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마수, 라키엘 -2 >
* * *
이안은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마수 연성을 위한 훌륭한 재료…라고요?”
[그렇다네. 그리고 라키엘은… 지금 잡지 못하면 자네가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희귀종이야.]
“…!”
이안의 얼굴이 탐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으… 이거 아까워서 어떡해!’
하지만 아무리 잡고 싶어도, 지금의 이안은 마수를 포획할 수 없는 상황.
아직은 연성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이뤄지는지도 모를뿐더러, 라키엘이라는 재료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몰랐지만, 세르비안의 말 한마디 만으로도 얼마나 중요한 녀석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아… 듀얼 클래스를 얻고 나서 나타났어야지, 대체 왜 지금 나타난 거니…!’
마수는 기본적으로, 반마의 피를 가진, 그리고 듀얼 클래스를 가진 소환마(召喚魔)여야만 다룰 수 있는 소환수.
하지만 이안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키아아오오-!!
라키엘이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거대한 괴수와 눈이 마주친 이안은, 재빨리 놈의 정보를 확인했다.
‘구체적인 건 보이지 않고, 상급 마수에… 320레벨이라….’
이안은 정령왕의 심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세르비안님, 저놈 혹시 약점 같은 게 있나요?”
이안의 물음에, 세르비안이 곧바로 대답했다.
[약점 같은 건 딱히 없는 녀석이고, 조심해야 할 건 있다.]
“뭔데요, 그게?”
이안은 빡빡이와 카르세우스를 전면으로 앞세워 시간을 번 뒤, 세르비안의 말을 경청했다.
[라키엘은 자신의 생명력이 최대 생명력의 15%만큼 소진될 때 마다 깃털이 타오른다.]
“좀 빨리 말해주세요! 지금 전투 시작됐잖아요!”
이안의 재촉에 세르비안이 곧바로 설명을 이어갔다.
[깃털은 5분 정도 동안 타오르는데, 깃털이 붉게 타오르는 동안은, 라키엘이 모든 마법 공격에 면역상태가 돼. 그리고 푸른 빛으로 타오르는 동안은 물리 공격에 면역상태가 되지.]
“색깔은 번갈아가며 바뀌는 건가요?”
[그건 나도 정확히 몰라. 하지만 랜덤일 것 같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이안은 지체 없이 라키엘을 향해 뛰어들었다.
‘320레벨짜리 상급 소환수를 상대하려면, 어느 정도 희생은 불가피할 거야.’
지금까지야 단 하나의 가신이나 소환수조차 잃지 않으며 전력을 완벽히 유지하고 있었지만, 320레벨짜리 괴물을 상대로도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 희생 없이 상대하려다 오히려 전멸 당하는 수가 있어.’
이안은 침착하게 소환수들과 가신들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놈. 그냥 죽여 버릴 수는 없어.’
이안은 아직, 라키엘의 ‘포획’ 이라는 불가능한 과제조차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 * *
“후우, 드디어 마계에 입성한 건가?”
기다란 장궁을 등에 멘, 한 남자.
백색의 가죽 갑주를 몸에 걸친 남자가 마계 128구역의 진입 포탈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사무엘진.
오클란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그가, 대규모 업데이트가 열린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마계 입성에 성공한 것이었다.
전체랭킹 10위권 안쪽에 들어가 있는 그로서는 무척이나 수치스러운 성적.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랭커들이 마계로 빠져나갔음에도, 카이몬이 그렇게 강력할 줄은 몰랐지.’
중부대륙 서쪽 끝.
지속적으로 흔들려대는, 루스펠 제국의 방어전선은 사무엘진의 발을 지금까지 묶어놓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를 짜서 교대로 방어하는 전략이 제법 주효한 듯 보였지만, 결국에는 틈이 생겼고 가장 잃을 것이 많은 사무엘진이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방어지원을 나간 것이었다.
‘후우, 조금 늦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빡세게 움직이면 벌어진 차이는 어느 정도 메꿀 수 있겠지.’
사무엘진은, 방어전선을 나몰라라 하고 자기 혼자 마계에 발을 들여놓은 마틴이 무척이나 괘씸했다.
‘마틴, 놈은 역시 계속해서 한 배를 타고가기에는 너무 약았어.’
마틴의 입장에서 자신도 충분히 그렇게 비춰질 수 있음을 모르는 건지, 사무엘진은 이를 뿌드득 갈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듀얼 클래스부터 빨리 얻자. 아직 얻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 내가 빠르게 접수해 주도록 하지.’
사무엘진의 밑도 끝도 없는 패기!
하지만 사실 이것은, 듀얼 클래스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이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만용’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 * *
라키엘은 강력했다.
‘상급 마수’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혹은 그 이상의 능력치를 보여주며, 이안을 고전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미친 새 대가리는 왜 이렇게 쎈거야?’
그렇지 않아도 320레벨이라는 무지막지한 레벨에다가, 카오스 스톤으로 인해 마기가 날뛰기까지 하니, 파괴력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제기랄! 날개 또 불타기 시작한다! 뒤로 일단 빠져!”
이안의 외침에 소환수들과 가신들이 곧바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라키엘의 날개가 내뿜는 불꽃은, 라키엘에게 면역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광역 데미지를 입히기도 했으니 우선 피해야만 했다.
광역 데미지 자체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 간발의 차이로, 라키엘의 깃털이 파란 불길을 내뿜으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의 색상을 확인한 이안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오! 왜 또 파란 불꽃인 건데?’
전투 자체의 난이도가 지옥같이 어렵기는 했지만, 특히 놈이 파란 불꽃을 내뿜을 때면, 정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몇몇 소환수들의 고유능력을 제외하면, 이안의 주력 공격은 전부 ‘물리’ 타입의 공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라키엘의 날개가 파란 불꽃에 휘감겨있는 동안, 이안은 그에게 거의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 없었다.
“제기랄! 최대한 피하는 데 주력해! 핀이랑 카르세우스만 조금씩 견제하면서 딜 넣어주고!”
지금 이안의 파티에 물리타입의 딜러들은 넘쳐났다.
그렇기 때문에 카르세우스는 인간 형태로 폴리모프한 상태였다.
인간 형태일 때, 그는 제법 훌륭한 마법사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니까.
콰아앙-!
핀의 분쇄 스킬과 카르세우스의 마법이 라키엘을 향해 쇄도했지만, 라키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빡빡이와 떡대를 공격했다.
‘아마도 카오스 스톤 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서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거겠지.’
방어나 자기보호는 안중에도 없는 듯 한 라키엘.
이안은 계속해서 라키엘의 생명력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슬슬 이 지옥같은 불꽃이 사그러들 때가 됐는데….’
이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라키엘의 생명력 게이지를 한번 확인했다.
라키엘의 생명력 게이지는, 드디어 절반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후, 저 지옥같은 생명력 게이지 바가 드디어 깜빡거리네.’
이안은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부여잡고, 전투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목적을 거의 달성해 가고는 있지만, 마지막 한 순간까지 방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끼아아오오!!
라키엘이 커다란 부리를 쩍 벌리며, 허공을 향해 괴성을 발사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이안의 시야에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급 마수 ‘라키엘’이 고유능력 ‘어둠의 포효’를 시전합니다.]
[생명력이 26849만큼 감소했습니다.]
[상급 마수 ‘라키엘’의 마기로 인해, 추가로 10500만큼 고정 피해를 입었습니다.]
[소환수 ‘라이’의 생명력이 29847만큼 감소했습니다.]
[소환수 ‘빡빡이’의 생명력이 12983만큼 감소했습니다.]
:
:
재사용 대기시간이 긴 편이 아닌 광역스킬 치고는, 정말 무지막지하게 들어오는 피해량.
이안은 이를 악물며 회복 스킬들을 차례로 시전시키기 시작했다.
“사제들은, 일단 전방에서 데미지 받아내고 있는 녀석들부터 생명력 채워줘! 세리아 너는 계속해서 빡빡이 생명력만 회복시켜 주고.”
“예, 영주님! 그런데 떡대도 생명력이 거의 남지 않았는데… 일단 빡빡이부터 살릴까요?”
이안은 가슴이 아팠지만(?),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줘. 지금은 확실한 전력부터 살려내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알겠습니다!”
결국 떡대는 이어진 라키엘의 공격에 생명력을 모두 소진할 수 밖에 없었고, 빡빡이의 생명력 또한 간당간당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카이자르! 조금만 피해 다니면서 생명력 계속 유지하고 있어! 이제 30초 정도면 물리면역이 풀릴 거야!”
“알겠다, 영주놈아. 너도 빨리 준비해라.”
“준비? 무슨 준비?!”
“창 들고 뛰어들 준비 하라고!”
카이자르의 말에 잠시 망설였던 이안은 곧 정령왕의 심판을 움켜쥐고 일어섰다.
‘그래, 조금 위험할 수도 있긴 하지만… 직접 나서야겠어. 소환수 가신 절반 이상 날려먹고 나 혼자 살아남아봐야 마계 사냥효율도 반 토막 날거야.’
불타오르는 날개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이안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급마수 라키엘.
마찬가지로 거의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을 할애해 가며 라키엘과 사투를 벌이는 중인 이안.
그리고 드디어, 이 치열한 전투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콰아앙-!!
푸른 빛깔의 물리 방어막이 걷히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 뛰어드는 이안과 카이자르의 공격.
촤라락-!
그리고 이어지는 라이의 맹공에 라키엘의 생명력 게이지가 바닥까지 떨어져 내려갔다.
키에에에엑-!
고통에 몸부림치는 흑조(黑鳥) 라키엘!
그렇게 라키엘의 죽음으로 전투가 마무리되려던 그 순간, 이안이 갑작스럽게 소환수들과 가신들을 뒤로 물렸다.
“모두 뒤로 빠져! 어서!”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갑작스런 외침이었지만, 이안의 소환수들과 가신들은 빠르게 뒤쪽으로 빠져나왔다.
[왜 그러는 거냐, 주인!]
“그러게. 이렇게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저 괴물같은 녀석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었는데.”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카이자르와 라이를 향해, 이안은 짧게 대답한 뒤 성큼성큼 라키엘을 향해 다가갔다.
“저놈, 생포하려고.”
이를 앙다물고 대답하는 이안의 모습에, 이번에는 세르비안이 놀란 표정이 되어 물었다.
[아니, 악마의 순혈도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주제에 마수를 어떻게 테이밍하겠다는 건가!]
하지만 이안은, 세르비안의 말은 못들은 체 하며 홀로 라키엘을 향해 뛰어들었다.
“힐러들은 모든 회복스킬 나한테 집중시켜!”
“예,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이안이 뒤로 물러선 빡빡이를 힐끔 응시하며 명령을 이었다.
“세리아, 너는 빡빡이 생명력 최대치까지 전부 회복시켜 놓고, 빡빡이는 계속 나만 보고 있다가, 위험해 보이면 곧바로 나한테 귀룡의 가호 걸어줘. 알겠지?”
빡빡이는 조금 질린 듯한 표정이 되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이안의 명령을 수행했다.
[알겠다, 주인. 조심하도록 해라.]
라키엘은 자신을 향해 단신으로 뛰어드는 인간을 보며, 포악하게 울부짖었고.
그렇게 이안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 * *
< (6). 마수, 라키엘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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