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36화 (165/1,027)

< (4). 작위 승급 -3 >

*          *          *

위이잉-

드라이기로 대충 머리를 말린 진성은, 빠르게 옷을 꺼내 입고 하린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역시 남자로 태어난 건 축복인 것 같아.’

진성이 집을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샤워시간을 포함해도 15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여자였다면 머리에 묻은 샴푸 거품조차 다 씻어내지 못했을 짧은 시간이었다.

그랬다면 진성은, 아예 캡슐 안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날씨가 꽤 쌀쌀해 졌던데….’

옷장 안을 뒤져 학기 초에 강매당한 과 잠바를 걸친 진성은 가벼운 걸음으로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하린과 만나기로 한 세시 반까지는 아직 제법 여유가 있었다.

“가는 길에 슈크림 빵이나 한 개씩 사 갈까?”

문득 하린이 좋아하는 슈크림빵이 떠오른 그는,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 골목 어귀에 있는 빵집에 들어갔다.

딸랑-

그런데 그 곳에서, 진성은 생각지 못한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잡았다 요놈!”

그것은 다름 아닌 유현.

마침 등굣길에 빵집에 들른 유현을 마주친 것이었다.

“뭐? 잡긴 뭘 잡아. 무슨 말이야?”

당황한 표정으로 묻는 진성을 째려보며, 유현은 말을 이었다.

“너 오늘 내가 학교 무조건 잡아갈거야. 다시 집에 들어갈 생각일랑 마라.”

유현의 단호한 말에, 진성은 피식 웃었다.

“걱정 마, 인마. 안 그래도 학교 가려고 나온 거니까.”

하지만 유현의 의심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웃기지 마. 내가 모를 줄 알아? 빵집 온 걸 보니, 집에 식빵이 떨어진 거야. 게임하다가 배가 고팠던 거지.”

제법 예리한 유현의 추리력.

하지만 진성은 정말로 억울했다.

“아, 아니야. 나 정류장에서 하린이 만나기로 했단 말야. 하린이랑 같이 학교갈거야. 걱정 마.”

게슴츠레 하던 유현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잉? 하린이 만나기로 했다고?”

그리고 유현의 입 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이거, 이거. 하린이 데리러 나온 거구만?”

진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그렇지…?”

“오….”

유현이 진성의 귓가에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

“너희 사귀는 거냐 이제?”

“음… 그건….”

진성이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그에 유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다.

“쯧쯧… 너 솔직히 말해봐.”

“뭘?”

“너… 고자 맞지?”

폐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유현의 공격에, 진성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무슨 그런 말을…!”

“아니라고는 못하네.”

“아니, 어이가 없으니까 그러지. 왜 멀쩡한 사람을 고자로 만들고 그래?”

“아니 고자가 아니면, 하린이같이 예쁜 애가 그렇게 잘해주는데 어떻게 아직도 고백을 못해?”

순간, 진성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어휴, 이 답답한 놈을 어째야 되나….”

빵집을 나서면서도, 마치 제 일인 양 한숨을 푹 푹 쉬는 유현을 보며, 진성이 발끈했다.

“야, 그러는 너는? 너도 솔로인 주제에. 솔로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억울함이 가득 담긴 진성의 말에, 유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뭐? 누가 솔로라고?”

“너. 너 말이야 너.”

“후훗.”

승자의 미소를 지어보인 유현이 앞장서 걸으며 진성을 비웃었다.

“형 이제 솔로 아니다 인마.”

“…?!”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한마디.

그런데 그 때.

저 멀리서 어쩐지 낯익은 실루엣 하나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유현아!”

꿀이 뚝 뚝 떨어질 것만 같은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진성은 경악했다.

“서… 설마?!”

“후후, 나 며칠 전부터 민아랑 사귄다, 진성아.”

순간, 해일처럼 밀려오는 상실감에 진성은 들고 있던 빵 봉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툭-

민아는 같은 가상현실과의 동기였고, 같은 솔로부대인 줄 알았던 유현은 커플로 모자라 무려 과cc가 된 것이었다.

“…”

멍한 표정으로 있는 진성에게, 유현은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며 멀어졌다.

“형 먼저 가본다, 인마. 하린이 손 꼭 붙잡고 학교 와야 돼! 집으로 다시 들어가면 안 된다!”

마지막까지 당부를 잊지 않는 유현.

진성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유현이가 떠나다니….”

*          *          *

로터스 길드의 인사담당(?)인 카윈은, 빼곡하게 쌓여 있는 가입신청 메일을 확인하느라 두 눈이 퀭해졌다.

“와, 예고편 영상이 확실히 영향력이 크기는 하구나. 무슨 아무리 봐도 끝이 없네.”

이제 제법 높은 랭킹 대에 올라선 로터스 길드는, 평소에도 가입신청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편이기는 했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들어온 가입신청 건수만 2천 건.

심지어 레벨제한이 90으로, 제법 높게 걸려 있다는 것이 더 놀라운 사실이었다.

“레벨제한 110 정도로 올려버릴까 확.”

일단 100레벨 이하의 유저들을 다 잘라버린 카윈은 그래도 수백 통이나 남아있는 가입신청 메일들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하지만 수뇌부인 카윈 자신조차 110레벨 대였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어디 보자… 이제 길드에 남은 자리가….”

[로터스 길드 총원 (225/250)]

영지 시스템이 오픈되기 전까지, 길드의 총원은 길드랭킹의 고하에 관계없이 무조건 200명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거점지 시스템이 생기면서, 길드 소유의 거점지가 추가될 때 마다 받을 수 있는 길드원 숫자의 최대치도 확장되게 되었던 것.

물론 확장되는 길드원 총원의 수치에는 소유한 거점지의 숫자 뿐 아니라, 등급도 반영이 되었다.

현재 로터스 길드의 거점지는, ‘영지’ 등급인 로터스 영지 한 곳이었다.

영지 등급의 거점지는 길드원 최대치를 50명 늘려주었고, 그랬기에 현재 로터스 길드의 영입 가능한 길드원 최대치는 250명이었던 것이었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올리버스 마을도 병합시킬 수 있을 테니까….”

촌락 등급인 올리버스 마을이 길드 소속 거점지가 되면 최대 인원이 25명 더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제법 여유가 생긴다.

카윈은 침침한 눈을 비비며, 꼼꼼히 메일 하나하나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휴우… 면접은 피올란님한테 도와달라고 해야겠어.”

최종적으로 거르고 나면, 100~110레벨 정도의 유저들이 대다수 남을 것이었고, 그 정도 레벨차이라면 한 두 단계 높은 레벨보다는, 길드와 잘 맞을만한 유저인지를 판단하는게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면접은 필수.

면접 생각에 더욱 피곤해진 카윈은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내가 이번 방학때는 서울 올라가서, 형들한테 밥 꼭 얻어먹고 만다.”

*          *          *

“박진성! 박진성!”

“우오오!! 이안이다! 이안이 우리학교였어!!”

한국대학교의 대강당.

그리고 그 커다란 강당 중앙에 배치되어있는 열 대의 가상현실 캡슐.

그 안에 들어가, 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진성에게로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 내 아이디를 어떻게 아는 거야?”

아직도 자신의 얼굴이 게임방송에 대문짝만하게 팔려나간 사실을 모르는 진성으로서는, 충분히 당황스러울 만한 상황이었다.

“어후, 시끄러워서 게임 집중이나 할 수 있겠나 이거.”

진성은 투덜거리며 캡슐의 뚜껑을 닫았다.

와아아-!!

밀폐된 캡슐 안까지 느껴지는 엄청난 열기.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과별 E-스포츠 대회의 열기가 엄청났던 것은 아니었다.

강당 메인 스크린에 확대되어 떠오른 진성의 얼굴을, 누군가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

강당 한 켠에 자리 잡고 앉아있던 가상현실과 학생들은 뿌듯한 표정이 되어 경기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야, 유현아. 이번이 몇 번째 경기지?”

“지금… 체육교육과랑 경영학과 이겼으니까 세 번째네요.”

“그럼 이번만 이기면 준결승인가?”

“네. 그런 듯 하네요.”

“크으….”

세원의 시선이 강당 한쪽에 쌓여있는 양주 박스를 향해 돌아갔다.

“오늘 밤, 거하게 한잔 할 수 있는 거지, 유현?”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물론이죠. 제가 볼 때 진성이 쟤, 아직 몸도 안 풀렸어요.”

“뭐? 정말?”

지금 진성이 가상현실과 대표로 나가서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은, 한때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던 AOS 장르의 게임이었다.

바로 가상현실 시스템에 접목된 최초의 AOS 게임인 리그 오브 카오스.

AOS 게임이란, 양 팀 각각 다섯 명의 유저가 접속하여, 총 열 명의 유저가 정해진 맵 안에서 상대의 진영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이었는데, 가상현실 안에서의 AOS장르는 기존 PC 게임일 때의 AOS와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PC게임일 때의 AOS는 유저가 캐릭터를 컨트롤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유저라도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해서 플레이하는 것은 같았고, 유저 능력과 관계없이 같은 스킬을 사용하면 정확히 같은 수치의 피해를 입힐 수 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

하지만 가상현실 속의 AOS는 그렇지 않았다.

가상현실 안에서의 전투는, 단 한명의 실력자가 컨트롤 여하에 따라 5:1의 싸움도 이길 수 있을 만큼 ‘컨트롤’의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같은 공격스킬을 사용하더라도, 어떤 부위를 맞추느냐, 얼마만큼 정확한 타이밍에 맞추느냐에 따라 피해량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벌어졌던 두 번의 경기에서, 진성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줬다.

말 그대로 5명이서 하는 게임을 혼자의 힘으로 캐리해 보인 것.

하지만 이것조차도 아직 몸이 덜 풀린 것 같다는 유현의 말에, 세원은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스크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 이번에도 한번 보여줘라 진성아!”

이번 상대는 제법 강팀으로 알려져 있는 컴퓨터공학과.

하지만 지난 두 경기에서 압도적인 실력차를 보여준 진성 덕에, 가상현실과의 그 누구도 패배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승찬이가 구멍이라 좀 불안불안했는데, 진성이가 구멍 메우고도 남네.”

들뜬 세원의 말에,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쟤 고등학교때 프로 제의도 받았던 녀석이에요. 물론 어머니가 단칼에 잘라버리셨지만….”

“….”

두 사람이 떠드는 동안, 게임이 시작되었고, 대강당의 분위기는 더욱 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AOS 게임에서 진성의 포지션은 미드.

팀의 핵심 공격수이자, 언제든 아래위로 움직이며 팀을 케어해 줄 수 있는, AOS 게임의 가장 빛나는 포지션이었다.

그리고 가상현실과 학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게임이 시작된 지 고작 3분만에, 진성이 첫 번째 킬 포인트를 따냈다.

[퍼스트 블러드! 언데드 팀의 유저 ‘진성’이 첫 번째 킬 포인트를 올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화면에 잠깐 비춰지는 진성의 얼굴과,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환호의 목소리!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뭐, 뭐야? 저기서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 거지?”

“아니, 무슨 반응속도가 저래? 저게 사람이야?”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경악에 찬 탄성들.

진성은 이론적으로나 가능하다는 플레이들을 밥 먹듯이 펼쳐 보이며, 상대 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트리플 킬! 유저 ‘진성’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진성이 플레이하는 영웅은, RPG게임의 직업으로 따지자면 마법사와 암살자를 섞어놓은 듯한 느낌의 스킬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비교적 짧은 재사용 대기 시간의 공간이동 스킬과,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 되돌리기 스킬까지.

하지만 생명력이 무척이나 낮아서, 조금이라도 컨트롤 미스가 나면 그대로 사망해 버리는 허약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 맞으면 그만이지.’

유현은 리그 오브 카오스를 플레이할 당시 진성이 입에 달고 살던 한마디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우와아! 저기서 벽을 저쪽으로 넘어갔어!”

“아니, 저기 있는지는 어떻게 알고 예측샷을 쏘는거야? 쟤 맵핵 아니야?”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전장 위를 휘젓고 다니는 진성.

게임은 어느새 중반에 접어들었고, 그동안 쌓인 킬포인트로 인해 진성은 언터쳐블 수준의 초강자가 되어 있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진성의 스킬이 한번 쏘아질 때 마다 여지없이 회색빛으로 변하는 컴퓨터 공학과의 선수들.

[쿼드라 킬!]

다섯의 적 영웅 중, 네 명을 연달아 사살했을 때 떠오르는 ‘쿼드라 킬’ 메시지가 울려 퍼지자, 가상현실 과 학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현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가자, 펜타킬!”

그리고 진성의 양 손에서 쏘아진 새하얀 빛줄기가 컴퓨터 마지막 남은 컴퓨터 공학과 선수의 목덜미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펜타 킬! ‘진성’, 그는 전설입니다.]

< (4). 작위 승급 -3 > 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