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마수 연성술사 -3 >
* * *
세르비안을 대동한 이안은, 마계 110~115 구역을 천천히 뚫으며 107구역을 향해 이동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조금씩 더 깊숙한 곳으로 움직일수록, 하급마수들의 비율이 줄어들고 중급마수들로 그 자리가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후우, 강력한 마수들이 많네요. 특히 같은 마수라도 오염된 마수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은 아니겠죠?”
이안의 물음에, 세르비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네. 같은 마수일 경우, 당연히 오염된 마수의 전투력이 더 강할 수 밖에 없어.]
“왜죠?”
[정제되지 않은 카오스 스톤에 중독되면, 마기가 사그러드는 대신, 오히려 미쳐 날뛰게 되거든. 인간이나 일반 몬스터들로 따지자면 각성제를 투여 받은 상태라고 해야 할까?]
“아하… 어쩐지….”
세르비안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설명을 이었다.
[가장 무서운 점은, 광분한 마수들은 두려움을 모른다는 거야. 자신이 입을 피해를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공격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지.]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했다.
‘미친 개 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상대하기 편할지도 모르겠어. 저렇게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패턴은, 카운터 어택에 무척이나 약하니까.’
이안 일행은 반나절 정도를 걸려 110구역까지 주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세르비안의 도움이 무척이나 컸다.
그가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그의 지식으로 인해 마수들을 상대하기가 쉬워진 것이다.
마계에 수백년을 머물며 마수만을 연구한 연구가 답게, 마수에 대한 그의 지식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방대했다.
[러플로스는, 등허리가 약점이라네. 척추가 무척이나 빈약해서, 큰 충격을 가하면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지.]
[헤카룬을 상대할 때는, 그의 두 눈을 항상 주시하고 있어야 해. 헤카룬의 두 눈이 붉게 빛난다면, 놈의 공격력이 극대화 되었다는 얘기거든.]
이안은 쉼 없이 창을 휘두르며 전투를 하는 와중에도, 세르비안의 말을 열심히 머릿속에 새겼다.
‘정말 말이 많은 노인네인 것 같지만… 그래도 대부분이 알짜배기 정보라서 허투루 들을 수가 없네.’ 그렇게 결국 110구역의 끝자락까지 도달한 이안.
그런데 무언가를 발견한 이안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
옆에 있던 카이자르가 이안에게 물었다.
“왜 멈추고 그래?”
이안이 손가락을 들어 전방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120구역에서 발견했었던 소환마법진이다.”
그에 카이자르를 비롯한 이안의 일행이 전부 그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다들 긴장한 눈빛이 되었다.
“흐음… 십이지장인지 뭔지 하는 놈들 중 하나가 또 나타나는 건가?”
카이자르의 중얼거림.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지 않겠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세르비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들 말이 맞아. 110구역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십이지장 중 하나를 상대해 이겨야만 하지.]
“후우….”
이안은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얀쿤과 같은 십이지장 중 하나라면… 분명 그와 맞먹는 전투력을 가진 괴물 같은 놈일 텐데, 지금 내 전력으로 이길 수 있을까?’
이안이 만났던 얀쿤의 레벨은 350.
110구역을 지키는 수문장은 그보다 더 레벨이 높았으면 높았지, 더 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차라리 얀쿤이라면 상대해 볼 만 할 거야. 그의 공격패턴은 전부 외우고 있으니까.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이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얀쿤의 위치는 분노의 도시 라고 떠 있었고, 당연히 여기서 등장할 리는 없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고민에 빠져있는 이안을 향해, 세르비안이 입을 열었다.
[자네, 120구역을 지키는 수문장은 어떻게 뚫었지?]
생각지 못한 질문에 당황한 이안이 살짝 말을 더듬었다.
항마력 99라는 사기적인 버그를 등에 업고 있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 그때는 운이 좀 좋았었죠.”
세르비안이 눈을 빛냈다.
[그래? 그렇다면 자네가 처치한 건 확실하다는 말이군?]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렇다면 혹시, 그에게서 뭔가 얻어낸 것은 없는가?]
“얻어낸 것이라면….”
[예를 들어, 상급 마족의 인장이라던가…. 자네가 그의 인정을 받았다면 얻을 수 있었을텐데….]
세르비안의 말에 이안은 반색하며 곧바로 인벤토리를 뒤졌다.
상급 마족의 인장은, 분명 얀쿤으로부터 받은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찾았다!’
인장을 꺼낸 이안이 세르비안을 향해 그것을 내밀었다.
“여기요. 이 아이템이 맞나요?”
이안이 내민 상급 마족의 인장을 확인한 세르비안.
이번에는 그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오오…! 진짜 그것을 얻었을 줄이야!]
마족이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이 보유한 인장을 넘겼다는 것은 가벼운 의미가 아니었다.
강자존의 법칙이 가장 완벽히 적용되는 세계인 마계.
마족은 자신이 진심으로 감복한 ‘강자’ 에게만 자신의 인장을 선물한다.
심지어 일반 마족도 아니고 상급 마족, 그 중에서도 마계의 수문장인 십이지장 중 하나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이안을 보는 세르비안의 눈빛이 달라졌다.
[인장을 보니… 이건 얀쿤의 인장이로군.]
“오, 마족마다 인장의 생김새가 다른가보군요?”
[당연하지. 인장은 마족에게 있어서 신분증과도 같은 의미니까 말이야.]
세르비안이 두둥실 뜬 채, 소환마법진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이 돌발상황(?)에, 이안은 당황해서 소리쳤다.
“앗, 세르비안님! 아직 전투 준비 안했다구요. 그쪽으로 가시면 수문장이 소환될 겁니다.”
세르비안이 웃으며 이안에게 말했다.
[얀쿤의 인정을 받아 마족의 인장까지 받은 자네라면 110구역을 지키는 수문장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 그게….”
말꼬리를 흐리는 이안을 보며, 세르비안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자네의 그 인장이 있다면, 수문장과 싸우지 않고도 여길 지날 수가 있으니 굳이 싸울 필요는 없겠지.]
세르비안의 말에 이안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환해졌다.
‘역시! 그런 방법이 있을 줄 알았어. 지금 이 전력으로 또다른 수문장과 싸우는 건 무리야.’
이안은 세르비안의 뒤를 따라갔고, 세르비안은 소환마법진 옆에 있는 작은 비석의 앞에 멈춰섰다.
[여기, 이 홈이 보이는가?]
“예, 세르비안님.”
[여기에 그 상급마족의 인장을 끼워 넣어 보시게.]
이안은 얼른 인장을 들어, 세르비안의 말대로 홈에 끼워 넣었다.
‘신분증이라더니, 통행증의 역할도 하는 물건인가 보네.’
보름 전, 운 좋게 테스팅 존에 들어와 얀쿤과 싸우지 않았더라면 최소 한 달은 지나야 도전해 볼 법한 관문.
아니, 애초에 그 사고(?)가 아니었더라면, 지금 이안이 여기까지 도달해 있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여러모로 마계 사전탐방으로 인한 이득을 톡톡히 보는 이안!
우우웅-
소환마법진이 가늘게 진동하기 시작했고, 곧 그 위에는 십이지장이 소환되는 대신, 다음 구역으로 이동하기 위한, 예의 그 붉은 포탈이 소환되었다.
이안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인장을 홈에서 빼 내어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럼 들어가 볼까요?”
이안의 말에 세르비안이 대답 대신 포탈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이안은 씨익 웃으며 가신들과 소환수들을 향해 명령했다.
“자, 전부 따라 들어오도록!”
* * *
“후후, 마계에 처음 들어온 건 내가 아니었지만, 120구역 안쪽까지 진입한 건 내가 처음일거야. 그렇지 카산드라?”
붉은 로브와 망토를 둘러 걸친 아름다운 여인.
홍염의 군주, 레미르가 자신의 손바닥을 응시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어조가 그랬을 뿐, 분명히 누군가를 향해 하는 말.
그리고 레미르의 손바닥에서, 새하얀 불길이 타오르더니 동그란 구체가 하나 떠올랐다.
그 안에는, 검붉은 피부색을 가진, 마족 여성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호호, 애석하게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레미르?]
구체 안에서 깔깔대며 웃는 마족.
그녀를 보며 레미르의 아름다운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으음…? 그게 아니라고? 나보다 먼저 여기까지 도달한 다른 인간이 있다는 얘기야?”
레미르의 물은에, ‘카산드라’ 라고 불린 마족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야. 이미 누군가가 먼저 이 곳을 지났어.]
일그러졌던 레미르의 얼굴에, 이번에는 짜증 대신 호기심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래?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지? 카산드라, 너에게 마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 같은 것도 있는거야?”
하지만 레미르의 기대와는 달리, 카산드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그것은 아니야. 다만… 누군가가 먼저 이곳을 지났다는, 너무도 확실한 증거가 있거든.]
“음…?”
고개를 갸웃하는 레미르를 향해, 카산드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방금 네가 지난 그 게이트. 거기는 마계의 수문장이자, 십이지장 중 한명인 얀쿤이 지키는 게이트였어.]
레미르가 반사적으로 입을 열어 반문했다.
“얀쿤?”
[그래. 얀쿤이라고 무식하게 힘만 쎈 상급 마족이 있지.]
그녀의 말을 곧바로 이해한 레미르가 다시 물었다.
“그럼 누군가가 그 얀쿤이라는 수문장을 이미 처치하고 안으로 들어갔다는 얘기야?”
카산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누군가가 얀쿤을 처치하지 않았다면, 이 게이트가 마족의 인장 같은 것도 없이 이렇게 통과 할 수 있게 되어 있을 리가 없어.]
레미르가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또 늦었다니… 이거 제법 자존심 상하는데?”
전의(?)를 불태우는 그녀를 보며, 카산드라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먼저 이곳을 통과한 인간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행여 그를 적으로 돌릴 생각이라면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레미르는 미지의 인물인 ‘그’를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카산드라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고개를 획 돌리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건, 어째서지?”
카산드라가 어깨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혼자의 힘으로 얀쿤을 처치한 인물이라면, 네가 상대할 수 있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지. 얀쿤은 엄청나게 강력하거든.]
“그…래? 얼마나 강력하길래 네 입에서 강하다는 얘기가 나오는거지? 너보다 더 강한거야?”
레미르의 질문에 카산드라가 잠시 생각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글세, 정확히는 모르겠어. 나도 너무 오랜만에 마계에 돌아오는 것이라서 말이야. 하지만 이전까지 알고 있었던 정보들을 바탕으로 추측해 보자면… 내가 모든 힘을 되찾고 난 후에는 이길 수 있는 상대일 것 같군.]
카산드라의 말에 레미르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모든 봉인을 풀고 나면, 카산드라의 레벨은 거의 400에 육박할 텐데… 그 전투력에 육박하는 마족을 유저가 혼자 힘으로 처치했다고? 지금 시점에서 그게 가능한 거야?’
레미르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불가능했다.
지금 그녀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는, 높게 잡아줘야 200레벨 후반대나 300레벨 초반 대 정도였다.
그조차도 정말 아슬아슬한 수준.
그런데 카산드라의 말에 의하면, 400레벨에 육박하는 괴물 같은 마족을 유저가 처치했다는 것이었으니, 당연히 믿기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인간이 꼭 유저라는 법은 없잖아? 어떤 괴물같은 npc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운 좋게 꿀같은 퀘스트를 받아서, 일시적으로 400레벨에 가까운 npc동료라도 얻은 유저였나 보지.’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뭔가 지고 들어가는 듯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레미르가 입을 앙다무는 것을 본 카산드라는, 간드러지게 웃으며 그녀를 놀렸다.
[호호호, 홍염의 군주가 이렇게 분해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그 인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이런 즐거움을 주다니, 고마운 걸?]
레미르가 인상을 쓰며 차갑게 대꾸했다.
“놀리지 마, 카산드라. 그가 누구든 간에 결국에는 내가 넘어서야 할 상대에 불과하니까.”
카산드라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난 그대의 이런 성격이 마음에 들어.]
“고맙네요, 마계귀족의 인정을 받으니 뿌듯하군요.”
비아냥거리는 그녀를 보며 피식 웃은 카산드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그 알 수 없는 인간 덕에, 이 쉽지 않은 관문을 공짜로 통과할 수 있게 되었으니, 빨리 지나가기나 하라고. 그를 넘어서려면 이렇게 지체할 시간 같은 건 없는 거잖아?]
카산드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레미르는 서둘러 게이트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듀얼 클래스만은 모든 유저들 중에 가장 빨리 얻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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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마수 연성술사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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