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비밀스러운 거래 -2 >
* * *
오 분도 채 지나기 전에 모든 장비를 +5강까지 만들어낸 이안은 빠르게 게임을 로그아웃 했다.
몇 십 시간을 더 달릴 생각으로 버티고 있을 때는,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었지만, 곧 로그아웃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눈꺼풀이 미칠 듯이 무거워 졌기 때문이었다.
‘이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정도로 이득 본 것 같아.’
강화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5강이 되면 장비가 하얀 빛으로 빛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5강이 되는 순간 랜덤으로 옵션 하나가 생긴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안은 특히, ‘정령왕의 심판’ 아이템에 붙은 초월옵션이 마음에 들었다.
[초월옵션 : 적의 공격을 회피할 시, 15%의 확률로 공격력의 30%만큼의 전격 피해를 입히며, 30%의 확률로 생명력을 10%만큼 회복합니다.]
‘내 플레이 스타일이랑 딱 맞는 옵션이야. 조건부 발동 옵션인데, 그 조건이 회피라니….’
카일란에는 따로 회피율 이라는 능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높은 민첩성과 유저의 컨트롤 능력에 따라 적 공격의 회피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지간한 공격은 회피하며 플레이하는 이안에게 정말로 딱 맞는 옵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공격력의 30%수준의 전격공격이면 그리 강한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누적되면 제법 큰 DPS를 차지할 거고, 생명력 10% 회복이 정말 꿀이네.’
특히 수많은 적들로부터 공격받는 난전이라면, 수많은 공격들을 짧은 시간 내에 회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말인 즉, 플루크라도 터지면 바닥이었던 생명력이 단숨에 최대치까지 차오를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총 열 부위나 되는 아이템들을 전부 +5강까지 만들었음에도, 정령왕의 심판에 붙은 옵션만큼 좋은 것은 두어 개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좋은 아이템일수록 초월옵션도 더 좋은 걸로 붙을 확률이 높은 것 같기도 하고….’
영웅 등급의 아이템이었던 하의와 부츠, 그리고 벨트에는 그냥 전투 능력치나 직업 능력치만이 붙었을 뿐이었으니까.
100~200 정도의 고정수치 혹은 한자리수의 %수치 정도.
‘생각해 보면 그 정도도 적은 양은 아니긴 하네.’
특히 통솔력의 경우는 정말 꿀 같은 옵션이었으니까.
위이잉-
무려 53시간 만에 캡슐에서 나온 진성은 창 밖을 한번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얗게 밝아오고 있는 새벽녘의 하늘이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내가 접속했던 게 밤 12시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러면 꼬박 이틀이 지나고 다시 아침 해가 뜬 건가?”
진성은 씻을 정신도 없이 침대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이럴 땐 잘 수 있는 만큼 푹 자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 * *
띠링-
[카일란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스템 변동으로 인해, 로그인 지점이 변경되었습니다.]
[‘마계 120구역’에서 ‘사랑의 숲’으로 캐릭터가 이동됩니다.]
“크으아, 개운하다.”
거의 20시간도 넘게 자고 일어난 이안은, 곧바로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그리고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 투덜거렸다.
“으, 어두침침한 마계가 더 좋았는데, 여긴 너무 핑크핑크해서 항상 부담스럽단 말이지.”
어쨌든 중부대륙이 아니고 사랑의 숲으로 이동되었다는 점은 만족스러웠기에, 이안은 기분 좋게 걸음을 옮겼다.
마계에서 추방(?) 당하기는 했지만, 퀘스트 조건은 만족시켰으니 어차피 이리엘을 만나러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때, 이안의 뇌리에 불현 듯 스치는 것이 있었다.
“아 참! 아이템 전부 회수했으면 혹시 라쿰 영혼도 회수해 갔으려나? 내 호리병!”
이안은 서둘러 인벤토리를 열어 호리병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휴, 그래도 호리병은 마계에서 얻은 아이템이 아니라 회수가 되지 않았나보네.”
호리병은 이리엘이 준 것이었고, 라쿰의 영혼은 전부 호리병 안에 집어넣었으니, 다행히 회수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이안은 다시 가벼운 걸음으로 이리엘을 향해 이동했다.
“이안님, 돌아오셨군요.”
이리엘은 이안을 발견하자마자 반가운 표정이 되어 다가왔다.
“네, 이리엘님.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마계 안쪽에서 일이 좀 꼬이는 바람에….”
이리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쉬운 임무는 아니었으니까요. 마계는 정말 위험한 곳이죠.”
항마력이라는 사기 능력으로 스타팅 포인트에 있는 토끼 잡듯 라쿰을 사냥한 이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에는… 확실히 강력한 몬스터들이 많더라구요. 하하….”
이리엘이 환하게 웃었다.
“이안님께서 무사히 돌아오신 게 정말 다행이에요. 제 게이트가 닫힐 때 까지 돌아오지 않으셔서 정말 무슨 일이라도 당하신 줄 알았어요.”
이안은 어깨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다행히 이렇게 멀쩡합니다.”
“그럼 이안님, 라쿰의 영혼은 다 모아오신 건가요?”
이리엘의 물음에 이안은 인벤토리에서 호리병을 꺼내었다.
그리고 호리병을 그녀에게 내밀며 씨익 웃었다.
“여기, 가져왔습니다.”
그 순간,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띠링-
[‘마족의 태동 Ⅰ (히든)(연계)’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클리어 등급 : C]
[명성이 5만 만큼 증가합니다.]
[10만 골드를 획득했습니다.]
[클리어 등급이 B등급보다 낮기 때문에, 이리엘의 호감도가 3만큼 하락합니다.]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보며, 이안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아니, 왜 클리어 등급이 C등급 밖에 안 되는 거야? 내가 너무 늦게 돌아와서 그런가?’
제한시간이 따로 있는 퀘스트는 아니었지만, 이리엘이 유지시켜주는 포탈은 반나절 동안만 유지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준시간은 반나절이라고 봐도 무방했고, 거의 세배의 시간을 걸려서 퀘스트를 완료한 이안의 클리어등급이 낮은 건,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쩝, 그래도 뭐… 얻은 게 더 많은 거니까. 이리엘의 호감도가 3 정도 떨어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딱히 없을 테니까.’
한편, 이안에게서 호리병을 받은 이리엘은 흡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훌륭해요, 이안님. 정확히 200개의 영혼을 모아 오셨군요.”
이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별 말씀을….”
“이제 양피지를 줘 보세요. 제가 복원작업을 해서 돌려드릴게요.”
“예, 잠시만요.”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벤토리에서 양피지를 꺼내, 이리엘에게 건넸다.
그리고 이리엘은 양피지를 탁자 위에 내려놓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Ssdlknf Adknk Qdlksndgkvv assosk……]
우우웅-
그러자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양피지가 허공에 둥둥 떠올랐고, 탁자에 놓여있던 호리병이 조금씩 진동하기 시작했다.
“오오….”
이안은 그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고, 잠시 후 호리병에서는 붉은 색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류는 점점 빠른 속도로 양피지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퍼엉-!
허공에서 낮은 폭발음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양피지가 있던 자리에는 붉은 커버가 씌워진 하나의 책자가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이리엘이 그것을 눈짓하며 이안에게 말했다.
“이안님, 받으세요.”
이안은 천천히 책자의 앞으로 다가가 그것을 받아 들었고,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고대 마수 도감’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안의 시선이 다시 이리엘을 향했고, 그와 눈이 마주친 이리엘이 아이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계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 드릴게요.”
이안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직 업데이트 되지도 않은 신규 컨텐츠에 대한 정보야 말로, 지금 시점에 그 무엇보다 값진 것이었으니까.
이리엘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이안님도 아실 지도 모르지만, 마계에는 크게 마족과 마수가 존재한답니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이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마족은 인간형 몬스터… 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건가?’
“하지만 마족이라고 해서 마수보다 강하고, 마수라고 해서 마족보다 약하지는 않습니다. 마수 중에도 마룡이나 발록과 같은 높은 등급의 마수는, 최상위 마족들도 함부로 상대할 수 없거든요.”
그녀의 설명은 제법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1. 마족과 마수는 별개의 존재이다. 마수가 마족의 하위에 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2. 마족은 크게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 가장 높은 등급의 마족은 왕족이라 칭해지며, 이어서 노블레스, 상위마족, 평마족, 하급마족 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하지만 마족의 등급은 태생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며, 공식 결투를 통해 공증된 마계순위를 통해 정해진다.
100위권 내의 전투력을 가진 마족들이 왕족이며, 1000위권 내의 전투력을 가진 마족들이 노블레스, 그 아래로 상위 30% 이내의 전투력을 가진 마족이 상위마족이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마족들이 평마족이라 칭해지는데, 하위 20~30%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마족들은 하급마족으로 분류된다.
3. 마수들 또한 등급이 있다. 마수들은 인간계의 몬스터와 동일하게 등급이 매겨지며, 전설등급 이상의 마수들은 자아를 갖고 인간과 대화도 나눌 수 있다.
4. 어떤 종족이든 ‘악마의 순혈’을 손에 넣으면 반인반마(半人半魔)가 될 수 있는데, 반인반마가 되면 ‘마기’라는 새로운 에너지를 다룰 수 있게 되며, 영웅등급 이하의 마수들과도 교감을 나눌 수 있게 된다.
또한, 마족들과의 결투를 통해 마족의 서열싸움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설명을 열심히 들으며 머리 속에 정보들을 정리한 이안은, 천천히 되새겨 보았다.
‘재밌는 내용들이 많네. 내가 알았던 부분은 악마의 순혈에 대한 정보 정도군….’
이정도면 생각보다 세세하고 훌륭한 정보들.
이안은 어디에 메모라도 해 두고 싶었다.
“목이 타네요. 잠시 물좀 마시고….”
쉴 틈없이 얘기한 이리엘이 탁자에 있는 물을 한 모금 홀짝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해서 이제 이안님께서 얻은 그 ‘고대 마수도감’ 이라는 아이템은, 짐작하셨겠지만 각종 마수들에 대한 데이터가 들어가 있는 아이템이에요.”
“오호, 그렇군요.”
“과거에 악마의 순혈을 이용해 반마가 되셨던 엘프 소환술사인 세르비안님이 남겨놓으신 작품이죠.”
이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역시…! 소환술사는 마수도 테이밍 할 수 있는 거였어.’
마계 초입에 등장했던 하급 마수들은 외모도 비호감인데다 통솔력도 부족했기에 테이밍을 시도해 보지 않았지만,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이안은 확인차 이리엘에게 물었다.
“역시, 마수도 테이밍이 가능했군요.”
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마수들 또한 인간계의 몬스터처럼 테이밍이 가능하죠.”
“오오….”
그런데 그 때, 이리엘이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단, 조건이 하나 필요해요.”
< (3). 비밀스러운 거래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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