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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187화 (214/1,027)

< (6). 몰락의 징조 -1 >

루스펠 제국 유저들의 내분을 유도한 카이몬 제국 수뇌부의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어갔다.

커뮤니티를 통해 퍼져 나가기 시작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카일란 전체에 공론화되어버린 것이었다.

루스펠 제국의 기득권층의 세력이 강하기는 했지만, 제국 전체를 놓고 본다면 중상위권 유저들의 전력이 거의 제국의 근간이 되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기득권층 세력이 중산층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자, 루스펠 제국은 뿌리 채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는 최상위권 길드에 속해있던 유저들 중에도 수뇌부에 실망해 길드를 이탈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식 커뮤니티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는 계속해서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던 카이몬과 루스펠의 균형, 무너지기 시작하다.]

[카일란 한국서버, 세계 최초로 거대 양국체제 무너지나?]

처음에는 언론이 너무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내는 것 아니냐는 말이 많이 나왔다.

루스펠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루스펠의 몰락을 점치기 시작했다.

기회를 잡은 카이몬 제국의 연합군이 엄청난 속도로 동쪽으로 밀고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속도는 정말 가공할 정도로 대단해서, 단숨에 루스펠 소속이었던 수십 개의 중부대륙 거점지가 카이몬 제국의 손에 넘어갔다.

그리고 카이몬제국 연합군은, 전략적으로 파이로 영지를 아예 배제해 버렸다.

계속 문을 두들기면 언젠가는 함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러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너무도 큰 탓이었다.

한 마디로 파이로 영지는 ‘계륵’ 이라는 표현이 적당했다.

공들여 먹기에는 양이 너무 적고, 그렇다고 남 주기에는 아까운 닭의 갈빗살과 같은 존재.

등 뒤에 적지를 덩그러니 남겨둔다는 것 자체가 꺼림칙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카이몬 제국은 과감히 움직였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나자, 중부대륙의 80%에 가까운 영토가 카이몬 제국의 손에 넘어갔고, 전선은 루스펠 제국의 거대길드들이 지키고 있는 최후방까지 밀려나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루스펠의 거대길드들이 금방 무너져 내릴 것이라 예측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중부대륙이 전부 카이몬 제국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그 다음은 분명 루스펠 제국의 본토인 동부 대륙이 위험해질 것이고, 대륙 외곽과 북부지역에 대규모의 영지를 여럿 보유하고 있는 기득권 길드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막아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이안과 로터스 길드는 중부대륙의 영토를 야금야금 넓혀 가기 시작했다.

파이로 영지 주변의 몇 몇 거점들을 점령한 것이었다.

*          *          *

파이로 영지의 영주 집무실.

이안과 헤르스, 그리고 파이로 영지의 영주인 피올란이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성아, 너 지금 있는 명성 다 쓰면, 작위 어디까지 올릴 수 있는 거야?”

헤르스의 물음에 잠시 정보창을 확인해 보던 이안이 명성치를 열심히 계산하기 시작했다.

“으음… 내가 지금 명성이 520만 정도가 있으니까….”

피올란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되물었다.

“에엑? 520만이라구요? 아니 대체 뭘 어떻게 하면 그만큼 모을 수 있는 거죠?”

“이건 제 생각인데… 두달 전 연합군 상대로 치뤘던 공성전에서 드래곤이 브레스 뿜은 것만으로 한 20만 명성은 챙겼을 걸요?”

“드,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

“게다가 그 뒤로 계속해서 중부대륙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사냥했으니… 520만도 어떻게 보면 그렇게 많은 양이 아니죠.”

루스펠 제국 기득권층 길드들의 도덕적 논란이 불거진 이후.

대중은 이안과 로터스 길드가 어떤 식으로든 그들에게 보복을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로터스 길드는 아무런 제스쳐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중부대륙의 중심에서 힘을 키워갔을 뿐.

그리고 그동안, 이안은 중부대륙 한복판을 제 집 안방마냥 들쑤시고 다니며 계속해서 레벨을 올렸다.

카이몬 소속인 대부분의 랭커들이 동부지역 전선에 모여있는 지금, 아무리 카이몬 제국의 영역 안이라고 하더라도 이안을 막을 만한 유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 이안의 레벨도 170이 다 되어갔기 때문에, 어지간한 카이몬의 npc들조차 이안을 막을 수 없었다.

던전이건 필드 사냥터이건, 이안은 닥치는 대로 사냥했고, 심지어 사냥터에 카이몬 제국의 유저나 npc가 존재하면 그들마저 무차별로 학살했다.

그 결과 이런 어마어마한 양의 명성을 모은 것이리라.

“정말, 게임마저도 빈익빈부익부 라니까….”

“그보다는 될 놈 될 이 더 맞는 말 아닐까요?”

궁시렁거리는 두 사람은 가볍게 무시하며, 이안은 자신의 명성치를 승급조건에 대입시켜보았다.

그리고 곧 입을 열었다.

“후작이 되는 데 120만이 필요하고, 공작이 되는 데 200만이 필요하니까… 한 번에 공작까지는 올릴 수 있겠네. 하지만 공작까지 올리고 나면 명성이 너무 조금 남으니까, 아직 공작이 되는건 무리야.”

그 말에 헤르스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으, 후작 다음에 공작도 있었구나.”

“그렇지 바보야. 근데 그건 왜?”

“네가 ‘대공’까지 작위를 올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음… 대공?”

이안의 되물음에, 피올란이 대신해서 대답했다.

“이안님이 대공 작위까지 작위를 올리면, 우리 로터스 길드 영지들을 통합해서 ‘공국’으로 선포할 수가 있거든요.”

“흐음….”

헤르스가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카일란 사상 최초로 우리가 공국이 될 수 있는 거지.”

현재 로터스 길드가 가진 영지는 총 일곱 개였다.

북부대륙의 로터스 영지와 올리버스 영지, 그리고 파이로 영지를 포함해 중부대륙에 추가로 다섯 개의 영지를 점령한 것이었다.

물론 파이로를 제외한 중부대륙의 나머지 영지들은 언제든지 빼앗길 위험이 있었기에, 크게 비중을 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총 일곱 개의 영지에서 창출할 수 있는 수익은 어마어마했다.

전체 길드순위 1,2위를 다투고 있는 타이탄 길드와 다크루나 길드도 보유중인 영지 개수가 15개가 채 안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로터스 길드는, 이안이 ‘대공’의 작위만 얻게 된다면 카일란 최초로 ‘공국’이 될 수 있는 요건을 거의 다 갖추었다.

로터스 길드가 아닌, ‘로터스 공국’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그렇게 긍정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아마 한 달 정도 명성 쌓는 데 올인 한다면… 대공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난 아직 그럴 생각이 없어.”

이안의 말에 피올란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왜죠? 공국이 된다는 건, 우리가 하나의 국가가 된다는 거예요. 그 전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어요.”

일단 국가가 되고 나면, 양성할 수 있는 인재와 군사력의 질 자체가 달라진다.

공립 기사 아카데미와 같은 기사를 육성할 수 있는 시설도 건설이 가능해지며, 마탑이나 특수 방어타워 등, 각종 컨텐츠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피올란은 그것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공국을 선포하는 순간, 대륙 통일을 목표로 달리고 있는 카이몬의 화살이 다시 우릴 향할 겁니다. 제가 지금 중부대륙에서 거점지를 더 늘리지 않고 있는 이유도 알고 계시잖아요.”

총 일곱 개의 영지. 그리고 현재 길드 랭킹 11위에 랭크 되어있는 로터스 길드.

이 수치는 사실 이안이 교묘하게 만들어 놓은 수치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를 더 키우지 않는 것이다.

카이몬의 상위권 길드들로 하여금, 로터스 길드에 대한 경각심을 줄여주기 위함이라고 보면 정확했다.

겉으로 드러난 지금의 로터스 길드는, 아직 타이탄이나 다크루나길드가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헤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으음… 하긴. 갑작스럽게 우리가 공국을 선포하면, 저들이 싹을 자르려 들겠지. 그럼 진성이 네 생각은 어떤데?”

이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내실을 더욱 다질 때야. 뮤란의 코앞까지 카이몬 제국군이 다다를 때 까지, 우린 계속 힘을 키우면서 때를 기다리자.”

이번에는 피올란이 물었다.

“그리고 나서는요?”

이안의 시선이 피올란을 향해 돌아갔다.

“그때까지 쌓아뒀던 모든 병력을 이끌고, 로터스 영지로 돌아갈 겁니다.”

“…?!”

로터스 영지란, 로터스 길드가 최초로 얻었던 북부대륙의 거점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안의 발언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의 입으로 모아졌다.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로터스 영지로 돌아가 힘이 약해진 주변 루스펠 제국 소속 길드들의 영지를 전부 다 집어 삼키고, 그 때 공국 선포를 할 겁니다.”

지난 두 달 동안 계속해서 생각해 왔던 커다란 그림을, 이안은 처음으로 두 사람에게 꺼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곧 망해버릴 루스펠 제국의 유저들을, 전부 흡수하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겐 ‘명분’이 있으니까요.”

헤르스가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중부대륙 한복판에서 카이몬 연합군을 상대로 최후까지 버텨 낸 유일한 길드.”

“그래. 그때까지 그 이미지만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면 되는 거야. 그리고 북부대륙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거지.”

쉬지 않고 쏟아지는 이안의 말에, 피올란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와아… 거기까지 생각하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전 지금까지 힘을 키운 이유가, 카이몬 연합군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거든요.”

헤르스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피올란에게 동조했다.

“나, 나도….”

피올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에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공국’을 선포하고 그동안 모아놓은 병력으로 역전을 꾀하려고 하는 건줄 알았는데….”

이안은 피식 웃었다.

그 또한 처음에는 피올란과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공국이 되더라도 결국 루스펠이라는 커다란 제국 소속의 속국이 될 뿐이니까.’

제국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국가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안은 지금의 상황이 신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모은 힘으로 카이몬 제국군의 통수를 친다면, 스플렌더와 오클란, 그 약아빠진 놈들만 도와주는 꼴인데 그럴 수는 없잖아?’

제국이 망하면, 최대 기득권층인 그들은 함께 망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그들 중, 벨리언트 길드와는 노선을 함께 가져갈 생각이었지만.

이안이 두 사람을 향해 입을 떼었다.

“어쨌든 우리는 계속해서 최대한 전력을 키우되, 그것을 숨겨야 합니다. 외부인들로부터 최대한 평가절하를 당하는 게 목표라고 보면 되죠.”

헤르스와 피올란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았어. 길드 내부적으로도 입단속을 잘 해야겠네.”

“그러게요, 이안님의 계획대로라면 꽤나 장기적인 플랜이 되겠어요.”

그리고 이안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생각난 게 있네요.”

“뭔데요?”

이안이 입 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아마 곧 있으면 사무엘진이 지원요청을 해 올 겁니다.”

헤르스가 기겁을 하며 말했다.

“에엑? 그 미친놈이 무슨 염치로 우리한테 지원요청을 해?”

이안이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떤 스탠스도 취하질 않았으니까. 아마 우리가 정확한 정황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랑 어떤 거래를 하려고할 수도 있고.”

피올란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이안을 향해 물었다.

“그럼 어떤 식으로 대응할 생각이신데요?”

“우린 파이로 영지 지켜내기도 버겁다고 해야죠. 여력이 없다는 데 그쪽에서 뭘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이안의 대답에도, 피올란은 만족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그게 끝?”

그녀의 물음에 이안이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설마요. 당한 만큼, 복수는 해 줘야지.”

< (6). 몰락의 징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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