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208화 (234/1,027)

< (6). 마수, 라키엘 -1 >

이안과 세르비안은 제법 죽이 잘 맞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둘의 성향이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소환수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분석.

이 하나의 주제로 두 사람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

대체로 이안의 궁금증을, 세르비안이 해소시켜주는 구도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세르비안님. 마수들에게도 ‘잠재력’이라는 게 같은 형태로 존재한단 말이죠?”

[그렇다네. 마수 또한 자네가 지금까지 부려왔던 소환수들과 큰 맥락에서는 다를 게 없어.]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을 몇 가지만 꼽자면요?”

[으음….]

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세르비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마기’를 가졌다는 점. 레벨이 같을 시, 일반 소환수들 보다 전투능력이 10~15%가량 더 뛰어나다는 점. 대신에 지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 컨트롤하기는 더 어려울 거야.]

이안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지능이 떨어진다는 말은 어떤 의미죠? 그러니까… 제 명령을 잘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긴가요?”

세르비안은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건 아니야. 오히려 정확한 명령에는 일반적인 소환수들보다 더 빠르고 확실하게 반응하지. 다만, 융통성이 없다는 게 문제야. 자네도 훌륭한 소환술사이니 잘 알고 있겠지만, 지능이 뛰어난 소환수들은 소환술사가 일일이 명령을 내리지 않더라도 알아서 잘 싸워주지 않나. 반면에 마수들은 능동성과 융통성이 일반 소환수들에 비해 꽤나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쉽게 말해 AI가 일반 소환수들에 비해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

이것은 보통의 소환술사들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올 만 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안에게는 아니었다.

‘오히려 내 전투스타일에는 더 잘 어울릴 수도 있겠는데?’

이안은 모든 소환수들에게 하나하나 명령을 내려가며 세밀하게 컨트롤하는 스타일이었다.

이안에게 있어 전투란, 하나의 잘 짜여 진 거대한 알고리즘을 빈 틈 없이 작동시켜 원하는 결과 값을 도출해 내는 과정.

모든 소환수들의 움직임이 자신의 통제 안에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안에게 있어서, 소환수의 AI의 부족은 큰 단점이 아니었다.

‘마수…라…. 알아갈수록 점점 더 마음에 드는데?’

100~110구역에 등장하는 마수들은, 110~120구역 사이에 등장하던 마수들과는 또 다른 레벨의 강력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하드한 사냥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휴식을 취할 때면 이안은 항상 세르비안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세르비안과 함께할 수 있는 기간 동안, 이 노인네의 지식을 전부 다 내 것으로 흡수해야겠어.’

물론 세르비안이 직접 쓴 마수도감을 가진 이안이었지만, 책으로 만들어진 기록물을 읽는 것과, 직접 저자에게서 설명을 듣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맵을 진행해 가던 이안 일행은, 드디어 세르비안의 연구소가 있다는 107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르비안. 연구소는 어느 방향에 있죠? 107구역은 되게 미로처럼 생겼네요.”

사방이 탁 트여있던 108구역과는 다르게, 좁다랗고 복잡한 동굴 같은 구조를 가진 107구역.

난처한 표정으로 길을 묻는 이안을 보며, 세르비안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107구역의 구조는 무척이나 복잡하지. 어쩌다 이런 형태로 만들어졌는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이 복잡한 구조 때문에 내가 여기에 연구소를 만들었던 것이기도 해.]

“어째서죠?”

[마족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을 수 있어서지. 최상위 마족들은, 반쪽짜리 마족인 주제에 어지간한 노블레스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 일부러라도 연구소를 숨길 필요가 있었어.]

세르비안은 능숙하게 통로를 통과하며, 이안 일행을 연구소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이안은 세르비안의 뒤를 따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아… 이 길을 외우느니, 마수 도감인지 뭔지를 한 권 통째로 외우는 게 더 쉽겠어. 세르비안 없이 나 혼자의 힘으로 돌아 나가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이안은 그래도 최대한 길을 외워보려 노력했고, 그동안 세르비안은 자신의 연구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연구소라기보다는 ‘폐허’에 가까운 비주얼이었지만 말이다.

[다 왔네, 이안. 여기가 내 연구소였던 곳이지.]

이안이 웃으며 반문했다.

“왜 과거형인 겁니까?”

그에 세르비안이 시무룩한 얼굴로 대꾸했다.

[보다시피 죄다 박살이 나지 않았는가. 이제 여긴 쓰레기장이나 창고로 쓰면 딱 어울릴 것 같은 비주얼이 되어버렸어.]

세르비안의 시무룩한 표정이 제법 귀여웠(?)기에, 이안은 피식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뭐가?]

“107구역 들어선 입구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거의 30분은 이동해서 온 것 같은데 단 한 마리의 마수도 발견되지 않았잖아요.”

[아하, 그거…?]

“그게 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던 거죠?”

세르비안이 우쭐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그거야 이 107구역은, 내 앞마당과 같은 곳이니까. 우린 보통 마수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지름길만 통해서 안쪽으로 진입했기 때문이지.]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여러모로 세르비안 덕에 퀘스트를 쉽게 진행하는군. 일이 너무 술술 풀려서 오히려 불안한 수준인걸?’

두 사람이 잡담을 나누는 동안, 일행은 연구소를 가장한 폐가(?)에 도착했고, 이안은 성큼 성큼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조심하게 이안. 연구소 안쪽에는 어떤 놈이 있을지 몰라.]

“으음…?”

세르비안이 다시 한번 경고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마수를 만나지 않은 이유 중에는, 사실 내 연구소의 존재가 가장 커.]

“어째서죠?”

[연구소 안에 있는 카오스 스톤의 냄새를 맡은 많은 마수들이, 죄다 연구소 안에 들어가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지.]

“크흐음… 그 카오스 스톤이라는 게, 마수들이 좋아하는 물질인 겁니까?”

잠시 생각하던 세르비안이 짧게 대답했다.

[마수들이 좋아하는 물질이라기 보단…. 인간에 비유하자면 마치 마약과도 같은 물질이라고 생각하면 되네. 몸은 망가뜨리지만, 중독성이 엄청난 그런 물질 말이지.]

세르비안의 말을 곧바로 이해한 이안은, 조심스럽게 연구소 안쪽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진입한지 3분도 채 되지 않아서 이안 일행은 대여섯 마리나 되는 중급 마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안은 곧바로 분주하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움직인다! 지금까지 했던 대로만 하면 돼. 일단 빡빡이 앞으로!”

그러자 옆에 서있던 세리아가 곧바로 떡대를 소환시켜 빡빡이의 바로 뒤에 따라 붙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시발점으로, 이안의 소환수들과 가신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공에 둥둥 뜬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르비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볼 때마다 신기할 정도의 소환수 통솔능력이란 말이지.]

오염의 근원지답게, 연구소 안에 등장하는 마수들은 전부 오염도가 높은 마수들이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더욱 까다로운 상대들.

“라이, 너는 나랑 같이 다른 소환수나 가신이랑 싸우고 있는 마수들을 기습한다. 광기 때문에 주의가 산만한 놈들이니까, 암습의 효과가 더 좋을 거야.”

[크릉- 크릉-! 알겠다, 주인!]

마계의 하늘에는 1년 365일 항상 세 개의 달이 떠 있었다.

덕분에 라이의 패시브 능력이 마계에 들어온 뒤부터 엄청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소버린 펜리르(Sovereign Fenrir)의 고유능력 중 하나인 달의 계승자!

고유능력 ‘달의 계승자’는 달빛을 받을 시 모든 움직임이 30%만큼 빨라지며, 매 초 최대 생명력의 3%만큼을 회복하게 되는 고급 패시브 스킬이었다.

한데 마계에 떠있는 달은 하나도 아닌 세 개였고, 놀랍게도 달의 계승자 효과는 중첩되어 적용되고 있었던 것.

3중첩으로 적용된 최상급 패시브 능력은, 그야말로 사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라이의 움직임은 마계 안에 있는 동안 90%만큼 빨랐으며, 생명력은 초당 무려 9%씩 차오르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죽지 않는 좀비 암살자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라이.

라이도 마계 안에서만큼은, 카르세우스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전투력을 뽐내는 중이었다.

[크르릉-! 마수들의 진한 혈향이 느껴지는군.]

미친 듯이 날뛰는 라이를 필두로, 이안은 천천히 연구실의 입구부터 정리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후우,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진행해야 돼. 여긴 진짜 까딱 실수 한번이면 그대로 전멸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놈들이 득실거리는 것 같아.’

어떻게든 이 연구소만 성공적으로 소탕해 내고 나면, 그래서 연계 퀘스트를 전부 마치고 나면, 듀얼 클래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안의 전투력은 한층 강화될 게 분명했으니, 그때는 마계 좀 더 깊은 곳으로 진입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었다.

‘좋아. 조금만 더 긴장해서 여길 뚫어 보자.’

이안은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연구소에 득실거리는 마수들을 하나하나 사냥하기 시작했고, 결국 연구소의 중심부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심부에 다다르자, 한동안 말없이 이안의 전투를 지켜보기만 하던 세르비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안, 저 쪽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파란 빛 보이지?]

세르비안의 말에 이안의 시선이 휙 하고 돌아갔고, 파란 빛을 발견한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기 보이네요. 저 쪽으로 갈까요?”

세르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게. 저 안에 내가 채집해 놨던 카오스 스톤 원석이 쌓여있을 거네.]

이안은 천천히 그쪽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그 카오스 스톤이라는 거, 저나 제 소환수들에게는 위험할 거 없는 아이템인가요?”

이안의 질문에 세르비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설명했다.

[그렇다네. 그 물건은 오로지 ‘마기’에만 반응하는 물건이야. 자네가 조심할 필요는 없지.]

“그렇군요.”

[다만, 저 안에 지금까지 만났던 마수들 중 가장 강력한 놈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니, 자네는 그것을 조심해야 할 걸세.]

“알겠습니다, 세르비안님.”

세르비안의 경고에, 이안은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마수들부터 싹 다 정리했다.

안에서 감당하기 힘든 놈이 튀어나올 것을 대비해, 주변의 잔챙이들을 모조리 정리해둔 것이다.

“자, 이제 한번 들어가 볼까…?”

살며시 벌어진 문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이안은, 천천히 문을 당겨 열어 젖혔다.

그러자 안쪽에서는 눈이 부실 정도로 새파란 빛이 뿜어져 나왔고, 작은 강당 정도가 될 법한 크기의 넓직한 공간 안에, 거대한 마수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거의 카르세우스와 비견될 정도의 커다란 덩치에, 온통 새카만 깃털들로 뒤덮인 거대한 익룡 한 마리.

그 날카로운 눈빛과 위압감에 잠시 움찔한 이안이 한발짝 뒤로 물러서며 전투 자세를 취했고, 옆에 있던 세르비안은 두 눈을 부릅뜨고 익룡을 보고 있었다.

[미, 믿을 수 없군…!]

조금은 뜬금없는 세르비안의 말을 들은 이안이, 의아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믿을 수 없다니, 뭐가요?”

세르비안이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떼었다.

[저 놈은…! 내가 수천 년 전, 인고의 노력 끝에 겨우 겨우 손에 넣었던 ‘라키엘’ 이라는 마수일세.]

“라키엘…?”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인 이안을 향해, 세르비안이 설명을 부언했다.

[상급 마수 주제에 어지간한 전설등급의 마수 만큼이나 희귀한 녀석이지.]

상급 마수라는 말에 이안이 조금 더 긴장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상급 마수라면 엄청나게 강력하겠군요?”

하지만 이안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생각지 못했던 종류의 것이었다.

[지금 저 녀석의 강력함이 문제가 아니야, 이안.]

“그럼요?”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카오스 스톤 앞에 잠들어 있던 라키엘의 두 눈이 천천히 뜨여졌다.

[라키엘의 영혼은, 전설등급의 마수를 연성해 내기 위한 가장 훌륭한 재료란 말일세!]

*          *          *

< (6). 마수, 라키엘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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