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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102화 (132/1,027)

< (1). 전장의 지배자 -2 >

그런데 그 때.

죽어가는 루킨의 사체에서 보라색 기운이 흘러나와 이안을 향해 빨려들어갔다.

‘음…? 이건 뭐지?’

처음 보는 종류의 공격인 줄 알고 긴장했던 이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다시 전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차징 시간을 전부 채운 떡대의 어비스 홀이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갔다.

퍼엉-!

그 위로 핀의 광역공격기인 분쇄 스킬이 전장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가자, 한 번에 너댓명의 유저들이 죽어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루킨을 죽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보랏빛의 기운이 시체에서 빠져나와 이안에게 흡수되는 것이 아닌가?

이안의 동공이 살짝 확대되었다.

‘이게 뭐지? 이런 현상은 처음 보는데?’

당황한 이안은 잠시 멈칫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황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가 놀라는 것과는 별개로 폴라리스 길드의 유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우왕좌왕하기 시작했기 때문었다.

그것은 이안이 미리 내려놓았던 명령대로, 전장에 난입한 로터스 길드의 병사들이 그들에게 달려든 덕분이었다.

그리고 흩어진 유저들은 라이와 할리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궁금증을 잠시 접어둔 이안은 라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라이, 피의 갈망!”

[소환수 ‘라이’의 고유능력 ‘피의 갈망’이 발동됩니다.]

[3분간 ‘라이’의 공격력과 민첩성이 30% 증가하며, 모든 움직임이 40%만큼 빨라집니다.]

전장에 흩어져 있는 대부분의 적들의 생명력이 30% 이하로 떨어져 있는 상황.

라이는 그야말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라이의 날카로운 이빨이, 전장 속에 우왕좌왕하던 한 유저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콰악-!

[소환수 ‘라이’가 ‘케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케이’ 유저의 생명력이 9150 감소합니다.]

[‘피의 갈망’ 효과가 발동하여 피해가 한번 더 적용됩니다.]

[‘케이’ 유저의 생명력이 9150 감소합니다.]

[유저 ‘케이’를 처치하셨습니다. 전투 기여도를 3.6% 획득합니다.]

[‘피의 갈망’ 효과가 발동합니다.]

[소환수 ‘라이’의 생명력이 20%만큼 회복됩니다.]

라이의 레벨은 115.

라이의 능력치 비율상 레벨에 비해 생명력이 현저히 낮았기 때문에, 90레벨 대 유저들의 공격에도 생명력이 쑥쑥 깎여 내려갔다.

하지만 ‘흡혈’ 능력과 ‘피의갈망’의 부가효과 덕분에, 절반 이하까지 떨어졌던 생명력도 한두 번의 공격이면 최대 생명력까지 차올라 버렸다.

거의 다 잡았다 싶으면 다시 쌩쌩해져서 날아다니는 라이는, 폴라리스 유저들을 질리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전황을 살핀 이안은 병사들을 뒤쪽으로 물리기 시작했다.

‘이제 확실히 이겼으니, 피해를 최소화 시켜야 해.’

그는 직접 싸우는 것 보다 전장을 통솔하는데 더 집중했다.

이 전투는 이미 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병사 하나라도 더 살려 나가는데 주력해야 했다.

그것이 다음 전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한 유저가 이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이놈!”

그는 가까스로 이안의 앞까지 접근했지만, 이안의 가신들이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었다.

“감히 영주님께 덤비다니!”

어느새 다가온 말라임과 토르텐, 그리고 세리아의 합공에 그는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유저에 비하면 비교적 약한 능력치를 가진 NPC들이었지만, 레벨차이가 20 가까이 났고, 셋의 협공이었기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었다.

이쯤 되니 폴라리스 유저들은 전부 전의를 상실할 수 밖에 없었다.

서른 명 가까이 되던 그들의 전력은, 이제 열 명도 채 남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싱겁게 끝나겠네.’

이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전장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 때, 그의 눈에 멀찍이서 열심히 유도화살을 날리는 익숙한 유저가 들어왔다.

그는 이안의 기억 속에 있는 궁사인 밀런이었다.

“하… 저 얼간이도 여기 있었네?”

따지고 보면 이안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적은 없는 밀런과 루킨.

이안도 그들에게 크게 분노를 느끼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과 괘씸한 것은 별개였다.

이안은 전장을 휘젓고 다니며 전설등급의 소환수 다운 활약을 하고 있던 핀을 불렀다.

“핀!”

꾸르륵-!

“저기, 저 놈 보이지? 가서 조져버려!”

꾸륵-!

이안의 명령을 받은 핀은 로터스 길드의 병사들을 상대하며 고전중인 밀런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쐐애액-!

그리고 그제야 핀을 발견한 밀런은 사색이 되었다.

“이건 또 뭐야?!”

그리핀을 본 적이 있을 리 없는 밀런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날아오는 괴물 같은 금빛 독수리를 발견하고는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기술을 시전 했다.

“폭풍의 화살!”

제법 구하기 힘든 고급 스킬인 폭풍의 화살!

하지만 그것을 하필 ‘핀’에게 사용했다는 것이 그의 명을 재촉하는 결과가 되어 돌아오고 말았다.

[소환수 ‘핀’이 바람 속성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고유능력 ‘바람의 수호자’가 발동합니다.]

[핀의 공격력이 3분간 30%만큼 증가합니다.]

레벨은 이안의 소환수들 중 가장 낮은 핀이었지만, ‘전설등급’ 이라는 무지막지한 소환수 등급은 십 몇 정도의 레벨을 커버하고도 남았다.

지금 이 용맹의 전장 안에서, 가장 민첩성이 높은 것은 핀이었다.

파파팍-!

밀런이 어떻게 손 써 볼 새도 없이, 핀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목덜미를 강하게 훑고 지나갔다.

[유저 ‘밀런’를 처치하셨습니다. 전투 기여도를 3.8% 획득합니다.]

이안 단 한명에 의해 쑥대밭이 되어버린 폴라리스 길드의 전력!

비록 그것이 90레벨~100레벨 정도밖에 되지 않는, 비교적 낮은 레벨의 유저들로 구성되어있는 선발대라고는 하지만 이안의 활약은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관전석에 앉아있던 헤르스와 피올란은, 입이 벌어져 있는 것도 모른 채 멍하니 전투를 구경하고 있었다.

헤르스는 곧 입에서 침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하지만 더욱 놀란 것은 이안과 사냥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신입 길드원들이었다.

로터스 길드 진영의 관전석 여기저기서 들뜬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와, 이안님 소환술사 랭킹1위 라고 하더니 진짜 어마어마하네.”

“포를란 랭킹 어떻게 독식하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어.”

“이거 소환술사 밸런스 붕괴 아니에요?”

“노노,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제 친구 소환술사 80레벨짜리 하나 있는데, 걘 소환수 세 마리 있는 것도 컨트롤 제대로 못 하던데요? 그리고 소환수들이 이안님 소환수들처럼 강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냥 이안님이 밸런스 붕괴인 듯.”

반면에 폴라리스 길드측의 관전석에는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폴라리스길드의 길드마스터인 로크람은 침음성을 흘렸다.

“어떻게 소환술사가 저럴 수 있지?”

그의 말에 옆에 서있던 길드원 하나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그, 요즘… 포를란 영웅의 무덤 명예의 전당 때문에 유명해진 이안이라는 유저 인가봅니다.”

“이안…?”

“네, 길마님. 그 포를란 던전 상위랭크 싹 쓸어간 유저 말이에요. 그 유저가 저 사람인 것 같아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로크람은 부 길마이자 절친한 친구인 한슨을 향해 물었다.

“한슨, 우리 지금 두 번째 경기 인원배치 어떻게 되어있어?”

한슨이 대답했다.

“첫 경기랑 별반 다를 것 없을 거야 아마도.”

로크람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제기랄, 저 괴물 같은 놈이 두 번째 경기에도 나올까?”

한슨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저 정도 전투력이면 아마 로터스 길드에서도 가장 강한 축에 속하는 유저일거고… 아마 저쪽에서 우리 전략을 읽고 역으로 통수를 친 것 같은데.”

로크람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이번 경기가 끝나고 나면 그 다음 다음 경기인 세 번째 전투의 인원배치를 미리 해야 했다.

원래는 별로 부담이 없었지만, 두 번째 경기마저 첫경기처럼 속수무책으로 내어주게 된다면, 세 번째 경기에서 질 경우 그대로 영지전에 패배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중간한 전력을 내보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한슨, 우리 세 번째 경기에는 용병을 둘 정도는 투입해야 할 것 같아.”

로크람의 말에 한슨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내가 로터스 길드라면 세 번째 경기는 버리는 카드로 쓸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별 수 없잖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두 사람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매며 세 번째 전투의 인원배치에 대해 의논하는 동안 이안은 남아있는 폴라리스 길드의 전력을 전부 다 정리하였다.

쾅-!

[유저 ‘파이어56’을 처치하셨습니다. 전투 기여도를 3.6% 획득합니다.]

[유저 ‘클린스’을 처치하셨습니다. 전투 기여도를 3.9% 획득합니다.]

:

:

그리고 그렇게 두 길드 영지전의 첫 번째 전투는 마무리 되었다.

물론, 결과는 로터스 길드의 승리였다.

[‘폴라리스’길드의 출전인원이 전부 사망하였습니다.]

[전투의 승리에 100%만큼 기여하셨습니다.]

[전투 기여도에 따라, 명성을 63500만큼 획득합니다.]

어지간한 A등급의 퀘스트를 성공시켜야 얻을 수 있을 만한 막대한 명성치!

이안의 입에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

[용맹의 전장, 제 1경기에서 로터스 길드가 폴라리스 길드를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새하얀 빛이 전장 전체를 휘감기 시작했고, 동시에 용맹의 전장을 관람하던 모든 유저들은 원래 있던 위치로 워프 되었다.

그리고 전장에 홀로 남은 이안도 하얀 빛줄기와 함께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캬…! 이안 형, 진짜 엄청나네!”

“와, 진짜 설마 설마 했는데. 이건 그냥 가지고 논 수준이잖아?”

전투가 끝나고 다시 길드 회의실에 모인 유저들은 이안의 앞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첫 영지전.

그리고 첫 승리인 만큼 모두가 들뜬 표정이었다.

이안이 카윈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웃었다.

“인마, 형이 뭐랬냐. 믿으라고 그랬잖아.”

카윈이 입을 삐죽거리며 대꾸했다.

“아니, 믿기야 믿었지. 근데 형 그거 알아?”

“뭐?”

“우리 병사도 다섯 명 밖에 안 잃었어.”

이안이 승리를 확신한 순간 병사들을 전부 뒤로 물렸기 때문에 피해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것.

병사 다섯 정도는 피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인 것이었다.

옆에 서있던 클로반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크으…. 이안이가 우리 첫 영지전 캐리 해 주네. 이렇게 1승 챙겨주면, 이제 마음이 가볍지.”

피올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요. 그리고 아마 이안님 생각처럼 두 번째 경기도 무난하게 챙겨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게. 처음 전투 시작하기 전에 2경기 까지는 인원 배치 다 끝내야 하니까, 이제 와서 저놈들이 전력 보강 할 수도 없을 테고 말이야.”

두 사람의 말에 모든 길드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길드원들은 이안의 전투능력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기가 막힐 정도로 들어맞는 전략에 더욱 감탄하고 있었다.

이안이 입을 열었다.

“아마 두 번째 경기는 이번처럼 쉽게 이기지는 못 할 거야.”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이안의 입을 향해 모아졌다.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저들이 완벽히 방심해서 내가 쉽게 이길 수 있었어. 아마 저쪽은 한명 출전해 있는 거 보고 우리 쪽에서 기권했다고 생각하고 달려들었을 테니까.”

헤르스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맞아. 처음에 보니까 그냥 대열이고 진영이고 하나도 안 맞춘 상태로 무턱대고 달려 들어 오더만.”

“응. 덕분에 내가 광역기를 전부다 최고 효율로 때려 박을 수 있어서 시작하자마자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이제 한번 당했으니까, 좀 더 신중히 싸우려고 하겠지.”

별 말 없이 구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하린이 이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두 번째 전투는 네가 질 수도 있는 거야 진성아?”

이안의 시선이 하린을 향해 움직였다.

그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향해 짧게 대답했다.

“아니, 그럴 리가.”

< (1). 전장의 지배자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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