 귓전으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성이 너 왔으면 나한테 먼저 보고를 했어야지…!”
< (4). 영지 경영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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