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포를란 영웅의 무덤 -1 >
“이안님! 저쪽이에요!”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피올란은 곧장 영웅의 성소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던전 초입의 생김새는, 양 쪽으로 높다란 절벽이 펼쳐져 있는 협곡 같은 느낌이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리고 일단 소환수들 중, ‘할리’만을 소환했다.
성소에 도착할 때 까지는 다른 소환수들을 소환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할리가 ‘바람의 수호자’ 스킬을 사용하면 다른 소환수들은 절대로 할리의 속도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안은 할리의 등에 올라 빠르게 성소에 도달한 뒤 모든 소환수를 소환할 생각이었다.
피올란도 전투를 준비하며 숙지했던 내용을 한번 더 상기시켰다.
“잠시 후에 양 쪽에서 아이스 가고일이 쏟아져 나올 거예요. 정면에서는 아이스 트롤들이 나타날 거구요.”
그녀의 경고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할리를 불렀다.
“할리, 이리와!”
크르릉-!
그리고 이안은 할리의 등 위에 올랐다.
“피올란님! 일단 거기 가만히 계시다가, 제가 먼저 도착하고 나면 공간이동 스킬로 따라붙으세요.”
공간이동 스킬은 마법사의 탑에서 공헌도로 구입할 수 있는 마법사들의 필수 스킬로, 파티원 중 한 명에게 순간이동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마나소모량은 적은 스킬이었지만, 캐스팅하는데 5초나 되는 긴 시간이 필요해서 전투 중에는 사용하기 힘든 스킬.
하지만 몬스터가 없는 던전 초입에서 기다렸다가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충분히 가능했다.
피올란은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혼자 성소까지 뚫고 가실 수 있겠어요?”
이안은 앞으로 달려 나가며, 자신 만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충분히!”
피올란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안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이 던전은 초행이었기 때문.
하지만 이안의 자신감도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협곡으로 제법 많은 몬스터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지만, 죄다 90~100레벨 정도밖에 안 되는 아이스 가고일들과 트롤들이었는데, 그들은 그가 90레벨 즈음에 북부대륙에서 신물 나게 잡았던 몬스터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할리의 고유능력 이라면 그 정도의 몬스터들을 따돌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할리는 아직 90레벨도 안 됐는데, 라이보다 민첩성이 더 빠르네. 확실히 등급이 두 단계나 차이가 나니까, 능력치 차이가 크구나.’
할리의 민첩성은 이미 1300이 넘는 준수한 수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일반등급의 몬스터인 아이스트롤이나 가고일들과 비교하면 월등한 수치였다.
이안은 아이스 트롤들이 앞을 막아서기 시작하자, 재빨리 할리에게 명령을 내렸다.
“할리, 바람의 수호자!”
크허엉-!
던전 내부의 계곡을 진동시키는 할리의 커다란 표효와 함께, 새하얀 빛줄기가 할리의 네 다리에 휘감겼다.
[소환수 ‘할리’가 ‘바람의 수호자’ 스킬을 사용합니다.]
[소환수 ‘할리’의 민첩성이 나머지 전투능력치를 합한 수치만큼 추가로 증가합니다.]
[소환수 ‘할리’의 민첩성이 2분 동안 4484만큼 증가합니다.]
기존의 민첩성 능력치까지 합하면 6천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능력치!
이안은 할리의 등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이제 돌파할 시간이었다.
“할리, 일단 다 무시하고 저기까지 달리자!”
크르릉-!
이안을 태운 할리의 몸은 정말 바람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움직임이 둔한 트롤들은, 할리가 그 옆을 스쳐 지나감에도 몽둥이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멍하니 지켜보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피올란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아왔던 어떤 몬스터 보다도 할리의 움직임이 압도적으로 빨랐기 때문이었다.
타탓-!
한편, 할리의 등에 탄 이안은 거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엄청난 속도도 속도였지만, 몬스터들의 사이사이를 파고들며 지그재그로 움직일 때는 멀미라도 날 것 같았다.
이안은 슬쩍 뒤편을 응시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불어나는 몬스터들의 숫자를 보며 생각했다.
‘한 마리도 잡지 않고 성소까지 움직이면 물량이 엄청 쌓일 테지만….’
어비스홀과 브레스, 그리고 용암의 숨결의 막강한 광역 딜 이라면 한 번에 쓸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고위레벨의 광역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피올란의 존재도 있었기에 딜 부족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터엉-!
할리의 뒷발이 거대한 바위를 차 내며 허공으로 크게 도약했다.
갑작스런 방향전환에, 이안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리는 것을 느꼈다.
‘윽, 일단 등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에만 신경쓰자.’
괴물같은 민첩성 덕에 할리는 거의 하늘을 날아다니듯 움직였다.
협곡의 양 벽 사이의 거리가 거의 10m는 되었음에도, 한 번의 도약으로 양 쪽 벽을 타고 움직일 정도로, 할리의 점프력은 무지막지했다.
이안은 할리의 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어후, 할리가 전속력으로 달리니까 정말 무시무시하네.’
잠시 후.
길고 길게 느껴진 ‘바람의 수호자’ 스킬의 2분 지속시간이 끝났다.
그리고 민첩성 능력치가 원래의 수준으로 돌아온 할리의 이동속도가 많이 둔해 졌다.
하지만 이미 몬스터들은 대부분 따돌린 상태였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이안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저기로!”
그리고 곧, 이안은 영웅의 성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안이 협곡을 돌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분 남짓 이었다.
그는 곧바로 파티메시지를 보냈다.
[이안 : 피올란님, 이제 오세요!]
[피올란 : 네…!]
그녀의 대답과 함께, 이안의 바로 오른쪽에 회백색의 소용돌이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피올란의 공간이동 마법이 캐스팅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안은 지체 없이 나머지 소환수들을 전부 소환했다.
물론 아직 잠재력이 다 채워지지 않아 레벨을 올리지 않은 ‘핀’은 제외였다.
쿠웅-!
떡대가 소환되며, 던전 전체가 울릴 정도로 육중하고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안이 방금 빠져나온 협곡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협곡에서는 이안을 쫓아온 수많은 몬스터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좁은 협곡에서 개미 떼 마냥 밀려나오는 수많은 트롤들과 가고일들을 보며, 이안은 떡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떡대, 어비스 홀!”
그르륵- 쿵- 쿵-
너댓 걸음 정도 앞으로 몸을 움직인 떡대가 협곡을 향해 양 팔을 뻗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후우웅-!
무척이나 절묘한 타이밍과 위치!
전방으로 펼쳐진 20m정도 범위의 공간이 완벽히 협곡의 입구를 틀어막으며 협곡에서 빠져 나오던 몬스터들이 어비스 홀에 발이 묶였다.
이안은 기대보다도 더욱 정교하게 펼쳐진 떡대의 어비스홀에, 쾌재를 불렀다.
그의 명령이 이어졌다.
“레이크, 브레스!”
항상 해 왔던 사냥패턴이었기에, 미리 자세를 잡고 준비하고 있던 레이크는 망설임 없이 화염을 내뿜었다.
화아악-!
그리고 어느새 공간이동 스킬을 이용해 이안의 뒤쪽으로 날아온 피올란도 재빨리 스킬을 캐스팅시켰다.
“프로즌… 헬!”
쾅- 콰콰콰쾅-!
절묘한 타이밍과, 마치 그림 같은 스킬의 연계!
거의 브레스와 비슷한 수준의 위력을 자랑하는 피올란의 광역마법과 함께, 어비스홀의 충격파까지 퍼져 나가자 90~100레벨 정도밖에 되지 않는 몬스터들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쩌저정-!
게다가 최상위 빙계 마법인 프로즌 헬의 상태이상효과인 ‘빙결’ 덕분에, 몇 남지 않은 몬스터들마저 그 자리에 발이 묶여 버렸다.
그리고 남은 몬스터들은 라이와 할리의 몫 이였다.
피올란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와… 이안님… 진짜 대박인데요?”
그녀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원래 정상적인 방법으로 영웅의 성소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분 정도.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이 던전에 입장한지는 채 5분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안의 입에도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후후, 그런데 이번엔 운이 좀 좋았어요. 떡대의 어비스홀이 정말 기가 막히게 들어갔거든요.”
하지만 한 번 이렇게 절묘하게 성공시켜낸 이상, 두 번째부터는 운이 아닌 실력으로 같은 그림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는 이안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던전의 두 번째 페이즈가 시작되었다.
우우웅-!
영웅의 성소가 새파란 빛으로 번쩍였다.
“이안님, 준비하세요!”
“넵.”
잠시 후, 영웅의 성소를 기준으로 다섯 방향에 있는 얼음으로 이루어진 동굴들이 굉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그긍- 그그그긍-!
이안이 피올란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피올란님, 빙하의 장막 스킬 있으셨죠?”
빙하의 장막은 일정 범위 내에 냉기의 보호막을 생성하는 스킬이었는데, 재사용 대기 시간이 무척 긴 편이라 쓰지 않는 유저들도 많은 마이너한 스킬이었다.
하지만 초기화 전에 피올란이 빙하의 장막을 잘 활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이안이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피올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있어요. 근데 90레벨 넘고부터는 잘 쓰지 않아서 숙련도는 낮은 편이예요.”
그리고 이안의 의도를 곧바로 이해한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이 성소 위에 덮어씌운다면 아마 한 3~4분 정도는 버텨줄 수 있을 것 같네요.”
3~4분은 피올란이 그 동안 던전 클리어를 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예상한 시간이었다.
이안은 빙하의 장막이 2분 정도만 버텨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기에,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오케이, 그 정도면 충분해요!”
말을 마친 이안은 떡대에게 명령했다.
“떡대, 최대한 성소 앞을 벗어나지 말고 지키고 있어, 알겠지?”
그륵- 그륵-
떡대의 어비스홀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5분 이었다.
이안은 그 때까지 시간을 벌며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몰아올 생각이었다.
‘레이크 브레스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30분이니, 거의 끝날 때 까지 쓰기 힘들 거고….’
최대한 몬스터들을 몰아온 뒤 어비스홀로 묶고, 전류증식과 레이크의 패시브 스킬인 용암의 숨결로 최대한의 딜을 뽑아 내야 했다.
‘모자란 딜은 피올란님이 해결해 주시겠지.’
피올란이 두세 번 정도 광역스킬을 캐스팅할 시간만 벌 수 있다면, 레이크의 브레스 이상으로 강력한 광역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안은 라이와 할리에게 각 각 한 방향씩 맡기고, 레이크와 함께 가장 가까운 문으로 달렸다.
그러면 남쪽의 두 개 방향만이 남는다.
이안의 시선이 다시 피올란을 향했다.
“피올란님, 떡대랑 같이 두 방향만 맡아 주세요!”
피올란이 되물었다.
“시간만 벌면 되는 거죠?”
“네, 광역스킬은 아껴주시고, 둔화스킬 위주로 스킬 운용하시면서 시간만 끌어 주세요!”
“오케이!”
오랜만의 사냥이었지만, 이안과 무척이나 많이 손발을 맞춰본 피올란이었기에, 간단한 소통만으로도 서로가 원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페이즈도 순조롭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아마 세 번째 페이즈랑 보스 페이즈에서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게 쉽지 않을 거야.’
지금 이안의 사냥방식은 광역 몰이사냥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많은 몬스터를 상대해야하는 부분이 가장 유리했고, 이 쪽에서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켜야만 했다.
‘핀까지 제대로 키우고 나면 정말 볼 만 하겠는데?’
레이크의 브레스 이상으로 강력하고, 재사용 대기 시간도 10분밖에 되지 않는 핀의 ‘분쇄’ 스킬.
그 스킬까지 있으면 시간을 더욱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 (5). 포를란 영웅의 무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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