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91화 (218/1,027)

< (7). 어둠의 군주 -2 >

*          *          *

며칠 전부터,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에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카일란 세계관 안에, 천 년 전에 존재했던 영웅들과 관련된 히든클래스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소문의 발단은, 며칠 전 월드 메시지로 떠오른, [중부대륙의 첫 번째 전설이 깨어났습니다.] 라는 메시지였다.

중부대륙의 전설이 무엇이냐에 관해 여러 유저들이 추측, 조사하기 시작했고, 한 랭커가 자신도 그와 관련된 퀘스트를 하고 있다는 말을 꺼내어 더 크게 화제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사이버 수사대(?)를 자처하는 네티즌들은, 기어이 그 첫 번째 전설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밝혀냈다.

사실 그건 크게 어렵지 않은 것일수도 있었다.

레미르는 워낙에 유명한 네임드 랭커였고, 네임드들 중에 몇 안 되는 모든 정보를 공개로 설정해놓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클래스가 홍염의 마도사에서 홍염의 군주로 바뀐 사실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캡쳐 되어 사이트에 올라왔다.

- 얘들아, 중부대륙의 전설인지 뭔지, 그거 히든클래스만 얻으면 인생 역전 가능한 거냐?

- 꿈 깨라 멍청아. 히든클래스라고 만능인 줄 아냐. 자기한테 잘 맞는 클래스를 하는게 중요하지.

- 아니 근데 님들, 그냥 히든 클래스가 아니라 중부대륙의 전설과 관련된 히든클래스잖아요. 일반적인 히든클래스랑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될 듯.

- 윗 분 말이 맞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히든클래스에도 티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알고계신 저격수라던가 광전사, 마도사, 등등이 1티어 히든클래스구요.

- 맞아요. 레미르의 원래 클래스였던 ‘홍염의 마도사’도 2티어 히든클래스라고 알고 있습니다.

- 오…? 그렇다면, 홍염의 군주는 3티어 히든클래스겠네요?

- 뭐,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렇겠죠?

- 와 그럼 결국 처음에 어떻게든 히든클래스 달고 시작했어야 하는 건가? 이거 히든클래스 있어봤자 무소용이라고 예전에 포스팅 올렸던 놈 어디갔어!

- 하… 나도 그 말만 믿고 있었는데. 캐릭터 삭제하고 다시 키워야 하는 부분인가요?

- 노노, 님들 흥분하지 마세요. 히든클래스에 티어가 있다고는 하지만, 주변에 흔한 1티어 히든클래스는 정말 일반 클래스와 별반 다를 거 없구요, 2티어부터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은데… 높은 티어의 히든클래스를 얻기 위해서 꼭 아래 등급의 히든클래스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 아 그래요? 그럼 일반 클래스인 유저들도 레미르처럼 곧바로 3티어 히든클래스 얻는 것도 가능한 건가요?

- 뭐, 관련 퀘스트만 어디서 잘 주워오면 가능할 듯.

- 오오…!

항상 월드메시지로 모든 유저에게 떠오르는 정보는, 게임의 큰 줄기나 굵직굵직한 업데이트와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유저들이 이 부분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고, 한 때 불타올랐었지만 잊혀져 가고 있던 히든 클래스들에 관한 논쟁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 님들, 근데 내 히든클래스가 몇 티어인지는 어떻게 확인하나요?

- 그건… 따로 확인하는 방법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알고 있는데요. 왜요? 님 히든클래스임?

- 네. 저 히든클래스인데….

- 오오! 뭔데요? 뭔데!

- 오 여기 금수저 냄새난다! 히든클래스래!

- 아 저… 그저께 전직했는데, 클래스 이름이 빛의 사제 였나 그렇거든요.

- 에이, 뭐야. 빛의사제래.

- 아 난 또 분위기 잡길래 뭐 있는 줄 알았네.

- 에에…? 왜요? 히든클래스가 아닌가요?

- 아니, 그런 건 아닌데, 1티어가 확실한 클래스입니다. 빛의 사제는….

- 지금까지 사냥하면서 빛의 사제 최소 150번은 본 듯.

- 나도 나도.

- ….

그렇게 점점 유저들의 관심이 모이기 시작하며, 화두가 커져가고 있던 그 때.

아니나 다를까, 카일란의 개발사인 StudioLB에서 공식 사이트에 커다란 폭탄과도 같은 트레일러 영상들을 한 번에 열 세개나 올렸다.

영상들은 각각 50분이라는 제법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들은 각기 다른 카일란 영웅들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었다.

LB사에서는 아무런 텍스트나 설명도 없이 열 세 개의 영상만을 공개했을 뿐이었지만, 유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와 씨, 진짜 어마어마하네. 그냥 이거 영화로 만들어도 되겠어.

- 아니 이정도면 이미 영화 아니냐? 요즘 스크린에 걸려있는 어지간한 영화들보다 훨씬 재밌는데?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고.

- 미친, 쩐다. 보니까 이게 중부대륙의 영웅인지 뭔지와 관련된 영상들인 것 같은데….

- 제가 영상 뜨자마자 보기 시작해서 방금 다 봤는데, 이거 히든 클래스랑 관련된 떡밥은 맞는 것 같아요.

- 오, 리얼? 벌써 다 본거에요?

- 네. 근데 중부대륙의 영웅은 아니구요, 고대에 활약했던 대륙의 영웅들에 대한 영상이더라구요. 보니까, 중부대륙 다섯, 동부 서부 각각 셋. 그리고 북부대륙에 둘. 이렇게 총 열셋이네요.

- 중부, 동부, 서부는 결국 콜로나르 대륙에 속해있는 하나의 땅덩어리니까 묶자면, 콜로나르 대륙에 총 열 한명, 북부 말라카 대륙에 두명 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 헐, 정보 감사!

- 크으, 선지자님 덕에 신선한 정보 알아갑니다.

그리고 게시된 동영상마다 화면의 오른쪽 위에, 작은 글씨로 영상의 제목이 숨겨져 있었는데, 그 이름들은 다음과 같았다.

1. 황혼의 검투사 라페이 - 말라카의 잊혀진 영웅.

2. 드래곤 테이머 오클리 - 프릴라니아 계곡의 혈투.

3. 홍염의 군주 싯다르타 - 마족사냥꾼과 싯다르타.

4. 어둠의 군주 임모탈   - 망자의 협곡.

:

:

*          *          *

카르세우스를 발견한 임모탈은 놀란 눈이 되어 이안을 응시했다.

[네놈은… 북부대륙에서 내려온 영웅인가.]

“…?”

임모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이안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되물었다.

“뭔 소리야? 뜬금없이.”

하지만 이안의 말은 무시한 채, 임모탈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흠… 북부대륙의 소환술사는 아닌 모양이군. 그런데 어떻게 ‘그’의 드래곤을 가지고 있는 거지?]

임모탈의 회상보다는 그가 떨궈줄 아이템에 더 관심이 있는 이안은, 창을 휘둘러 전류증식을 쏘아 보냈다.

파앙-!

“빨리 덤비기나 하라고. 시간 없으니까.”

그에 임모탈이 눈살을 찌푸리며 으르렁거렸다.

[오만한 인간이로군. 네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였는지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훈이와 이안, 그리고 임모탈은 서로를 향해 동시에 뛰어들었고, 카노엘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전투에 합류했다.

쾅- 콰쾅-!

훈이가 쏘아 보낸 어둠의 마력탄을 손짓 한번으로 막아낸 임모탈이 허공으로 손을 뻗으며 소환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지저세계의 망령들이여… 어둠의 군주의 부름에 응답하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새까맣게 어두운 맵의 곳곳에서 보랏빛 기류가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 하나 둘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이안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훈이에게 말했다.

“오, 네가 소환하던 석탄같은 재질의 스켈레톤들이 임모탈로부터 나온 거였어?”

훈이가 소환한 스켈레톤들은 일반적인 다른 흑마법사들이 소환하는 백골의 스켈레톤과 다른 검정색이었고, 이안은 그것이 항상 신기했던 것이었다.

훈이는 인상을 팍 쓰며 대꾸했다.

“석탄이라니! 저렇게 반들반들하게 윤기나는 석탄 본 적 있어?!”

“윤기는 무슨, 푸석푸석하기만 하고만.”

둘은 티격태격 하면서도 계속해서 몸을 놀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전장에는 임모탈과 훈이 일행이 치고받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임모탈은 여유부리며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임모탈이 가장 까다로운 점은, 힘들게 생명력을 깎아 놓아도, 소환한 언데드를 흡수하며 다시 생명력을 회복해 버린다는 점이었다.

많은 흑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었지만, 일반적인 흑마법사들은 소환할 수 있는 언데드들의 숫자가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무한정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스킬은 아니어서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임모탈은 달랐던 것이다.

임모탈은 죽여도 죽여도 끝도 없이 계속해서 언데드를 소환해 내었고, 덕분에 훈이와 이안은 죽을 맛이었다.

“아니, 제기랄. 이거 이러면 대체 어떻게 죽이라는 소리야?”

훈이의 투정에 이안이 짧게 대꾸했다.

“이것도 다 경험치 아니겠어?”

“… 정말 징하군….”

이안은 힐끔 임모탈의 생명력 게이지를 확인했다.

계속해서 생명력을 회복하고는 있었지만, 다행히 스킬에 재사용 대기 시간은 있는지, 크게 보면 조금씩 생명력이 떨어지고 있기는 한 것 같았다.

‘으, 딜이 조금만 부족했어도 잡지 못했겠어.’

만약 이안의 파티가 넣는 딜량이 임모탈이 언데드로부터 흡수하는 생명력의 회복량보다 적었더라면, 임모탈은 아직까지도 풀HP를 유지했으리라.

온 정신을 집중해가며 임모탈과 대적 중이던 이안이 돌연 훈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안 : 야, 훈이. 너 예전에 루키리그에서 나한테 썼던 기술 있지?]

훈이는 살짝 당황했지만, 곧 침착하게 대답했다.

[훈이 : 뭐 말하는 거야?]

[이안 : 왜, 그 있잖아. 데미지 반사하는 스킬.]

[훈이 : 아, 망자의 보복?]

파앙-!

이안은 발밑으로 내리꽃히는 보랏빛 광선을 재빨리 피해내고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이안 : 그래, 그거.]

순간, 두 사람은 짧게 눈이 마주쳤고, 곧바로 서로가 원하는 움직임에 대해 이해했다.

이안이 라이와 카르세우스에게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카르세우스, 조금 뒤로 빠지고, 라이! 나랑 같이 들어가자.”

지금까지는 비교적 생명력과 방어력이 좋은 카르세우스가 앞쪽에서 딜러겸 탱커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이안은 과감히 그를 뒤로 물렸다.

그리고 소환수들은 아무런 의문 없이 곧바로 이안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알겠다, 주인.]

[그러도록 하지.]

이안과 라이는, 임모탈의 양 쪽을 빠르게 파고 들었고, 훈이는 해골들을 뒤로 물리며 이안에게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훈이 : 그런데 한 방은 버틸 수 있는 거 맞지?]

[이안 : 물론이지!]

망자의 보복 스킬은, 피격자가 입은 피해를 공격자에게 돌려주는, 단순히 보면 무척이나 사기적인 능력을 가진 스킬이었다.

하지만 실상 이 스킬을 실전에서 제대로 활용하는 흑마법사들은 많지 않았다.

‘훈이 놈 컨트롤 정도면, 타이밍은 제대로 맞춰줄 수 있겠지?’

망자의 보복은, 1초도 채 되지 않는 무척 짧은 시간동안만 지속되었고, 그 찰나의 시간을 데미지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서 사용해야 효과가 발동되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까다로운 스킬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 방에 피격자가 죽어버리면 스킬 효과가 발동되지 않았기에 지금껏 자신의 소환수들에게는 사용하지 못했었다.

훈이의 스켈레톤들은 임모탈의 공격 한 번을 버텨내지 못하고 부서져 버렸으니까.

[크아아아! 놈들, 겁을 상실했구나!]

달려드는 이안과 라이를 보며, 보랏빛으로 타오르는 앙상한 손을 우악스럽게 휘두르는 임모탈.

하지만 순발력에 특화된 라이와 이안은 여유있게 공격들을 피해 내며 임모탈의 빈틈에 계속해서 딜을 넣었다.

‘아직은 아니야. 이것보다 훨씬 큰 한방을 노려야 돼.’

카일란에서는 유저가 한번 공격패턴을 사용하고 나면 보스 몬스터의 AI가 그 패턴을 학습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난이도 높은 공격방식은 두 번째부터는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었고, 이안은 최대한 큰 기술에 망자의 보복을 사용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때, 임모탈의 움직임이 변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그의 지팡이 끝에 맺히기 시작한 어둡고 사이한 기운.

그것을 캐치한 이안은 훈이에게 짧게 신호를 보내었고, 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을 캐스팅할 준비를 마쳤다.

‘캐스팅 시간이 1.5초. 발동되는데 0.5초 정도가 더 걸리니까….’

이안은 빈틈을 보인 채 임모탈의 지팡이를 향해 뛰어들었고, 기다렸다는 듯 시퍼런 불길을 뿜는 지팡이가 휘둘러졌다.

[크아아! 죽어라, 이노옴!!]

그리고 그와 동시에, 훈이가 뻗은 손 끝에서 한 줄기 빛이 이안을 향해 빠른 속도로 뻗어나갔다.

< (7). 어둠의 군주 -2 > 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